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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학의 부활 - 미국 제재 정책의 트릴레마(Trilemma)와 한국의 선택 AcornLoft
주현준 지음 / 에이콘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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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흐름은 미국의 주도로 인한 영향력을 받고 있다.

물론 각국의 경제 상황들이 녹록치 않음을 알지만 외견상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변수라면 지정학과 경제의 관계를 통합한 지경학적 정책을 들 수 있다.

미국은 그러한 지경학적 전략을 위해 통상적인 외교, 안보, 경제 등의 방법론을 쓰기도 하지만 제재라는 수단을 쓰기도 한다.

과연 그들이 쓰는 제제 정책은 세계경제를 전쟁터로 만든 주역이 될 것인지 심층 분석해 살펴 볼 일이다.

제재의 시대라 일컷는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제재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제재를 무기로 휘두른다면 재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국가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당하고만 있을 국가는 없을 것이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들과 밀접한 위치에서 그들의 전략적 제재의 원칙을 살펴본 저자가 그의 경험과 전략적 통찰을 드러내 설명해 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지경학의 부활" 은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이 펼치는 제재전략에 대해 밀도있게 분석, 그들의 제재 전략의 메커니즘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가득이나 불안한 국가의 상황을 맞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제에 대한 방향성을 도모하기 위한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미국이 수단화 삼고 있는 제재 전략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미, 중간의 갈등적 상황을 지경학적 자산으로 발판 삼아 우리의 위치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의미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미국의 전략적 제재에 대해 제재 회피국과의 연대와 제재 프리존을 구성하거나 제재 동참시 미국에 실질적인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거래형 외교'와 제재의 유불리를 분석해 '선별적 협력'의 전략을 구사하는 방법론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말하는 전략적 제재에서의 외생변수는 물질적 요인, 공동체의 특성, 실효성 있는 제도와 규칙이라 한다.

이러한 요인은 국제경쟁이 치열한 세계 경제에 있어 법, 제도, 규범 등을 둘러싼 쟁점화로 더욱더 가시적이며 우리는 대외관계와 관련된 위와 같은 법령과 제도의 정비를 강화하는데 힘써야 하며 효율성에 기반한 법 집행과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해 국가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을 확실하게 수호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 내용을 보면  중국의 모든 정책들에서 발표하는 신뢰할 수 없는 실체 리스트와 반외국제재법의 제정, 대외관계법 제정, 반간첩법 제정, 수출 및 기술 통제 등과 같은 부분들을 적용시키고 있어 이러한 중국의 행태에 대해 경고나 지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실감하게 한다.

결국 제재라는 카드를 활용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파워게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이나 러시아라는 거대 국가를, 그것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적성국가를 대하면서 정상적인 관계만으로 거래가 이루어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것은 무지한 세계경제에 대한 이해라 할 것이다.



수 년 간을 이끌어 오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우리에게 어떤 제재 전략을 시사하는가?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을 몰수하는 제재는 우크라이나와 미국과의 이해관계를 돈독히 하는 가운데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재정적자를 벗어나게 하는가 하면 러시아로 인한 전쟁 도발과 유지에 따른 실질적 비용을 감당하게 하는 효과를 낳게 하고 있다는 분석을 생각하면 제재에 대한 전략적 실행법도 유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전략적 제재를 우리는 어떻게 국익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된다,

물론 미국의 전략적 제재가 국가와 기업 등에 대해 이뤄지고 있고 보면 우리 역시 한국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놓고 선택해야 할 시 국가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 전략을 짜 놓아야 한다.

지경학의 부활은 미국의 제재정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을 파악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들이 전략적으로 제재를 수단화 하는 방법론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고 세계경제에 미치는 제재에 대한 국가 이익을 위한 방법론을 십분 고민해 볼 때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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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를 막을 것인가 만들 것인가
아이라 샬레프 지음, 김익성 옮김 / 이사빛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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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권력을 말함에 있어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치에서의 독재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에서의 독재는 오롯이 혼자만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다.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독재를 꾀하려던 권력자들이 어떤 행동을 했고 또 그러한 행위를 도와 독재 시대를 이루려 했던 추종자들의 면면들을 보아왔다.

