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힘 - 자책에 빠진 나를 건져줄 긍정 심리학
로버트 L. 리히 지음, 이영래 옮김 / 소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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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생활에서 나, 우리는 무수히 많은 후회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한 후회는 다분히 나, 우리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자책이나 질책을 갖게 만든다.

왜 나, 우리 스스로 그러한 자책이나 질책을 갖게하는 후회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없는것 일까 궁금해 진다.

후회라는 대상을 우리 자신이 무언가를 개선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자기계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후회를 그러한 자기계발이나 긍정의 신호로 삼기 보다 후회의 수렁에 빠져 자책과 질책을 하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역시 우리의 생각의 변화에 따라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이라는, 그 때 그랬더라면 하는 느낌을 자주 갖는 나, 우리에게 더 이상의 자책과 질책이 담기지 않은 긍정의 심리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후회의 힘" 은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 많은 후회가 우리를 파괴적이고 자기 혐오를 갖게하는 반복적 힘에 사로잡혀 악순환의 나날들을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며 우리를 불안과 자책의 악순환에서 구해주는 심리기술을 알려 준다.

후회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걱정하고 몰입해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한 나, 우리의 일상은 하루 이틀에서 끝나는것이 아닌 수 십년을 지속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일은 후회에 우리의 감정이 지배되고 있으며 벗어나지 못하고 패배자 또는 낙오자로의 모습을 갖게 한다.

저자는 그런 나, 우리에게 후회가 보여주는, 갖게 만드는 마음의 불안, 불편함을 벗어나 후회를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긍정으로의 힘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전환해 인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한 방법으로 저자는 후회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며 피할 수 없는 후회라는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 후회를 생산적으로 만드는 과학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과학적인 방법을 인지행동치료(CBT) 라는 관점을 통해 설명하고 있어 나를 치료하는 나의 존재를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느끼는 후회의 감정을 나, 우리 스스로가 치료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일은 수 많은 실질적 경험을 통해 발전을 꾀하게 하는 방법중 가장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식할 수 있다.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거나 없앨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러한 감정은 우리 삶의 다양성에 대해 부정하는 의식을 갖게 되거나 다양한 방법을 지향하는 변화를 부정할 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후회라는 것은 자연스런 감정의 발현이며 우리는 그러한 후회에 붙잡히기 보다 후회가 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하며 나,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비로소 후회하는 마음,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 아닐까 싶다.

후회하는 마음을 벗어나 새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하게 하는 힘으로의 트리거가 될 수 있음은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해 내는 것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후회의 힘이 비로소 그러한 힘을 낳게 하고 우리를 변화하게 하는 긍정의 힘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을 저자의 강력한 주장과 설명을 통해 만나보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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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세계사
강태형 지음 / 유아이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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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다양한 대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살아 남기 위한 과정'의 기록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확한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 역사나 세계사는 인간 삶의 족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족적은 바로 생존을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역사, 세계사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외워야 한다는 생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관점은 우리가 역사, 세계사를 학습의 대상, 공부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그러할 수 밖에 없다.

역사와 세계사를 통해 인간 삶의 오랜 투쟁을 살펴 보는 일은 무척 재미난 일이기도 하지만 삶을 이어 나가는 지속가능성에 대해 통찰과 지혜를 얻는 일과 다르지 않음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여러 개념과 원리를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선생님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생존을 위한 세계사" 는 토마스 홉스가 주장하듯 인간은 '만인에 대한 민인의 투쟁'을 벌이는 이기적 존재로의 인간의 투쟁의 연속으로의 세계사로 정의하며 다양한 힘에 의해 세계사가 움직이게 된다는 사실을 조명하고 있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양한 힘 가운데 하나로의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이념 역시 세계사가 움직이게 된 근원으로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종교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이자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을 말할 수 있는가?

