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말걸기
대니얼 고틀립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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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른들은 무애 그리 바쁜지 항상 쫓기듯 살아갔다. 일상에 찌들고 치열한 격정의 삶을 살아 내기 위해 그리도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땐 이런 모든 것이 이해하기 힘든 불만이었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떤가? 복잡다단한 일상에 숨 돌릴 겨를조차 없다. 어릴 적 나의 눈을 통해 보았던 여유를 잃은 삶, 그 모습이다.

 


왜 나는 여유조차 누리지 못할 만큼 바쁜 삶을 살아갈까? 구렁텅이로 빠져 허우적댈 것을 알면서 말이다. 자분자분 생각해보면 관계와 소통의 문제가 일차적인 원인이다. 상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편견과 오해로부터 발생한 갈등의 골이 서로를 깊게 갈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의 왜곡은 사회 모든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기실 따지고 보면 결국 마음의 문제로 회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마음에게 말 걸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적절한 방법과 해결책을 마음으로 건네어 온다. 갈등, 선택, 집착, 번민, 고통, 불안과 같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감내한 현실과 경험을 통해 사색과 통찰로 수정처럼 반짝인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저자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상태로 30년의 세월을 감내하였으며 희망이 사자졌을 현실을 뛰어 넘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방송인이다.

 


그가 이 책을 펴낸 직접적인 동기는 다름 아닌 마음으로부터의 신실한 귀기울림이다. 저자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사고로부터의 출발은 힘겨운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며 그의 가족들과 함께 보낸 세월 동안 순간순간에서 뽑아 낸 조각들을 모자이크한 사색의 도출이기도 하다. 이는 그의 인생역정을 통해 우리의 삶을 회고하며 어느새 모두를 둘러싼 우리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전작인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호응에 힘입은 바도 있겠거니와 무엇보다 갈피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현대인들의 걱정과 불안감을 함께 고민하고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대장정에 더불어 동참하기 위해서가 우선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우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온 그가 펼쳐 낸 인생여정의 통찰은 우리 모두를 위한 마음의 치유, 그것과 같다.

 


모든 사물의 이치는 흐트러짐에 대비해 균형을 잡기 위한 일종의 제어장치인 평형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티핑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균형과 회귀본능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나친 맹신으로부터 오는 부작용으로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실제 이 책에서 드러난 에피소드의 큰 밑그림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현상의 편중과 결핍에서 온다. 이러한 삶의 균형의 난제의 해법은 저자가 파헤친 문제의 이면을 통해 가족 간의 소통과 관계의 참된 원형을 그린다 하겠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마음의 지도를 따랐다. 1부에서는 반목과 갈등을 통해 연결된 상호관계의 다양성을 펼쳐 놓고 문제의 핵심을 직접적인 예시로 고찰한다. 대개 심각한 신체장애를 가지게 되면 자포자기상태에 빠지거나 예민한 상태에 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나락의 순간으로부터 마음 다스리기를 통해 자신을 다독이고 갈등의 열쇠를 찾았다. 그가 발견한 열쇠는 우리는 살면서 항상 상처받지만 그 상처는 항상 치유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p.52)라고 일갈한다. 이처럼 고착화된 편견의 관점을 내 안에서 걷어 내어 외부로의 도출을 통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임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2부에서는 삶의 지난한 고통의 순간을 통해 갈고 닦은 천착한 저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집착으로부터 키운 화를 슬기롭게 다스린다. 마치 달구어진 돌멩이를 한가득 손바닥에 올려 놓고 내려놓을 시기를 찾지 못하는 우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불안으로부터의 동요는 마음을 흩트리고 안달 나게 한다. 저자가 짚은 평정의 비밀은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p.122)

 


끝으로 3부에서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의 위대함을 설파하였다. 우리의 자의식은 자가치유능력을 통해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불안으로부터 나름의 보호막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살면서 파생되는 각기 다른 삶의 단상으로 밀도와 강도의 차별화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침잠한 무의식의 본능은 욕망을 갈급하며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 트라우마를 통해 일그러진 마음은 좀처럼 회복하기 힘든 현실의 반영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소한 상실과 박탁의 순간으로부터 욕망을 다스리고 참는 법을 배운다. 욕망은 그저 약간 고통스러울 뿐(p.200)이며 외려 허상에 불과함을 내포한다.

