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버전
그레이스 챈 지음, 성수지 옮김 / 그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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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가상세계는 엄연한 구분이 존재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지만 지금보다 더 먼 미래에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 지거나 아니면 현실과 가상세계의 동일화가 이뤄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현실을 의식하는 일은 물질적인 존재로의 현시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다.

가상공간, 가상 세계에서 나,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나, 우리라는 아바타를 통해 가상으로 이뤄지는 일들이라 볼 수 있기에 현실에서 느끼는 가상세계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의문과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 모든 변화의 결과는 인간의 삶으로 귀결됨을 의식할 수 있다.

2080년, 지금으로 부터 50~60년 후의 세계는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에 대한 경계를 넘어 현실가상세계라는 또다른 세계관을 엿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면 2080년의 세계를 먼저 맛볼 수 있는 소설을 통해 저으기 두려움 가질 수 있거나 호기심 섞인 미래의 이야기를 즐겨볼 수 있을것 같다.



이 책 "너의 모든 버전" 은 2080년대의 지구는 아마도 지금 이대로의 인간의 삶이 지속된다면 맞게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뜻하며 그러한 SF적 세계관은 아마도 지금껏 우리가 생각했던 많은 미래에 대한 공상, 상상, 추측 등을 통해 떠올린 그 모든 것들이 이뤄졌거나 더 많은 변화를 목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로봇의 유기적인 합작품이지만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변화로 말미암아 물질적, 육체적 존재감을 떨쳐버리고 정신적 존재로의 삶을 통해 세상 모든것과의 유기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된다.

이른바 영혼, 정신만의 지속가능한 삶을 살수 있고 또한 버전 업 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인간의 육신은 더이상 필요치 않는 쓰레기가 될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까지의 나, 우리를 형성했던 정신적 버전이 오늘의 업로딩으로 인해 새로운 영혼, 정신을 다운로드 받거나 하는 모습으로 인간의 정신적, 외형적 모습이 변화한다면 더이상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구를 뜻하는 가이아의 환경은 이미 오래전에 척박할 대로 척박해져 더이상 인간으로의 삶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인간은 그런 환경을 벗어나고자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현실가상세계라는 SF적 세계를 통해 정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인간이 인간이기 보다 컴퓨터의 한 부품처럼 인식하게 되는 세상이 도래해도 인간적인 삶이라 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뇌를 스캔하고 뇌속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가이아로 업로딩 후 신체는 헌 옷 바꿔 입듯 바꿔치기 하는 기술을 통해 늙음도, 아픔도, 고통도, 죽음도 없는 신인류의 탄생이 그려진다면 지금의 나,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과연 원한다고 말하거나 기다릴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인간의 최고 숙원이라는 죽음을 넘어서는 일, 죽음조차 넘어서 영원히 사는 세상을 만난다면 과연 행복할까 하는 물음에 나,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인간적인 모습으로의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자와 병들고 늙어가는 신체를 버리고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가이아라는 현실가상세계로 떠나는 사람들, 저자는 내 존재의 정의에 대해 심층적으로 고민하고 시간적 순서로 읽혀지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속 나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저자는 미래 가이아라는 가상세계를 통해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세계를 유토피아적으로 그리고자 했으나 무언가 빠진듯 한 느낌으로 아쉽게만 느껴지는 삶의 모습들에 대해 인류의 미래라는, 그러나 '인간적인 ' 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느껴진다.

어제의 나, 우리가 컴퓨터 부품 갈아 끼우거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하듯 바뀌어 가는 세상을 만나게 되면 새로움이라는 의식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죽음과 같은 의미로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더더욱 기술이 발전하면 원하지 않아도 버전을 바꾸어야 하는 나, 우리가 될 수도 있고 보면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버린 존재로의 삶은 유토피아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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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빛, 청자 1
정찬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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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려청자는 세계적 수준의 도자기로 정평 나 있지만 사실 그 상세한 내역을 알고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원천적이고 자생적으로 발견, 발전된 고려만의 청자이자 우리나라만의 청자 였으면 얼마나 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질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청자는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중국의 오월 시대 청자 월주요에서 시작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청자는 비색(秘色), 신비로운 빛깔로 지칭하지만 고려의 청자는 12세기 전반에 분청색 도기를 생산함으로써 분청색을 비색(非色), 즉 세상에 표현할 수 없는 색으로 지칭하는 것을 생각하면 얼추 맥락이 통하는듯 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존재감을 갖는 두 청자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감청자기법은 고려청자만의 비법이며 그로 인해 고려청자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한류문화의 세계적인 확산이 우리로서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 할 것이다.

