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포함 


-죄책감, 회한, 용서. 이것들은 내 삶에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에 이 책 속의 이런 정서들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도 느꼈지만 이 작가는 회한이라는 정서를 가장 잘 다루어, 읽는 사람을 먹먹하게 한다.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뒤늦게 깨달아, 이제는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회한. 나는 어떤 면에서는 아미르이고, 어떤 면에서는 하산이다.

 

-내가 라힘 칸이라면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시키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아미르의 따귀를 올려붙였을 것이다. 그 날 자신 때문에 비 오는 날 억울하게 쫓겨나던 모습이 자신이 본 하산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하산이 죽은 뒤에야 자신에게 전달된 하산의 마지막 편지를 읽었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회피하는 아미르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아미르에게 남긴 라힘 칸의 편지에서도 정작 하산에 대한 속죄는 일언반구도 없고,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외로웠던 아미르에 대한 위로만 있어 마음이 불편했다. 아미르는 자기 아버지만큼이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인 하산의 목소리는 없다. 아미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가 있지만, 거기에는 자신을 배신한 아미르에 대한 미묘한 감정은 전혀 없고, 어린 시절과 변함없는 아미르에 대한 우정과 헌신만이 있을 뿐이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가 사실은 토마스의 시각으로 본 이야기이기 때문에 진짜 앨빈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을지는 알 수 없는 것처럼, 이 책 또한 그렇다.

 

-호세이니의 엔딩은 해피엔딩이지만 더 없이 현실적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최선의 해피엔딩이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속죄나 보상도 소용이 없고, 이미 잃은 것들은 되찾을 수 없다.

 

-정작 용서를 구하고 관계를 회복시켜야 할 사람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고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깨달은 것만이라도 다행이다. 그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업가를 아버지로 둔 아미르는 미국에 망명했던 초기 몇 년만 잠시 고생하고 미국에서도 자기 재능을 살려 부유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더 없이 착한 하산과 소랍 부자는 소수민족이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2대에 걸쳐 멸시당하고 성적으로 유린당한다. 그리고 소랍처럼 미국에 사는 부자 삼촌을 두지 않은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은 그 이후로도 계속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고 심지어 탈레반들에게 유린당할 수도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미르나 작가 자신이나 파리드의 말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철저히 관광객이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관찰자이다. 

 

-하지만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라는 말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그 말에 담긴 마음은 신분, 원망, 죄의식, 세월, 그 어떤 것도 결코 변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문을 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열림원의 이미선 씨 번역본보다는 문장이 짧게 짧게 끊어지는데 나는 그 점이 좋다. 영어 문장 그대로 하나 하나 해석하느라 주어도 자연스럽게 생략하고 문장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이미선 씨의 문장보다는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나직하게 한 문장 한 문장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 작은 눈송이가 조금씩 소복소복 쌓이듯이 정갈한 느낌이다. 간결하고 평이한 문장이지만 공기 속에 떠도는 감정까지 섬세하게 잡아낸다. 어떤 이는 번역체가 지나치다고 하고, 어떤 이는 너무 단순하고 딱딱하게 번역했다고 하지만 나는 왕은철 교수의 번역본의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이 마음에 든다. 역자 후기에서의 문체와 소설 본문의 문체가 닮은 걸 보면, 번역에는 번역자의 문체가 상당히 많이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이 문체가 좋아 나는 읽다가도 머릿속으로 이 문체를 흉내 내어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다만 쇼르와, 볼라니처럼 낯선 문물을 가리키는 말들에는 주석을 달아 설명해 줬으면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간단하게 찾아 넣을 수 있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