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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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 책이 조선시대 미술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 책은 조선시대의 화가 신윤복부터 근대의 화가 이쾌대현대의 화가 신경호정연두까지 여러 시대의 화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저자가 말하는 조선은 조선왕조가 아니라 한국보다 더 넓은 의미의 총칭인 것이다저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은 북한과 재외교포 등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하지 못하는 협소한 명칭이다한국미술사에 관한 책을 쓰는 다른 저자들은 한국미술이라는 명칭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왜 유독 그는 한국미술이라는 명칭에 이의를 제기했을까그것은 그가 한국 밖의 구성원인 재일교포라는 데서 기인한다한국 안의 구성원인 한국인 저자들로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을 문제이다.


한국미술이라는 말 대신 우리 미술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저자는 우리’ 미술이라는 말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우리라는 범주를 고정시키고 그 범주에 맞지 않는 구성원들을 버리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라는 범주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해외입양아 출신인 예술가 미희 이야기이다미희는 한국 국적도 아니고 한국어를 구사하지도 못하며 핏줄로 따져 봐도 반쪽은 일본인이다이런데도 미희를 우리라는 범주 안에 넣을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는 고정되어 있는 본질이 아니고 역사적사회적정치적 조건에 따라 규정되는 맥락이므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우리 역사의 흐름과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들 모두를 우리로 본다미희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1960년대 말 한국에 들어왔던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버려져 해외에 입양되었다자신을 고도경제성장의 폐기물이라고 말하는 미희는 1960년대 급격한 경제개발과 그 뒤의 그림자라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우리와 공유한다그러므로 미희도 우리에 포함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오히려 미희를 우리에 포함시킴으로 인해 우리의 범위는 더 확장된다는 것이다.

 

미희를 포함한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우리 역사의 흐름문맥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신경호와 홍성담은 지금도 예술을 통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 증언하고 있다서양 화법과 조선 전통 화법 사이에서 방황했고월북 이후 남한에서는 금기시되는 존재가 되었던 이쾌대는 삶 자체가 전통과 서구의 새로운 문명 사이에서 방황하고전쟁으로 갈라졌던 민족의 문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송현숙은 1960년대 말 한국과 독일 정부 간의 협정에 따라 독일에 파견된 간호사 중 한 명으로 독일에서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하면서 예술에 뜻을 품게 되었다저자 자신도 두 형이 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다 수감되어 십여 년이 지난 후에야 풀려나는 비극을 겪었다저자는 같은 역사와 문맥을 공유한 사람들을 모두 우리로 인정하고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저자가 조선미술’ 순례를 하면서 찾으려 한 것은 미술로 표현된 우리’ 안의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였다그는 화가들의 작품과 그것의 미술사적 의미보다는 화가들 자신과 그들이 가지고 있고 미술로 표현하려는 역사의 흐름맥락에 집중한다미술 순례라고 하면서 미술 작품보다는 그것을 만든 작가와 그것이 표현하고자 하는 역사에 더 집중하는 것이 주객전도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한국이라는 고정된 범주 밖에 있었기에 저자는 고정된 범주 밖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범주를 더 넓혀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이것이 그의 조선미술 순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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