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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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파트, 대한민국 사람치고 아파트와 얽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더라도 어떤 목적이든지 간에 아파트와 관련한 일화 한 토막은 누구든 쉽사리 읊조린다. 아파트로 인해 계층이 나뉘고 심지어 전인격마저 부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원래 그것이 가진 본연의 목적인 주거의 기능은 희석되고 오로지 교환가치로서의 기능이 우위를 차지한 해괴망측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 <아파트에 미치다>의 저자 전상인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찰과 더불어 환경적 담론에 대해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아 펴냈다. 아파트에 얽힌 사회공동체적 특성을 이해하고 분석을 통해 아파트가 품은 이데올로기를 현대 사회의 주류적 가치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한 탁월한 감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아파트의 기능적 요인을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채워 넣었다.

 


책은 아파트의 기원인 건축사적 기원을 소개로 아파트가 한국사회에 고착화되고 현재의 그것으로 재편되기까지의 연대기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아파트가 진화하기 시작한 시점을 박정희정권을 즈음으로 보고 있다. 국가산업발전계획에 의거하여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과 주거안정의 목적아래 주택공사에서 보급하기 시작한 공동주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파트의 촉발제가 되었음을 말한다.

 


이를 통해 처음 소개된 아파트는 전통적인 한옥구조에 익숙한 우리의 정서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구조와는 이질감으로 인해 별반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 하지만 경제개발에 의한 산업화 시대로의 이행은 전형적인 가족구조를 허물고 핵가족화 및 개인주의가 보다 강화되는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며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구조의 산업화, 정보화시대로의 이행이 아파트에 대한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생성하게 하고 골목문화를 퇴보시키며 폐쇄적인 개인가치에 중점을 두는 공동체관을 형성하는 기저로 파악하였다. 분명 저자가 짚은 아파트가 가진 외형적 편리보다 내면적 변형은 더 큰 왜곡현상을 도출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요세공동체의 형성과 같은 환경적 변화에서 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 있다. 실제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기 시작한 기저에는 경제적 함수관계가 치밀하게 깔려 있다. 아파트 건설로 인한 경제성장유발효과는 엄청난 잠재가치를 촉발시키고 경제의 흐름을 순탄하게 이어주는 효자산업으로의 역할을 하는 것에 있음은 정부로서는 묵과하지 못할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적 유발효과 외에도 점차로 아파트 자체가 개인의 부를 측정하고 투자가치로서의 기능을 매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에도 우리가 아파트에 미치게 하는 근원적인 요인이 깃들어 있다. 초고층 아파트에 평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는 세태는 계층 간 주거형태의 동질성이 주는 한계에서 저자는 이유를 찾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 편중현상은 계층 간 양극화의 조장과 구성원 간 갈등을 조장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음은 암울한 자화상이다. 저자는 아파트에 대한 단조로운 시각을 접고 입체적인 변화를 통해 서구와 같은 오랜 기간 숙성된 고급주거문화의 사회적 용인을 기대하고 있다. 계층 간 이동이 유연하고 기회의 균점으로 누구든 진입이 자유로운 환경에 주안점을 두고 역설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파트가 사회학적으로 여권을 신장하는 계기로 보았다는 점에 있다. 아파트의 수평적인 구조는 전통의 가옥구조의 수직적 구조를 붕괴하고 신체가구의 발달은 여성의 대중적 권력을 쟁취하는 권리신장의 계기로 보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참여가 전방위적인 영역으로 확대 이행하는 것에 아파트와의 연관성을 연결시켜 이해한 시도는 독특한 시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중산층 계층을 형성하는 일등공신으로 여성의 힘, 특히 미시의 권력이 지대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분명 아파트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근원이 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60%가 40평형대의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한다. 드러내지 않은 속내는 암묵적 합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로자 임금으로 17년을 전부 모아도 집 장만 못한다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다. 21세기 신유목민시대가 멀지 않았음은 예고하는 불우한 미래의 모습이다.


