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말라를 보았다 - 팔레스타인 시인이 쓴 귀향의 기록 후마니타스의 문학
무리드 바르구티 지음, 구정은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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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말라는 팔레스타인의 사실상의 수도이다.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 중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있지만, 동예루살렘도 사실상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사실상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다. 그리고 라말라 인근의 작은 마을 데이르 가사나는 저자인 팔레스타인의 시인 무리드 바르구티가 30여 년 동안이나 돌아가지 못했던 고향이다.

 『는 라말라를 보았다』 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두 나라 정부에게 추방당하면서 3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던 저자가 담담하게 자신의 귀향을 그린 기록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로 유학 와서 지내던 20대 시절인 1967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하게 되면서 저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 1918-1981)는 친미, 친이스라엘 노선을 택하면서 이집트 안의 팔레스타인 망명자들을 추방했다. 그 때문에 1977년에 이집트인 아내와 5개월짜리 아들과 이집트에서 살고 있던 저자는 가족들과도 헤어져 17년 동안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오슬로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3년 뒤인 1996년에서야, 저자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고향에 돌아온 기쁨을 요란스럽게 표현하지 않는다. 고향에 돌아온 것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고향에 돌아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회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추방은 당신이 속해 있던 장소에서 당신을 갑자기, 순식간에 확 잡아채 가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은 느리기만 하다." 그가 없던 시간 동안 고향과 고향의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 왔다. 이미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저자의 헝가리인 친구의 한 마디는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헝가리 속담이 하나 있어. 식은 양배추는 다시 데울 수 있지만 맛을 똑같이 살리진 못한다는 거지."


  그리고 그는 이미 뿌리 뽑힌 삶에 익숙해져 있다. 커피포트, 커피잔까지 잠시 머무는 곳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호텔 방에 놓인 꽃병의 물을 갈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저자는 자신의 뿌리 뽑힌 삶을 실감한다. 자신도 고향도 변해 버린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이스라엘의 점령이라는 것을 그는 잊지 않는다. 그는 고향 마을의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과거의 추억에 집착하지 않는다. 점령 때문에 자신이 떠나기 전의 모습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한 고향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마치 주인이 잃어버린 개나 장난감 강아지처럼...멀리 걷어차 더 나은 미래, 다가올 날들을 향해 내몰고" 싶어 한다.


 저자는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호텔의 꽃병, 자신들과 친구들, 이웃들이 겪는 일상 속 기쁨과 슬픔, 고통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인해 어떤 고통을 겪는지 드러난다. 가족들은 주변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 몇 년에 한 번 만나고, 한밤중에 갑자기 전화로 가족이나 친구가 살해되거나 '순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저자는 일기를 써 내려 가듯 그 모든 현실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는 "고관들이 쓰는 웅장한 수식어나 현란하고 거짓된 말들을 모두 거부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전쟁과 폭력 속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정치 활동에는 소질도 없고, 집회에 참가해도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거나 소리 높여 요구하는 일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그는 평화협정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현실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순교자'들만 늘어가는 현실을 애국심과 민족주의로 가리는 팔레스타인 언론들을 비판한다. "팔레스타인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과 다른 기적의 민족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TV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모든 사람이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을 위해 싸운다, 다른 민족과 비교해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고 대답한다. 고국을 사랑하지만 애국심과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된 이스라엘 국민과 군인들에 대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스라엘 지도자의 발언에 대해, 가해자가 먼저 가해를 가한 첫 번째 이야기를 빼고, 피해자가 반격한 '두 번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로 뒤바뀌는 현실을 지적한다. 세상은 억압 받는 사람들이 저항하면 그 저항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반격을 당한 가해자들을 피해자로 규정한다.


 이 책은 20여 년 전인 1996년 팔레스타인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습, 2010년 팔레스타인 정치지도자의 암살, 2012년과 2014년의 가자 지구 공습이 이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팔레스타인도 그때의 팔레스타인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2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일상은 계속되고, 저자와 같은 팔레스타인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하려 애쓰고 그 일상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뿌리 뽑힌 삶이라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 이 책은 아랍어 원서를 직역한 것이 아니라 영역판을 중역한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 특유의 시적이면서 간결한 문체가 작품 전체에 시적이고 담백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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