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은 어느 날 여기서 봤는데 멀리 떨어진 다른 데서 볼 때가 있다

"어? 이거 봤던건데?"


전시 작품의 원래 수장고에서 대여중이라는 표식을 볼 때도 있고

같은 작가의 다른 스타일을

같은 작가의 같은 스타일을 볼 때도 있다


반갑고, 데자뷰!


전시를 많이 다니면 이렇게 여러 장소에서 이것도 보이고 저것도 보이는 재미가 있다


최근 것만 정리해본다


1. 김영원 88년 무중력 청동조각(같은 스타일 다른 작품) : 청주시립미술관→평창가나2층구석


2. 민복진, 강태성 조각(대여중인 작품 원위치) : 양주민복진→청주MMCA1층개방수장고


3. 이영희 OO가는 길 대형유화(비슷한 스타일) : 양평군립→고양시립

4. 장한나 (다른 작품 같은 작가): 용인백남준아트센터2층독립방→과천MMCA1층젊은모색

5. 장욱진 회화들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청주MMCA5층수채화전→평창가나아트1층

6. 김윤신 합이합일분이분일 (같은 작가 비슷한 스타일): 대전이응노미술관→(그리고 또 어디서 봤는데)→청주시립미술관3층

7. 요한한 : 안국아라리오갤러리3-4층→청주시립미술관 신소장품전 1-2층계단→갤러리조선(내일오픈 5.8~)

8. 안규철: 아마도미술공간→스페이스이수1층로비→청주시립3층

9. 한우리 영사기 : 아마도(24년9월)→백남준2층

10. 이자벨드가네:예전(23년)→모다(25년)

11. DDP 톰색스 → 타데우스로팍 톰색스

12. 하종현배압법 아트선재2,3층→학고재1층→고양시립

13. 고요손설치조각 : 종로5가두산갤러리→용인백남준2층

14. 백남준은많이봤는데생각나는것만

부산현대미술관→세종문화회관→대전시립미술관지하수장고→소마미술관별관→키미아트까페2층→리움→MMCA과천

15. 김아영 : MMCA청주긴 방→광주아시아문화의전당 거대한 홀→도쿄 모리미술관야경룸→에르메스아뜰리에

16. 오래 전 19년 대전시립 신와유기 이이남 → 25년 전남도립 미구엘슈발리에+이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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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금융전공으로 석사까지 하고 외국계은행을 다녔다는 SNS의 이력설명을 보고 꿈과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떤 이를 특정하는 게 아니다. 경제경영을 하다가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이 꽤 있다. 우리나라에 그만큼 경제경영 전공이 많다. 설치되지 않은 대학이 없고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만 하면 잡마켓은 보장되어 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물론 모든 섹터가 포화상태다


경제경영전공한다고 부자되고 주식투자대박나는 것은 아니다. 코인부자 중엔 전혀 관련 없는 전공도 많고 인문학했다가 데이터사이언티스트 되기도 한다. 미국CEO의 영문학 전공언급까지 갈 필요도 없다.


왜 경제경영전공이 많을까 산업화가 이전 부모세대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고 잘 살고 싶은 꿈이 먹고사니즘을 해결해 줄 경제경영으로 발현된 것이다. 더불어 냉전이 끝나고 여행자유화되어 세계를 다녀보니 한국은 너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다는 자각에 유학붐 외고붐 글로벌리더붐이 일었고 글로벌화와 산업화라는 두 가지 꿈이 맞물려 국내 경제경영 학부 졸업 후 해외 경제경영 석박사 혹은 해외 경제경영 학부 유학 후 현지 기업취직 같은 트랙으로 나타났다. 아니면 한국의 외국계기업 취직이라도. 쏼라쏼라 유창한 발음으로 재무재표리딩하며 풍족하게 사는 인생. 

이전 부모세대의 꿈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가 아직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부모의 포트폴리오가 되어가는데 꿈을 실현할 기반이 없으니 부모의 리드를 따라 성장한다


자라나서 문득 돌이켜보니 부모가 설계한 루트를 따라 살아왔는데 그게 축복이자 저주임을 깨닫는다. 불가능한 일을 미리 실현해주고 레드카펫을 깔아주어 감사한 일이지만 스스로 부딪히고 실패하며 나를 알아갈 시간을 박탈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기술은 어렸을 때부터 숙련을 요한다. 한문 국악 미술 피아노 운동 언어등. 나이가 들어서 시작할 수는 있으나 배움의 감도와 속도가 다르며 인맥도 없고 해당분야 전문 커리어는 힘들다. 취미삼아 할 수는 있을지언정


