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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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통해 왕권의 쟁탈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기 힘들만큼 역겨운 피비린내를 풍긴다. 왕권을 향한 도전자의 삶과 수성하기 위한 삶은 항상 교차점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더불어 역사의 무대에 가려지고 왜곡된 그들은 다름 아닌 패배자의 멍울을 온전히 뒤집어쓰게 되며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이렇듯 절대왕정의 욕망과 영욕의 세월에서 사라진 조선왕조 5백년과 운명을 같이 한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의 삶은 실로 신산하기 그지없다. 


이 책 <왕이 못 된 세자들>은 권력의 심장부에 섰던 왕들의 일생을 그린 것이 아닌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이용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독과 비운의 운명을 살다 왕이 되지 못한 권력의 2인자인 조선의 한 맺힌 세자들의 삶을 녹아냈다. 실록과 약전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겸비하여 정황적 자료를 토대로 굳어 버린 역사의 흔적을 되살렸다.


조선왕조는 전통적인 유교주의 사대국가이며 전제왕권이 통치하는 절대권력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의 이면에는 비록 혈육이라 할지라도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피륙을 도살하고 비겁한 술수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대권의 승계와 견제를 위해 세자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왕과 세자의 관계가 미묘하고 복잡한 애증의 관계로 밖에 점철될 수 없었던 연유 또한 왕을 위협하는 것으로 막강한 정적으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듯 끊임없이 반복되고 되풀이되어 왔던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력의 정점과 알력의 중심에 오롯이 서 있던 세자는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린 나이부터 서연과 학문에 몰두할 것을 강요받아야 했으며 자유를 빼앗긴 삶을 살아야 했다. 심지어 하고픈 일조차 맘 놓고 하지 못하는 마치 날개 꺾인 새처럼 항상 감시와 견제 속에 고독의 삶을 감내해야만 했다. 차재에 권력을 승계하여 손아귀에 넣어 권세를 쥐락펴락한들 그 고단함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삶과 맞바꾸어 희생할 만큼 값진 것이었을까? 하물며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린 바람에 진 꽃봉오리라면 어찌 원통하지 않을까.


저자는 조선왕조의 영욕과 오욕의 세월동안 왕이 되지 못하고 져버린 세자 12인의 삶과 애환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문헌에 기록된 성마르고 건조함 일색인 내용을 심리적 정서의 상황관계를 흥미롭게 재정립하였기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왕권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의 이면을 타자의 시선으로 담아 정리하여 놓았기에 그들의 삶이 더 없이 애처롭다. 


실제 사도세자는 영조대왕의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받았으며 스스로도 신동에 가까운 영민함을 보였다. 영조의 권력이양소동의 속내에 매번 알면서도 석고대죄하며 뜻하지 않는 불충의 죄를 묻는 삶을 살았다. 세자를 통해 조정을 견제하고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었다. 이렇듯 구중궁궐 속에서 펼쳐지는 서민들과는 유리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혹하기까지 하였을까 못내 안타깝기 까지 하다.


타고난 천성과 품은 원대한 뜻이 왕의 눈에 거슬릴까 광기로 내달렸을 양녕대군의 삶은 차마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그것이었다. 인조를 대신하여 명나라의 인질로 심양에서 오랜 세월을 유배 보낸 소현세자의 고단한 삶과 엉켜버린 이기적인 시선들은 무엇이 이토록 왕권에 집착하게 하는지 되묻게 하여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내 쳐져 진 삶이 굴욕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지나친 부정으로 아버지 광해군과 함께 폐위되어 버린 폐세자 이질은 누가 그의 시커멓게 타버린 속을 헤아릴 수 있을까.


이렇듯 조선왕조에 깃든 왕권을 둘러 싼 권력투쟁은 치열하고 비극적이기 짝이 없었다. 어찌 보면 국운이 다 해 쓰러 져 버린 조선의 침몰은 예견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대주의에 젖어 상업을 배척하고 붕당에만 치우쳐 근시안적인 국수주의에 몰두한 채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였다. 조선왕조의 몰락은 자가당착의 결과였다. 그 속에서 한반도의 운명과 함께 한 고종, 순종에 이어 조선 마지막 왕 영민왕의 기구한 삶은 조선의 명멸과 쇠락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오버랩 됨을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겹쳐진다. 역사는 누구의 입장에서 어떠한 관점으로 기술되었느냐에 따라 해석과 평가가 달라짐을 여실히 보여 주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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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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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하세요.

