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개정판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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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품는다. 지구의 역사와 호흡을 함께 한 시간동안 아낌없이 주기만 하였다. 열정적인 삶을 통해 길러 낸 소중한 날것들을 통째로 말없이 내어 주기만 한다. 이처럼 숲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불가분의 존재다. 그 중 나무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정화하는 필터와 같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시각 또한 인간이 빚어 낸 소통의 인식인지 모른다. 나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 지는 외면한 채 그저 수단과 도구로서의 가치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 <신갈나무 투쟁기>는 아름드리나무의 넉넉한 품을 쏘옥 빼 닮았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신록의 상쾌함에 머리 끝 부터 발끝까지 명징한 느낌마저 든다. 마치 울창하게 쭉쭉 뻗은 청록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들이키는 공기를 들이키는 착각마저 인다. 그러나 책은 드러난 모습과 달리 나무의 치열한 투쟁의 삶을 기록하였다.


보여 지는 피상의 아늑함이 아닌 동심원에 깊숙이 각인된 자연으로부터 배운 본능의 몸부림이며 인고의 삶이다. 살아남기 위해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끊임없이 도전받았다. 신갈나무는 이러한 모든 척박한 환경을 뛰어 넘고 어미의 마음을 도토리를 통해 승화시켰다. 이는 한결 같음이 토해 낸 순수한 삶의 원형이자 변하지 않는 진리다. 여태껏 생각지 못한, 예사로 보아 넘긴 신갈나무의 삶이 흥미롭다. 더불어 나무를 통해 사계의 법칙을 배우고 인간의 교만함을 반성하며 겸손의 미덕을 절로 깨우치게 된다.


저자는 신갈나무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나무의 일생과 계절 변화에 따른 삶의 투쟁을 나무의 눈을 통해 담았다. 틀에 박힌 관념의 교차는 고정된 관념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진리를 찾아 가는 나무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삶의 통찰과 흐름의 과정을 흠모하였다. 인간이 만든 과학의 테두리를 감추고 신갈나무의 부드러운 잎과 강인한 나무 등걸을 통해 숲이 만들어 내는 삶의 하모니를 연주하였기에 단조를 통해 퍼지는 향이 그윽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고유의 색깔과 자신만의 힘을 가진다. 나무는 지구의 나이테에 기록된 경험과 기록에 의해 스스로 지구의 일부로서 인식하며 제 역할과 소임을 다 한다. 아마도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해 순리대로 이끄는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제 힘으로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가 고차원적인 삶의 철학인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만이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저지르고 합리화하며 묵살한다. 인간의 탐욕과 파괴가 만든 결과는 자연을 변형시키고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인간의 일그러진 욕심과 교만이 만든 현실은 자연을 위협하는 어리석음임을 이 책은 행간에 담았다.


책은 신갈나무의 일대기로 구성되어 있다. 신갈나무는 참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로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에 속한다. 굳이 저자가 신갈나무에 중점을 둔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림을 이루는 주요수종으로 오랜 세월동안 소나무와 경쟁하며 산천의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해 오던 낙엽활엽수이다. 드러난 이유 외에도 강인한 생장의 웅장함과 올곧음이 눈길을 붙들어 맨 것도 한 몫을 하였을 것 같다.


신갈나무는 생장 자체의 순환이 녹녹치 않다. 씨앗을 뿌리고 줄기를 싹 틔우고 가지를 뻗치는 매 순간마다 나무를 위협하는 포식자와의 치열한 방어와 몸부림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신갈나무는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았다. 습한 기운과 척박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생장하는 동인으로 승화시켰으며 진정한 숲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 하였다. 개척의 삶이 무엇인지,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기 위해 타이밍을 잡아 치고 빠짐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묵묵히 보여 주는 절정의 기교를 구사한다. 실로 근엄함마저 든다.


