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이 알고 있다
모리 바지루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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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등한시 하지 않는다.

누구나의 삶은 다양한 사람과 이벤트들이 연결된 종합 선물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 삶 속에는 서로 다른, 전혀 다른 모습으로의 또다른 연속된 이야기들이 마주하고 있지만 그러함이 결코 단선적이거나 단락적인 이야기로 남는것이 아닌 결과론적으로 나, 우리의 삶과 연결된 단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 삶은 다양성을 지닌 옴니버스식 이야기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라는 존재의 세계와 연결된 모든 것들,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결과적으로 나의 관점과 시선 속에 수용되고 이해되는 삶이라 할 수 있고 보면 인간의 삶을 소설로 그려내는 일 역시 그러한 모습을 참고삼아 한다면 다분히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삶이기에 하나의 종합적 결론에 다다르는 다양한 원인과 과정들이 녹아들어 있어 그러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면 마치 소설의 그것처럼 우리 삶의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삶에 대한 이해는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 소설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당신만이 알고있다" 는 다섯 편의 소설이 수록된 옴니버스식 소설로 개별적인 하나 하나의 소설만으로는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쉽게 간파할 수 없는, 그렇지만 각개의 소설이 가진 의미속에 드러나는 변수를 통해 또다른 삶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맥락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러한 맥락들이 결과적으로 다른 삶의 이야기들과 연결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의미를 지니는 우리 삶의 이야기와 닮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이러한 작품을 실험이라 지칭할 수 있을까?

어쩌면 실험이 아닌 존재하는 것을 재현하는데 그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이미 우리의 삶속에 내재된 그러한 성향으로의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음을 생각해 저자는 그러한 의미를 되새겨 삶이라는 현장성을 구성하는 수 많은 가지로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자 하는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의도를 실험정신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험의 의도는 명확치 않은 무언가를 확인하고 정의하기 위해 하는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음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판단도 할 수 있다.

왜냐고 묻는다면 우리 인간의 삶이 특정하게 고착되거나 규정된 삶이 아닌 다양한 변수들을 통해 다양한 삶으로 변화해 나갈 수 있는 개연성을 갖추고 있기에 그러하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첫 시작점이 바로 여성 탐정의 이야기로 거액의 의뢰비를 요구하며 사건 해결과 협상에 임하는 추리소설로 이야기의 흐름속에서 다음 이벤트와의 연결성을 의심치 않게 만들면서 이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이어지는 나머지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속하기에 작가는 그러한 맥락적 의미에 무게를 두고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다섯 이야기의 핵심은 그 모든 이야기를 나라는 존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들 하나 하나를 마주하면 우리 일상의 다양한 일들이 어떻게 나와 연결되고 이어지며 해결되어 나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개연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상의 생활적인 측면을 들여다 보면 소설과 일치하는 느낌은 그리 강하게 와닿지 않는다.

마치 뭔가가 조금 어긋난듯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음은 아마도 실체와의 괴리감에 따른 작가의 표현력 부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 있듯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나, 우리가 될 수 있는 일은 오늘 우리 삶을 형성하는 다양성의 원인으로의 이벤트와 사람들의 삶의 단초들이 여전히 엮여 있고 서로가 영향력을 미치며 우리라는 삶을 형성해 나가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 될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삶의 이치를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는 의미를 내보인다 생각하고 싶어 진다.

그러한 깨달음을 갖게 된다면 조금은 더 나은 나, 우리가 되기 위해 변화를 추종하게 되는 나, 우리를 목도할 수 있게 만드는 궁극의 목표를 지향점으로 하게 되리라 판단해 보며 저자의 필력을 즐겨본 시간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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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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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나, 우리가 가장 상처를 받는 존재는 누구일까, 하는 물음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순위에 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가족, 한편으로 생각하면 가장 따듯한 성정을 지닌 인간들의 집합이어야 하지만 실상은 가장 난도질하는 존재들이 바로 가족이라 생각되면 도대체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교통정리가 잘 된 가족들도 볼 수 있다.

