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 다녀왔다.
오늘 안국과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사람 많다고 대기줄 100명씩이라고 연휴 마지막 날이라 아이들 너무 많다고 난리도 아닌데 나는 시간선이 다른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휴에 사람 붐붐 붐비는 곳은 다 피해 한적하게 다녔다. 감사한 일이다. 수채화전의 전시구성은 선명하다.

2천원내고 엘베타고 5층으로 올라가 QR코드 찍고 입장해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거대한 수채벽화를 보면서 석고벽의 질감과 공간감을 느껴보며 물과 물성을 운용하는 수채화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과 같은 초유명화가와 1세대 수채화 거장 손일봉의 작품을 감상하며 음 아는 사람이군 이게 수채화지 하는 워밍업 색의 발현구간을 지나 실험적 추상구간에서 박서보 김기린 정영렬 등 현대작가의 대형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한지와 종이의 질감을 음미한 후 이인성 김수명 서진달 이경희의 해상도 높아지고 오브제도 많아진 중형 구상화를 감상해본다
이어 별도로 분리된 회색 공간에 진입해 한국수채화연표 코너의 근대신문부터 일제시기까지 다양한 아카이브를 읽는다. 비싼 유화대신 수채화를 많이 해야만했던 현실적인 조건을 이해해본다.

한국수채화는 언제부터 도입되었을까?
1884년 국내 첫 근대 신문 황성신문에 영국 수정궁에서 열린 수화가 첫 언급이라고 한다
학창시절 근현대사 공부할 때는 온갖 개화기 신문이름을 외우고 사지선다에서 맞는 매칭을 고르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제 사료가 어땠는지는 대학가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 정답만 중요하다고
사진에서처럼 이렇게 실제 한성순보를 보니 왜 관료들, 즉 지식인 남성의 신문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문을 모르면 읽을 수가 없다. 한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법과 표현도 한문투다. 소건은 지은 바, 이철위량주는 철로서 기둥을 삼고 등등. 관객 아무도 안 읽을 거라 생각했는지 미술관에서 해석이 원문 어디에 있는지 표시 안해놔서 읽다가 찍어서 하이라이트쳐놨다.

사진의 매일신보 기사는 한자에 한글 조사가 섞여있고 이제 읽을 법해진다. 문맹률 퇴치가 시급했던 조선의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한 개화파가 국한문혼용을 차선책으로 제안한 이유다

사진의 일본어에서는 지금 안 쓰는 히라가나가 보인다. 구슬같은 땀, 珠の汗같은 고어투 문학적인 표현도 종이 찢어지는 소리를 시각화한 것도 재밌다. 현대한국인도 이인직의 혈의 누를 읽으려면 전문교육을 받아야하고 현대미국인도 워싱턴과 벤자민의 글은 옛스런 표현에 익숙해져야하듯 현대일본인도 20세기 초의 문체는 다시 배워야한다

사진은 조선인에게 수화를 가르친 일본인 서양화가 이시이 하쿠테이다. 일본인은 일본음독으로 읽고 한자로 쓰고 한국인은 한자를 보고 한국음독으로 셕뎡백뎡씨라고 읽었다.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방법이다

이제 한국은 해외에서 발음나는대로 읽어준다. 친절하다. 일본은 상호주의라 받은대로 해준다. 일본이름을 읽어주면 자기도 따라 읽어주고 상대국이 자기식대로 읽으면 일본식대로 읽는다. 예컨대 우리는 시진핑. 일본은 슈킨페라고 읽는다. 습근평이라고 안한다. 중국은 모음이 적고 중국어로 모드전환을 해야해서 모든 걸 중국어로 읽기 때문에 이시바 시게루 총리를 석파무 쉬푸어마오, 마츠다 세이코를 송티엔쎵즈라고 한다

그렇게 전시장의 끝을 찍고 또 다른 벽화 문을 통과해 80년 이후 풍경화 부산항 전라도땅 그리고 누드와 초현실화풍 등을 보며 종이와 물감의 잘전에 따라 더 다양한 색감의 표현이 세밀하게 가능해졌음을 확인한다
유화와 대비되는 수채화만의 특성을 정교하게 분석해보기에 적절한 양(97점)의 전시다. 부담스럽지 않고 핵심만 포함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채화는 말 그대로 물과 종이의 운용이 관건이다. 물이 마르기 전 표면에 바른다는 단순한 행위에서 모든 미학적 특징을 도출해낼 수 있다
수채화는 한 번 번지거나 흡수된 물감을 되돌리기 어려워서 작가는 한 획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표면에 실수나 망설임마저 고스란히 남는다. 또한 유화처럼 색을 덧입히며 마티에르를 쌓기보다는 투명한 색들이 종이 위에서 겹쳐지고 번지며 섬세한 빛의 여운을 남긴다. 유화처럼 색을 올린다기보다는 색이 스며든다는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는 환경의 물의 증발 속도에 따라 예기치 않은 번짐과 마르며 생기는 얼룩과 경계선이 물의 시간을 새긴다

나아가 수채화는 캔버스 자체보다는 종이의 물성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표면의 섬유결, 질감, 흡수력 등이 그림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 종이는 단순한 지지체가 아니라 이미지의 일부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가역성, 종이의 물성노출은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며 그 안에 일종의 자연성과 우연성이 녹아 있다
또 생각나는 것은 유화보다 수채화가 수묵화에 익숙한 우리네 조상에게 정서적으로 더 와닿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생략과 암시를 시사하는 여백의 미, 일필휘지의 즉흥성, 그러한 속도감을 내기위한 오랜 숙련, 빛 중심의 조형성과 원근법이 결여된 평면성과 으스러짐과 울림마저 드러나는 종이와의 일체감. 수채화는 서양버전의 수묵화다
고로 마른 숨결 위에 물감이 스며들며 남긴 자취로서 수채화에서 물은, 색을 날카롭게 베기도 하고 서서히 번지며 감정을 퍼뜨리기도 한다. 물이 종이를 적시고 빠르지만 서서히 증발하는 짧은 찰나에 한 순간의 결심과 흔들림을 기록하고 종이는
그 모든 체험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손끝의 떨림, 붓의 멈칫, 물기의 여운까지 말이다. 그리하여 수채화는 남김의 예술이자 지우지 않음의 미학이다.
수채화는 본디 습작으로 생각되었고 유화 물감을 구비할 형편이 안되지만 예술은 하고 싶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훗날 국가와 경제의 성장, 매체와 기법의 진화에 따라 수채화의 완성도와 짜임새가 나아졌다.
이를 이해한다면 네이버 라인은 십년 전 아직 통신인프라가 구비되지 않은 베트남에 최신식 기술이 아닌 다운그레이드된 저용량 메신저로 진출했어야한다는 인사이트도 이해할 수 있게된다. 인도와 같은 신흥시장에 어포더블한 저가형 모델이 먼저 들어가야한다는 점도, 소니 워크맨의 선풍적 인기도.
모든 사람이 항상 고가의 최신식 장비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수요가 생기면 중저가 시장에 맞는 모델도 필요하다. 갖고는 싶고 하고는 싶은데 너무 비싸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적당한 것. 오히려 마진률은 좋아 이득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