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의 개미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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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오랜 기간 거북이를 잡으려고 노력하던 표범이 마침내 한적한 길에서 거북이와 우연히 마주쳤지요. 표범이 아하, 마침내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군! 이제 죽을 각오나 하시지 하고 말했어요. 그러자 거북이가 날 죽이기 전에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실래요? 하고 애원했답니다. 표범은 부탁을 들어줘도 될 것 같아 그러라고 했지요. 하지만 표범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거북이는 길에 가만히 서 있는 대신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글쎄 미친 듯이 두 손 두 발로 땅을 긁어대며 모래를 사방으로 뿌려댔답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당황한 표범이 물었죠. 거북이는 내가 죽은 후라도 여길 지나가는 누군가가 '그래, 어떤 친구가 여기서 상대편과 격렬한 투쟁을 벌였구나.'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서요 하고 답했답니다.  

 

 작가의 고국 나이지리아에서 따온 듯한 모습을 한, 가상의 서아프리카 국가 캉안. 주인공 이켐의 고향 마을 아바존 사람들은 대통령 샘의 종신 집권을 위한 총선거에 협조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한다. 그 대가로 정부는 우물을 파기 위해 시추한 물구멍들을 막아버리고, 심한 가뭄이 들자 아바존 사람들은 식수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하러 수도까지 찾아온 아바존 사람들이나, 신문 사설로 독재 정치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신문사 편집장 이켐이나 샘에게는 눈엣가시다. 온갖 핑계를 대며 아바존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대통령 때문에 수도까지 찾아온 보람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향 사람들에게 그들을 위해 투쟁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아바존 마을의 노인은 이 거북이와 표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켐은 대학교에 강사로 초청되어 학생들에게 거북이와 표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제국주의나 자본주의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면서 제국주의자들에 이어 또 다른 억압자가 된 정부와 노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입학 요건을 낮추는 등 자기 이익을 확보하는 데 몰두하거나 학문이라는 벽에 숨는 학생들의 모습 또한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신을 정화하고 행동거지를 바로 하길 요구한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은 거북이처럼 모든 것에 비판의 칼날을 세우며 투쟁한다. 


 그러나 그는 강연의 한 대목을 문제삼은 정부 기관에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한다. 이켐을 보호하고 정부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려 했던 이켐의 친구이자 공보부 장관 크리스는 이켐의 부당한 죽음을 해외 언론에 알린다. 하지만 그도 정부를 피해 도피하다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그들의 압제자였던 샘조차 쿠데타로 목숨을 잃는다. 샘이 쿠데타로 축출되었다고 해서 캉안에서 독재 정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캉안의 모델인 나이지리아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독재 정치와 종교, 민족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켐과 크리스의 투쟁은 실패로 끝났다. 작품 마지막에서 이켐의 딸 아마에치나는 남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지만, 아마에치나가 그 뒤의 투쟁에서 승리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의 나이지리아 상황을 보면 승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늘 평화와 진보를 위해 투쟁했던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투쟁하는 자는 패할 수 있다. 그렇지만 투쟁하지 않는 자는 이미 패했다." 그의 말은 자신이 지고 잡아먹힐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치열하게 싸운 흔적을 남기려 했던 거북이의 정신과 통한다.  그와 거북이가 말하듯이, 싸우다 패하는 것은 싸우지 않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이켐의 후예들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고, 세상의 다른 곳들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투쟁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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