그러한 K-컬처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고려청자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정체성으로 녹아든 문화재로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빛이 될 수도 있다.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역사적 인물과 수행자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글을 써온 정찬주 소설가의 비색 고려청자 이야기를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깨달음의 빛, 청자 1,2" 는 전 2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로 궁복이라는 장보고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가 부모를 잃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해 활쏘기와 같은 무예에 특출난 재능을 바탕으로 가난한 자들, 배고픈 자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청자를 만드는 도요지를 통해 느끼고 부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당나라로 떠나 반란군을 진압하는 진압부대에서 큰 공을 세워 신라소의 대사가 되는 상황으로까지 변화를 목도할 수 있게 된다.

소설에서 궁복은 활쏘기 경연대회에 늦게 참가해 시험을 치룰 수 없었으나 결원이 발생해 기회를 얻어 활쏘기 경연을 치뤄 1등을 하고 상을 받아 활쏘기 대회에서 만난 정년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새로운 세상에서도 돈을 벌고 잘살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익히 우리가 알고 있듯 장보고는 청해진을 세워 해상왕국을 건설했다고 알고 있지만 무역과 경제에 관심을 가진 장보고에게 어쩌면 청자 역시 세상에 품귀를 빚는 존재감을 가진 대상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역사적 사실을 보면 청자와 장보고의 연관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는 작가의 상상력을 형성하는 탐구정신의 발로로 이어진 장보고라는 인물과 고려청자의 연관성을 통해 역사적인 맥락을 만들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권에서는 청해진을 세운 장보고가 중국의 월주청자 보다 더 아름다운 청자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어 장보고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기존의 무장인 장보고에서 문화창달자로 바꿔내는 의미를 읽어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의 흐름은 어김없이 장보고에게도 드러났고 그 결과 염장에 의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로 끝맺음을 한다.

2권에서는 그 때까지 고려시대 노비안검법으로 인해 해방된 노비들의 도자기 생산에 참가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비색(非色)청자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아낸  도공들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요 무대는 탐진이다. 지금의 강진군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 탐진현으로 불리었다 조선 태종 17년에 강진현으로 바뀐다.

가마터로 등장하는 대구면 용운리, 계율리, 사당리, 수동리 등은 150여 곳의 가마터가 지금도 남아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어 이 책을 읽으며 강진의 가마터를 찾아 역사와 문화를 경험해 보는 여행을 떠나 보는 일도 무척이나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소설의 내용은 그 시대를 살아 낸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고스란히 담아 낸 이야기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 삶은 말과 행동에 의해 의미를 갖게 되며 전라도 탐진 지방의 투박하지만 구성진 사투리에 적잖히 웃음도 나거니와 요즘의 말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진 뜻도 있어 우리말이라도 이렇게 다른 표현도 있구나 하는 새롭고 재미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류 문화로 읽혀지는 K-컬쳐는 유래없는 세계문화유산의 일부이지만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불가한  독특함을 갖고 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 우리를 형성하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정체성을 이해하고 안다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우리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문화역사의 유산들이 나, 우리를 세계적인 자존감을 갖게 하는 근원이 된다.

마땅히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는 일은 배움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먼 후대로 계승 발전시키는 역할자로의 모습을 충실히 하는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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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한 마리 새 - 정경심과 영미시 함께 읽기
정경심 지음 / 스토리두잉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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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나, 우리에게 꿈과 희망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무언가를 품어 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무언가가 바로 꿈과 희망이고 보면 꿈과 희망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세상 사는 모두에게 꿈과 희망은 단어가 아니라 그 자체가 가진 의미가 더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같지만 다른 나, 우리에게 희망은, 꿈은 스스로가 느끼는 그 무엇인가가 되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인들의 명언, 시, 문장 등을 통해 그들이 말하는 희망에 대해 이해하는 일도 유익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이 한 마리 새라니, 과연 그럴까? 아닐까? 