그런가 하면 정치적 이념으로의 세계사는 또 어떤가? 정치는 다양한 이기를 위한 신념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 이기에 따른 정치적 이념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풀어 내는 일도 무척이나 유의미한 일이자 인간에 대한 포괄적 지식을 얻는 일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사유를 이 책에 대항하는 의미로 발산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

오히려 다양한 사유와 의미들을 읽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로 인식하는 것이 저자의 바램처럼 다양성을 인지하고 포괄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세계의 역사를 4부 17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세계사를 말하는 대부분의 도서들이 보여주는 세계 최초, 최고 등에 대한 기록만을 수록하는데 반해 저자는 표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세계사와 비교할 수 있도록 함께 제시하고 있어 비교하며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인류 최조의 종교라 하는 조로아스터교의 불을 숭상하는 의미를 되돌려 보면 인간의 생존에 따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은 인간의 생존을 비약적으로 발전 시킨 존재였기에 불을 숭상한 조로아스터교의 불 숭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세계사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이념은 물고 물리는 관계처럼 혼재된 상태로 세계인들의 지속가능한 삶에 영향력을 미쳐 왔다.

황제와 교황의 대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결, 흑사병의 창궐, 과학혁명의 발달, 수 많은 전쟁과 미국의 발전, 근대화, 세계1,2차 대전과 냉전시대 등 다양한 세계사의 이벤트들이 발생했고 그 때마다의 인간의 삶은 다양한 이유, 원인에 의해 지속가능성을 위협 받아 왔고 그때마다 인간은 지속가능성을 지속할 수 있는 투쟁으로의 방법들을 선택하고 지켜 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고, 그 말을 통해 우리는 역사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어떻게 오늘의 삶을 이뤄 나가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아 결코 같은 실수로 삶을 허비 하지 않아야 함을 일깨워 준다.

생존만큼 인간에게 갈망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존 이후에나 행복과 사랑과 꿈과 희망 같은 존재들을 꿈꿀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 보면 세계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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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조원진 외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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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국가적 내홍으로 볼 수 있는 쿠데타를 목도한 시국을 염려하며 이러한 쿠데타가 비단 현대에만 존재했던 것인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역사에서 오늘날과 같은 쿠데타가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은 새로운 흥분감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과거에 오늘날이나 사용하는 쿠데타라는 용어가 있었을리 만무하지만 쿠데타를 정의하길 군대와 경찰 등을 동원한 정치적 선동과 무력(武力)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빼앗는 일을 통상적으로 지칭함을 의미 한다면 우리의 역사에서 그러한 경우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것 같다.

저자 역시 그러한 용어의 이름이 아니라 정의에 기반하는 사건으로의 쿠데타는 많았고 그러한 사건들을 학술적인 의미 부여로 집필해 세상에 내어 놓았다.

쿠데타는 권력을 모반하는 세력의 싸움이지만 그로 인해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보는 이는 바로 국민임을 생각해 보면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을 타고 첨예한 빛을 발하는 쿠데타에 대한 이해를 가져볼 필요성이 있다 하겠다.

그러한 의미를 전해 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는가?" 는 흔한 역사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왕권에 도전하는 수 많은 역모들의 연대를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의 과거사이자 정체성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하는 일이 될 수도 있기에 보다 명확한 증거주의가 핵심이 될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증거와 사료들을 통해 쿠데타가 지닌 성격을 규명하는 일은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을 위한다는 명분과 함께 반역이라는 저항으로의 느낌을 갖게 한다.

고조선을 멸망케 한 위만조선, 고구려사의 정변, 왕위계승에 따른 각축전, 일본서기를 통해 보는 백제의 정변, 그 이후 백제, 신라,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정변들은 모두 왕권유지나 강화에 맞선 도전으로 얼룩진 쿠데타 시도였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학창 시절에 배웠던 역사를 통해 그러한 과정들에 대한 맛을 조금씩은 보았을지도 모른다.

깊이 있는 내막으로의 쿠데타의 정당성이나 합리적인 타당성을 배재한 상태의 역사만을 배웠을 우리이기에 이러한 구데타에 관점을 맞춘 역사를 만나는 일은 무척이나 새롭고 경이로운 일이며 집필자들의 각고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연구 결과를 고무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한 예로 고조선의 멸망과 관련 있는 위만조선, 위만조선의 정변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살펴 보면 역사서 '위략'에 정변의 과정이 기록되 있고 위만이 고조선으로 건너올 때 1천 여명의 무리를 거느린 조직으로 고조선을 어떻게 무너트리고 정복했는지에 대해 합리적 타당성있는 추론을 보여 주고 있다.