 


흔히 우리는 사랑이란 미명아래 상대방을 구속하기도 하고 참견하며 못미더워 하는 것을 인지상정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모습이로 착각하고 사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과신과 집착으로부터 오는 편견의 받침대를 통해 평행의 상태를 추구하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아집, 불평, 불안이 파생한 삶의 우울한 편린에 불과함을 뒤늦게 깨닫고 어리석음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결국 저자의 철학처럼 인생이란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겠으나 어떻게 받아들이냐도 그 역시 중요함을 사무치게 일깨우는 책이며 각각의 마음의 지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최첨단 내비게이션과 같은 고마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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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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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재치가 넘치고 흥미를 유발하는 재담이나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가진 사람을 종종 보곤 한다. 어쩜 저렇게 맛깔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좌중을 이끌어 가는지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분명 재미없는 말도 시답잖은 화젯거리도 그를 통하면 가히 촌철살인이 된다. 이런 재능은 타고 난 선천적 기질도 한 몫 하겠거니와 길러 진 후천적 인성도 한 몫 하리라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의 저자 홍동원은 재치와 기지가 번뜩이는 재담꾼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 몰래 엿듣던 진기한 무용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던 그런 재미남과 상상력이 넘쳐 난다. 게다가 디자인으로 밥 벌어 먹고 산다는 저자의 직업이 더욱 흥미를 유발하였으리라. 기실 따져보면 디자인의 세계에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는 일종의 편견과 자유분방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이는 것만 믿고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연유로 디자인이라는 화려함이 창출하는 멋진 외투와 마음을 사로잡는 언어의 향연에 빠져 속을 드려다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여 적재적소에 절묘하게 어우러진 디자인의 힘에 압도되고 푹 빠져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일이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쉽게 되는 것이 있을까? 뼈를 깎는 고통과 처절한 경쟁의 속성에 한시도 여유를 찾기 힘든 곳이 디자인의 세계가 아닐까.




이 책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사유를 통해 모은 저자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담아 낸 이야기는 읽는 이를 공감의 큰 틀로 요동치게 하는 힘이 숨어 있다. 더불어 386 기수세대로서의 역할과 소임이 무엇인지 반듯하게 드러낸 저자의 심상이 돋보이는 글이다. 민주화의 격동기를 거쳐 오면서 저자를 일으키고 세운 선연한 가치가 세대를 연결하는 소통, 그것이다. 구속이나 핍박,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뜨거운 정열의 가슴으로 품어 잉태한 삶의 열정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기에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의 방향을 제시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만약 이 책이 개인적 신변잡기나 에피소드에 그쳤다면 그저 그런 가십거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이렇듯 디자인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생활인의 중심으로 스며들게 한 소통도 저자의 역량이다. 게다가 디자인이 우리의 일상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것도 우리를 자극하기에 차고 넘치는 소재다. 보이지 않게 만들어 진 계층의 층위의 시각과 인식을 통합하고 대중들의 시선과 다를 것 없다는 인식의 확대가 이 책을 소통하게 만드는 커다란 강점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서야 베끼기가 난무하고 짝퉁이 판을 치는 혼탁함에 너그러웠던 것도 디자인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사치였다. 제품의 품질만 좋고 싸기만 하다면 최고로 치던 시절이었다. 경제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우월주의에 경도된 세상은 우리의 관념마저 오염시켰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디자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념은 디자인 바닥에만 통용되는 가치는 아니다. 사회 전반에 퍼진 악화의 영향이다. 상업성에만 치중해 정작 중요한 정서를 놓치고 있는 이 시대가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판에 박힌 듯 유치찬란한 디자인의 소산도 현재는 문화를 이끌고 아우르는 아이콘으로 변모하였다. 디자인은 삶을 담고 인간을 그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학벌로 줄 세우고 연줄로 이어지는 관행의 독버섯이 버젓이 자라나도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정열이 담긴 디자인은 시대를 대변하는 문이다. 아톰이나 마린보이, 디즈니와 같은 제국주의에 경도되었어도 저자의 도전정신이 낳은 산물은 우리를 통합하고 모으는 힘을 촉발한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인정할 때 우리는 불신과 폐단의 악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저자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시대를 인식하는 힘을 배우고 상상력으로부터 파생되는 무한한 부가가치에 주목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며 이 시대를 사는 필요조건을 채우기 위해 필요로 한 것이 바로 상상력, 그 원대한 세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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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외제니 베글르리 지음, 이소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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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철학에 대한 고차원적인 물음에 참으로 가볍게 대한 편이다. 현상세계의 가벼움과 관념세계의 무거움 사이에서 오는 부정할 수 없는 난해함에 회피로 일관했다. 오늘도 치열하게 현실의 줄타기를 거듭한다는 세속적 만족으로 애써 자위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철학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원형적 통찰에서도 이념의 깊은 심연을 감싸는 의식에서도 무엇이 관념이고 본성인지 구별하기에는 까막눈 그 자체다.