국내에서의 독재에 대한 연구자료가 그리 흔하지 않아 독재와 독재를 꿈꿀 수 있게 된 환경적 요건으로의 원인들을 살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많은 국가들의 정치 권력자들은 자신의 정권을 지속하기 위해 독재를 꿈꾸는 경우도 많다.

현실에서의 독재는 과연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독재라는 의미에 대해 치를 떨지만 정작 왜, 어떻게 독재가 이루어 질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이해할 수 기회는 없었기에 그러한 의미를 담은 내용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독재자를 막을 것인가 만들것인가" 는 역사상 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존재했고 그들 나름대로의 현명한 지도자를 달성하려 노력 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러하지 못한 모습들을 만나게 된 정치에서의 지도자와 추종 세력들과의 결합에 의해 독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 어떤 정치 지도자라 해도 추종자들이 없이는 현명한 지도자나 독재자가 될 수 없다.

인간의 정치적 조직에는 구조적으로 지도자와 추종자가 존재한다.

정치 지도자 혼자 독불장군식의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그 어떤 지도자라 해도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반듯이 필요하며 저자는 이 책에서 추종자를 5계층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쉽게 생각하면 대중적 존재감을 갖는 대중이 제 5계층이며 활동가, 정부 또는 지자체의 관료, 사회적 지식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엘리트가 있고 지도자의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측근이 제 1계층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추종자들은 순응형, 공모형, 용기 있는 추종자로 세분화 할 수 있으며 독재에 있어 왜 우리가 추종자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아직도 수 많은 국가에서 이뤄지는 독재를 향한 정치의 폭정이 글로벌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간과하기 보다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알아야 함을 깨닫게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우리나라와 같은 정치사를 살펴보아도 독재에 대한 우려의 시각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한 독재가 이뤄지는 상황은 어떠하고 또 우리는 어떻게 독재를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건물에 불이 나면 방화벽 또는 방화선이 화재를 더 크게 번지는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말하는 권력의 방화선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정치 지도자의 추종자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 하는 일은 자신이 삶을 영위해야 하는 국가에서의 올바른 권력에 대한 공고함과 초법적인 정치적 저지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신경쓰는 일만도 벅찬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국가의 정치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 정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이해하며 우리의 의사를 반영해 우리가 더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지만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독재자가 만들어 진다면 우리의 삶은 더이상 지속가능한 삶이 지체되거나 지속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불행한 일을 우리 모두가 타인의 손에 맞길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으로 정치 방화벽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저자가 설명하는 독재자를 막을 것인가, 만들것인가에 대한 나,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지 곱씹어 보면서 오늘 우리 역사에 존재했던 독재의 서막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를 되돌려 이해하는 시간을 즐겨 보는데 유익하며 독자들의 다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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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쿠데타 -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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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라는 용어는 프랑스어로 정부에 일격을 가한다는 뜻으로, 군대와 경찰 등을 동원한 정치적 선동과 무력(武力)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빼앗는 일을 통상적으로 지칭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는 지배계급내부의 단순한 권력 이동이 이루어지며, 체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혁명과는 조금 다른 의미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쿠데타가 꼭 정부 조직이나 군사적 반란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라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날에는 정부, 군부가 아닌 막강한 힘을 가진 거대 기업들이 그러한 쿠데타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 놀랄 수도 있을 것이라 본다.

기업의 궁극적 목적은 이윤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위해 쿠데타까지 생각하는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러한 쿠데타에 대한 인식은 그간 우리가 알았던 정부, 군부에 의한 쿠데타라는 고정관념을 일격에 무너트리는 새로운 블랙스완과 같은 의미가 될 것으로 판단해 본다.

그러한 숨겨진 의미로의 쿠데타를 조명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소리없는 쿠데타" 는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벌이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투쟁으로의 과정들을 마치 쿠데타와 같음을 인식하고 2년간의 추적을 통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업들의 국가와의 분쟁에 대한 탐사보도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탐사보도를 위해 선발 된 두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강화되는 기업 권력의 위태로운 실상을 파헤치고 무엇이 핵심이고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 우리는 기업이 국가나 정부를 상대로 분쟁을 일으킨다고? 라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나 그 한 예로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었던 미국의 사모펀드 론스타의 분쟁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어제 오늘의 일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자명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통해  전 세계 수 천건의 투자협정들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와 국가 분쟁해결제도(ISDS)가 보여 준 상황은 온전히 기업의 손을 들어 준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기업들이 정부와 같은 조직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보통의 우리에겐 무리지만 그러한 상식으로의 기업에 대한 인식을 상황이 변화하고 있고, 변화 한 만큼 이제는 내려 놓아야 한다.

