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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원작, 연극 스포일러 포함
1. 이 책의 모든 장은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 1은 소수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1장이 아니라 2장에서 시작된다. 각 장에는 자연수인 1, 2, 3, 4...가 아니라 2, 3, 5, 7, 11... 같은 소수들이 순서대로 붙어 있다. 1장이 뜯겨 나간 건지 서점이나 도서관에 문의할 필요는 없다. 원래 1장은 없다.
2. 크리스토퍼는 심적으로 불안할 때 연극에서 개 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원작에서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북을 친다. 백색소음을 들을 때 안정을 찾기 때문이다.
* 백색소음- 일정한 주파수를 가지고 특정한 청각패턴을 갖지 않는 소리. 귀에 쉽게 익숙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거슬리는 주변 소음을 덮어주는 작용을 한다. 진공청소기나 공기 정화 장치의 소리, 파도 소리, 빗소리, 폭포 소리 등이 백색소음에 속한다.
3. 책 속 문장의 대부분이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와 시오반 선생님의 나레이션과 대사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대사량은 다른 배역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4. 원작에서 은유법으로 나온 문장들이 한국판 연극에서는 직유법으로 번역되었다. ㅇㅇ은 ㅁㅁ다, 라는 문장이 ㅇㅇ 같은 ㅁㅁ, 라는 문장으로 번역된 것. 크리스토퍼는 은유법을 싫어하지만 직유법은 싫어하지 않는다. 은유법은 거짓말이지만 직유법은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5. 연극에서 크리스토퍼가 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의 시신을 화장한 재, 엄마의 분자들이 비에 섞여 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빗소리가 백색소음 같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비를 좋아한다.
연극의 대사는 엄마를 화장한 일에 대한 크리스토퍼의 생각과 비 오는 날에 대한 크리스토퍼의 생각을 합치고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이 대사를 통해 엄마의 죽음에 지극히 담담한 반응을 보이던 크리스토퍼에게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작 속 문장
그런데 우리는 엄마를 화장했다. 즉 엄마를 관 속에 넣어 태우고, 재와 연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나는 엄마가 재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거기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엄마 장례식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기는 굴뚝에서 나와 대기로 퍼졌을 것이다. 나는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하늘에 엄마의 분자들이 떠다니고, 아프리카의 구름 위로, 혹은 남극 지방, 혹은 브라질의 우림에 비가 되어 내려올 수도 있고, 어딘가에 눈이 되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나는 2층으로 올라가 내 방에 앉아서 거리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비가 하도 억수 같이 내려서 하얀색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이건 은유가 아니라 직유다.) 모두들 집 안에 있어서 거리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자 이 세상의 모든 물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 빗물은 멕시코만이나 배핀 만에 있는 바다 어딘가에서 증발해서 지금 집 앞에 내리고 있다. 그러고는 배수구로 스며들어 하수처리장으로 흘러가 깨끗해지고 나서 강을 거쳐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연극 속 대사
"나 비 보는 거 좋아해요. 왜냐면 세상의 모든 물들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이 물, 그러니까 이 비는 아마 멕시코 만이랑 배핀 만에서 증발한 물일 거예요. 근데 지금은 우리 집 앞에 떨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하수구로 흘러들어가서 하수처리장에 모인 다음 정수되고 그런 다음 강으로 흘러가고 그런 다음 다시 바다로 돌아갈 거예요.
화장돼서 재가 된 엄마도, 굴뚝에서 나와 대기로 퍼졌을 거예요. 공기 중에 엄마의 분자들이 떠다니다가 구름에 섞여 비가 되어 내리는 걸 수도 있어요.”
6. 알렉산더 부인은 원작에서는 차분한 성격으로, 연극에서는 보다 수다스럽고 주책없는 모습으로 나온다.