한편 어렸을 때부터 한 가지 업만 해온 이들은 정해진 꿈을 따라 온 인생에 대한 회한이 있다. 다른 삶은 어땠을까. 내가 정말 내가 잘하는 이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해야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인가


무엇이 맞는 것일까

나는 사실 뮤지션이 되고 싶었는데 입시해야해서 이과를 갔고

나는 사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일단 대학을 가고 취직해 먹고 살아야해서 회계사가 되었으며

나는 사실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프로선수 라이프의 고단함에 대해 일장훈계를 받고 겁먹어 공부하다가 성적맞춰 통계학과를 갔다


이런 경우 훗날 나의 꿈을 발견하고 어째야할까


이과전공을 살려 음향학을 하거나 오디오디자인을 할 수도 아니면 비싼 티켓을 사서 공연보러 다닐 수도

갤러리 운영을 하거나 스포츠도박통계사이트를 운영할 수도 있겠다


정답은 모른다이다.

부모로서는 이랬으면 좋겠다하고 길을 닦아주었고

자식으로서는 부모의 기대에 따라 잘 부응해서 열심히 달려왔을 뿐

잘못된 것은 없다

이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길을 가면 된다


사람의 길은 너무 다양하고

인생의 어떤 시점에 무엇을 얻게 될지

어떤 루트로 어떤 만남을 하게될지

알 수 없다

그저 지나간 일을 되새겨보고

앞으로 일을 너른 마음으로 맞이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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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스플랜2 2화


어떤 이들은 예능을 예능으로 플레이를 플레이로 받아들일 수 없다


여자는 거짓말에 이를 갈고

남자는 배신에 이를 간다


여자의 이 허망한 눈

남자의 이 도끼눈은

선을 넘었다는 증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표정


"아까랑 말이 다르잖아요"는 같은데

여자는 "열 번 스무 번 아니라고 했던 사람인데 앞으로 그 사람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남자는 "욕을 먹어가며 컨셉 잡고 이기도록 도와줬는데 우리사람 다 안 챙겨준다고?"


여자는 바로 눈 앞에서 나는 진짜 아니라고 의심하지 말라고해서 그래 믿는다 너를 지목 안할거야 사실이 아니면 나랑 척진다고까지 했는데


남자는 아까 세 명 다 구해주기로 해놓고서 이제와서 말바꾼다고? 딜이 다르다는 것에

분노한다


여자에게 무릎 끓고 손들고 다시 용서를 구한다고

남자에게 원래 조건 3명 구하는 게 아니라 2명이라도 구해준다고해서

용서 되는 게 아니다


이미 말이 정직하지 아니하고

이미 협상조건을 지키지 아니함이

증명되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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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영인문학관 에디터로서 이어령전에 댕겨왔다


모름지기 전시를 가는 자는 여러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한다. 한국근현대미술 아카이빙의 투 탑은 최열과 김달진이다. 얼마 전 갔던 국현미 청주 수채화전에도 두 분으로부터 빌려온 물감소품과 자료가 있었다. 개중 김달진미술자료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가 매월 바뀌는 전시정보를 얻기 좋다.


부산투어계획 포스팅에서 부산에 이렇게 전시가 많았냐고 하던데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 한 사람이 매일 3개씩 가도 가 못 갈 만큼 전시가 많다. 마치 교보MD도 담당파트 신간을 다 못 보고 영화업계 사람도 박스오피스는 물론 영화제 영화까지 다 못 보 듯 말이다.


그러니 하나의 소스로만 얻는 정보는 완벽하지 않다. 아트가이드도 갤러리에서 얼마 광고비 지불하는 리스트만 갱신된다. 보완용 정보통은 SNS이고, 신생 갤러리와 개폐하는 전시를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조선일보 한국일보에서 정말 모를 법한 전시를 알게되는데 대표적으로 3월에 했던 선화랑의 프랑스 그룹의 AI전시가 있었다. 다른 동선으로 가는 도중 신문에 소개된 기사를 읽고 마침 근처라 바로 방향을 틀었었다


그리고 영인문학관의 이어령전시는 4월 조선일보에서 소개되어 알았다. 봄날의 따사로운 볕이 뉘엿뉘엿 벽에 빛 커튼을 드리워 참으로 아름다운 평창의 어느 오후에 방문했다


