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우울증 - 역사를 바꾼 유머와 우울
조슈아 울프 솅크 지음, 이종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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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울증은 의욕저하로 인한 상실로 인지체계의 불안정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의 불규칙을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흔히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생기는 양극 우울증 즉, 무드스윙장애상태가 일반적이나 나이대별 발병 시기에 따라 우울증의 상태도 다르게 발현된다. 이처럼 우울증은 일반적인 정신상태의 원활한 감정조절이 힘든 다분히 침잠된 형태로 나타난다 하겠다.

 


이러한 우울증이 미국인의 신화적 지도자 애브리엄 링컨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겸손과 강직한 삶으로 강단의 의지를 보여 준 링컨의 일생에 우울증이 끈질기게 괴롭히고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다는 주장이 제대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이 책 <링컨의 우울증>의 저자 조슈아 울프 셍크는 전통 현대 심리학의 시선으로 링컨이 남긴 업적을 중심으로 신랄하게 실험의 대상으로 플라즈마의 도마 위에 올렸다.

 


저자는 링컨의 우울증의 유발원인을 통해 삶을 지배당한 멜랑콜리의 근원과 극복과정을 통찰하고 현대인의 우울증 극복방안을 제시하고자 시도하였다. 실제 2007년도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차지하였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할 만큼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정신질환이지만 사회적 요인에 의한 압력 즉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우울증은 단순하게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치부하기에는 파국효과가 대단함은 알 수 있다.

 


링컨은 20대 초반 우울증의 초기증상인 단극우울증에 노출되었다. 그의 우울증의 시발은 생물학적 기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증상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 진 절망적인 우울상태를 지속시켰으며 유년기 시절 받은 트라우마인 정신적 상흔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링컨에게 보인 1차 우울증의 발현은 적절한 대응책과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표출하였다. 그의 친한 지인 조슈아 스피드 또한 링컨과 유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당시 미국사회는 우울증에 대한 경계를 양면성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링컨은 현재의 관점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우울증을 앓은 불안한 정신장애를 앓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저자가 링컨의 우울증이 통상의 환자들과 다른 극복과정을 살핀 것은 링컨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극복방법이기 때문이다. 링컨은 상당시간을 침울하고 비통한 멍한 상태로 그만의 동굴을 만들고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하기는 하였으나 그가 가진 유머의 기질이 대중들에게 뿜어져 나오면 아우라는 실로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이런 링컨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인으로서의 신화적 삶을 산 링컨의 단면에 다르지 않다.

 


당시 미국사회는 남북으로 갈라진 노예제도의 운영에 휘그당과 민주당의 갈등이 극한에 다 다른 상태에 있었다. 통상 알려진 바와 같이 링컨은 노예제도의 위해성과 인간 존엄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미국 수정헌법과 대치되는 것으로- 상당수 보수주의자들과 대립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지만 링컨 또한 정치인의 전형적인 외양을 갖춘 인물이었기에 노예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링컨의 전기를 집필한 시기가 동시대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아 불리한 것은 은폐하고 유리한 시각으로 몰아갔음을 지적한다.

 

링컨이 사망한지 올해로 200년째를 맞이하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미국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하는 애브리엄 링컨의 위대한 삶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흠집 내기라도 하듯 우울증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수면위로 끌어 올린 저자의 담론과 통찰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더불어 전통적인 프로이트의 이론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기반으로 무의식세계와 의식세계와의 충돌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역사 속에 스며든 링컨의 흔적을 되돌린 것은 신선한 시각적 교류라 하겠다.

 


이렇듯 이 책의 저자가 밟아 간 링컨의 행적은 바쁜 현대인의 현재에 대입하여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급변하는 변화의 중심에 정서적 충격이 심각한 상흔을 남기는 것에는 우울증이라는 요소가 똬리를 틀고 있다. 우울증은 증오나 분노로 내면적 불안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임을 떠올려 볼 때 링컨의 철저한 관리와 통찰을 통해 극단의 삶을 조절할 수 있는 모범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심리학에 기반을 둔 링컨의 이면이 우리에게 다른 링컨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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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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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치열한 경쟁의 전장에서 숨 돌릴 틈 없이 앞만 보고 살아 온 사람이 한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참담하기 이를 때 없음은 분명하다. 경쟁사회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 피비린내 나는 악취를 풍기는 전쟁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현실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나아가는 것만이 살길이자 미덕이 지배하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쌓은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일말의 재고의 여지도 없이 가차 없이 제거되는 세태는 섬뜩하기만 한 불안한 현실이다.