기업들 역시 기업 사법, 기업 복지, 기업 영토, 기업 군대 까지 갖추며 마치 하나의 제국처럼 자신과 상대하는 대상이 누구이건 분쟁을 일삼고 투쟁을 통해 실익을 쟁취하는 일은 마치 쿠데타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 역시 기업의 이익을 원하는 터이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업과 투자자는 한배를 탄 동지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저자들은 수 십년간 기업들의 전략적인 계획과 로비활동, 새로운 인프라로 인해 거대 기업 제국들이 추구하는 비즈니스가 아닌 분쟁유발에 대한 면밀한 감시를 통해 적나라한 그들의 실체를 밝혀내고 있다.



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소리없는 쿠데타처럼 기업의 정부 또는 국가와의 분쟁은 무수히 많다.

ISDS가 기업의 영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 경위, 국제 원조 개발, 비영리 기구와 자선단체 등에 대해 기업이 어떻게 얽혀있고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챙기는지, 수 많은 경제특구에서의 조세회피와 규제의 면제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 이외에도 해당 국가에서는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들에 영향을 미친 기업들의 영향력에 대해 읽다보면 오늘날의 기업들이 우리의 인식에 박혀 있는 그런 기업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소리없는 쿠데타를 일으키는 기업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데 있다.

그것이 우리의 공동 번영을 위한 숙제이기도 하며 본래의 기업이 갖는 가치와 의미를 재확인 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해답을 저자들의 탐사보도를 통해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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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타고난 성향인가, 학습된 이념인가
존 R. 히빙.케빈 B. 스미스.존 R. 알포드 지음, 김광수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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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사를 들여다 보지 않아도 대한민국 정치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어쩌면 정치에 있어 사람들의 근본에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있는 정치 성향에 대한 이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의 정치가 펼쳐지는 상황 아래서 다양한 의견의 표출이 일어나는가 하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음에 과연 우리에게 정치는 무엇이고 또 그러한 정치를 나, 우리는 어떤 의미, 가치를 두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으로 결집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수 많은 사회학, 정치학, 인간 심리학 등과 관련 된 숙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는 갈등의 연속을 일으키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모두를 수렴하는 정치는 이론상으로의 백미를 낳겠지만 현실적인 정치에서는 모두를 수렴하는 정치는 있을 수 없을 뿐 더러 오히려 모두를 속이는 정치의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향도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정치계에서 10년은 아주 긴 시간이다. 

그러한 정치사의 시간을 통해 세계에서 우후죽순으로 벌어지는 정치사의 격랑을 통해 가장 하부 계층의 국민들이 과연 어떠한 성향에 의해 정치의 세력화가 이뤄지고 결정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는 인간은 성격은 바꿀 수 없을지라도 자신의 주관하에 드러나는 성향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며 그러한 성향이 과연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성향(性向 / alignment, tendency )은 성격, 가치관, 혐오, 차별 등에 대한 심리적 성질에 따른 경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치 성향은 정치에 한해 드러나는 성질의 경향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정치 성향이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물학적, 심리학적 경향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경향이라 하듯 각자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사건에서 비롯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정치적 성향이 결정되길 바라는 것이 유익한 세력이거나 혹은 그 반대의 세력이라 하더라도 정치적 관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거나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게 하는 방향으로 전환함으로써 정치 성향을 바꿀 수 있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모든 정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고 사고하며 행동할 수 있는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가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다면 분명 나, 우리는 우리의 정치 성향을 바꾸고자 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정치 성향만을 조사해서 유익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세력을 유지하거나 기득권을 얻고자 하는 쪽에서는 그러한 성향이 필요하겠지만 정보를 통해 균형이나 흐름을 이해하고자 하는 국민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저자는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또는 다양한 방식을 주장하는 주의자들의 서로의 주장과 사고를 이해하고 안타깝게 일어나는 불의의 사고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간의 대립을 원하지 않는것은 국민 모두의 바램이라 할 수 있다.