신갈나무는 적응과 타협을 통해 여유와 관용을 스스로 체화하였다. 제 몸을 내어 기생하는 식물에도 밋밋한 자태를 가진 꽃의 아름다움을 품어도 신갈나무는 꿋꿋이 성장을 계속한다.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와 신념을 가진 불굴의 전사처럼 한결 같이 하늘을 열망한다. 이렇듯 신갈나무를 통해 우리는 삶의 정체성과 신념의 진리를 따라 배울는지도 모르겠다. 신갈나무는 생존의 불확실성을 딛고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오늘날 숲의 주인이 되었다. 신갈나무는 흙과 비와 햇빛을 자양분 삼아 오롯이 그 왕좌에 올랐다. 다시금 후세에게 왕좌를 넘겨주고도 아낌없이 내어 주며 찬란히 흙으로 돌아간다.


이렇듯 신갈나무를 통해 다양한 상념을 제공받았다. 더불어 다양한 수종의 식물과 나무의 구조 및 계절 변화에 따른 생장법 등을 중간 중간 공으로 배웠다. 실제 숲을 좋아하기만 하였지 어떤 세상이 있는지는 매번 호기심 밖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돌봄의 가치를 나누었으며 오감을 자극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저자들의 진솔한 삶의 흔적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과학서적을 만나 오랜만에 개운함을 만끽하였다.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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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쉽게 가르치는 유아영어 - EQ지수를 높여주는 우뇌 영어학습법
정부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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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문화적, 관습적 토양으로 익힌 모국어의 틀에 새로운 외국어를 의식세계로 밀어 넣는다는 것은 가히 상당한 노력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환경은 영어에 미쳐 돌아간다. 사회인으로서 능력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항상 우위를 점하는 것을 보면 당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 의심마저 든다. 그러나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은 커다란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할 수 없이 영어를 잘 해야 된다는 것이 또한 정답이다.


이러한 영어만능시대에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당연 고민거리와 화두가 영어로 이어지는 것 또한 무리도 아니다. 시중에 넘쳐 나는 영어교재, 영어유치원, 영상물 등 각기 제 각각 나름의 팔색조를 자랑하며 만사형통을 부르짖지만 실상 어떤 교재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어느 시점에 접근하여야 할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만약 부모가 원어민에 근접하는 수준의 회화능력을 구사한다할지라도 아직 인지 및 사고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이를 염두에 둔다면 이 또한 고립무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엄마가 쉽게 가르치는 유아영어⟫의 저자 정부연은 ‘아트 잉글리시‘라는 독창적인 영어교수법을 개발하여 현재 국제어학개발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책을 펴낸 동기 또한 무분별한 암기식 교육과 획일적인 선행교육의 폐단을 바로 잡고 한국인에 맞는 영어교육방향을 제시하였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아울러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과 걱정거리인 영어교육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저자는 유아기 영어교육의 패러다임을 뇌의 역할에 따른 차별성을 통해 전환코자 하였다. 우뇌에 중점을 둔 언어혁명은 아이의 감성을 키우고 브로카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천부적인 능력에 중심을 맞추었다. 인간의 뇌는 좌우의 기능적 차별로 인해 좌뇌는 이성적, 계획적, 분별력에 의지한 수리, 논리적 사고를 관장하며 우뇌는 감성적, 공간적, 음악적, 예술적, 직관에 의지한 창의적 사고를 관장하는 명확한 역할구분이 된다.


이처럼 우뇌중심의 프리즘을 통해 영어를 배우게 되면 그 효과가 실로 대단함을 역설한다. 이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 즐기며 몰입하게 되며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감성을 발달시키고 창의적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지지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우뇌학습을 통한 영어교육의 중심에 저자는 애착형성이 원만한 엄마가 있기를 바란다. 엄마를 통해 모국어로 충분한 관계를 형성하고 말문 열기에 돌입할 것을 권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영어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부모가 가이드를 해 주는 역할에 주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검증되지 않으며 문화적 코드가 다른 원어민강사보다 오히려 부모의 관심이 아이의 말문을 여는 첩경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밑바탕에 저자가 제시하는 연령별 학습교재를 통해 놀이와 학습을 통한다면 아이의 이중언어 구사능력은 순풍에 돛단 듯 날아 갈 것으로 말한다.