더욱 우리를 움츠려 들고 자괴감으로 몰고 가는 현실은 안정이 없다는 미래이다. 현재를 위한 치열한 도전과 열정이 기업의 비겁한 생리에 따라 움직이는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현실은 더욱 비참하게 한다. 게다가 이미 타성에 젖어 있는 자신을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더없이 힘든 일이다.


하지만 환경은 스스로 체득하는 의지와 신념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이 책 <땡큐! 스타벅스>의 저자 마이클 게이츠 길은 내로라하는 광고업계의 선두지휘자로 주름잡던, 한마디로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열정과 정열을 모두 쏟아 부을 만큼 전도유망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의 암울한 현실이다. 이러한 탐욕스럽고 냉혹한 기업 구조에 따라 주류사회에서 밀려나는 불운을 맞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흘러간다.


그에게 찾아 든 막막한 현실이 불운의 그림자를 깊게 드리웠지만 그는 긍정이라는 신명나는 에너지로 습관처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부적절한 행위로 결혼생활마저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인식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과 만났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64세의 신체적 정신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의연히 다시금 재기하였다.


우리가 사는 경제사회는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전인격을 부여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경제적 성취와 사회적 성공이 그 사람의 지위를 대변하는 가늠좌로 판단하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지식산업의 자리매김이 노동집약산업보다 우위에 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서열을 만들고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게끔 종용한다. 이러한 판단의 합리적인 기준이나 근거가 논리 명확함에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내면의 본질보다 드러난 외면의 형식으로만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가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동안 배운 것은 다름 아닌 다양성과 상호존중이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목표이자 방향이다. 이러한 목표의식에 배려와 존중이라는 여유가 끼어들기에는 자리가 비좁은지도 모른다. 오히려 능력이나 성과가 뒤처지는 결과에 오로지 책임만을 물을 뿐이다. 나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라는 등식은 성립하기는 하나 여기서 나는 대체되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성공일변도로 기업의 문화가 바뀌는 상황에서 스타벅스를 추켜세우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스타벅스가 잘나가는 기업이고 성공의 아이콘이기에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경쟁기업과 차별화를 시도하기 위해서 저자가 성공을 회고한 더 더욱 아니다. 차라리 사람 냄새가 가득 인간미 물씬 풍기는 갓 볶은 커피향 처럼 신뢰와 존중이 깔린 이면을 보여주고자 하였음이며 그러한 환경이 우리가 갈망하는 일하고 싶은 의미에 다름 아닐까 싶다. 그 속에 깃든 기업문화의 저력이 큰 동력이자 차이점이며 내심 부럽기 까지 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르침은 자폭하다시피 추락당한 한 인간의 인생 역전의 재기과정을 되새기자 함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그것에 숨은 속 깊은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는 것에도 있다 하겠다. 삶의 다양성과 성공집착에서 벗어나 상호존중을 토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말이다. 또한 과거의 허상에만 사로잡혀 인생을 망치기보다는 건전한 미래를 떠올리고 삶의 방향성을 잡는 것에 있다 하겠다.


이제 사회는 승자에 관용적인 미덕이 지배하던 이념에서 포용하는 겸양과 미덕의 사회로 이행해야 한다. 능력에 따라 서열이 좌우되는 것이 반드시 옳지 만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능력에 앞서 인격적 도량과 바른 기운이 충실한 건강한 구조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위에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발전하는 것이 시급한 현실이 아닐까 한다. 어찌 보면 감상적인 희망에 젖어 주절거리는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없이는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저자는 인생의 파고와 역정을 모두 겪은 뒤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의 기회와 전환점을 찾아 슬기롭게 대처하였다. 더불어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비뚤어진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며 가슴으로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었다. 인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앞만 보고 위에서 군림하는 정상에만 있을 수는 없다. 관성에 젖어 무한 권력을 쥐락펴락할 것 같은 사람도 허무하게 사라지는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지당한 이치이다. 그러한 무수한 변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그가 일궈낸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배워야할 바로 그것이다.