백제의 상황을 파악, 이해하는데 '일본서기'를 참조 하고 있음은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학계에서는 '일본서기'를 위서로 인정하고 있는바 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정변에 대한 사료적 가치를 독자로서 인정하기에는 마뜩치 않은 느낌을 갖게 한다.

물론 보통의 일반인이기에 일본사기에 대한 신뢰 수준을 확신할 수 없지만 위서로 인정하는 사료를 통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추론하고 판단해야 하는 부분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마뜩치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는 다양한 의미와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들을 합리적으로 세상에 알려야 하는 책임이 있기에 적어도 필자들의 노력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는 우리 역사에서의 백제의 위상과 정변에 얽힌 이야기들을 곱씹어 살펴볼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오늘 우리는 때 아닌 쿠데타로 국가의 내홍을 겪고 있지만 이러한 기회를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반면교사라는 말씀처럼 역사를 통해 배움을 얻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 발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전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간의 삶은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지나간 역사의 순간들을 살펴 오늘의 삶에 적용하고 다시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8명의 현직 학자들이 연구하고 고민하며 합리적 타당성을 추론으로 이끌어 내 빛나는 결론을 맺은 고대사회에도 쿠데타가 있었을까에 대한 강한 추천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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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국가 카자흐스탄 - 디지털 노마드 시대, 선두주자의 꿈을 향해
손치근.조은정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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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인종 국가로 이야기 하지만 여기 140여 인종이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나라가 있다.

우리와는 친연성이 있는 국가라 우리를 형제국가로 지칭하는 카자흐스탄이란 나라다.

카자흐스탄은 제정러시아 시대를 지나 1860년대 조선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한 한인으로 부터 유래했다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에서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친연성은 친척으로 맺어진 인연과 같은 성향으로 검색되고 있어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단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 느낌을 전해준다.

인구 2천 만명 수준에 70%가 카지흐종족이며 고려인은 기타 종족으로 4.5%에 속하고 있지만 러시아 제국 당시 독립한 독립국가의 하나인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예술, 사회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형제국가 카자흐스탄" 은 과거의 실크로드를 떠올리기 보다 신(新)실크로드의 요충지로의 카자흐스탄과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위해 양국 국민들이 더 깊은 이해를 구축해야 하는 당위성을 따라 서로에게 주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듯이 우리로서는 고려인이라는 친연성을 갖고있는 형제국가로의 카자흐스탄에 대한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한 시점을 이야기하며 카자흐스탄의 다양한 변모를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사정을 깊이있게 살뜰히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외교관 또는 현지에 체류,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고는 집필할 수 없는 조건이라 하겠다.

역시 예상대로 대한민국 외교관의 신분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직접 발로 뛰어 현장성을 높인 경험과 소중한 정보들이 빼곡히 실려있어 무척이나 상세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이러한 발로 뛴 경험담이 녹아든 내용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카자흐스탄의 모습만이 아닌 그들의 삶이 어우러지고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는 사회속에서의 진실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더불어 한국과 카자흐스탄과의 국제관계와 무역에 있어서의 미래 비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판단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여행지로서의 카차흐스탄이 아닌 한 국가의 총체적인 면모를 거시적, 미시적 관점의 주제들로 소개하고 있어 나, 우리가 원하는 다양한 주제로의 카자흐스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친연성을 따지는 관계가 되려면 한민족의 피를 이어가는 고려인들에 대한 껴안음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머물게 되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진 만큼 한민족에 대한 지원과 보살핌이 우선시 되어야 하나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그러한 보살핌이나 신경씀이 없는 나몰라라 혹은 각자도생의 요구만 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개 국민이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이럴진데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입지는 어떠할까 싶은 생각을 해 보면 난감할 듯 싶은 생각도 든다.