비단 이 책이 영어의 표준 준거 틀로 유아기 영어교육의 전형적인 방법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각기 다른 개성과 다양성으로 나름의 교육방침이 자리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파닉스나 알파벳 교육과 같은 읽기 교육이 선행되고 말하기가 후행한다고 해서 영어교육이 망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하기와 읽기의 선후관계의 왜곡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상당한 차이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저것 팔랑팔랑 혹해 벌려 놓는다고 아이가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기에 이제라도 부모가 확실한 전략과 믿음으로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최상이라 믿는다. 이 책을 통해 유아영어교육의 혼란스런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할 기준이 될 좋은 지침임은 사실이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좋은 교재의 선택과 활용으로 아이의 감성에 튼튼한 날개를 달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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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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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경제학을 연상해 보면 분배, 효율성, 수요와 공급의 함수를 떠올리게 된다. 경제학이 가치판단적인 정의와 명확성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제학을 통해 실물경제를 예측하고 표본적인 준거 틀을 설정하는 접점에 닿아 있다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비이성적인 불황과 경제 후퇴의 국면에서 전통적인 거시경제학은 이렇다 할 모범적 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국가적인 경제모델의 기준으로 다양한 학제와 접근이 가능한 것이 사실이지만 일련의 변수에 의한 탈 이데올로기적 접근, 자본주의 가치의 우위, 자율과 분배의 규범적 신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경제학의 이념적 접근을 확장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경제학적 결합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으며 우리의 경제현상을 위시한 세계경제의 큰 축을 하나의 통합경제로 묶는 작업이 진행되었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처럼 거시경제학이 동서해빙기를 지나 탈동화된 사회로 이전함에 따라 자율과 낮은 통제에 입각한 모델의 주류적 필요에 따라 신고전학파(신자유주의)가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현재 그 명맥을 다했으며, 그로기 상태에 빠진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지난 4반세기 동안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였던 신자유주의의 침몰은 이념과 주의를 맹신한 지나친 과신과 남용의 경고인지 모른다. 아울러 경제학을 특정한 시각으로 치우쳐 재단하는 우편향적 사고와 행동은 위험천만한 착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현재 우리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불황의 나락으로 세계경제가 진입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이 책 <야성적 충동>은 불완전한 경제현상과 비이성적인 통제시스템을 진단하고 케인스의 불황에 대처하는 탁월한 사상적 접근과 논리적 현상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재구성하는 얼개로 짜여 져 있다. 전형적인 경제학의 계량적이고 정량적, 정성적인 접근을 배제하고 사회심리학적 관점을 접목시켜 흥미를 높였다. 폭 넓은 독자층을 고려하여 학문적 깊이를 한 꺼풀 낮추었기에 보다 밀도 있게 접근이 가능하며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 신자유주의에 치우친 경제학의 폐단과 불완전한 현상을 어느 책보다 쉽고 빠르게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으며 대안경제학으로 손색이 없는 호소력이 짙은 책이다.


책은 경제학의 전반적인 현상을 케인스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의 주된 논점인 야성적 충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야성적 충동이란 비이성적이고 예측 가능할 수 없는 동물적 감각이 중요함수로 작용하는 경제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야성적 충동의 주된 동인은 자신감, 공정성, 화폐착각, 부패, 이야기가 경제학의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으로 기존의 가치판단의 틀을 뒤집고 흔드는 내용으로 이루어 져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형성, 화폐조절, 물가조절을 통제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 져 있음에 반해 이 책의 거대담론은 비이성적인 요소인 야성적 충동을 부각시켰다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저자는 ⟪일반이론⟫의 논리적 이해를 위해 크게 2부로 나누어 집필하였다. 1부에서는 야성적 충동이론의 실제와 이론을 사회심리학적인 접근과 분석을 통해 설명하였으며 어떤 방식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전반의 가치기준으로 작용하는지를 면밀하게 보여 주고 있다. 2부에서는 1부의 개론적인 설명을 토대로 각론적 해석으로 공통적인 경제문제의 주된 의문점을 8가지 이유로 열거 압축하여 난해한 현상과 문제 및 방법을 통찰하였다.


