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인류를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에서 해방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이성을 토대로 발전한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갈등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이성의 양면성을 두고 두 철학자 푸코와 하버마스는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이성의 폭력성을 고발한 푸코와 이성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 하버마스, 두 사람의 사상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의 이성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고 있다.
두 사람의 이론을 살펴보기 전, 이 책은 르네상스부터 시작되어 계몽주의로 이어지는 수백 년 동안의 이성의 역사를 훑어본다. 준비 운동 치고는 너무 분량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을 잇는 키워드인 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부분이다.
이성이 개인의 삶 곳곳을 은밀하게 통제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푸코는 시민들 자신이 윤리적 주체가 되도록 자신의 내면과 영혼을 배려하는 것을 내세운다. 하지만 평생을 사회의 규범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것이 사회가 강요하는 규범이고 어느 것이 자기가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도덕규범인지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버마스가 대안으로 내세운 생활세계의 합리적 의사소통의 활성화도 어떤 면에서 볼 때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대안이 현실에서 실천되고 성과를 얻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각각의 대안의 장단점을 점검하면서 둘을 절충한다면, 우리 자신과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의 촛불 시위’에 대한 푸코와 하버마스의 가상대담은 이성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을 잘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푸코는 촛불 시위 자체의 맹점을 지적하지 않고 촛불 시위가 일어난 한국 사회 전반으로 논점을 옮겨버린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촛불 시위의 의의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근대 이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각자 개진하는 데 그치고 만다. 두 사람의 이론은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책 소개를 읽고 가장 기대한 부분이 두 사람의 가상대담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아쉬운 점이었다.
하지만 배경 지식을 먼저 쌓고 두 사람의 이론을 설명한 뒤, 두 사람의 가상대담을 통해 두 사람의 이론을 정리하는 구성은 단순히 두 사람의 이론을 나열하는 구성보다 훨씬 탄탄하고 효과적이다. 예습을 꼼꼼히 한 뒤 공부를 하고, 토론으로 배운 것을 다시 되새기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마지막 부분인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의 이슈들을 통해 두 사람의 이론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두 사람의 이론에서 어떤 장점을 취하고 어떤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지, 그렇게 해서 우리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개선시킬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독자들에게 이런 과제를 던져 주는 책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