서울대 규장각의 김윤식전의 김윤식 서재도 인상깊었고 영인문학관의 이어령 서재도 마음에 감동이 있었다. 노동의 산실. 그 유명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쓴 좌식책상도, 훗날 몇 십권을 저술한 입석 테이블도 문학사상의 초기 표지화를 보면 당대 예술인들이 최신 사상과 서양화를 충분히 습득하고 소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일러스트레이터 브랜드마케터의 UX디자인과 커버이미지도 힙한 이유는 미국과 글로벌문화의 정수를 잘 습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사상은 과거의 유투브, 지식 플랫폼이다. 이 잡지로 대동단결했고 하나를 읽으며 여럿을 읽는 효과를 주었다

이문열과의 논쟁, 서울대 국문과 졸업, 박사취득, 초유명 베스트셀러 집필로 세계(특히 일본)에서 네임밸류획득으로만 멈췄다면 이어령은 잠깐 떳다 지는 샛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아이돌과 셀레브리티가 자기 팔자에 의해 반짝 빛났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듯이.


하지만 문학사상을 편집함으로써 다른 문인들을 대우하고 신인을 발굴하는 도우미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에 롱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의 롤모델이 되려면 남을 올바른 방식으로 대접해야하는 것이다. 이상문학상은 문학인의 꿈이되고 매년 지속하면서 권위가 중첩되어 몇 년만 지나도 대체불가능한 시금석이 된다. 최고는 바뀌어도 최초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된 까닭은 다른 예술가를 보필하는 역할을 잘 해왔기 때문이 아닐런지. 편집자로서 일을 하면서 얻은 인맥, 트렌드 읽는 눈, 해외커넥션 같은 부수적인 역량이 도움을 주었으리라. 마치 유재석 같은 중매인의 역할이다. 유퀴즈는 오늘날의 문학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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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다녀왔다.


오늘 안국과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사람 많다고 대기줄 100명씩이라고 연휴 마지막 날이라 아이들 너무 많다고 난리도 아닌데 나는 시간선이 다른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휴에 사람 붐붐 붐비는 곳은 다 피해 한적하게 다녔다. 감사한 일이다. 수채화전의 전시구성은 선명하다.

2천원내고 엘베타고 5층으로 올라가 QR코드 찍고 입장해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거대한 수채벽화를 보면서 석고벽의 질감과 공간감을 느껴보며 물과 물성을 운용하는 수채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과 같은 초유명화가와 1세대 수채화 거장 손일봉의 작품을 감상하며 음 아는 사람이군 이게 수채화지 하는 워밍업 색의 발현구간을 지나 실험적 추상구간에서 박서보 김기린 정영렬 등 현대작가의 대형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한지와 종이의 질감을 음미한 후 이인성 김수명 서진달 이경희의 해상도 높아지고 오브제도 많아진 중형 구상화를 감상해본다

이어 별도로 분리된 회색 공간에 진입해 한국수채화연표 코너의 근대신문부터 일제시기까지 다양한 아카이브를 읽는다. 비싼 유화대신 수채화를 많이 해야만했던 현실적인 조건을 이해해본다. 



한국수채화는 언제부터 도입되었을까?


1884년 국내 첫 근대 신문 황성신문에 영국 수정궁에서 열린 수화가 첫 언급이라고 한다

학창시절 근현대사 공부할 때는 온갖 개화기 신문이름을 외우고 사지선다에서 맞는 매칭을 고르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제 사료가 어땠는지는 대학가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정답만 중요하다고


사진에서처럼 이렇게 실제 한성순보를 보니 왜 관료들, 즉 지식인 남성의 신문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문을 모르면 읽을 수가 없다. 한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과 표현도 한문투다. 소건은 지은 바, 이철위량주는 철로서 기둥을 삼고 등등. 관객 아무도 안 읽을 거라 생각했는지 미술관에서 해석이 원문 어디에 있는지 표시 안해놔서 읽다가 찍어서 하이라이트쳐놨다.