저자가 제시한 주거문화의 개혁은 미봉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파트에 대한 투기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년계층의 실업난 해소와 과잉 부담을 유발하는 주거문제로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근원적인 해결은 고사하고 또 다른 불평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대한 거품은 당분간은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적인 요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아파트에 대한 집착과 수요는 새로운 대체제의 등장과 구미에 맞는 반대급부가 있지 않는 이상 요원한 일로 비친다. 그렇다면 아파트에 대한 획일화된 방식의 개발보다 다양한 건축방식 및 임대방식의 도입으로 접근의 패러다임을 변화하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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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 아이디어뱅크 홍사종의 스토리 마케팅
홍사종 지음 / 새빛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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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세상을 지배한다. 멋들어진 이야기 한 자락에 울고 웃는 현실을 직시하더라도 결코 허언이 아니다. 얼마 전 서점가에 엄마열풍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의 성공은 감성코드를 자극한 좋은 사례라 하겠다. 메마른 세태에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의 되돌아보기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눈물을 쏙 빼는 엄마라는 주제로 잊어버린 원형질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인간 본성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하기에 제격이었기에 이토록 화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 홍사종은 문화혁명의 개척자로 움직이는 아이디어뱅크라고 불리 운다. 그가 역설하는 이야기시대는 문화, 경제, 사회, 정치 등 각 영역을 아우르는 공통의 헤게모니로 메가톤급의 파급효과를 촉발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제는 정보화시대를 넘어 이야기가 세상을 주름잡는 시대가 왔음을 천명한다.


우리는 조앤 롤링의 소설 ⟪헤리포터 시리즈⟫에 열광하고 헐리우드무비에 일희일비한 문화적 왜곡현상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디즈니가 생산해 내는 편향적 문화구조의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지고 고유의 자의식마저 그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그들이 창작해 낸 이야기는 완성도나 흥행 면에서 보더라도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저자가 목도하고 경험한 이야기의 파급효과는 문화선진국이 체계적 과정과 절차를 거쳐 세계무대를 장악한 창의성을 살린 맨 파워에 있다. 잘 된 이야기를 발굴하고 재목을 길러 우리식의 환경을 조성할 것을 제시한다. 고객의 구미에 맞고 소위 트렌드를 흡수하는 안목을 기르고 마케팅과 접목한다면 트라이앵글처럼 딱 들어맞을 것이라 조언한다.


실제 무미건조한 제품이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더해 녹아들면 파생되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자의 이야기에 내재된 가치가 주지한 바와 같이 파급효과, 생산유발효과, 경제연계효과 등을 고려한다면 기술집약산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경제력 상승효과는 더 큼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이야기의 창발성과 문화중심의 담론을 시종일관 부르짖고 있지는 않다.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해 저자의 깊이 있는 고민과 흔적을 다분히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화적 편중현상의 원인에 대해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총체적인 통찰을 시도하였다.


입장료가 50만원을 호가하는 오페라를 관람하지 않았다면 문화열등생으로 인식되고 대중음악이 아닌 전통음악이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해 격식을 낮추는 것은 저급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상호작용이 결여된 보수주의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고에 지나지 않음을 일갈한다.



우리 사회는 경제발전의 승패에만 치중한 경향이 강하다.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하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삶을 살아왔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이는 전후세대를 필두로 하여 세대 간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과도한 경제발전의 이데올로기에 부쳐 승자독식주의 관용적 미덕과 부의 양극화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소통과 양보의 부재는 문화적 변질현상으로 창의성을 말살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초야에 묻히게 하는 기현상을 도출하였음을 말한다. 문화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 들불처럼 번진 인맥, 학맥, 지연 등의 일그러진 잣대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러하기에 저자가 경제개발의 얼룩으로 물든 우리 사회를 이야기의 감성코드로 치유코자한 시도는 단연 돋보임을 알게 한다. 우리 사회가 불안정한 미래 사회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기준점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와 같은 실로 고마운 글이라 하겠다.


저자가 담은 사회전반의 현상과 문젯거리는 충분히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선하려는 의지보다 안주하려는 마음이 더 컸음은 비굴함이 아니고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재담 넘치는 저자의 올곧은 생각과 포용력 넘치는 이야기에 귀담아 들여야 할 이유가 넘쳐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함께 풀어가야 할 우리의 문제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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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사이언스 Brain Science - 뇌를 어떻게 발달시킬까
정갑수 지음 / 열린과학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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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IQ)가 높으면 똑똑할까? 뇌의 크기가 가벼운 여자의 뇌가 남자보다 지능이 떨어질까? 인간의 자유의지는 제어할 수 있을까? 뇌가 크면 머리가 똑똑할까? 우리에게 알려진 뇌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이다. 의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다. 통상 알려진 뇌에 대한 잘못 알려진 편견에서 비롯된 선입견의 일환이다. 뇌에 대한 물리적, 단편적, 피상적인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라 말한다.




