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선택 - 인구 절벽 시대, 국적은 어떻게 개인의 무기가 되는가
우원규 지음 / 미래의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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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자신의 삶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로 귀속된 상황으로 국가선택을 해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 개인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고는 아마도 지금까지는 가질 수 없는 금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 고령화에 의한 심각한 결과가 지금껏 우리가 금기시 했었을지도 모를 개인의 국가선택이라는 문제를 가시화 하는 트리거가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과 시대의 변화로 말미암아 개인의 국가선택에 대한 타당성과 그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서사를 접해볼 수 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가로막게 된다면 지금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 해결법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개인의 국가선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서사를 명쾌히 제시해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국가선택" 이 말하는 우리가 국가선택을 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인구는 줄고, 국경은 열리고 그 결과 국적은 선택 된다고 주장하며 과연 지금 우리에게 커다란 문제점으로 떠오른 국가선택에 대한 서사를 분석하고 타당한 문제해결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어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국가선택이라는 문제를 돞아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 국가선택이라는 명제는 지금까지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문제였지만 이제 저출산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인해 세계 인구는 자신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국가를 선택해 이동하는 시대의 도래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국가를 위한다는 충성심에 기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충성심은 시대의 산물로 치부되고 현실적인 삶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최우선 과제에 따라 세계를 안방처럼 옮겨 다니는 이동족의 탄생을 야기 하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그대로 놓고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미래는 담보할 수 없다.

저자는 그러한 우리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결함이 될 수 있는 국가선택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고 그 해답을 위해 지금의 나, 우리, 사회와 정부 각각의 노력에 대한 서사를 제시한다.



사회의 변화와 국가의 소멸을 걱정스럽게 하는 문제들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라 세계 각국이 현실적이거나 가까운 미래에 맞을 수 있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국가와 국민의 관계 재편이라는 커다란 프레임으로 구성 세부적인 내용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구, 이민, 인구 유출, 선택받는 국가, 한국과 한국인의 선택이라는 세밀한 서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흔히 '이게 나라인가?' 라는 질문 속에는 다분히 나라다운 나라가 되어야 비로소 국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하듯 국가선택에 밀집되어 있는 각 개인, 가족이라는 최소의 사회가 지속가능함을 열어갈 수 있게 바탕을 깔아 주는 국가에 대한 선택을 이제는 얄팍한 충성심으로는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어떤 국가로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하루 하루의 삶에 치여 사는 우리지만 그런 삶이라도 지속가능함을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면, 어떤 국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 좋겠다.

그 생각의 끝에 도움의 손길을 펼쳐 지속가능성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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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극우가 온다
정민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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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1020 세대에 대한 평이 그리 썩 좋지는 못한다는 생각은 비단 나만이 갖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더우기 몇 년간 사회적 변화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성격이 매우 불온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경계하고 변화를 촉구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야말로 이 나라, 이 땅을,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 왔고 지켜 가고 있는데 극우적 성향을 띤 1020 세대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싶다.

지금의 민주주의를 투쟁으로 지켜 온 4050 세대들을 1020 세대들은 꼰대로 비하하며 조롱을 일삼고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다.

건전한 진보와 보수의 다툼은 건강한 정치 사회를 여는 길이라 판단할 수 있지만 냉소적 진보의 목소리라 치부하고 사회적 금기를 깨려 하는 보수의 문화는 오늘날 알고리즘과 암호로 결집하는 고도화된 양상으로 그간의 우리 생각이나 의식을 완전히 뒤 엎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도 1020 세대이면서 1020 세대의 지나친 우경화를 걱정스럽게 바라 본 저자의 우리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1020 세대의 극우에 대해 폭 넓게 파헤친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1020 극우가 온다" 는 사회적, 국가적으로 극우라 지칭함이 적잖히 나이 먹은 4050 세대 이후의 문제라면 정치적 색깔이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도 아닌 1020 세대의 극우, 우경화는 우리 사회,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현실적 존재감을 부정하고 조롱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론을 일삼는 1020 세대의 모습을 돞아 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1020 세대의 우경화는 알고리즘으로 대표되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플랫폼에서 작동되는 세뇌 교육과 같은 대상들을 통해 버젓이 진행되고 있어 적잖히 염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극우든 극좌든 정당한 비판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허나 현실에 대한 부정과 함께 조롱을 일삼고 체제의 전복을 꾀하고자 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세상,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들고 체제를 부정하며 전복시켜 지속가능함을 단절시키려는 의도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판단할 수 있다.

왜 1020 세대들이 그러한 우경화에 빠져 있는지, 그 현상은 또 어떠한지 등에 대한 이유와 해답을 저자는 나름의 사유를 통해 제시하며 어떻게 우경화된 1020 세대를 변화시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한다.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가질 수 있다.

