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포함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7세기 일본에서 한 포르투갈 선교사가 배교했다. 그 소식을 듣고 또 다른 선교사가 일본에 찾아 왔지만 그 또한 배교하고 일본에 귀화했다. 사실관계만으로 따져보면 그들은 배교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작가는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 관찰자적 시점과 전지적 시점을 넘나들며 열의 넘치는 선교사였던 그들이 어떻게 배교하게 되었는지, 배교한 뒤의 그들의 내면은 어떠했는지 그들의 심리적 여정을 따라간다. 주인공의 심리적 여정에 따라 어떻게 서사 방식이 바뀌는지, 그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작품의 도입부에서 작가는 역사서처럼 페레이라 신부와 그가 겪은 박해, 그리고 로드리고 신부가 어떻게 페레이라 신부를 따라가게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그 안에 페레이라 신부가 선교 본부에 보낸 편지가 삽입되어 있다. 작가의 객관적 서술이 페레이라와 로드리고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이들의 여정이 시작된 계기를 독자들에게 설명해 준다면, 페레이라의 편지는 일본에서의 박해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서사 구조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이 로드리고의 육체적 여정과 심리적 여정을 머리로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1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로드리고의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로드리고 자신의 목소리로 그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로드리고의 편지는 그가 마을 주민 기치지로의 밀고로 체포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로드리고가 체포된 이후인 5장부터는 로드리고가 화자인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바뀌어 로드리고의 심리를 묘사한다. 두 부분 모두 로드리고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왜 굳이 서로 다른 시점으로 서사를 진행했을까?
로드리고가 체포되기 전까지 독자들은 로드리고의 시점 안에서만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독자들은 젊고 미숙한 사제 로드리고와 함께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상황들을 거치게 된다. 로드리고는 체포된 뒤 이노우에 부교와 통역관, 배교한 페레이라를 만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리고 페레이라가 처했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이 때 화자가 전지적 작가로 바뀌면서, 독자들도 로드리고의 시점으로 볼 때보다 좀 더 폭넓게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배교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로드리고는, 페레이라처럼 배교를 해야 신도들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그가 자신의 신념 대신 사랑을 택하자 신은 침묵을 뚫고 그에게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가 자신의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을 때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렇게 로드리고의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작품 속 사건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야도 넓어지게 되고, 로드리고와 함께 새로운 사실들을 직면하면서 배교에 이르게 되는 그의 심리에 공감하게 된다.
로드리고가 배교하기까지, 그리고 배교한 이후에도 그의 내면 변화에 집중하던 서사는 두 곳에서 로드리고와 거리를 두고 겉으로 보이는 그의 상황만을 관찰한다. 하나는 일본을 찾은 네덜란드 상인의 시점에서 배교한 로드리고가 페레이라와 함께 일본 정부의 천주교 탄압 정책을 돕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네덜란드 상인 요나센의 일기」다. 이 부분에서 그들을 일본 정부에 영합해서 살아가는 비루한 배교자로 보는 타인의 시선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뒤로 로드리고와 기치지로의 대화, 로드리고와 신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로드리고의 내면의 진실이 드러난다. 로드리고의 심리에 가까이 다가갔던 시점은 마지막 부분인*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에서 또 다시 거리를 두고 로드리고를 관찰한다. 실제 역사 기록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이 부분은 로드리고의 내면을 전혀 묘사하지 않고 사실 관계만 전달한다. 그로 인해 독자들은 로드리고의 내면에 감정이입하는 대신, 신의 시점에서 그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신앙을 지키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이와 같이 작가는 서사 방식의 변화를 통해 독자들을 로드리고의 심리적 여정으로 인도하고, 로드리고의 심리적 여정을 함께 경험하게 하고, 때로는 신의 시점에서 로드리고를 지켜보게 한다. 이렇게 복합적인 서사 구조를 통해, 『침묵』은 로드리고에게 감정이입하는 시점이나 그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시점 중 하나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로드리고의 내면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은 『침묵』의 한국어 번역본들에 실리지 않았다. 실제 역사 기록을 등장인물 이름만 바꾼 채 거의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소설의 일부가 아닌 참고자료로 착각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대신 『침묵』의 해설서인 『침묵의 소리』에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 전문이 실려 있어, 그 책을 통해 읽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