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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개정판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2009년 5월
평점 :
숲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품는다. 지구의 역사와 호흡을 함께 한 시간동안 아낌없이 주기만 하였다. 열정적인 삶을 통해 길러 낸 소중한 날것들을 통째로 말없이 내어 주기만 한다. 이처럼 숲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불가분의 존재다. 그 중 나무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정화하는 필터와 같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시각 또한 인간이 빚어 낸 소통의 인식인지 모른다. 나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 지는 외면한 채 그저 수단과 도구로서의 가치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 <신갈나무 투쟁기>는 아름드리나무의 넉넉한 품을 쏘옥 빼 닮았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신록의 상쾌함에 머리 끝 부터 발끝까지 명징한 느낌마저 든다. 마치 울창하게 쭉쭉 뻗은 청록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들이키는 공기를 들이키는 착각마저 인다. 그러나 책은 드러난 모습과 달리 나무의 치열한 투쟁의 삶을 기록하였다.
보여 지는 피상의 아늑함이 아닌 동심원에 깊숙이 각인된 자연으로부터 배운 본능의 몸부림이며 인고의 삶이다. 살아남기 위해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끊임없이 도전받았다. 신갈나무는 이러한 모든 척박한 환경을 뛰어 넘고 어미의 마음을 도토리를 통해 승화시켰다. 이는 한결 같음이 토해 낸 순수한 삶의 원형이자 변하지 않는 진리다. 여태껏 생각지 못한, 예사로 보아 넘긴 신갈나무의 삶이 흥미롭다. 더불어 나무를 통해 사계의 법칙을 배우고 인간의 교만함을 반성하며 겸손의 미덕을 절로 깨우치게 된다.
저자는 신갈나무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나무의 일생과 계절 변화에 따른 삶의 투쟁을 나무의 눈을 통해 담았다. 틀에 박힌 관념의 교차는 고정된 관념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진리를 찾아 가는 나무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삶의 통찰과 흐름의 과정을 흠모하였다. 인간이 만든 과학의 테두리를 감추고 신갈나무의 부드러운 잎과 강인한 나무 등걸을 통해 숲이 만들어 내는 삶의 하모니를 연주하였기에 단조를 통해 퍼지는 향이 그윽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고유의 색깔과 자신만의 힘을 가진다. 나무는 지구의 나이테에 기록된 경험과 기록에 의해 스스로 지구의 일부로서 인식하며 제 역할과 소임을 다 한다. 아마도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해 순리대로 이끄는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제 힘으로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가 고차원적인 삶의 철학인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만이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저지르고 합리화하며 묵살한다. 인간의 탐욕과 파괴가 만든 결과는 자연을 변형시키고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인간의 일그러진 욕심과 교만이 만든 현실은 자연을 위협하는 어리석음임을 이 책은 행간에 담았다.
책은 신갈나무의 일대기로 구성되어 있다. 신갈나무는 참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로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에 속한다. 굳이 저자가 신갈나무에 중점을 둔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림을 이루는 주요수종으로 오랜 세월동안 소나무와 경쟁하며 산천의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해 오던 낙엽활엽수이다. 드러난 이유 외에도 강인한 생장의 웅장함과 올곧음이 눈길을 붙들어 맨 것도 한 몫을 하였을 것 같다.
신갈나무는 생장 자체의 순환이 녹녹치 않다. 씨앗을 뿌리고 줄기를 싹 틔우고 가지를 뻗치는 매 순간마다 나무를 위협하는 포식자와의 치열한 방어와 몸부림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신갈나무는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았다. 습한 기운과 척박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생장하는 동인으로 승화시켰으며 진정한 숲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 하였다. 개척의 삶이 무엇인지,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기 위해 타이밍을 잡아 치고 빠짐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묵묵히 보여 주는 절정의 기교를 구사한다. 실로 근엄함마저 든다.
신갈나무는 적응과 타협을 통해 여유와 관용을 스스로 체화하였다. 제 몸을 내어 기생하는 식물에도 밋밋한 자태를 가진 꽃의 아름다움을 품어도 신갈나무는 꿋꿋이 성장을 계속한다.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와 신념을 가진 불굴의 전사처럼 한결 같이 하늘을 열망한다. 이렇듯 신갈나무를 통해 우리는 삶의 정체성과 신념의 진리를 따라 배울는지도 모르겠다. 신갈나무는 생존의 불확실성을 딛고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오늘날 숲의 주인이 되었다. 신갈나무는 흙과 비와 햇빛을 자양분 삼아 오롯이 그 왕좌에 올랐다. 다시금 후세에게 왕좌를 넘겨주고도 아낌없이 내어 주며 찬란히 흙으로 돌아간다.
이렇듯 신갈나무를 통해 다양한 상념을 제공받았다. 더불어 다양한 수종의 식물과 나무의 구조 및 계절 변화에 따른 생장법 등을 중간 중간 공으로 배웠다. 실제 숲을 좋아하기만 하였지 어떤 세상이 있는지는 매번 호기심 밖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돌봄의 가치를 나누었으며 오감을 자극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저자들의 진솔한 삶의 흔적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과학서적을 만나 오랜만에 개운함을 만끽하였다. 일독하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