진보든 보수든 자신의 성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지만 정상적이고 건전한 방식으로의 지원이자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의 부정도 모자라 폄훼하거나 조롱을 일삼아 비인간적 존재감을 이끌어 내는가 하면 인간으로서는 해서 안될 몰상식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우리의 미래라 지칭했던 1020 세대들이 우경화 되어 4050 세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세대간의 단절이자 전쟁이 될 수도 있다.

부모 세대의 대한민국이 자녀 세대의 대한민국에서 지속가능함이 아닌 단절된 민주주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 함꼐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이 위한 저자의 처방전이 들어 있는 이 책, 다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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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한러 관계
박병환 지음 / 뿌쉬낀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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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발생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이 횟수로 5년째로 접어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임을 알 수 있다.

남의 나라 일이니 우리는 상관치 않겠다 말할 수 없는 일이 우리의 실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뿌리는 같은 민족임을 알 수 있지만 사상적 다름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 러,우 전쟁에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은 어떠한가 살펴 볼 필요성이 있다.

전쟁 이전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는 상호 협력적 관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발발 후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 재제로 인해 한국 역시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 수준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미국의 눈치를 보는 한국의 입장을 생각지 않을 수 없지만 현재의 미국의 세계를 향한 행태를 살펴 보면 이제는 미국의 눈치를 보기 보다 자주국방을 실질적으로 쟁취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시선과 올바르게 알고 이해해 국가이익의 기치를 드 높여야 한다는 의식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한·러 관계" 는 전쟁 이전의 한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우크라이나 보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욱 공고했음을 살필 수 있고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대러 재제에 동참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의 러시아와의 소원한 관계를 밝히며 이러한 관계의 변화를 고스란히 미국이 아닌 한국이 질머지고 있는 상황을 마뜩잖게 생각해 국익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는 책이다.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 아메리칸 퍼스트를 세계에 천명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세계 질서를 개편하려 한다.

미국은 하는데 왜 우리는 우리 국가의 이익을 왜 생각하면 안되는가? 하는 물음에 시원하게 답할 수 없다면 이러한 문제를 힘에 기승하고자 하는 국내 언론의 문제와 지식인들의 미국 편향적인 해석에 다름이 아니라는 판단을 해 볼수 있다.

저자는 한-미간의 관계가 예전과는 다른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지금, 우리와 러시아와의 관계를 미온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의 제휴를 촉진하는 역할자로의 노력을 통해 우리의 국익을 챙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명 정부의 어젠다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다. 

북극항로 개척과 같은 미래를 위한 도전 과제들은 러시아와의 협력이 없이는 전개, 지속할 수 없는 실정임을 생각하면 저자가 보여주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과 협력에 대한 의미는 이제 철저히 국익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함을 꺠닫게 해 준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을 배재하고 러시아 하고만 협력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한국, 미국, 러시아 3국이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G2를 넘어 세계 패권을 쥐고자 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같은 공동의 목표를 위한 협의를 우리가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우리는 미국의 협력하에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실질적인 국익을 위한 국가적 비즈니스를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알아 왔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생각을 깨트려 주는 저자의 진실함과 철저히 국익을 위한 한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마중물로 의미 있는 기회를 제시한다 하겠다.

독자들의 의식의 개선을 위해 다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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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의 시대 - 정의를 외치는 극단적인 사람들
폴 하이드먼 지음, 신재일 옮김 / 이글루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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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정치적 성향을 말할 때 진보, 보수 라는 말을 쓰지만 극좌, 극우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극우,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우파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이념, 집단, 개인(정치인)을 뜻하며 초보수주의, 권위주의, 국수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제노 포비아, 극단적 반이민 정서자를 뜻하기도 한다.

위의 정의를 보면 누가 생각이 나는가?

바로 그렇다. 현재 세계의 정세를 어지럽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는 일이다.

정치적 개념은 의식적 현상이라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극우적으로 불리울 때는 정치적 환경과 전통 등이 다르고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되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트럼프와 미 공화당의 극우적 현상을 돞아 보며 이해를 돕고자 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극우의 시대" 는 지극히 이념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국에 대한 지나친 충성도를 드러내 세계질서를 어지럽히는 실체적 모습으로의 미국과 트럼프의 모습에서 극우의 진한 풍미를 느끼는가 하면 왜,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이란 괴물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반이민적 정서, 반 페미니즘  태도, 권위주의적 양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 극우의 시대를 펼치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미국의 양당, 만주당과 공화당의 체제에서의 권력구조와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역학적 관계 속에서 탄생한 트럼프라는 인물의 존재에 대해 집중 조명하고 있어 작금의 트럼프와 공화당의 극우적 행태를 이해하는데 유익하다.

