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우리 고전 소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책 『파격의 고전』이 출간되었다. 익숙한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 고전을 새롭게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책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6년 전에 이미 권선징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우리 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책『전을 범하다』가 출간되었다. 두 책 모두 기존의 해석과 권선징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선으로 고전을 바라본다.  두 책이 각각 어떤 방식으로 우리 고전을 재해석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작품별 분석 VS 주제별 분석


우선 『전을 범하다』는 한 챕터에 한 작품씩 작품별로 고전 작품들을 분석하고 있다. 「장화홍련전」 에서는 체제 자체의 문제점을 계모 한 사람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가부장제의 실상을,  「적벽가」에서는 국가 권력의 폭력 앞에 선 개인들의 다양한 대응을 파헤치는 등 한 작품 당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든다. 이런 분석 방식은 독자들 또한 차례차례 각 작품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반면 『파격의 고전』 은 주제별로 고전 작품들을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한 주제 안에서 여러 작품이 언급되기도 하고, 한 작품이 여러 개의 주제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가부장제 안의 모순이라는 주제 안에서 「사씨남정기」, 「김씨열행록」, 「장화홍련전」 등 여러 점의 고전 작품이 분석되고, 「심청전」이 효라는 윤리적 이념에 대한 도전과 공동체의 경제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런 분석 방식은 한 작품을 다양한 측면에서 탐구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한 작품이 다루어지는 여러 개의 주제나 서로 연관성이 있는 주제들을 묶어 소단원으로 만들었다면 독자들이 더 유기적인 흐름으로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개의 작품 두 개의 해석

 『파격의 고전』 의 서문에서 저자는 2004년에 처음 이 책을 구상했다고 밝힌다. 그러니 『파격의 고전』 이 2010년에 출간된 『전을 범하다』의 아이디어에 편승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비슷한 주제의 작품이 먼저 나왔을 때 나중에 나온 작품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편승한 아류로 취급당하기 쉽다. 이런 선입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나온 작품의 의견을 뒤집거나, 먼저 나온 작품 못지않게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 『파격의 고전』은 두 가지 전략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파격의 고전』은 『전을 범하다』의 고전 해석을 반박하거나 『전을 범하다』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측면들을 다룬다. 『파격의 고전』의 전체 페이지 수(517페이지)가 『전을 범하다』의 전체 페이지 수(285페이지)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 책의 해석이 가장 뚜렷하게 갈라지는 작품은 「심청전」이다. 『전을 범하다』에서는 심청의 죽음을 '효라는 윤리적 이념을 위한 공동체의 희생 제의'로 보고 있다. 자신이 죽으면 눈먼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심청은 인당수에 뛰어들면서도 아버지가 자신의 희생으로 눈을 뜰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심 봉사도, 마을 사람들도, 심청을 친딸처럼 아끼던 장 승상댁 부인도 심청의 희생을 슬퍼하지만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아비를 위해 딸이 죽을 수 있다는 희생의 당위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을 범하다』 의 저자는 심청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마을) 사람들이 믿고 있는 효라는 이념, 희생의 당위성에 저항하지 못하고 희생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파격의 고전』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목적이 아니라 심 봉사 개인의 목적이기에 심청의 죽음을 공동체의 희생 제의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공양미 3백 석은 상인들이 이익을 내기 위해 모은 거대한 잉여분이고, 심청이 속한 공동체로서는 이러한 막대한 물자를 대신 감당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심청이 죽음으로써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심청의 죽음을 통해, 전통적인 공동체 내부로 침입한 상업 경제가 공동체의 구성원을 죽음으로 내몰 만큼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렇게 같은 작품을 두고도 두 책의 재해석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도발적이고 발랄한 재해석 VS 인문학적 깊이를 지닌 재해석


  그러나 한 작품을 둘러싼 두 개의 해석 중 한 쪽만이 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두 해석 모두 서로가 보지 못한 면들을 발견하면서 독자들에게 더 풍부한 해석을 제공한다. 각 저자의 서로 다른 해석 방향은 두 책에 각각 다른 매력을 부여한다. 

『전을 범하다』 의 고전 재해석은 도발적이고 발랄하다. 『전을 범하다』의 저자는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어린 소녀가 목숨을 잃는 것이 선이라면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폭력적인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장화홍련전」 에서 악역으로 몰린 계모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어느 한 대상에게 전가함으로써 위안을 얻으려는 심리를 포착하고, 「춘향전」에서 춘향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순수한 사랑, 열녀라는 자긍심이라는 허울 아래 이기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권선징악이라는 해석의 틀 안에 '선'으로 규정되어 왔던 것의 실상을 폭로함으로써 기존의 권선징악적 해석에 도전하는 것이다. 또한 알의 형상으로 태어났지만 알이라는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김원전」과,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하찮은 악역 박명수의 캐릭터에서 하찮고 못난 자신에 대한 연민과 동질감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내는 재해석은 신선하다 못해 발랄하기까지 하다. 

 반면 『파격의 고전』은 인문학적 깊이를 지닌 고전의 재해석을 추구한다. 저자는 집을 나가서 의적 활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로, 왕의 신하로 인정 받으려 몸부림치는 홍길동의 모습에서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라캉의 '인정욕망' 개념을 발견한다. 지금까지 기존 사회에 대한 반항아로 해석되어 왔던 것과 달리, 홍길동은 자신의 욕망를 규정하는 부모, 권위자, 법, 사회적 규범 같은 타자의 인정을 구하려는 욕망, 자신의 욕망으로 오인한 타자의 욕망인 인정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문학적 개념뿐 아니라  「심청전」과  「흥부전」 속 공동체 경제와 상품 경제의 대립,  「왕수재전」과  「전우치전」의 변신술이 보여주는 인간 세계의 질서와 그 질서 밖에 있는 외부 세계까지 저자는 경제학, 생태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재해석을 시도한다. 그러한 재해석을 통해, 저자는 기존의 고전 해석보다 더 풍부한 의미들을 고전에서 이끌어내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각각의 매력과 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전을 범하다』와 『파격의 고전』 중 어느 한 쪽이 우월하다거나 타당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각각의 해석에서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고전의 새로운 의미들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쪽에서 다루어진 작품이 다른 한 쪽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또한 권선징악이라는 틀에 거침없이 도발하는 『전을 범하다』을 읽으면서 통쾌함을 느낀다면,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풍부한 의미들을 찾아내는 『파격의 고전』 을 읽으면서는 인문학적 지식과 함께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책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두 책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 고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한 쪽만을 추천하기보다는 두 책 모두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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