기존의 획일적인 시각과 접근은 불황의 현상을 분석하는 틀로 작용하기에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보여 주는 함의와 진실은 더 이상 기존의 시각적 착각과 이분법적인 도해로 나누어 재단할 수 없음을 경험칙상 일깨운다. 또한 비자발적 실업이 수요 감소와 실업율의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효율성임금이론이 턱없이 단순하며 자연실업률의 명제가 현재의 실업문제를 풀지 못함을 공론화하였음은 대단한 성과라 하겠다. 이는 저자들을 통해 기존의 아성을 허무는 시도로 새로운 준거 틀을 마련하는 또 다른 계기로 인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 주는 단상은 인간심리의 행동적 측면을 고려하였다는 데 있다. 이는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셈이다. 사회심리적인 시각적 공유와 패러다임의 접목은 경제학의 참조 틀을 확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부동산의 하방경직성에 집착하는 기존의 관념과 주식시장의 펜더멘탈에 근거한 민감성이 모두 야성적 충동에서 기인한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다는 획기적인 발견은 더 없이 중요한 함의다. 여태껏 소외된 분배의 불공정성, 소수인종의 차별적 태도, 비체계적인 행동방식 등은 이 책을 가로지르는 오랜 통찰의 흔적이다.


따라서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주장인 ‘보이지 않는 손’의 자가통제체계는 현재의 불완전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많은 허점이 있음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 준다. 1929년도의 대공황에서도, 아시아를 요동치게 한 화폐불안에서도, 남아메리카의 극심한 불황경제에서도 기존의 통찰과 사고는 여지없이 무너졌음이 그 방증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 장하준 교수가 극찬하며 감탄한 이 책이 담은 비전이, 현재의 무너진 경제하락의 간극을 메우는 지렛대로(레버리지효과) 사용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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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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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적 불황, 케인스주의에서 해답을 찾다 

최근 발생한 경제위기를 암흑의 1930년대 미국 발 대공황에 빗댄다. 글로벌 경제화 되고 세계화된 작금의 현상이 우리의 허리띠마저 졸라매게 하였다. 물 건너 촉발된 경제위기가 우리 경제에는 대공습의 전야를 방불케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물가와 경제 후퇴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울러 이러한 모든 경제 현상의 주범은  누구일까? 깊이 고민할 필요성조차 없이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을 지목할 것이다. 교묘하게 조작되고 가공된 첨단금융공학시스템을 내세 워 건전한 펀더멘탈을 흔들고 시장을 교란하고 파국으로 몰고 간 사악한 악의 축에 다르지 않다. 
 

 

 

실제 우리는 1988년 미국의 배후 조정아래 있던 IMF으로부터 처절한 경제굴욕을 경험했다. 통화정책의 실패로 물가불안과 신용경색상황의 공포는 패닉상태로 이끄는 그 자체였다. 당시 회생을 위한 돌파구는 긴급원조였으며 그 대가는 실로 가혹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시장개방(특히, 금융부문) 등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세계경제의 열린 시장의 일원으로 알몸으로 내던져 졌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도 허약한 경제기반구조를 드러내며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였으며 이리저리 조난당한 모습을 여전히 보여준다.