7장으로 구성된 목차의 대분의 내용들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어제, 오늘,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7장에 수록된 까레이스키 고려인의 여정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저자들의 바램처럼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동반성장이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려인들의 고집스런 한국어 고수와 전통의 지킴을 외면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세계는 하나로 뭉쳐져야 한다지만 오히려  각자도생의 면모를 더욱 강조하는 시대로 가고 있느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고려인, 코리아인으로 남고 싶은 그들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밀기가 그리 어려운 것일까? 오래전 고국을 그리워하다 눈물로 삶을 마감했을 고려인들의 한을 풀어내는 관계, 보듬고 안으로 맞아들여 따듯함을 느낄 수밌는 동포애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말이나 표면적인 형제가 아니라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느낌과 관계 형성을 이어 나가는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세계의 자국 동포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눈여겨 보아야 할 필요성도 있고 배워야 할 부분도 많다.

그러한 기회를 갖는데 있어 더 깊이 있는 카자흐스탄 형제국가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판다해 보며 일독을 귄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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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배하는 자들, 호모 피델리스
한민 지음 / 저녁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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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종교는 어떤 존재일까, 이러한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현실적인 존재이지만 형이상학적 가치로 인식하게 되는 존재라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여겨진다.

오늘날의 우리 삶에 종교와 신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리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마음에 드리운 불안과 고통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신에 대한 믿음, 신뢰를 꾀하고 있다 말할 수 있다.

동, 서양에 있어서 종교와 신의 존재는 각기 다른 의미로 이해되고 유지되어 왔지만 그 맥락을 되 짚어 보면 크게 다르다 말하기 어렵다.

인간은 신을 숭배하는 제도로의 종교를 만든 존재이니 역설적으로 숭배하는 자들로의 호모피델리스의 의미를 역사적, 현실적 상황에서 파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The God Delusion> 에서 신의 존재를 인간이 만든, 만들어진 신으로, 인격화된 신을 숭배하는 종교관을 말했다.

종교를 두고 과학적인 추론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은 오늘의 우리가 해야 하는 현실적인 종교관에 대한 의심이라 할 수 있다.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숭배하는 자들, 호모피델리스" 는 나, 우리의 삶에 신앙의 대상인 종교, 신을 숭배하는 의미를 떠나 이제는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해 좀더 과학적인 추론과 비판을 받아들여 새롭게 인간의 신을 숭배하는 존재로의 의미를 밝혀보고자 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왜 종교에 의탁하고 신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귀의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밝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교관에 의하지 않고 설명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인간의 삶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움은 자생적이라 생각할 수 있고 현생이 아닌 내생의 믿음과 구원이라는 행복을 위해 인간은 종교에, 신께 귀의하고자 하는 숭배를 단행한다.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신들이 존재한다.

저마다의 근거와 구원에 대한 이유를 살필 수 있지만 종교와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종종 나, 우리를 배반하는 스스로를 목도하게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이 드리운 문화에서의 종교에 대한 의미와 신을 찾은 행위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해야 비로소 인간 보편성에 대한 종교, 신의 존재에 대해 파악할 수 있을것 같다.

한국에서의 종교는 다양성을 인정하며 종교간 대화합에 이르는 비전을 살펴 볼 수 있어 바람직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는 무속이라 부르지만 우리 토속신앙으로의 무속 또한 종교라 할 수 있는 바 오늘날에는 그러한 무속의 분화와 퇴색이 맞물려 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는데 무속의 발전?이 이뤄진 배경과 이유 등에 대해 살펴보면 적잔히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게 된다.

한 나라를 망하게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종교라 했듯이 종교의 바람직한 신앙으로의 역할에 대해 우리는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종교를 가장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신앙의 변질, 사이비 종교 들에 대한 이해 역시 경각심을 갖고 보야 할 부분이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종교는 인간과 함께 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관에 치우친 종교를 이해함은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고 선택의 자유를 말하는 지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는 아니다.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판단할 수 있는 종교에 대한 사유를 읽어낼 수 있어야 비로소 나, 우리는 종교에 대한, 신에 대한 숭배의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종교관으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소리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문화적인 관점으로의 종교에 대한 이해는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점을 간과하지 않고 수용하며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통찰해 바람직한 종교관을 제시하는 종교야 말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리라 판단해 본다.

숭배하는 자들의 종교에 대해 심도 깊은 자성과 비판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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