 


그렇다면 이처럼 철학이 어렵고 살갑게 와 닿지 않는 근원적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언어도단에서부터 비롯된 현실감의 상실이라고 본다. 철학이 인간의 도리와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이전에 정념(情念)의 내밀한 본성을 현실에 맞게 쉽게 풀이해야 한다. 선문답으로 일관하는 잡힐 듯 말듯 현학적 경구는 시대의 창을 대변할 수 없다. 하지만 철학이 태동한 뿌리를 보아도 그렇고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다스리는 혜안을 보아도 그렇고 인간의 삶에서 빠트릴 수 없는 분명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이 책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은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한다. 현실과 관념의 간극에서 오는 불안감, 불확실성, 존재의 당위에 대한 물음에 철학의 시각으로 답한다. 인간의 사유와 사색을 통해 이성적 발견을 돕고 왜 살아가는 지에 대한 다양한 틀을 제시한다. 아울러 관념의 잣대를 통한 현세의 통찰을 시도하였기에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공통된 문제를 아우른다.

 


책은 신뢰, 시간, 타인, 자유, 죽음, 사랑, 존재의 장으로 나누어 인간의 삶을 둘러 싼 객체를 대상으로 한다. 긴밀하게 연결된 상호관계를 통해 소통의 장치를 찾고 인간을 지배하는 관념의 인식과 제어를 통해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저자는 각 장의 서두에 핵심적인 주제의 정의와 고찰을 나열하고 철학자들의 사례를 접목시켜 대비감과 집중도를 높였다. 하나하나의 의미마다 농염한 철학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기에 쉽게 읽히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읽어 내기는 행간 사이사이에 담긴 오롯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압축된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으며 현실과의 연락을 시도하며 읽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이 책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삶의 분명한 행동지침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한숨에 읽기보다는 느릿느릿 깊이 있게 호흡을 조절하며 진득하게 음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살아 있고 의식하는 존재인 나에게 사유는 삶에 빛을 밝혀준다.

살아 있고 사유하는 존재인 우리에게 생존한다는 말은 삶의 방법과 이유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더 나은 삶을 모색한다는 말은 연대해서 함께 건설한다는 뜻이다.

정치사회의 존재 목적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유를 통해 안락함에 대한 염려에서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으로 옮겨간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사유는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고장에서 태어났다.

 


결국 철학은 시련을 통해 결핍된 이성을 단련시키고 삶의 불확실성을 통해 자신을 바로 세우는 지혜의 자양분을 공급한다. 획일적이고 단락적인 해석을 지양하고 타자로부터 연결된 자아의 신뢰를 되새기며 시간의 관념을 극복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삶을 돕는다.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물음을 통해 존재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이것이 인간의 삶이 지향하는 바른 삶이요, 요체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저자가 길러 낸 철학적 사유는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에게 존재의 가벼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비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통해 사유의 신성함을 배우고 더불어 올바른 판단력의 주춧돌을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마치 뿌리와 줄기를 연결하는 나무의 수액처럼 우리 삶에 신선한 지혜의 샘물이 넘쳐 나기를 소망해 본다.

 


“철학적인 삶, 깨어 있는 정신과 유쾌한 마음으로 자양분을 얻고 기뻐하는 삶, 어찌 되었든 마지막까지 너를 자유롭고 젊은 마음으로 살게 하는 삶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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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개정판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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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품는다. 지구의 역사와 호흡을 함께 한 시간동안 아낌없이 주기만 하였다. 열정적인 삶을 통해 길러 낸 소중한 날것들을 통째로 말없이 내어 주기만 한다. 이처럼 숲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불가분의 존재다. 그 중 나무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정화하는 필터와 같다. 하지만 이러한 일방적인 시각 또한 인간이 빚어 낸 소통의 인식인지 모른다. 나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 지는 외면한 채 그저 수단과 도구로서의 가치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 <신갈나무 투쟁기>는 아름드리나무의 넉넉한 품을 쏘옥 빼 닮았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신록의 상쾌함에 머리 끝 부터 발끝까지 명징한 느낌마저 든다. 마치 울창하게 쭉쭉 뻗은 청록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들이키는 공기를 들이키는 착각마저 인다. 그러나 책은 드러난 모습과 달리 나무의 치열한 투쟁의 삶을 기록하였다.