과거는 짧게, 미래는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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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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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책 읽어 주는 미하엘이라면 어떤 선택으로 운명의 여신에게 몸을 내맡겼을까? 미하엘이 두려워하고 회피하려 했던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제도적 관습에서 일탈한 사랑 그것도 아니면 제국주의 그늘에 얼룩진 연정의 어두운 과거의 망령. 미하엘을 통해 바라 본 세상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는 연약한 모습 그대로이다. 진정으로 안나의 행위에 대해 낙인을 찍고 분연히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그녀 또한 복종할 수밖에 없는 명령에 의해 자유의지를 상실하였다면 말이다.


이 책 <더 리더; 책 읽어 주는 남자>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파격적인 사랑과 대중의 자기 기만적인 심리를 섬세하고도 담백하게 터치한 풍경화 같은 글이다.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독일의 유명한 <양철북>의 작가 권터 글라스 이후 주목받는 인물로 전후세대간 갈등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여 독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자분자분 미하엘을 따라 가는 이야기구조는 적절한 완급조절과 숨고르기가 매력적인 책이다. 더불어 파격적인 성애의 표현은 은밀히 감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호기심 저편 너머로 들여다 본 미하엘의 낯선 경험은 설익은 남자아이의 성적 쾌락의 충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사랑에 담긴 감미로운 숨겨진 맛이 흥미롭게 한다.


이 책은 숨 막히는 대결구조나 절정의 극한 대립상황이 없음에도 한동안 먹먹한 상태가 지속되게 한다. 잘 된 책은 어색함이 없다. 저자의 감정의 끝선과 교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감정이입을 통해 상황적 모순이 자의식을 구속하고 동조하게 하는 행위의 책임은 고찰하게 만드는 힘이 드러난다.


미하엘이 안나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나이를 뛰어넘는 연정을 통한 번민과 집착의 과정은 통념의 상식을 지우게 하기에 제격이다. 그들의 어색한 교감이 실사 그대로 재현되는 상황에 다양한 상념이 교차점은 애간장 졸이게 만들게 한다. 책을 통해 매개된 그들의 행위는 속세의 부정과는 유리된 진실로 긴밀한 연정 상태를 형성하고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아슬아슬 위험한 외줄타기 같은 행위는 책을 통해 연결되고 그들을 감싸고도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대기는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서서히 빠져 드는 책을 읽고 듣는 밀착된 관계는 서로에게 도피와 안정을 주고 부정한 심리상태가 인정으로 바뀌는 관찰을 공유한다. 뒤이어 찾아든 안나의 부재와 실종이 미하엘의 삶의 방향을 틀어 버리게 하고 공허감에 깃든 주변인으로 맴돌게 하지만 결국 운명의 장난은 풀리지 않은 관계를 매듭짓는 것으로 전개된다.


갑작스런 안나의 실종은 미하엘의 대학 재학 시절 법정에서 조우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 간수로 근무하며 학살의 한 가운데 있었던 엄청난 비밀이 드러나면서 일순간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긴장관계가 조성된다. 미하엘은 15세 소년을 통해 보았던 36세의 여인의 모습과 현실에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현기증이 인다.


단죄를 받기 위해 결연한 모습으로 의연히 대처하는 안나와 그녀를 주동자로 몰고 가는 동조세력간의 군중심리묘사는 이 책의 압권이자 백미이다. 미카엘이 안나를 올가미에서 풀어 주는 실마리를 쥔 키 메이커임에도 나아갈지를 망설이는 대목은 자아 고찰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작위와 부작위의 끊임없는 갈등은 두려움이 유발한 자기 도피이다. 행위를 실행에 옮김으로서 감내하여야 할 현실적 중압감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안나를 주홍글씨로 몰아간 군중심리의 메커니즘 역시 통합하지 못하는 세대 간 갈등의 양상을 띤다 하겠다.


이처럼 이야기 속에 드러난 표면과 달리 은밀한 관계로부터 형성된 자기관찰 상황은 일정한 궤적을 통과해 전체를 파고드는 지배적 상태로 표출된다. 안나가 군중심리에 의해 희생당하게 된 것 또한 증오와 위선의 집단적 행동이자 무의식적 자기 합리화의 표현이다. 유발한 책임의 떠넘기기 상황으로 치닫는 구조는 통합하지 못한 시대적 아픔을 반영한다. 이야기를 관통한 심리적 추적과 관찰은 자기성찰에서 오는 내면적 결핍상태의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규범의 틀은 자유와 책임을 양분한다. 명령에 의해 자유의지를 상실 유린당한 상태에서 원칙에 입각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피동적 행위의 책임을 위법의 논리로 단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일이다. 야만적이고 파괴적 상황이 위험한 상태의 행위임은 분명하나 유기한 책임을 전적으로 기계에 불과하였던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개운치 않게 한다.