이 책 <뇌를 어떻게 발달시킬까>의 저자 정갑수는 뇌에 대한 궁금증과 두꺼운 베일에 싸인 비밀의 영역을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뇌에 기능적 특성과 구조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여 부담 없이 다가온다. 더불어 뇌의 중요한 부위에 대한 현상세계에 대한 실제 연결로 이어져 이해를 빠르게 한다.




뇌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무궁무진하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영역의 최선두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뇌에 대한 이해와 지배는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영역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찰한다면 이 책은 지식의 전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다 하겠다.




누구나 단기기억상실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방금 전화를 걸기위해 메모된 숫자를 인식하고 버튼을 누르는 동안 잊어버리는 것은 기억의 저장방법의 다름에서 연유한다. 통상 기억은 의미기억과 일상기억으로 나뉘어 지는데 순간의 단편적인 기억은 의미기억으로 이해되며 반복되어 실행되는 기록은 편도체를 통해 해마라는 영역에 저장되는 것으로 대뇌피질의 한부분인 전두엽이 담당하기 때문이다.




대개 인간의 뇌를 무한의 컴퓨터로 비유하곤 한다. 러시아의 유명한 체스영웅 카스파로프와 슈퍼컴퓨터와의 대결은 인간의 능력이 무한함을 대변한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뇌의 10%밖에 사용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뇌의 연관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틀린 답이라 한다. 단지 창의적인 영역인 특정부위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 리졸라티 교수는 원숭이의 어떤 행동을 통해 전두엽의 특정한 뉴런이 활성화 되는 소위 ‘거울뉴런’을 발견해 내었다. 거울뉴런은 상황적 유사성을 설명하고 감정이입현상, 모방을 통한 학습이나 창조에도 관여함으로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이다. 거울뉴런을 구체적으로 연구하여 체득한다면 기술습득이나 학습의 개선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뇌를 충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 수면은 하루 동안 기억한 내용을 분류하고 삭제하고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일을 하며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의 분비로 생체방어기제를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잠이 부족한 다음날 피부가 칙칙하고 꺼칠하게 보이는 것은 멜라토닌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또한 뇌에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스트레스는 활성산소를 증가시켜 리듬을 깨트리고 코르티졸을 분비하여 감정의 긴장상태를 흩트리게 한다. 뇌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가공할만한 위력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고, 맛보는 모든 감각기관의 최종에 뇌가 관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피하는 긍정적 사고와 천연마약인 엔돌핀을 돌게 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되새긴다.




그렇다면 뇌를 어떻게 발달시킬 수 있을까? 뇌는 평생 동안 자극과 경험에 의해 변화가 가능하며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 스스로 좋은 환경을 만들고 외부 자극에 대한 유연성과 긍정에너지를 유지한다면 좌뇌와 우뇌의 장점을 골고루 발달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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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과학과 사회 1
피에르 주아네베로니크 나움 그라프 외 13인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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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애정과 본능의 감정과 정비례한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성적인 교합을 통해 임신을 하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인류적 진실의 소치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나 가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진 불임부부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가의 원인은 사회구조적 변화와 환경적 영향에서 찾는다.




다행스럽게도 의학의 발전은 더 이상 불임의 영역을 자연의 상태로 방치하지 않는다. 의학의 발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종의 헤라클레스의 도전인 셈이다. 시험관 아기를 통한 정상적인 임신과정의 한 부분을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제3자의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 부모와의 완전한 단절로부터의 접근으로 불임부부에게는 메시아로 이해된다.