보여 지는 피상의 아늑함이 아닌 동심원에 깊숙이 각인된 자연으로부터 배운 본능의 몸부림이며 인고의 삶이다. 살아남기 위해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끊임없이 도전받았다. 신갈나무는 이러한 모든 척박한 환경을 뛰어 넘고 어미의 마음을 도토리를 통해 승화시켰다. 이는 한결 같음이 토해 낸 순수한 삶의 원형이자 변하지 않는 진리다. 여태껏 생각지 못한, 예사로 보아 넘긴 신갈나무의 삶이 흥미롭다. 더불어 나무를 통해 사계의 법칙을 배우고 인간의 교만함을 반성하며 겸손의 미덕을 절로 깨우치게 된다.


저자는 신갈나무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나무의 일생과 계절 변화에 따른 삶의 투쟁을 나무의 눈을 통해 담았다. 틀에 박힌 관념의 교차는 고정된 관념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진리를 찾아 가는 나무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삶의 통찰과 흐름의 과정을 흠모하였다. 인간이 만든 과학의 테두리를 감추고 신갈나무의 부드러운 잎과 강인한 나무 등걸을 통해 숲이 만들어 내는 삶의 하모니를 연주하였기에 단조를 통해 퍼지는 향이 그윽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고유의 색깔과 자신만의 힘을 가진다. 나무는 지구의 나이테에 기록된 경험과 기록에 의해 스스로 지구의 일부로서 인식하며 제 역할과 소임을 다 한다. 아마도 치열한 삶을 살기 위해 순리대로 이끄는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제 힘으로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가 고차원적인 삶의 철학인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만이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저지르고 합리화하며 묵살한다. 인간의 탐욕과 파괴가 만든 결과는 자연을 변형시키고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인간의 일그러진 욕심과 교만이 만든 현실은 자연을 위협하는 어리석음임을 이 책은 행간에 담았다.


책은 신갈나무의 일대기로 구성되어 있다. 신갈나무는 참나무 과에 속하는 나무로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에 속한다. 굳이 저자가 신갈나무에 중점을 둔 이유는 우리나라의 산림을 이루는 주요수종으로 오랜 세월동안 소나무와 경쟁하며 산천의 터줏대감 노릇을 톡톡히 해 오던 낙엽활엽수이다. 드러난 이유 외에도 강인한 생장의 웅장함과 올곧음이 눈길을 붙들어 맨 것도 한 몫을 하였을 것 같다.


신갈나무는 생장 자체의 순환이 녹녹치 않다. 씨앗을 뿌리고 줄기를 싹 틔우고 가지를 뻗치는 매 순간마다 나무를 위협하는 포식자와의 치열한 방어와 몸부림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신갈나무는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았다. 습한 기운과 척박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생장하는 동인으로 승화시켰으며 진정한 숲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 하였다. 개척의 삶이 무엇인지,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기 위해 타이밍을 잡아 치고 빠짐의 절정이 무엇인지를 묵묵히 보여 주는 절정의 기교를 구사한다. 실로 근엄함마저 든다.


신갈나무는 적응과 타협을 통해 여유와 관용을 스스로 체화하였다. 제 몸을 내어 기생하는 식물에도 밋밋한 자태를 가진 꽃의 아름다움을 품어도 신갈나무는 꿋꿋이 성장을 계속한다. 포기할 줄 모르는 의지와 신념을 가진 불굴의 전사처럼 한결 같이 하늘을 열망한다. 이렇듯 신갈나무를 통해 우리는 삶의 정체성과 신념의 진리를 따라 배울는지도 모르겠다. 신갈나무는 생존의 불확실성을 딛고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오늘날 숲의 주인이 되었다. 신갈나무는 흙과 비와 햇빛을 자양분 삼아 오롯이 그 왕좌에 올랐다. 다시금 후세에게 왕좌를 넘겨주고도 아낌없이 내어 주며 찬란히 흙으로 돌아간다.