저자는 미국 공화당의 친기업 정당에서 현재의 극우 정당으로까지의 변화를 매우 밀도 있게 분석해 우리의 미국에 대한 정서적 밑그림을 더욱 사실적으로 현상화 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런 기업, 기업의 엘리트들이 극우적 존재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통찰은 선거자금 조달과 당의 통제력 상실이라는 현상, 조지 W.부시 시대의 이민정책 등 매우 다양한 조건들이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킨 과정과 결과임을 보여준다.

사실 현실의 우리가 보아도 트럼프와 미국 정치계의 행태는 얄미울 정도를 넘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나 하는 놀라움까지 갖게 한다.


저자는 현실의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혜성같은 존재가 아닌 공화당이 만들어 낸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존재로 치부한다.

역시 우리의 눈에도 확연히 보이는 돈만 밝히는 트럼프 답게 공화당 역시 기업 엘리트들의 수족이 되어 당의 존재감을 흐트러 트린 결과가 바로 트럼프 임을 생각해 보면 언제까지나 기업들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 될 그런 상황은 이제 더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트럼프는 공화당의 그런 술수를 익히 알고도 전면에 나서 정권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의 트럼프와 공화당의 밀월관계에 대한 조명이라 매우 유익하게 다가온다.

일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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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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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사를 승자에 의해 쓰인 역사로 말한다.

그러한 의미로 수 많은 전쟁과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있음을 생각하면 패자 혹은 약소국의 입장에서 보는 역사는 그 맥락이 완연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승자의 전쟁 뒤에 가려진 또 하나의 세계사라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승자에 의한 역사의 이면을 좀더 면밀하고 진실함에 다가가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떤 전쟁이든 옳은 전쟁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쟁이 아니라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측면에서 전쟁의 당사자들은 그러한 문제해결을 외면하고 극단적 선택으로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4년을 넘어 5년을 향해 치달아 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모두의 예상을, 모두의 기대를 벗어난 전쟁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어 그간 우리가 알았거나 기대해 마지 않았던 생각을 뛰어 넘는 무엇이 진실한 것인지를 살펴 고민하게 한다.

인간의 역사에는 수 많은 전쟁들이 역사처럼 수 놓여져 있으며 전쟁사로 읽혀진다.

그러한 전쟁사를 통해 다양한 시각, 관점으로 전쟁을 바라 보아야 하며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는 인간의 역사에서 발발한 다양한 전쟁들, 왜 발발했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서사는 우리에게 표면적인 승리자의 연설이 아닌 피해자이자 약소국의 피눈물이 맺힌 주장에 진실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더욱 깊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다.

러,우 전쟁처럼 강대국의 야욕에 의해 한 번에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우리의 기대, 상상과는 달리 4년을 넘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과연 러,우 전쟁의 진실은 무엇인가에 촛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다.

덩치큰 존재라고 해서 무작정 상대를 타격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일은 무지스럽고 억지스런 의식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러, 우 전쟁으로 인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초기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나 인식이 미미했다고 볼 수 있고 푸틴의 야욕에 지레짐작으로 무릎 꿇는 모습을 가졌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쟁은 생존을 걸고 하는 싸움이다. 그러한 점에서 인류사를 수 놓은 많은 전쟁사들이 오롯이 승자만의 기록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전쟁은 우여곡절 끝에 끝나고 승전국의 이름으로, 승전국의 서사로 점철된 승리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승리에 가려진 진짜 진실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아야 하는 일은 우리에게 승리에 도취된 자세를 갖기보다, 승리의 이면에 존재하는 수 많은 약자들의 상황들에 대해 밀도 있게 이해 보고 그러한 진실들이 전쟁의 승패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저자는 인간 존재를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라 지칭하며 인류의 전쟁사에 놓인 다양한 전쟁들의 이면에 자리한 진실의 이야기들을 통찰해 내고 있다.

일개 개인이 세계사, 전쟁사를 통해 승리의 역사가 아닌 패자 혹은 약소국의 입장에 대해 이해한다고 해도 과연 뭐가 바뀌겠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리말에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고 했듯이 한 개인의 의식이 올바른 진실로 향하고 있다면 이는 또 한 사람, 또 한사람의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현대는 온라인이라는 막강한 파워 시스템을 갖고 있기에 또하나의 세계라 지칭할 수도 있다.

올바른, 진실에 대한 이해를 갖고 올바름에 대한 자유의지를 담을 수 있다면 그간 인류사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전쟁사에서 없었을 수도 있는 전쟁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동맹국으로 존재감을 갖고 있지만 미국에 대한 기대감은 금물이며 오해나 상상으로의 미국에 대한 이해도 하지 않아야 한다.

어제는 우크라이나, 오늘은 타이완 그리고 내일은 또 어느 나라의 전쟁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인류의 전쟁사가 그리 올바르고 정직하지 않다는데 방점을 찍을 수 있어 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를 통해 지난 전쟁들이 갖고 있는 숨겨진 진실의 모습들을 통찰해 보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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