어느 한 인물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그야말로 가족의 일원임이 자랑스러워 지는 그런 가족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가족 속의 개개인의 모습들을 온전히 자유를 그려내지 못하고 억압과 복종과 간섭을 통해 규율화된 모습으로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오늘 우리의 가족은 어떠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이자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존재들인지, 그러한 구심점이 누구인지,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남부럽지 않은 가족의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하는 등의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어떤 가족이든 가족으로의 의미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 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포기할 자유" 는 어쩌면 50~60년대의 우리 나라의 가족들의 모습을 근간으로 하는 내용을 아야기로 담고 있는듯 한 느낌을 준다.

무능한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 5남 4녀의 자식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위한 노력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으로 전락한, 그래서 가족 중의 누군가는 모두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고 대처해 나가기 보다 가족 중심의 생존과 결부된 삶을 책임지고자 하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소설 속의 형숙과 형구처럼 말이다. 이러한 가정에서는 남녀의 신분적 차이가 뚜렷하다.

가정에서 조차 그러한 차별을 받는 일은 사회적 차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일이고 보면 무척이나 잘못된 일이지만 오랜 세월 우리는 그러한 삶으로의 가족들을 보아 왔고 살아 왔다.

더이상 가족으로의 따스함을 느끼기 보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게 되는 가족이 되고 나면 가족으로의 긍지같은 것은 없다.

마치 남남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움을 하듯 우리는 그렇게 변모하게 된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공격을 감행하는 일은 더이상의 가족이 보일 수 있는 행태는 아니다.

수 많은 가족 드라마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스토리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

대가족의 분화로 인해 소가족, 핵가족, 1인 가족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갖게도 된다.

권위적인 부모의 위상 보다는 친구같은 부모가 더 호응을 얻는 지금의 가족의 모습을 과거의 가족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가족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어느 누군가의 노력과 봉사, 희생과 배려가 없다면 가족이라는 이름의 집단은 명분만 있는 남남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가족의 구성원들에게 따듯함과 사랑을 기대하는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오늘의 나,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이고 또 지금의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목도되는가 진지하게 파악해 보아야 한다.

나, 우리라는 존재의 모든 것을 포기할 자유를 상쇄할 만큼의 가족이어야 가족다운 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건 나만의 가족관이라 치부할 수는 없다.

아낌없이 나의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는 존재로의 가족이라야 비로소 가족이 주는 사랑을 통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삶이 형성되리라 판단해 보며 가족의 참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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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필사집 따라 쓰는 즐거움 2
제임스 매튜 배리 지음, 성소희 옮김 / 시대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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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우리 인간에게는 한 권의 책이 존재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책은 많은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이었고 지식과 지혜를 함양시킬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한 책을 더 많이 만드는 일은 책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일로의 필사(筆寫)에 의해 이어져 오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의 귀중한 문장, 아름다운 문장들을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자 필사를 하고 있는 실정임을 생각하면 수 많은 필사집들이 탄생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 많은 문학 작품들, 명작이라 일컬어 지는 서적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 명작들 가운데 어린이나 어른들 모두에게 힘과 용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저러자 않는 아이로 불리는 피터 팬을 필사용 책으로 선정해 필사 하며 읽어 나가는 맛도 일기만 하는 독서 보다는 월등히 그 느낌이나 의미가 다르리라 판단해 볼 수 있다.

벽돌책에 가까운 필사용 피터 팬을 만나 읽어보며 필사를 겸해 본다.



이 책 "피터 팬 필사집" 은 언제나 변함 없는 동심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나, 우리에게 자라지 않는 아이처럼 동심의 세계에서 모험을 펼치며 악당을 물리치는 어린아이 그대로의 모습, 순진한? 피터 팬의 모습을 만나며 그가 펼치는 마법 같은 세계를 담은 동화책이자 소중한 문장들을 필사 할 수 있는 책이다.

작품 피터 팬은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의 이웃인 데이비스 집안의 아이들을 모티프로 한 동화이다.

누구나 귀엽고 예쁜 아이들을 보면 그 순간을 영원히 하고픈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마음을 저자 역시 이웃집의 귀여운 아이들을 보면서 가졌을도 모를 일이다.

허나 그러한 마음은 자연의 섭리를 부정하는 인간의 욕망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저자가 피터 팬과 요정을 등장시켜 어린이가 주인공인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은 결코 어린 아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라 할 지라도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그러한 느낌으로 받아들여 지게 되는것 같다.

필사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걸까?