지금에서야 악몽 같았던 당시를 회고할 여유가 조금은 남아 있다지만 답답하기 이를 때 없던 시기였다. 별다른 과오나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실업자의 대열에 편승한 88만원 세대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불평등한 사회구조였다. 이러한 불균형과 지독한 불황의 단초를 제공한 주된 원유는 바로 방만한 자유방임, 규제완화정책, 글로벌경제화, 민영화가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불황의 경제학>의 저자 폴 크루그먼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교수이다. 그가 작금의 시점에 이 책을 통해 지난 1세기 동안 각 나라의 경제를 위협한 구조적 원인과 불황의 양상을 소개한 목적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직간접적으로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현재 미국이 처해있는 금융위기의 촉매제가 그림자금융으로 명명된 유사금융 파생상품의 난립과 헤지펀드의 예측 불가해성에 초점이 맞추어 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는 동서 이데올로기의 변화, 자본주의체제 강화 등을 통해 경제시스템의 강력한 통합 체제를 탄생하였다. 저자가 짚은 신자유주의 경제주의(신고전주의) 역시 이러한 맥락과 이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렇게 전통 자본주의 강대국인 영국(대처주의)과 미국(레이거니즘)의 지배적 이념이 어떻게 제3세계 국가와 신흥국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이 책은 상세하게 보여 준다.


다른 경제학 저서와는 달리 단편적 조치나 개념분석에 그치지 않고 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경제후퇴(불황)의 현상과 결부시켜 알기 쉽게 보여 준다는 점은 탁월한 차별성이 돋보이게 하는 책이다. 전통적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는 정실자본주의(정계유착)의 연결고리가 짚은 국가적 특성을 보이는 곳이며 우리나라 또한 유래 없는 독점재벌경제를 키웠다. 기실 건전한 경제의 선순환 고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특이한 경제구조로 인해 상당부분 견실한 자본시장을 형성하기엔 무리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저자가 아시아의 경제요동현상을 전후로 구원이라는 미명아래 사악한 무리들을 앞세워 시작된 신자유주의자들의 간섭은 더욱 자생적 경제토양과 기반을 허약하게 하였다는 데 있다. 분명 선진경제의 지원과 정책으로 상황이 개선되어야 함에도 오히려 악화된 것의 이면에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피해는 국유화하는 이념적 흐름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신뢰기반이 붕괴된 경제는 연쇄부도로 이어지고 모라토리엄(국가부도)의 상태까지 몰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심각한 경제 불황의 전방위적 원인을 제공한 금융 부실은 비열한 모럴헤저드를 양산하였음을 이 책은 또한 정확하게 복기한다.


세계의 경제주체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빠지는 우를 상당기간 범했다. 이 책의 주요테마로 소개된 라틴아메리카의 사례, 멕시코의 테킬라위기, 인도네시아 • 한국의 통화위기와 특히 일본의 유동성 함정은 수없이 많은 불황의 심각성을 예고하였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자승자박의 참혹한 결과였다. 이처럼 세계 경제를 처절하게 굴복시키고 무너뜨린 주된 이유에는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간과한 즉, 신자유주의경제가 묻어 버린 경제 주체 간  신뢰와 예측하지 못한 비이성적 행동(행동경제학)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저자가 밝힌 문제의 주된 원인도 그 범주와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미국이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강력한 금융통제와 수혈자금의 사회간접자본으로의 유입과 투자는 공황의 끝을 막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또한 때마침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를 살리는 소방수로, 커다란 동력이 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미국이 공황의 그늘을 벗어날 수 있었던 핵심역량은 당근과 채찍의 적절한 사용 즉, 규제와 보호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채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융위기는 어떠한가? 구멍 난 물독처럼 제3세국가가, 일본의 덫이 그러했던 것 보다 훨씬 강력하게 울트라 괴물로 변신한 셈이다.