과연 나, 우리는 희망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고민해보고 영미시에서 보이는 희망의 다양한 사유를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 책 "희망은 한마리 새" 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제목으로 그는 시에서 희망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237Page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그 노래 나는 들었네, 혹한의 동토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 위에서도

하지만 아무리 절박하여도 결코

내게 빵 부스러기 하나 요청한 적이 없다네'처럼 


현실적인 상황과는 별도로 희망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며 우리 삶에 동행하는, 꺽이지 않는 마음으로의 희망의 속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 희망은 현실을 전혀 개의치 않음이 아니라 어떤 현실이라도 그것을 넘어 서는 마음에 있으며 희망 그 자체에 집중하면 나, 우리에게서 희망은 떠나지 않으며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동행자, 혹은 요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꺽마', 즉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시에서 볼 수 있다.

한국시도 아닌 영미시를 읽는 일이 어쩌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친절한 번역이 있고 또한 번역에서 느껴지는 배려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번역을 만나고 보면 시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기 보다 오히려 감칠맛 나는 시에 대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에밀리 디킨슨 역시 그 자신의 삶은 은둔자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삶에서 희망을 놓치 않았다고 하는데 자기 삶에서 느낀 사유를 고스란히 시에 옮겨 놓은 꺽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느낌을 오늘을 사는 나, 우리 역시 배워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78Page  'Don Juan, Canto1. 119.'

돈 주앙은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고 있음이 우리의 인식이다.

시인 바이든은 돈주앙을 통해 쾌락에 젖어 버린 나, 우리에 대한 반성을 노래하고 있다.

쾌락은 나, 우리를 즐겁게 하는 대상이지만 나, 우리를 매번 새로운 나, 우리로 거듭나야 함을 일깨우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맹세는 번번히 쾌락에 무릎을 꿇지만 여전히 나는 1년 뒤에 맹세를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다짐을 하는데, 이러한 시는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쾌락들의 존재에 젖어 나, 우리가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야 하지 못하는 일을 경고하고 반성하게 하는 울림을 준다.

바이든은 시를 통해 돈 주앙의 쾌락을 드러내듯 우리의 쾌락에 젖은 현실을 동일시 하며 현실을 풍자하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면 세속적 존재감으로의 돈 주앙만을 생각하는 부류와는 다른 의미를 생각하는 나, 우리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할 수 있다.

단순히 영미시를 읽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되겠지만 시에 드리운 맥락과 의미를 꼼꼼히 이해하고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 기회 역시 나, 우리에게 다양한 의미로 유익함을 주는 희망의 근거가 되리라 생각하며 일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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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레드카펫 네오픽션 ON시리즈 20
김청귤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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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Midnight)은 자정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은밀함을 표현하기도 하는 중의적 단어로 이해할 수도 있다.

레드카펫은 주목받는 모습 또는 존재감을 느끼는 단어지만 그 둘의 결합이 보여주는 의미는 배타적인 현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에 대한 존재감은 오랜 역사를 통해 억눌리고 무지한 모습으로 읽혀지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삶을 감내 왔고 이제 오늘날에는 더이상 그러한 삶을 감내하며 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도할 수 있지만 그 반대쪽 남성들의 경직된 가치관과 사회적 상황을 통해 여성들의 삶에 대해 변화를 인정치 않으려 한다.

미드나잇 레드카펫은 여성의 삶이 맞닥트리는 사회적 문제들을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판타지화 시켜낸 여성들의 삶에 드러난 분노에 집중하고 그들의 새로운 삶에 대한 우리의 의식적 변화를 재고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이 책 "미드나잇 레드카펫" 은 6편의 소설로 이뤄진 소설집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해 인식하는 일은 지금도 차별적인 시선이 여전하며 특히 사회적인 문제에 얽혀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약자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약자이기에 니네가 뭘 어쩌겠어? 라고 하는듯한 사회적 테러를 가하는듯 한 느낌을 얻게 된다.

나, 우리는 현실 속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군가 침범을 하거나 어떤 사건에 얽혀 받게 되는 처우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적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면 일시적이나마 불편한 감정을 느낀 경우가 있음을 부인치 못할 사람들도 있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은 오래전 부터 그들의 삶에 녹아든 불편함으로 그러한 처우를 받아 왔음을 생각해 보면 그간 남성주의적 사회관으로 이어져 온 사회에서 그들이 느끼는 차별과, 고통과 외로움은 개선이라는 희망을 바라보기 보다 희망을 논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분노에 다름이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이기에 그들이 갖는 자연적 생리현상으로의 '생리' , '유방' 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의식이 음란과 남성들의 성적 주체로 인식되는 사실을 생각하면 다분히 그들이 자신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수 많은 삶의 문제에 얽힌 현상들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모습이라 더이상의 개선의 요지가 없음을 분노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당위적인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사회적 불편함으로 양산되는 그들을 매도하는 모습들에 분노를 느끼며 우리 사회가 그들을 왜곡해 보고 있는 사실을 낮설게도 드러내고 있다.