이렇듯 신갈나무를 통해 다양한 상념을 제공받았다. 더불어 다양한 수종의 식물과 나무의 구조 및 계절 변화에 따른 생장법 등을 중간 중간 공으로 배웠다. 실제 숲을 좋아하기만 하였지 어떤 세상이 있는지는 매번 호기심 밖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돌봄의 가치를 나누었으며 오감을 자극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저자들의 진솔한 삶의 흔적이 돋보이는 보기 드문 과학서적을 만나 오랜만에 개운함을 만끽하였다.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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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쉽게 가르치는 유아영어 - EQ지수를 높여주는 우뇌 영어학습법
정부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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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문화적, 관습적 토양으로 익힌 모국어의 틀에 새로운 외국어를 의식세계로 밀어 넣는다는 것은 가히 상당한 노력이 뒤따른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환경은 영어에 미쳐 돌아간다. 사회인으로서 능력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항상 우위를 점하는 것을 보면 당체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 의심마저 든다. 그러나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은 커다란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할 수 없이 영어를 잘 해야 된다는 것이 또한 정답이다.


이러한 영어만능시대에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당연 고민거리와 화두가 영어로 이어지는 것 또한 무리도 아니다. 시중에 넘쳐 나는 영어교재, 영어유치원, 영상물 등 각기 제 각각 나름의 팔색조를 자랑하며 만사형통을 부르짖지만 실상 어떤 교재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어느 시점에 접근하여야 할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만약 부모가 원어민에 근접하는 수준의 회화능력을 구사한다할지라도 아직 인지 및 사고체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아이를 염두에 둔다면 이 또한 고립무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엄마가 쉽게 가르치는 유아영어⟫의 저자 정부연은 ‘아트 잉글리시‘라는 독창적인 영어교수법을 개발하여 현재 국제어학개발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책을 펴낸 동기 또한 무분별한 암기식 교육과 획일적인 선행교육의 폐단을 바로 잡고 한국인에 맞는 영어교육방향을 제시하였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아울러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고민과 걱정거리인 영어교육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저자는 유아기 영어교육의 패러다임을 뇌의 역할에 따른 차별성을 통해 전환코자 하였다. 우뇌에 중점을 둔 언어혁명은 아이의 감성을 키우고 브로카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천부적인 능력에 중심을 맞추었다. 인간의 뇌는 좌우의 기능적 차별로 인해 좌뇌는 이성적, 계획적, 분별력에 의지한 수리, 논리적 사고를 관장하며 우뇌는 감성적, 공간적, 음악적, 예술적, 직관에 의지한 창의적 사고를 관장하는 명확한 역할구분이 된다.


이처럼 우뇌중심의 프리즘을 통해 영어를 배우게 되면 그 효과가 실로 대단함을 역설한다. 이를 통해 아이가 스스로 즐기며 몰입하게 되며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감성을 발달시키고 창의적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지지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우뇌학습을 통한 영어교육의 중심에 저자는 애착형성이 원만한 엄마가 있기를 바란다. 엄마를 통해 모국어로 충분한 관계를 형성하고 말문 열기에 돌입할 것을 권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영어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부모가 가이드를 해 주는 역할에 주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검증되지 않으며 문화적 코드가 다른 원어민강사보다 오히려 부모의 관심이 아이의 말문을 여는 첩경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밑바탕에 저자가 제시하는 연령별 학습교재를 통해 놀이와 학습을 통한다면 아이의 이중언어 구사능력은 순풍에 돛단 듯 날아 갈 것으로 말한다.


비단 이 책이 영어의 표준 준거 틀로 유아기 영어교육의 전형적인 방법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각기 다른 개성과 다양성으로 나름의 교육방침이 자리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파닉스나 알파벳 교육과 같은 읽기 교육이 선행되고 말하기가 후행한다고 해서 영어교육이 망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말하기와 읽기의 선후관계의 왜곡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상당한 차이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저것 팔랑팔랑 혹해 벌려 놓는다고 아이가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기에 이제라도 부모가 확실한 전략과 믿음으로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최상이라 믿는다. 이 책을 통해 유아영어교육의 혼란스런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할 기준이 될 좋은 지침임은 사실이다.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좋은 교재의 선택과 활용으로 아이의 감성에 튼튼한 날개를 달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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