거품경제(닷컴붕괴, 주택붕괴)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항공모함 미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다. 흥청망청 한도를 넘어 써 버린 과소비의 책임을 호되게 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불황의 타개책으로 저자는 신용경색완화와 소비지원을 꼽는다. 이처럼 미국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한 현실이 우리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저자의 주장처럼 공황은 희박하나 불황은 지속될 것이라는 말처럼 하루 빨리 자유방임의 방만한 경제를 붙들어 매지 못한다면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에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작금의 경제현실을 어느 책보다 잘 분석한 이 책을 MB정부에게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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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 글쓰기의 달인을 위한
로버트 그레이엄 외 지음, 윤재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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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담는 것이다. 형식이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끼적이는 글이라도 글쓰기를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빚어내고 소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가 생각처럼 실타래를 술술 풀어 가 듯 막힘없이 쉽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글쓰기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내밀한 원형적인 본능에서 촉발된 관계가 사회적 인식과 지위를 확인코자 하는 의도된 목적에서 온다. 아울러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의견과 시각, 함의, 단상 등의 건전한 의식거리를 제공하는 순기능적 요소이다.




글쓰기의 순기능을 차치하더라도 오로지 작가의 깜냥을 통한 허구의 세계를 창설하는 문학적 순수성으로서의 기능은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의 범주를 가늠하기 힘들다. 만약 작가라면(설령 아니더라도) 혼을 쏙 빼 놓을 만큼 공감 가는 글을 언제고 어느 때고 생산해 내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열렬한 반응으로부터 살벌한 외면까지 결국은 살아 숨 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작가의 로망인지 모른다.




이처럼 글쓰기에 관한 모든 길라잡이가 있다면 백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책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전적으로 창의적인 글을 쓰고 사용설명서처럼 기능할 수는 없다. 소재를 발굴하고 다듬고 내러티브를 씨줄과 날줄처럼 정밀하게 조합하는 것은 부단한 노력과 역량이 관건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소홀하게 넘어 갈 수 없는 것은 기본 즉, 주춧돌의 튼실함이라 하겠다.




이 책을 통해 글쓰기의 영감과 번득이는 창의성을 개발한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아마도 베스트셀러작가를 꿈꾸는 것이 로망이라면 반드시 읽어 봄직한 내용이다. 평범한 일상의 특별할 것 없는 소재를 사실적 묘사, 감정이입, 회상으로 단단한 플롯의 뿌리내림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통과의례다. 이러한 전개를 통해 담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가 분명해 진다.




책은 글쓰기의 메커니즘 순으로 엮은 전형적인 교과서의 형태를 보인다. 크게 6장으로 분류하여 1장에서는 글쓰기를 위한 준비 작업을 제시하고 2장에서는 사회적 관념과 일반적인 태도, 젠더, 인습 등의 다양한 주제를 공통된 틀로 갈무리하였다. 3장에서는 글쓰기를 위한 기법과 장치를 통해 완성도 높은 글로 바꾸는 테크닉을 열거하였다. 4장에서는 글의 형식과 장르를 통해 문법의 적절한 사용법을 5장에서는 탈고된 원고의 다듬기를 위한 출판의 정보를 실었다. 끝으로 6장에서는 작가로서의 이념과 삶을 통해 정체성을 발견하고 소신 있는 자세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혹자는 글쓰기를 위해 뼈 속까지 써 내려갈 것을 요구하며 영혼을 흔드는 글담이 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이 모든 글쓰기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공감이 아닐까? 인간의 오랜 열망과 꿈을 플롯에 담고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살아 있는 내러티브는 신과의 교감처럼 신성함 마저 든다. 또한,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 완성체로 끊임없는 자아의 성찰과 정체성 확립은 글쓰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이 어떤 장르라 할지라도 인간이 만든 물질세계를 투영하지 않고는 시놉시스조차 건져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예창작을 준비하는 사람과 글쓰기의 실제와 이론정립을 다지고자 하는 이라면 든든한 길라잡이로 작용하겠다. 물론 다독을 통한 필사와 습작이 선행되어야 하며 간접경험과 자료 수집을 통해 무의식 세계의 무한 영역을 채워 나가야 하겠지만 글쓰기를 위한 이념정립 또한 이에 뒤지지 않게 중요하다. 글쓰기의 성공이 천부적인 재능과 타고난 능력으로부터 좌지우지 된다고 할지언정 순수함과 열정이 없다면 창의적인 글쓰기 또한 요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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