왜 우리는 필사를 하고 또 무엇을 위해 필사는 하는것일까 생각해 보면 더욱 깊은 독서를 하게 만들어 주는가 하면 글쓰기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물론 필사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 한 글쓰기의 경험을 늘려 준다고 하지만 우리는 유난히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필사는 그러한 점에서 분명 문제가 된다.

글쓰기를 위한 필사임이 분명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에만 힘을 쏟는다면 이는 바람직한 필사가 아니다.

또한 읽음과 쓰기를 동시에 하기에는 보통의 시간 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들이 소요된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창작의 시대를 맞아 나, 우리 역시 창작자로의 글쓰기가 요구되는 시점이라면 필사는 베껴 쓰기라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필사를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필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대답이 우리 모두의 의사에 기반하는 다름을 표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너무 깊게 생각하기 보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 올바른 결정이라 할 수 있겠다.


필사에 너무 골머리를 썩힐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명작인 피터 팬을 두고 하는 필사이니 만큼 그에 상응하는 재미와 모험으로 인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읽음으로만의 느낌이 아닌 필사를 통해 더욱 진한 감정의 골로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또한 악당 후크 선장에 대항하는 피터 팬의 이야기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여전히 보여준다.

읽는 재미를 느끼는 책이라면 따라 쓰면서 느끼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게 한 작품, 한 작품 따라 쓰고 읽다보면 앞서 이야기한 깊이 있는 독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게 된다.

그 시작을 벽돌책인 피터 퍁 필사하기로 시작해 보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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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호의에는 이유가 없어서 - 악어, 나귀 그리고 들풀이 보여준 날들에 대해
김동영(김줄스) 지음 / 인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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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우월함이라는건 어쩌면 우리만의 착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인간중심주의 라는 것이 다분히 이기적 발상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인간이 스스로가 우월함을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는 일은 우리만의 착각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왜 내고 묻는다면 그러한 사실을 증빙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속속 발견되고 포착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나 동물, 식물은 어찌 보면 모두 공평한 존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인간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한 동, 식물의 특징적인 부분을 발명으로 엮어 우리의 일상 생활, 삶을 더욱 편리하게 하는 모티프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동, 식물이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동, 식물이 본능적인 존재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은 한참을 잘못 이해하거나 무지한 생각에 머물러 있는것이라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수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삶을 위해, 다양한 동, 식물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의 과정과 결과를 생각해 보면 결코 우리가 생각했던 본능적인 존재로의 동, 식물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의미를 자신의 동물,식물 키우기를 통해 깨닫게 해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동물의 호의에는 이유가 없어서" 는 수 많은 유튜버 중에 독특하게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내용들을 소개하는 김줄스의 생태에 관한 자신의 경험적 이야기를 통해 자연, 특히 동, 식물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신 이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인간을 뛰어 넘는 존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의식은 선민의식과 닮아 있지만 자연의 위대한 신은 인간 존재의 삶을 홀로 살수 없는 존재로 만듦으로서 인간이든 , 동물이든, 식물이든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 엮어 놓았다.

인간은 자신이 호의를 베풀 때 어떤 의도를 갖는다.

하지만 동물, 식물은 그러한 의도를 갖는지 아닌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알수 없다는 것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그런 의도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 마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본능에 충실한 동물과 식물에 있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본능적 존재로만 남아 있는 동,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삶, 생활 속에서 확연히 느끼고 그들의 존재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는다.

과연 본능에 충실한 존재들이 타자에게 안정과 평화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지금껏 나, 우리가 생각해 왔던 동, 식물에 대한 사유의 끈을 스스로 잘라내 버려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동물, 식물은 인간에게 호의를 베품에 있어 이유가 없다.

인간은 그들 존재에 대해 의도를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인 동, 식물은 인간에게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동물 애호가들이 천 만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니 그러한 실정을 살펴 보아도 동, 식물이 본능에만 충실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겠다는 저항감을 갖게 된다.

김줄스는 국내 처음으로 독특하게도 야생에서만 번식하는 '레오파드 게코'의 번식에 성공한 생태 연구에 진심인 인물이다.

고3, 3평 방에서 시작 된 희귀동물 사업이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변화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가 좋아했고, 하고 싶어 해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일들에 대한 과정과 결과를 목도하는 일은 오늘의 우리에게 귀중한 깨달음을 준다.