이 책 <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의학의 발전이 사회 통념상 자리 잡은 기존의 인문학적 접근과 과학의 출현으로 인한 새로운 접근을 통합적으로 시도하여 가족에 대한 정의와 성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담론을 스케치하고 있다. 프랑스 유수의 신경정신과 의사를 필두로 정신분석학자, 인류학자,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존의 가치체계를 흔드는 작업을 일관된 알고리즘으로 연결시키려 하였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활동은 출산의 시기를 늦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개인의 능력발휘와 정체성의 표현은 사회적 교류로 대변된다. 사회적 인식은 여성에 대한 자리 매김에 건조함 일색이다. 여성의 자연스런 출산에 따른 부대조건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경제활동의 지속여부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 사실이며 출산은 여성과 관련된 지극히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지배적 현상이다.




이러한 출산의 저하는 기존의 가족관계를 서서히 변모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공저자들의 인식을 관통하는 공통의 담론은 기존 가치체계의 변화에 있다. 변화의 시발점에는 첨단기술사회로의 이전이 일차적 이유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성 정체성은 더 이상 굳건한 짜임의 틀로 받아들이기는 힘듦을 말한다. 이로써 기존의 관습과 인식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중대한 문화적 침투현상의 표현인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의 출현과 아이와의 관계의 정의는 반드시 논의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프랑스의 진보적인 문화적 인식이 우리보다 빠르게 동성애자와 앞서 언급한 제3자의 정자 내지 난자의 기증으로 이루어 진 생물학적 부모의 법적 확립은 사회 전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가치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리모에 의한 출산과 정자의 냉동보관으로 사후출산으로 인한 아이의 출산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는 미혼의 여성이 오빠의 정자를 이용하여 시험관 상태로 수정하여 다시 자궁 내에 착상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가진다면 이것을 근친상간으로 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접근하기에는 과학의 발전이 너무 앞서가는 모습이라 하겠다.




성에 대한 욕망과 아이의 관계는 여태껏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었다. 출산에 따른 사회적 요구는 부모에 대한 혈통으로 이어지며 정체성의 보편화된 모습으로 촉발되었다. 소위 말하는 혈통, 부계중심의 사회는 기독교의 간섭과 무관하지 않음을 책은 말한다. 인류의 역사상 부계중심의 혈통보존이 확립되고 성이 은밀한 것으로 인식되고 여성의 영향이 축소된 것에 대한 배경으로 기독교를 지목하고 있다.




비단 종교적 이유 이외에도 인간의 본성에도 이유를 찾는다. 일종의 어두움 일색인 고독의 한 단면으로 묘사된 장르인 누아르 소설 속 가족관은 일정한 심리적 투영이라 하겠다. 가족의 전통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미완의 구조로 재편되는 현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의 불확실성에서 찾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생각의 파편이 꼬리를 물게 만드는 책이다. 철학적 시각의 인식의 틀을 기반에 두고 과학적 현상에 대한 검증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접목되어 버무려 져 있다. 가족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상징적인 가치를 폭넓게 수용하는 영역의 확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유연성은 사회적 담론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거쳐 가는 현상으로 보편적 진리를 허무는 작업으로 시작됨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기계화되고 변모되어 가는 이 시대,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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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의 몰락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황해선 옮김 / 창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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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 중 소유에 관한 집착만큼 포기할 수 없는 현상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상대적 가치의 증가가 부의 지위를 매기는 소득의 불균형 현상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아직 때가 덜 묻은 초등학생조차도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규모에 따라 친구가 갈리고 무리가 형성되는 것은 애석하게도 상대적 박탈감이 낳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불편한 진실이라 하겠다.




만약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한 사회 구조가 지속된다면 근로기준법에서 명시하는 주40시간, 일8시간보다 더 많은 근로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가 성취하는 가치가 진정한 행복이라 논 할 수 있을까? 분배의 패러다임이 현재와 동일하게, 아니 보다 악화된다면 누구나 가지기를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가능할까? 곱씹어 되새겨 볼 내용이다.




이 책 <부자 아빠의 몰락>의 저자 로버트 H. 프랭크는 미국의 경제학자이다. 그가 담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단지 미국사회만을 겨냥해서 분석하고 해부했다고 보기에는 우리와 너무도 닮아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미 인식 있는 식자층에 의해 회자되고 있던 경제적 현상들을 행동경제학의 시각으로 통찰하였다.




