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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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한 살짜리 아이의 시신을 들고 울부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아버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런 사진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보고 연민을 느끼는 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수전 손택은 말한다.


  2천여 년 전에 쓰인 책인 플라톤의 국가론』에는, 처형된 범죄자들의 시신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과 시신에 대한 혐오감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시신을 보고 마는 아테네 시민이 등장한다. 또한 기독교 미술은 수백 년 동안 수난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이렇게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 사진 기술의 발달로 훨씬 더 쉽게 이미지를 대량생산하고 널리 유포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이미지,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이미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로 소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미술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이 책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우리의 반응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지구의 다른 한 쪽에서는 전쟁과 테러 같은 고통을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우리는 사진 이미지로만 접하게 된다. 전쟁, 빈곤, 대량 학살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의 배경은 보통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런 사진들은 전쟁, 테러, 빈곤 같은 비극은 우리와는 먼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비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물론 이런 이미지들이 없으면 우리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연민을 자아내고 그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지는 우리에게 최초의 자극을 줄 뿐이고, 연민과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손택은 말한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 자체는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다. 하지만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금방 시들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연민만을 베푸는 데 그치지 말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연민의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타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지 밖에 있다. 이미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합리화하는 권력자들에게 눈길을 돌려보자고, 그 합리화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깨닫고 꼼꼼히 검토해 보자고 권유하는 것 이상을 해낼 수는 없다고 손택은 말한다. 이미지는 그것을 본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손택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 밖의 현실이라고, 현실을 지키기 위한 실천은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10년도 더 넘은 지금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봐서 앞서 본 이미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세상 속에서, 이미지에서 배제된 현실, 이미지로는 다 알 수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그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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