악마의 달콤한 유혹처럼 나치즘을 촉발하고 망령과 광기로 물들었던 세대의 책임과 안주하고 회피하며 부인한 부작위로 일관한 자들의 책임을 지켜보는 이후 세대의 시각은 동일 선상에 열과 대오를 맞춘 집단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인식한다. 미카엘의 안나에 대한 의도적 방관과 유기상황은 집단과 개인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다를 것 하나 없어 보인다.


전쟁의 광기는 보이지 않던 진실한 인간의 이면을 그대로 투영한다. 상황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는 행위의 가치가 변화하는 상황과 불합리한 심리적 태도는 사회를 통합하는 장애요인이 된다. 우리에게 이처럼 기만적인 상황을 대처하는 규범과 장치가 없다면 무엇으로 타자를 판단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까? 자칫 군중심리에 이끌려 행위책임에만 국한시킨다면 실체적 진실을 판단치 못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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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기술 -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뱅의 미움과 용서의 올바른 사용법
가브리엘 뤼뱅 지음, 권지현 옮김 / 알마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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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든 분노든 나와 무관한 사람과 연관을 맺기는 참으로 힘들다. 증오의 대상이 한정적이고 지엽적인 것은 관계의 한정에서 오는 것일 게다. 그러니 증오가 애증이 얽힌 형태이다 보니 드러나는 것 외에도 내상을 입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가슴 깊이 침전되어 가라 앉아 있기 때문에 잊고 지내며 용서했다고 생각하는 착각으로 산다.




이 책 <증오의 기술>은 프랑스의 심리학자 가브리엘 뤼벵이 임상실험을 통해 상담한 사례들을 모아 증오의 개념을 고찰하였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증오의 막연함을 대상의 구체화를 통해 증오의 상대와의 관계로부터 피해자가 달라 질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외면 받거나 크게 실망한 경우, 용서의 과정을 거치기 전 우리는 증오나 분노의 감정을 거치게 된다. 감정조절과 자기 통제가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결국 증오의 피해자는 나 자신이 되었던 기억을 안다. 이렇게 증오의 상대방이 인지를 하던 하지 않던 관계에서 발생한 증오의 침전물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무서운 외상을 남긴다.




저자는 증오의 피해자를 감정의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분류하였다. 첫 번째 유형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사랑을 주었을 사람이 고통을 준 경우는 가해자의 책임이 백퍼센트이다. 두 번째 유형은 가해자가 고의가 아니거나 무의식적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을 준 경우로 책임이 일정부분 전가된 경우다. 마지막 유형은 무고한 가해자로 대상의 부재이다.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나 증오의 책임은 오롯이 피해자가 전적으로 넘겨받는다.




이처럼 증오는 피해자로 하여금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남기고 무의식의 영역에 흔적을 남기고 성장하게 한다. 어린 시절 겪은 상처 ,즉 트라우마는 정상의 심리상태를 보이지 않으며 관계 부적응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피해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며 심리적 이완이 충돌하는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실제 우리가 정신분열이라는 대상은 정신적 충격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대개 증오를 유발하게 하여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이 나와는 무관한 상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증오의 대상이 일종의 믿음과 신뢰에서 발현된다는 저자의 시각이 정확하다는 것은 우리 또한 심리적 상흔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책의 사례에 등장하는 피해자와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바라 볼 수는 없으나 우리의 현실세계에서 파생된 모순적 현실의 분출에 다르지 않다. 결국 증오는 상대방을 지목한 자신의 학대, 마조히즘이라 할 것이다.




믿음과 환상이나 망상에는 아주 근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 가지 모두 외부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욕망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p-224)




증오가 좋지 못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적절한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증오의 기술이 절실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겠다. 사랑을 바닥에 깔고 있는 애증의 형태 또한 증오이다. 이처럼 증오가 막연히 상대방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경계해야 됨은 물론이다.