인간 중심주의가 아닌 자연, 생태계 중심의 세상으로 들어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살펴 이해하는 일은 그야말로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즈니스적인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유익하고 즐거운 삶이 될 것으로 판단하는 바 독자들의 즐거운 일독과 경험을 부추겨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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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맛집 도문대작 - 내란수괴 이이첨과 허균의 왕 만들기
임요희 지음 / 세상의아침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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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균의 소설속 인물이다.

하지만 그 시절이나 현재의 시대나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주는 의미는 정의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정의에 대한 의미가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할 수 있는 정의의 개념이나 가치관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 속에 고스란히 존재하는 정의에 대한 상상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 온 유토피아적 의미를 실존적으로 경험 할 수 있게 하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뜻하며 그러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허균의 저서 중에 도문대작이 있다.

쉽게 우리가 알 수 없는 고전이지만 네이버 검색을 통해 살펴보면 허균이 지은 음식품평책으로 소개된다.

허균이 지향했던 세상에 대한 의식을 도문대작의 존재 의미에서 읽을 수 있고 보면 조선 맛집 도문대작을 소설의 제목으로 지은 저자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다 하겠다.

현실의 어지럽고 혼란한 상황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저자는 왜 지금 도문대작과 같은 소설을 통해 무엇을 전해주고자 하는지를 살펴 읽어볼 수 있게 하는지 궁금증을 가지며 읽어본다.



이 책 "조선맛집 도문대작", 도문대작(屠門大嚼)은 1611년(광해군 3년)에 허균이 지은 음식품평책으로, 총 26권 12책으로 구성된 《성소부부고》에 들어있다

저서가 쓰인 시점이 광해군 때이고 보면 소설의 배경 역시 광해군 때임을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소설의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영화 '광해, 왕이된 남자나 홍길동전의 간접적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러한 영향력들은 소설의 흥미를 돋우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서사로 흐르며 반전을 기대하게 하는 이벤트로 자리한다.

도문대작은 양반 상놈 가릴것 없이 먹는것 앞에서는 평등한 존재임을 천명한 주막집으로 오늘의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에 부합한다.

그러한 자리 도문대작을 중심으로 시간의 전과 후라는 접점을 통해 허균의 어린시절과 사명대사의 관계, 성인이 된 후의 도문대작을 열게 된 까닭, 광해의 인간적인 혼란스러움과 성군으로의 자격을 돞아볼 수 있게 해 주는가 하면 역시 소설이기에 '만약' 이라는 개연성을 부여해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 놓아 해피엔딩으로의 결말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역사 속의 허균, 그리고 희대의 간신배 이이첨의 말로는 그리 해피한 모습이 아니다.

다분히 작가의 상상의 세계관이 드리워진 소설이기에 오늘 우리의 시간을 생각해 보며 왜 이러한 도문대작이 우리에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나라의 혼란 스러움은 너, 나 할것 없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부와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게는 나라의 안위는 심중에 없는 경우가 다반사임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의 권력과 이득을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이이첨과 오늘 우리 사회의 기득권에 목매고 있는 이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비단 혀균의 성정을 캐보지 않아도 익히 너무도 잘 아는 것이라서 식상할 수도 있지만 그간 우리는 수 없이 당하는 삶을 살았어도 여전히 변치 않는 민초의 모습으로 살고 있기에 조금은 새롭게 변화를 도모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도문대작이 추구하는 세상에 대한 정의를 곱씹어 보듯 말이다.

현실과 조선 시대를 오가며 삶의 혼란을 비교해 읽어볼 수 있는 재미와 그 속에 담겨진 인간의 삶에 대해 이해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고전, 도문대작이다.

‘도문(屠門)은 소나 돼지를 잡는 푸줏간의 문이고, 대작(大嚼)은 크게 씹는다는 뜻을 생각하면 지위의 상하를 따지지 않아야 하는 어떤 결기를 느끼게도 된다.

배고픔이 주는 평등한 원리가 세상이 갈라 놓은 지위를 박탈하고 마주 앉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것, 이것이 바로 평등한 존재를 만드는 세상이라 생각했을 허균의 사상을 잘 녹여낸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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