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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미치다 - 현대한국의 주거사회학
전상인 지음 / 이숲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아파트, 대한민국 사람치고 아파트와 얽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더라도 어떤 목적이든지 간에 아파트와 관련한 일화 한 토막은 누구든 쉽사리 읊조린다. 아파트로 인해 계층이 나뉘고 심지어 전인격마저 부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원래 그것이 가진 본연의 목적인 주거의 기능은 희석되고 오로지 교환가치로서의 기능이 우위를 차지한 해괴망측한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 <아파트에 미치다>의 저자 전상인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찰과 더불어 환경적 담론에 대해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아 펴냈다. 아파트에 얽힌 사회공동체적 특성을 이해하고 분석을 통해 아파트가 품은 이데올로기를 현대 사회의 주류적 가치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한 탁월한 감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아파트의 기능적 요인을 사례를 통해 흥미롭게 채워 넣었다.
책은 아파트의 기원인 건축사적 기원을 소개로 아파트가 한국사회에 고착화되고 현재의 그것으로 재편되기까지의 연대기적 방식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아파트가 진화하기 시작한 시점을 박정희정권을 즈음으로 보고 있다. 국가산업발전계획에 의거하여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과 주거안정의 목적아래 주택공사에서 보급하기 시작한 공동주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파트의 촉발제가 되었음을 말한다.
이를 통해 처음 소개된 아파트는 전통적인 한옥구조에 익숙한 우리의 정서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구조와는 이질감으로 인해 별반 대중적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 하지만 경제개발에 의한 산업화 시대로의 이행은 전형적인 가족구조를 허물고 핵가족화 및 개인주의가 보다 강화되는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되며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구조의 산업화, 정보화시대로의 이행이 아파트에 대한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생성하게 하고 골목문화를 퇴보시키며 폐쇄적인 개인가치에 중점을 두는 공동체관을 형성하는 기저로 파악하였다. 분명 저자가 짚은 아파트가 가진 외형적 편리보다 내면적 변형은 더 큰 왜곡현상을 도출하는 계기가 되었음은 요세공동체의 형성과 같은 환경적 변화에서 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라 하겠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 있다. 실제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기 시작한 기저에는 경제적 함수관계가 치밀하게 깔려 있다. 아파트 건설로 인한 경제성장유발효과는 엄청난 잠재가치를 촉발시키고 경제의 흐름을 순탄하게 이어주는 효자산업으로의 역할을 하는 것에 있음은 정부로서는 묵과하지 못할 중요한 요인이다.
경제적 유발효과 외에도 점차로 아파트 자체가 개인의 부를 측정하고 투자가치로서의 기능을 매개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에도 우리가 아파트에 미치게 하는 근원적인 요인이 깃들어 있다. 초고층 아파트에 평당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줄을 서는 세태는 계층 간 주거형태의 동질성이 주는 한계에서 저자는 이유를 찾고 있다.
이러한 아파트 편중현상은 계층 간 양극화의 조장과 구성원 간 갈등을 조장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음은 암울한 자화상이다. 저자는 아파트에 대한 단조로운 시각을 접고 입체적인 변화를 통해 서구와 같은 오랜 기간 숙성된 고급주거문화의 사회적 용인을 기대하고 있다. 계층 간 이동이 유연하고 기회의 균점으로 누구든 진입이 자유로운 환경에 주안점을 두고 역설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파트가 사회학적으로 여권을 신장하는 계기로 보았다는 점에 있다. 아파트의 수평적인 구조는 전통의 가옥구조의 수직적 구조를 붕괴하고 신체가구의 발달은 여성의 대중적 권력을 쟁취하는 권리신장의 계기로 보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참여가 전방위적인 영역으로 확대 이행하는 것에 아파트와의 연관성을 연결시켜 이해한 시도는 독특한 시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중산층 계층을 형성하는 일등공신으로 여성의 힘, 특히 미시의 권력이 지대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분명 아파트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근원이 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60%가 40평형대의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한다. 드러내지 않은 속내는 암묵적 합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로자 임금으로 17년을 전부 모아도 집 장만 못한다는 뉴스는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다. 21세기 신유목민시대가 멀지 않았음은 예고하는 불우한 미래의 모습이다.
저자가 제시한 주거문화의 개혁은 미봉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파트에 대한 투기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년계층의 실업난 해소와 과잉 부담을 유발하는 주거문제로만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근원적인 해결은 고사하고 또 다른 불평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에 대한 거품은 당분간은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적인 요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아파트에 대한 집착과 수요는 새로운 대체제의 등장과 구미에 맞는 반대급부가 있지 않는 이상 요원한 일로 비친다. 그렇다면 아파트에 대한 획일화된 방식의 개발보다 다양한 건축방식 및 임대방식의 도입으로 접근의 패러다임을 변화하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