창문 모양의 바텐베르크 케이크. 겉에도 속에도 노란색이 있어 크리스토퍼는 먹지 않는다.
7. 한국판 연극에서는 알렉산더 부인이 크리스토퍼에게 주려는 것이 비스켓이라고 나온다. 원작과 웨스트엔드 버전 연극에서 알렉산더 부인이 주려고 했던 것은 케이크의 일종인 바텐베르크(Batenberg)다. 바텐베르크는 단면이 두 가지 색의 창문 모양인 케이크이다. 크리스토퍼는 노란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노란색 마지팬(제과 재료 중 하나, 케이크의 인형 장식에 쓰인다.)으로 겉을 싸고 있고 속에도 노란색이 들어있는 바텐베르크를 먹지 않는다.
8. 원작에서 언급되는 크리스토퍼의 이상행동으로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것, 오랫동안 먹거나 마시지 않을 때가 있는 것, 다른 종류의 음식끼리 서로 닿으면 그 음식들을 먹지 않는 것,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땅콩버터를 식탁에 쏟고 모서리까지 발라놓는다든가, 신발이나 호일, 설탕을 가스레인지로 태워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것 등), 가구를 옮기는 것을 싫어하는 것 등이 있다. 연극에서도 크리스토퍼는 다른 종류의 음식끼리 서로 닿으면 그 음식들을 먹지 않는다. 이런 크리스토퍼의 습관 때문에 아빠와 엄마, 시어즈 아저씨는 곤혹스러워한다.
9. 연극에서와 달리 원작에서 크리스토퍼는 결코 멍청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크리스토퍼가 좋아하는 간식 밀키바
10. 밀키바는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든 초코바로 크리스토퍼가 좋아하는 간식이다. 크리스토퍼는 밀키바를 사서 자신만의 음식 상자에 넣어둔다. 이 음식 상자는 아빠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원작에 나온다.

죽은 개 웰링턴을 안고 있는 크리스토퍼(전성우).

크리스토퍼의 개 샌디로 출연하는 골든 리트리버 종 강아지 샌디.
11. 한밤개에는 시어즈 부인의 개 웰링턴(제목에 나오는 개가 바로 웰링턴이다.), 알렉산더 부인의 개 아이볼, 크리스토퍼의 개 샌디 등 세 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연극에서 웰링턴은 모형으로, 아이볼은 동그라미 모양의 조명 몇 개로, 샌디는 실제 골든리트리버 종의 개로 표현된다. 아이볼이 똥을 쌌을 때 조명은 갈색으로 변한다.(갈색은 크리스토퍼가 싫어하는 색) 이 중 샌디는 배우들, 제작진들, 관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2. 원작에서 아빠의 직장동료 로드리는 크리스토퍼가 음식에 넣어 먹는 빨간 식용색소(크리스토퍼는 빨간색을 좋아한다.)를 빨간 페인트라고 놀리지 않는다. 따라서 "빨간 페인트 먹으면 아플 텐데~?"하는 크리스토퍼의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
13.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가 노란색과 갈색을 싫어하는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노란색은 황열병, 꽃가루 알러지를 일으키는 노란색 꽃, 소화 안 될 때 대변 속에 그대로 나오는 스위트콘을 연상시켜서, 갈색은 오물, 똥, 썩기 쉬운 목재를 연상시켜서 싫어한다고 나온다.

지하실에서 엄마가 보낸 편지들을 발견하는 크리스토퍼
14. 연극에서는 지하실에서, 원작에서는 아빠 방에서 아빠가 숨겨놓은 크리스토퍼의 사건 일지와 엄마가 보낸 편지들을 발견한다. 연극에서는 지하실을 표현하는 무대 장치의 이용이 돋보인다. 한국판 연극에서는 앙상블 배우들이 지하실과 집안의 가재도구 역할까지 한다.
15.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가 좋아하는 장난감 철도 세트를 설치하는 동안 엄마의 편지들이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장난감 철도가 완성되고 기차가 철도 위를 달려갈 때 엄마의 편지가 끝나기 때문에 크리스토퍼와 그에게 철도 부품을 가져다주는 조연들은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한다.