설령 나, 우리 자신이 보수주의자 이거나 혹은 진보주의자라고 해도 올바른 정치를 통해 올바른 국가의 지속가능함을 꿈꿀 수 있게 하는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볼 수 있어야 하나 실상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극단주의적으로 치달아 가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정치를 매개로한 갈등의 역학관계에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나마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한 나, 우리의 정치 성향 역시 알고 있다.

다만 우리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또는 혁신이나 그 어떤 가치를 지향하든 타고난 저마다의 성향이 다르기에 오롯이 자신의 주장만으로 나라를 망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과정으로의 통찰을 저자는 결정론이 아닌 확률론적 사고에 따라야 함을 주장하며 서로 다른 현실 아래 보수와 진보주의자가 전하는 말을 통해 인정과 화합, 배려를 통해 새로운 변화의 장을 이끌어 내야 함을 일깨워 준다.

부록으로 설정 된 정치성향 진단 테스트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에 대해 깊이 이해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느껴보길 권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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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 -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조민영 옮김 / 도도서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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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무슨 말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세상 모든 일은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고 보면 책의 제목이 이러함은 어떤 일에 있어서의 강대국의 책임도 분명코 있건만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고 약소국의 국민들만 피해를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윤리적, 도덕적 현안으로의 주제를 제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상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에 대한 강대국들의 간교한 참견과 유대인의 자국내 출입, 자리잡는 것을 두려워한 것일 수도 있다.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표면적인 종교전쟁으로 이해하기 보다 좀 더 깊이있는 근본 원인과 과정들이 존재했음은 종교전쟁이라는 치부하는 강대국들의 농간일 수도 있다.

강대국이라는 이름만으로 윤리적, 도덕적으로 불편한 행동을 한 지금의 강대국들의 면모를 살펴 이해하고 진정 세계의 강대국이라면 마땅히 책임지는 자세른 견지해야 마땅하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낸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 는 세기의 화약고처럼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재가 왜, 어떻게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최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재점령 작전을 세우고 지상군 투입과 교전의 재개로 세계의 주목과 혼란스러움을 끌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 한 세기를 넘기고 있어 근본적으로 그 분쟁에 대해 심도 깊게 파헤쳐 본다면 표면적인 종교분쟁으로의 이유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을 방조하고 이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책임을 회피한 유럽 강대국들의 방관도 무시할 수 없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들에 대한 죄책감을 아마도 유럽인들은 일정 부분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되며 그러한 의식이 이스라엘의 탄생과 맞물리고 방조와 방관과 방기하는 수순으로의 중동분쟁의 핵심적 근원이 되었다고 판단해 볼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은 그러함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이 미친 영향력에 대한 어떤 사과나 반성도 없음이 불편한 것이다.

더구나 유대인 난민 문제와 더불어 강대국들에게는 유대인 적대정책으로 비춰지는 일을 자국이 해결하고자 하는 정의를 보이기 보다 유럽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아랍인들에게 떠 넘기고 말았다는 사실을 교묘히 숨기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강대국이라 해서 모두 정의롭고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보장이나 가능성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어쩌면 헌실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결과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하고도 여전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는 척 하는 술수를 부린다면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하듯 몰염치하고 타락한 강대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종교간의 문제라는 지극히 표면적인 원인으로 치부하고 말지만 숨겨진 현실을 한 꺼풀 들춰내 보면  중동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서구 강대국들의 영향력을 위한 각축전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강대국들의 진실한 반성과 참회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것 같다.

다만 저자가 주장하고 알려 주듯이 중동 문제의 해결은 시작한 사람, 국가들이 책임지고 문제 해결에 동참 하는데서 시작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어 중동문제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의식보다  새로운 시발점을 제시하는 것이라 여겨도 좋을듯 하다.

새로운 시각, 관점으로 보는 중동분쟁의 이해관계와 강대국들의 반성과 성찰을 기대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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