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과학과 사회 1
피에르 주아네베로니크 나움 그라프 외 13인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애정과 본능의 감정과 정비례한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성적인 교합을 통해 임신을 하는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인류적 진실의 소치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나 가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진 불임부부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가의 원인은 사회구조적 변화와 환경적 영향에서 찾는다.




다행스럽게도 의학의 발전은 더 이상 불임의 영역을 자연의 상태로 방치하지 않는다. 의학의 발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종의 헤라클레스의 도전인 셈이다. 시험관 아기를 통한 정상적인 임신과정의 한 부분을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제3자의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 부모와의 완전한 단절로부터의 접근으로 불임부부에게는 메시아로 이해된다.




이 책 <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의학의 발전이 사회 통념상 자리 잡은 기존의 인문학적 접근과 과학의 출현으로 인한 새로운 접근을 통합적으로 시도하여 가족에 대한 정의와 성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담론을 스케치하고 있다. 프랑스 유수의 신경정신과 의사를 필두로 정신분석학자, 인류학자,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존의 가치체계를 흔드는 작업을 일관된 알고리즘으로 연결시키려 하였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활동은 출산의 시기를 늦추는 것으로 이해된다. 개인의 능력발휘와 정체성의 표현은 사회적 교류로 대변된다. 사회적 인식은 여성에 대한 자리 매김에 건조함 일색이다. 여성의 자연스런 출산에 따른 부대조건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경제활동의 지속여부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이 사실이며 출산은 여성과 관련된 지극히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 것이 지배적 현상이다.




이러한 출산의 저하는 기존의 가족관계를 서서히 변모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공저자들의 인식을 관통하는 공통의 담론은 기존 가치체계의 변화에 있다. 변화의 시발점에는 첨단기술사회로의 이전이 일차적 이유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성 정체성은 더 이상 굳건한 짜임의 틀로 받아들이기는 힘듦을 말한다. 이로써 기존의 관습과 인식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중대한 문화적 침투현상의 표현인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의 출현과 아이와의 관계의 정의는 반드시 논의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프랑스의 진보적인 문화적 인식이 우리보다 빠르게 동성애자와 앞서 언급한 제3자의 정자 내지 난자의 기증으로 이루어 진 생물학적 부모의 법적 확립은 사회 전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가치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대리모에 의한 출산과 정자의 냉동보관으로 사후출산으로 인한 아이의 출산은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아이를 가지기를 원하는 미혼의 여성이 오빠의 정자를 이용하여 시험관 상태로 수정하여 다시 자궁 내에 착상하는 방법으로 아이를 가진다면 이것을 근친상간으로 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합의 없이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접근하기에는 과학의 발전이 너무 앞서가는 모습이라 하겠다.




성에 대한 욕망과 아이의 관계는 여태껏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었다. 출산에 따른 사회적 요구는 부모에 대한 혈통으로 이어지며 정체성의 보편화된 모습으로 촉발되었다. 소위 말하는 혈통, 부계중심의 사회는 기독교의 간섭과 무관하지 않음을 책은 말한다. 인류의 역사상 부계중심의 혈통보존이 확립되고 성이 은밀한 것으로 인식되고 여성의 영향이 축소된 것에 대한 배경으로 기독교를 지목하고 있다.




비단 종교적 이유 이외에도 인간의 본성에도 이유를 찾는다. 일종의 어두움 일색인 고독의 한 단면으로 묘사된 장르인 누아르 소설 속 가족관은 일정한 심리적 투영이라 하겠다. 가족의 전통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미완의 구조로 재편되는 현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결국 인간의 정체성의 불확실성에서 찾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은 생각의 파편이 꼬리를 물게 만드는 책이다. 철학적 시각의 인식의 틀을 기반에 두고 과학적 현상에 대한 검증된 인식이 상대적으로 접목되어 버무려 져 있다. 가족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상징적인 가치를 폭넓게 수용하는 영역의 확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의 유연성은 사회적 담론이 일반화되는 과정에서 거쳐 가는 현상으로 보편적 진리를 허무는 작업으로 시작됨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기계화되고 변모되어 가는 이 시대,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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