런던 시내에서 수많은 글자들의 홍수들을 만나고 혼란스러워하는 크리스토퍼
16. 크리스토퍼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주변의 모든 것을 본다. 주변에 있는 사물 하나하나를 보고 그대로 묘사한다. 낯선 장소에 있을 때 크리스토퍼는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와, 컴퓨터가 동시에 너무 많은 작업을 수행할 때처럼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들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토퍼는 낯선 장소에 있으면 무척이나 피곤해진다. 연극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움을 어지럽게 섞이는 글자들과 그림들, 소리들로 표현한다. 원작에서도 수많은 광고판의 글씨와 그림들을 지면에 삽입해 낯설고 혼잡한 런던에서 크리스토퍼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17. 크리스토퍼는 리듬이 있는 뭔가를 하면 안정을 찾는다. 크리스토퍼가 낯선 장소에서 혼란에 빠졌을 때 왼발, 오른발 번갈아서 리듬에 맞추어서 걷는 것도 안정을 찾기 위해서이다. 연극에서 크리스토퍼는 머릿속으로 시오반 선생님의 왼발, 오른발 구령을 떠올리며 안정을 찾는다.
18.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가 토비를 언제 우리에서 꺼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책에서는 크리스토퍼가 집에 다시 들어와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챙길 때 토비를 우리에서 꺼내 외투 주머니에 넣은 것으로 나온다. 들고 다니기에 우리는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19. 런던에서 스윈든까지의 거리는 약 120Km, 서울에서 원주까지의 거리, 또는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크리스토퍼는 엄마를 찾기 위해 그 정도의 거리를 혼자 여행한 것이다.
20. 크리스토퍼는 노란색 커스터드 크림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행 가방에 커스터드 크림을 챙긴다.

조명과 무대장치로 표현되는 연극 속 지하철
21. 원작에서는 지하철 철로로 도망간 토비를 잡으러 철로에 내려갔다 열차에 치일 뻔한 크리스토퍼를 행인이 구한다. 그러나 크리스토퍼에게 감사 인사도 듣지 못한다. 연극에서는 크리스토퍼 스스로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에 플랫폼으로 올라온다.
22. 원작에서 연인과 통화하면서 지하철에서 크리스토퍼를 목격한 이야기를 하는 게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23. 한국판 연극에서는 원작과 달리 크리스토퍼가 혼자 엄마를 찾아 왔다고 하자 “우리 아들 다 컸네.”라고 말하는 대사와 크리스토퍼가 싫어하는 노란색 머플러를 벗는 디테일을 추가하는 배우도 있다. 또한 원작에서 엄마가 크리스토퍼에게 노란색 반바지를 입히는 것과 달리 연극에서는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회색 옷을 입힌다. 둘 다 노란색을 싫어하는 크리스토퍼를 위한 엄마의 배려이다.
24. 원작에서 크리스토퍼는 “그 말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확신하며 글을 끝맺는다. 반면 연극에서 크리스토퍼는 마지막 순간에 “그 말은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라고 질문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관객들의 몫이다. 한국판 연극의 김태형 연출은 “자료조사를 하면서 영국에선 충분히 '네'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국 실정은 아니다. 모 지역에서 장애인 학교를 짓는다고 했을 때 집 값 떨어진다고 시위하는 피켓에 꺼져, 라는 단어를 봤을 때 충격적이었다. 그러므로 ‘아니, 넌 뭐든 걸 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넌 런던에 갔고 엄마를 찾았고 아빠를 용서했어. 그건 뭐든 도전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너의 도전을 옆에서 지켜봐 줄게.’라고 대답할 것이다.”라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야기했다.
그 밖에 31가지가 더 있지만 쓸 공간이 부족해 적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