달려라 메로스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욱송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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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리겠습니다. 나으리. 그 사람은,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예. 못된 놈입니다. 나쁜 사람입니다. 아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살려둘 수가 없습니다. 


 예, 예. 차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을 살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원수입니다. 예, 모든 것을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산산조각을 내어 죽여주십시오.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 「직소(直訴)」는 이렇게 도입부부터 강렬한 증오를 쏟아낸다. 작품의 화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스승을 고발하는데자신 안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스승에 대한 애증을 미친 듯이 쏟아낸다. 읽을 때마다 바로 내 앞에서 미친 듯이 쏟아 놓는 듯한 그의 이야기를 홀린 듯이 끝까지 읽게 된다. 나까지 그의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읽어도 눈치챘겠지만, 이 소설의 화자는 예수를 배신한 제자 가룟 유다다.(이 책에서는 이 단편이 '유다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그럼에도 유다가 마지막에 헤헤, 저는 가룟 유다입니다.”라고 밝힐 때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가 예수에 대한 모든 감정을 정리하고 배신자 가룟 유다로 남겠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유다는 예수에게 깊은 양가감정을 품고 있다. 더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예수를 흠모하면서도, 예수에게 현실감각이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현실감각이 부족한 예수 대신 발로 뛰어다니며 예수와 제자들을 먹여 살리지만, 예수가 그것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을 장사치라고 경멸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원망하면서도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예루살렘 입성 후, 유다는 자신에게 보여주지 않은 따뜻한 모습을 창녀인 마리아에게 보여주고, 성전을 사흘 만에 무너뜨렸다 다시 짓겠다는 호언장담을 늘어놓는 예수의 모습에 실망하고 그를 배신하기에 이른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보인 따뜻한 모습에 유다는 자신의 배신을 후회하고 다시 예수를 따르려 마음먹지만, 그 순간 예수는 말한다. "너희 중에 나를 배신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 게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이제 깊은 후회와 사랑은 격렬한 증오와 배신으로 바뀐다. 

 실제 유다가 정말 돈에 눈이 먼 배신자였는지, 예수를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증오해서 배신하게 된 가여운 인물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하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존재, 결코 가질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애증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작품을 보지 못했다. 예수를 어느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배신자라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직소」의 유다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와 매우 닮아 있다. 「직소」보다 수십 년 후에 만들어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직소」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직소의 유다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예수가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배신자의 운명으로 이끄는데도, 예수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 운명으로 스스로 걸어갔다. 온 세상을 구원한 구세주에게마저 버림받은 유다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존재에게서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하고 절망스러웠을까. 자신은 예수가 경멸하는 장사꾼일 뿐이라며 위악을 떠는 유다의 마지막 모습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직소」는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와도, 독자인 우리와도 수천 년은 동떨어진 시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그럼에도 바로 우리 앞에서 유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는 것 같은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  「달려라 메로스」는 원전인 고대 그리스 전설에 심리묘사를 조금 더했다는 느낌만 주지만, 「직소」는 유다가 우리처럼 사랑하고 증오하며 살아간 인간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읽을 때마다 그의 감정에 함께 사로잡혀 끊김없이 단숨에 읽어나가게 한다. 이것이 다자이 오사무의 천재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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