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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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고통』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는 미국의 예술 비평가 수전 손택의 책이다. 『타인의 고통』처럼 이 책도 사진에 관한 생각들을 담은 책인데, 『타인의 고통』(2003)보다 26년 전에 쓴(1977년) 책이다. 디지털 사진과 포토샵이 나오기 전에 쓴 책이고 거의 40여 년 전에 쓴 책이라 디지털 사진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세웠던 주장이 『타인의 고통』에서 뒤집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 속 사진에 대한 손택의 비평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진의 특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887)의 도판. 이 작품의 실물은 반 고흐가 썼던 물감의 특성 때문에 점점 색이 바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도판이 작품 실물보다 반 고흐의 색채를 더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손택은 사진 덕분에 우리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소모한다 이야기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널리 보급된 데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요즘은, 손택이 이 글을 썼던 40여 년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미지가 소모되고 있을 것이다. 사진이 얼마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지 오히려 현실이 그 현실을 찍은 사진에 충실한지 검토될 정도다. 에펠탑이나 만리장성 같은 유명 관광지에 갔을 때, 그곳을 찍은 사진과 비교하면서 사진과 똑같은지 아닌지 비교해 보는 것,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 실물이 사진과 같은지 비교해 보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실물이 사진과 같지 않다며 감동을 느끼기는커녕 실망하기까지 한다. 또한 이제는 물감이 바랜 명화의 실물보다는, 예전의 생생한 색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명화의 도판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이미지가 오히려 현실을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사진 이미지에 압도되는 현실을 손택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놀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놀은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스테판 기자르드가 찍은 이스터 섬의 풍경.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직접 접하지 못하는 현실들 대신 그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SNS에서 우리가 가 보지 않은 멋진 여행지와 우리가 키우지 않는 귀여운 애완동물들,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멋지고 예쁜 연예인들의 사진을 다운받고 소장할 수 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접하지 못한 현실 대신 그 이미지들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소유일 뿐이라고 손택은 말한다. 현실은 사진에 담겨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이 되어버렸다. 이런 사진 이미지들, 볼거리들의 홍수 속에서 살다 보면, 정작 그 이미지들이 나타내는 현실을 봤을 때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해 버리는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한 장면. 손택은 이미지로만 이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지가 아닌 현실로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실제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27년 뒤의 저서『타인의 고통』에서 주장한다.


  손택은 30여 년 뒤에 쓴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은 위신을 잃어버렸고, 재현만이 남게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과장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사진,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하고 압도한다고 말했던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는 현상은 지구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테러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볼거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테러와 전쟁을 현실로 겪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등 우리가 가는 곳마다 구매를 촉진하거나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이미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구매를 촉진하고 계급, 인종, 성의 갈등이 빚은 고통을 마비시키는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지에 기반한 문화를 필요로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또 자본주의 사회가 카메라를 통해 자원 개발, 생산성 증가, 질서 유지, 전쟁을 위한 정보를 무한정 수집하기에, 손택은 카메라를 잠재적인 통제의 도구로 본다. 카메라는 대중에게 스펙터클(구경거리)을 제공해 주면서 통치자들에게 감시 대상을 포착해 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오히려 디지털 카메라와 이미지 처리,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런 현상은 손탁이 이 책을 썼던 40여 년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특히 "다양한 이미지와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자유 자체와 동일시될 것이다."라는 문장은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느라 자신이 통제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딜 가도 넘쳐나는 사진과 이미지들에 지칠 때가 있다. 손택의 표현처럼 지금의 나 자신도 "경험을 일종의 이미지, 일종의 기념품"과 맞바꾸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택은 이후에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이 이미지에 압도되는 것은 안전한 곳에서 사진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일부 지역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 책과 『타인의 고통』 은 현실은 사진 이미지 밖에 있고, 사진 이미지에 매몰되어 현실을 잊지 말라는 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40여 년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 또는 거기에 담긴 현실을 소비하는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40여 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너무 일상적이어서 지나쳐 버렸던 사진과 이미지의 소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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