사진의 매일신보 기사는 한자에 한글 조사가 섞여있고 이제 읽을 법해진다. 문맹률 퇴치가 시급했던 조선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한 개화파가 국한문혼용을 차선책으로 제안한 이유다


사진의 일본어에서는 지금 안 쓰는 히라가나가 보인다. 구슬같은 땀, 珠の汗같은 고어투 문학적인 표현도 종이 찢어지는 소리를 시각화한 것도 재밌다. 현대한국인도 이인직의 혈의 누를 읽으려면 전문교육을 받아야하고 현대미국인도 워싱턴과 벤자민의 글은 옛스런 표현에 익숙해져야하듯 현대일본인도 20세기 초의 문체는 다시 배워야한다


사진은 조선인에게 수화를 가르친 일본인 서양화가 이시이 하쿠테이다. 일본인은 일본음독으로 읽고 한자로 쓰고 한국인은 한자를 보고 한국음독으로 셕뎡백뎡씨라고 읽었다.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방법이다


이제 한국은 해외에서 발음나는대로 읽어준다. 친절하다. 일본은 상호주의라 받은대로 해준다. 일본이름을 읽어주면 자기도 따라 읽어주고 상대국이 자기식대로 읽으면 일본식대로 읽는다. 예컨대 우리는 시진핑. 일본은 슈킨페라고 읽는다. 습근평이라고 안한다. 중국은 모음이 적고 중국어로 모드전환을 해야해서 모든 걸 중국어로 읽기 때문에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석파무 쉬푸어마오, 마츠다 세이코를 송티엔쎵즈라고 한다




그렇게 전시장의 끝을 찍고 또 다른 벽화 문을 통과해 80년 이후 풍경화 부산항 전라도땅 그리고 누드와 초현실화풍 등을 보며 종이와 물감의 잘전에 따라 더 다양한 색감의 표현이 세밀하게 가능해졌음을 확인한다

유화와 대비되는 수채화만의 특성을 정교하게 분석해보기에 적절한 양(97점)의 전시다. 부담스럽지 않고 핵심만 포함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채화는 말 그대로 물과 종이의 운용이 관건이다. 물이 마르기 전 표면에 바른다는 단순한 행위에서 모든 미학적 특징을 도출해낼 수 있다


수채화는 한 번 번지거나 흡수된 물감을 되돌리기 어려워서 작가는 한 획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표면에 실수나 망설임마저 고스란히 남는다. 또한 유화처럼 색을 덧입히며 마티에르를 쌓기보다는 투명한 색들이 종이 위에서 겹쳐지고 번지며 섬세한 빛의 여운을 남긴다. 유화처럼 색을 올린다기보다는 색이 스며든다는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는 환경의 물의 증발 속도에 따라 예기치 않은 번짐과 마르며 생기는 얼룩과 경계선이 물의 시간을 새긴다


나아가 수채화는 캔버스 자체보다는 종이의 물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표면의 섬유결, 질감, 흡수력 등이 그림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 종이는 단순한 지지체가 아니라 이미지의 일부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가역성, 종이의 물성노출은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 안에 일종의 자연성과 우연성이 녹아 있다


또 생각나는 것은 유화보다 수채화가 수묵화에 익숙한 우리네 조상에게 정서적으로 더 와닿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생략과 암시를 시사하는 여백의 미, 일필휘지의 즉흥성, 그러한 속도감을 내기위한 오랜 숙련, 빛 중심의 조형성과 원근법이 결여된 평면성과 으스러짐과 울림마저 드러나는 종이와의 일체감. 수채화는 서양버전의 수묵화다


고로 마른 숨결 위에 물감이 스며들며 남긴 자취로서 수채화에서 물은, 색을 날카롭게 베기도 하고 서서히 번지며 감정을 퍼뜨리기도 한다. 물이 종이를 적시고 빠르지만 서서히 증발하는 짧은 찰나에 한 순간의 결심과 흔들림을 기록하고 종이는


그 모든 체험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손끝의 떨림, 붓의 멈칫, 물기의 여운까지 말이다. 그리하여 수채화는 남김의 예술이자 지우지 않음의 미학이다.


수채화는 본디 습작으로 생각되었고 유화 물감을 구비할 형편이 안되지만 예술은 하고 싶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훗날 국가와 경제의 성장, 매체와 기법의 진화에 따라 수채화의 완성도와 짜임새가 나아졌다.


이를 이해한다면 네이버 라인은 십년 전 아직 통신인프라가 구비되지 않은 베트남에 최신식 기술이 아닌 다운그레이드된 저용량 메신저로 진출했어야한다는 인사이트도 이해할 수 있게된다. 인도와 같은 신흥시장에 어포더블한 저가형 모델이 먼저 들어가야한다는 점도, 소니 워크맨의 선풍적 인기도.


모든 사람이 항상 고가의 최신식 장비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수요가 생기면 중저가 시장에 맞는 모델도 필요하다. 갖고는 싶고 하고는 싶은데 너무 비싸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적당한 것. 오히려 마진률은 좋아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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