이 책에서 보여 준 정신적 외상을 입은 피해자들의 모습을 정신이상자로 몰고 가기에는 감추고 덮어 버린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소아 성애자와 같은 가족을 둔 경우나 부모의 부정으로 영향을 받은 경우가 흔치 않은 사례이다. 분명 희박한 사례로 정상의 심리상태를 가진 사람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나 알고 보면 조금씩은 그 경계의 둘레를 밟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듯 저자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이론을 실제의 사례를 통해 담은 이야기는 사뭇 흥미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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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불황을 넘어서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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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들어서 산업화의 가속도는 가일층 빨라졌다. 점차적으로 좁혀지는 세계무대의 간격은 경제무대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켰으며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다극화와 전면화로 치닫는 계기는 경제발전의 속도와 평준화에서 찾을 수 있겠다.


앨빈 토플러.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미래학자로 추앙받는 살아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저서 <불황을 넘어서>는 1972년에 출판되었다. 당시 수많은 석학들의 찬사와 격찬을 한 몸에 받으며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불투명한 미래 사회를 전망하기 위한 지침서로 활용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이 책이 아직도 뜨거운 주목을 받고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전망이 30년 뒤인 현재에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을 암흑의 구덩이로 몰고 간 경제대공황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였다. 달러화에 연동하여 움직이던 경제시스템은 고정환율제도의 한계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후 미국은 강력한 경제성장정책인 마셜플랜으로 기사회생하였으나 당시의 악몽은 여전히 앙금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간 경제대공황의 모델로 미래를 예측한 그의 논리는 선견지명을 넘어 마치 미래를 옮겨 놓은 듯 정확하다. 경제, 법률, 환경,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예측은 통찰의 범주를 전체적이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불황의 파고를 넘을 경제시나리오를 고찰하고 그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짚은 그의 논점은 탁월함 그 자체다.


경제의 발전은 산업사회와 달리 속도감과 다양성이 최대의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케인즈 식 경제모델로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봉착하게 하였으며 첨단통신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하였다. 따라서 더 이상 지역 간, 국가 간의 경계는 무의미하게 되었으며 허물어진 틈사이로 다국적 기업의 출현은 배타적 행태로 야기되었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출현과 산업화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이전은 사회의 생태적인 모습 또한 탈바꿈하여 기존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감퇴하고 지식노동사회로 변모하였다. 블루칼라계층의 감소는 노동실업을 증가하며 연기금의 고갈로 정부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경제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다. 소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요인으로 악순환의 미궁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또한 불안한 달러화폐의 불건전성은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로 채택하게 되었으며 유로달러의 사용을 허용하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금융환경은 더욱 세분화되고 수많은 파생상품의 출현으로 레버리지에 의한 거품경제를 유도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더욱이 중동오일달러의 압력은 석유카르텔을 형성하고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며 대체에너지개발의 모티브를 제공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화석화 연료의 무분별한 사용은 환경오염의 문제를 야기 시키고 이전보다 더워진 지구의 환경은 식량문제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확량의 감축은 국가 간 갈등상황으로 내달렸다.


지금까지 살펴 본 상황은 저자가 예측한 미래 즉 현재의 세계경제이다. 어느 것 하나 잘못되었거나 빗나간 것이 없을 정도로 일치된 의견을 보인다. 미국 발 글로벌 경제위기는 동반추락의 재앙을 유발하였으며 배타적인 관념이 지배하는 경제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자국 내 보호 장벽에 대한 암묵적인 허용으로 숨 쉬기 조차 곤란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 나라들은 여념이 없다.


저자가 예측한 모델의 핵심은 기존 경제관념의 허무와 경제속도에 있다. 후생경제를 비롯하여 사회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변수를 포함한 행동에 의한 경제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제시한다. 더불어 에코스패즘으로 발생한 문제에 선제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여 통제 가능한 범위내로 편입시키고 다국적 기업에 대한 제어와 집중으로 경제주체를 회복할 것을 권고한다.


따라서 저자가 짚은 미래사회의 문제는 다양성의 인정과 유연한 대처에 있다. 탄력적인 근무환경의 조성과 대체에너지의 개발은 수요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국지적인 갈등을 종식시키는 대처방안이 된다. 하물며 미래 사회로의 전망이 비관적이고 불투명하다 할지라도 오만과 탐욕을 경계한다면 지금의 불안은 점차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토플러의 예지력은 금세기를 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돌파구로 사용될지 모르겠다. 미래학자인 벅민스터 플러가 주장한 협력과 공생의 관념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하겠다. 배타적이고 교만한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의 반복된 실수를 자인하고 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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