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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편견을 넘어서 - 우리 시대 정치철학자들과의 대화 ㅣ 한길인문학문고 생각하는 사람 1
곽준혁 지음 / 한길사 / 2010년 5월
평점 :
우리에게 왜 정치철학이 필요할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모두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떤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것인지,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들이 지켜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다. 정치인들은 가치보다는 권력을 추구하고, 시민들은 가치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맹목적인 현실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이념이 좌인지 우인지부터 따지고, 상대방의 이념에 따라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의 의견을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자기반성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철학자 곽준혁 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자기반성이 없이 이미 익숙한 사고방식대로 정치가 이루어졌을 때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에 반영된 절박한 사회경제적 요구들이, 그 문제들에 얽힌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가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치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해 갈 실마리가 정치철학에 있기 때문이다. 곽준혁 교수에게 정치철학은 정치가 상상하는 가능성의 경계를 확장하고, 현실과 편견이라는 장벽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그는 정치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정치철학계의 석학 다섯 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대담을 모은 것이 이 책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이다.
필립 페팃은 비(非)지배 자유, 즉 다른 사람의 자의적인 의지에 지배당하지 않을 자유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동체주의에서 중시하는 공공선과 자유주의에서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공화국을 꿈꾼다. 데이비드 밀러의 이야기는 다문화 사회로 막 접어든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그는 소수자 집단들이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잃고 흡수되는 동화와, 소수자 집단이 그 사회의 경제, 정치,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다 하면서 그 사회 내의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과도 사회적 접촉을 많이 하는 통합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뭉치게 하면서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를 지탱하게 해 주는 통합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왜 후손이 과거사까지 책임을 져야 하냐는 일본 우익들의 질문에 대답할 실마리를 준다. 후손들이 이전 세대들이 만들어낸 혜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혜택을 만들어내기 위해 과거에 다른 민족에게 부과했던 비용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샹탈 무페는 다원성이 인정된 정치 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고, 잘 제도화된다면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목표인 인민 주권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에이미 것만은 시민교육을 실질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를 시민 개개인이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도로 본다. 것만은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국가나 특정 집단이 좋은 사회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탄압하기 위해 시민교육을 이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마사 너스바움은 개개인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정치제도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면서, 가능성은 한 사회에서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개인의 가능성과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자유와 공공선의 조화, 다문화 사회에서의 통합, 과거사 문제, 개인의 가능성과 선택의 자유에 대한 보장까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우리 스스로도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들이다. 이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어떤 절박한 사회, 경제적 요구에 귀기울여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편견, 이해관계에 휩쓸려 그저 익숙한 방식대로 처리해버릴 것이다. 이 책의 다섯 명의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는 정치철학이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과 대안은 우리가 우리의 한계와 편견을 넘어 생각과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의 삶,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낫게 만드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