'한 밤의 유혈 사태' 에서 보여주듯 감정의 덩어리로 이해할 수 있는 수 많은 욕설들은 사회적 불편에 저항하는 그녀의 분노의 표현이며 자기만의 존재양식을 표출하고자 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공손함의 대명사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세계로 나아감을 뜻하기도 한다.

이제 그녀들은 지난날의 삶에 대한 회귀를 원하지 않는다.

위풍도 당당하게 레드카펫을 밟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면 이제 세상을 재편하는 그들의 분노를, 저항을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언제까지 고리타분한 전통적 여성상만을 고집하고 원할텐가?

더 이상의 순종적인 여성들에 대한 희망은 희망이 되지 못한다.

끝끝내 스스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레드카펫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감을 느껴볼 수 있는 작가의 노련미를 마주해 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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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지키는 바운더리 - 모든 문제는 선을 넘으면서 시작된다, 인간관계가 인생을 망치기 전에 선을 그어라
쑤쉬안후이 지음, 김진환 옮김 / 시옷책방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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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삶을 유지시키는 조건은 뭘까 생각해 보면 인간은 관계의 존재이며 관계는 인간 삶의 유지, 지속시키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라 말할 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데 있어 무수히 많은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관계는 인간의 삶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각각의 개개인에게는 행복과 불행을 실감하게도 하는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며 나, 우리의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관계에 대한 이해를 좀더 깊이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경계선으로의 바운더리를 넘지 않는 완만한 관계형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바운더리는 경계선으로 이해될 수 있고 이는 자주권과 독립권이 공존하는 방어선이라 이러한 바운더리가 우리 각각의 관계에 있어 필요한 의미를 평등에 기반해 세울 때 보다 나은 인간관계 형성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본다.

그와 관련 된 내용을 담아 독자들의 인간관계 형성(주로 나의 측면에 따른) 바운더리를 세우고 유지할 수 있게 도움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내 삶을 지키는 바운더리" 는 흔히 하는 말로 '선을 넘네' 하는 말을 하듯 관계에 있어 상호간의 불필요한 마찰과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선을 지키는 인간관계 형성을 위한 방안을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 필요한 인간관계 바운더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관계에서 경계가 무너지거나 무너 졌다 생각하는 일은 무슨말일까?

이는 상대의 생각이나 언행으로 인해 그와의 관계 및 커뮤니케이션이 막혔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관계라는것이 일방적인 관계로만 성립될 수 없음이고 또한 상호 인과관계의 결과라 볼 수 있지만 그 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분히 상대의 잘못에 대해 더욱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이기적인 존재로의 의식이 인간의 특질이라 판단한다면 이러한 상대방에 대해 비중을 두는 일은 바람직 하지 않으며 차후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뜩치 않은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관계의 경계가 무너진 사람이나 관계의 경계를 잘 갖춘 사람일지라도 관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 우리의 의식의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상호간 모두 공히 똑같이 비중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생각해야 한다.

그야말로 평등성을 결과에서 도출하고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를 읽어내야 비로소 나, 우리는 상호간의 관계를 위한 경계인 바운더리에 대해 새롭게 의식해 보고 새로운 관계를 위해 변화를 꾀할 수도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 나, 우리의 관계 바운더리가 무너지는 일은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다.

나로 인해 그들이 얻게 되는 이득이 그 함정에 내포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나, 우리의 관계를 무너트리고라도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타자와의 관계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런 불가피한 관계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관계형성을 바투어야 한다.

그런 관계형성에 있어 나와 우리의 관계는 서로의 객체적 특성을 존중해야 할 경계선으로의 바운더리가 존재한다.

그러한 바운더리는 내 삶, 우리의 삶을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삶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비눗방울처럼 세계와 비눗방울 내부를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터지기 전까지 비눗방울은 하늘을 날으며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인간 관계는 거의 모든 삶의 문제들과 엮여 있는 실증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삶의 우선 순위에 놓여 있는 관계지만 나, 우리 자신을 세상과 경계짖고 지킬 수 있는 근거로의 바운더리를 생각하며 타자와의 관계 역시 평등한 관계에서 만들고 발전 시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저자의 심리적 연구의 토대위에서 얻은 결과를 삶에 적용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출판사 시옷책방의 지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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