신자유의의와 승자독식시장(winner-take-all markets)




미국사회를 지배하던 헤게모니는 냉전시대의 종결로 인하여 자유주의와 시장자본주의의 강화로 이행하였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작은 정부, 감세정책, 공공서비스부문의 민간이양 등은 꾸준히 그 영역을 펼치며 세력을 키워 왔다. 저자가 언급하는 미국 전 대통령 부시의 정책의 이념적 핵심은 신자유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 하겠다. 이미 레이건 대통령 시절 기반을 놓은 레이거니즘은 클린턴정권을 지나면서 공고히 다져 져 부시정권에 와서는 한계의 분수령을 넘었다. 




이러한 현상은 케인즈식 경제이론을 허물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고유의 시장기능에 의한 분배와 통제에 내맡기는 자유방임형 구조로 내달렸다. 그 결과는 저자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소득구조의 상대적 집중현상이 불가피하게 양산되었다. 이로써 상위계층의 소득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중산층은 현상을 겨우 유지하며 하위층은 파산지경에 내몰리는 아무도 바라지 않던 경제적 불균형 현상이 가시화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우리는 알고 있는지 모른다. 무한경쟁에 따른 보상과 기회의 균등분배라는 외투 속으로 가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례와 비교는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사회경제적 담론이다. 이처럼 우리가 승자독식시장에 관용적이고 유순한 태도로 바뀌게 된 것은 사회경제적 구조와 문화적 현상이 근검하고 절약하여서는 뒤처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탐욕의 부추김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성장과 불평등의 관계




성장에 의한 소득의 불평등 분배는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함수다. 저자가 파헤친 역학관계는 성장을 통해 최상위층의 소득이 증가하면 지위 유지를 위한(지위재) 소비로 이행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의 계층으로 넘어 가는 소위 소비의 도미노현상이 발생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출의사결정의 참조틀을 변화시키고 용인할 수 없는 불합리한 현실을 조장하고 결국에는 소득의 지속적인 유입을 위한 방편으로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는 악순환을 야기한다. 다시 말해 부의 불평등이 만든 사회적 계급의 붙들기를 위한 과소비를 부추기는 대부분이 자멸하는 결과라 하겠다.




저자가 지적하는 불평등 현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한 감세정책은 정부의 수입을 감소시키고 줄어 든 재원만큼 보충하기 위해 사회공공서비스예산의 감축으로 이어졌다. 이는 저소득층의 국가적 보호를 줄이고 예전과 같은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지출을 필요로 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이른바 개인무한책임으로 회귀하는 작은 정부의 본질이 은밀하게 숨어 있는 한 단면이다.




과세구조의 혁신을 통한 소비구조의 개선




인간의 본성과 경제적 이론의 함수관계를 통해 경제학을 설명하는 함의는 별반 주목을 받지 못하였으며 논의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행복만족도에 대한 개인적 가치측정의 상대성과 관념의 수단으로 치부되어 왔기에 저자의 논의의 밑바탕에 깔린 사상은 실로 대단하다. 간단명료한 설명과 적절한 비유를 통해 이끌어 내는 경제논리의 현상이해는 매끄럽게 다가온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하여야 할 사회정치적 담론을 이끌어 내는 그의 힘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식의 전환에 목적이 있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 오늘을 산다는 일반적인 관념은 실제는 불필요한 부의 과잉축적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로운 인간 본성의 행복에 기대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구성원 모두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하향평준화를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러한 희망의 단초로 저자는 소비세의 누진과세를 통한 세제개혁에서 찾는다.




지금껏 추진해 왔던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정책은 미국 사회를 금융 불안에 빠트리는 실패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한 자율시장시스템의 규제완화는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다. 이제 변화를 통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때가 도래하였다. 미루기에는 사회적 폐해가 위험수준을 넘어 섰다. 지금껏 논의되어 왔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일차적인 원인에는 정치적 역량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




이렇듯 설익은 담론처럼 비쳐질지 모르겠으나 저자의 행동경제학에 입각한 사회경제적 통찰은 불안정한 경제구조를 뒤쫓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개인의 전인격이 호사스러운 사치재로부터 등급이 매겨지는 몰인격한 기현상이 사라지고 순환적 배분을 통한 고른 분배가 선행되어야 한다. 저자의 담론이 하나의 밀알이 되어 우리 사회가 건전한 구조로 재편되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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