       그러면 엄마별이

       당신의 슬픔을

       따뜻이 감쌀 거예요    

차인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배우이며 공인이라는 외부적 지위를 안고 산다. 그런 그가 책을 펴냈다. 그것도 단순한 에세이나 신변잡기 위주의 흥미본위 글이 아닌 장편소설을 써 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접하기 전에 편견이라는 시선을 보낼지 모르겠다. 그가 쌓아 온 명성과 후광을 통한 유명세를 등에 업고 펴낸 마치 상업주의의 가치와 결탁한 그렇고 그런 소설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이처럼 사회의 인식과 편견의 골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끝을 알기 어렵다. 기존의 고정관념이 뿌리내린 현실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그것도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검증받기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편견의 인식은 일종의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것으로 쉽사리 떨쳐 버리기 싶지 않은 부정적 시각이다. 더구나 유명세까지 타고 있는 공인의 경우에는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하지만 장벽을 허무는 주요 동인은 진솔함이 묻어나며 삶을 대하는 인격적 완성에서 비롯된다. 그러하기에 그의 금번 도전과 인식 있는 태도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도 배우이기 이전에 자연인이며 뜨거운 피 끊어 넘치는 우리네 민족의 후손이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이 책 <잘가요, 언덕>의 작가 차인표는 반듯한 심성과 올곧은 겸손의 자세로 대중들의 선망과 선한 이미지로 각인된 배우다. 이런 그가 10여년의 세월을 각고의 노력과 창작의 고통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신산한 삶을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이처럼 우리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아픔과 상흔을 남긴 제국주의망령의 흔적을 동화 체의 형식을 빌려 구전하듯 녹여냈다.


이야기는 절대선도 절대 악도 양립할 수 없다는 작가의 진중한 의도를 통해 엇갈린 시간에 뿌려진 갈등을 통합하고 보듬어 주며 치환을 통한 용서의 작업을 시도하였다. 전형적인 대결구도를 통해 주인공 용이와 순이의 갈등구조를 감성어린 이야기로 이어가고 일본제국 장교 가즈오의 연적과의 갈등을 통해 평범한 테마로 전이를 막아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소재로 채웠다. 또한 어디에나 등장하는 주인공을 돋보이고 부각시키는 도구로 주변 인물들의 개성 있고 적절한 조합은 마치 한편의 작가주의를 표방한 그의 연기 인생이 묻어난다. 이것이 그의 글의 강점이자 감성의 교차점이다. 비록 거칠고 정제되지 못한 표현에서 오는 어색함이 다소 걸리기는 하나 더불어 소통할 수 있는 묘한 매력이 흐르는 우리네 글이라 하겠다.




저자는 용이와 순이를 통해 많은 것을 담고자 시도하였다. 용이의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 짓눌린 과거의 아픔의 상처를 대리만족을 통한 심적 갈증의 해갈과 순이를 통한 포용과 자애로움의 의미를 동시에 전하여 대승적인 용서의 무대를 만들고자 하였다. 더불어 악인이면서도 이념과 행위에서 갈등하고 번뇌하는 일본장교 가즈오의 참회의 과정을 소묘함으로써 용서의 대상을 특정화하고 구체화하여 진정한 용서의 행위에 다르지 않는 것으로 승화하였다. 또한 엄마별을 통한 어미의 넉넉한 자비로운 끌어안기를 통해 모두를 보듬는 정화작용이 이 글의 백미로 작용하였다. 이렇듯 용서는 과거의 앙금을 제거하고 표출하며 드러냄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을 해소할 때 비로소 용서의 과정이 성립하고 과거의 행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과거는 용서하고 현재는 사랑으로 미래는 희망을 되살리는 통합의 과정이 전개된다. 아마도 저자는 “잘가요, 언덕”에 깃든 상징적 의미를 용서의 매개체로 설정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야기를 관통하는 플롯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정서의 한恨과 정情의 분연한 표출이다. 저자가 위안부할머니를 통해 오랜 세월 각인된 통한의 감정을 글로나마 대신하여 뿜어 낸 진정한 의미는 정화와 포용의 의미이다. 이미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더 이상 기억할 대상도 객체도 주체도 사라지는 상태다. 우리가 당신들의 신산한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또 다시 그들이 야만스럽고 천인공노한 행위를 되풀이한들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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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이해 편 EBS 지식채널 건강 1
지식채널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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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각종 미디어 매체는 ‘우리 몸 제대로 알기‘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앞 다투어 건강에 대한 프로그램을 생산해 낸다. 대개는 잘못된 정보를 통한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은 잘못된 건강지식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 본래의 의도이자 취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이라는 것이 시청률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흥미위주의 상업성 방송으로 원래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왜곡된 정보를 확대재생산하는 근원지가 되어 가는 요상한 세태라 하겠다.


이와 같은 무분별한 왜곡된 정보와 편중된 내용을 일삼는 프로그램 틈바구니에서 입소문처럼 널리 퍼진 유익한 방송이 공중파를 탔다. 이러한 방송의 내용을 모아 기존의 관념을 허무는 충격적인 사회적 진실의 실체를 보고하고 제대로 된 건강도우미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책으로 출간되었다. 
 


다름 아닌 <EBS 지식채널 건강01>으로 알차고 옹골진 정보만을 모아 우리의 짓눌리고 답답한 가슴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여 준다. 이 책의 주류를 이루는 근간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건강에 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소통되지 못하는 현실에 착안하여 바른 생활을 유도하고 건전한 정신을 고취하게끔 돕고자 하는 의도로 이루어 졌다.

 


우리는 흔히 감기나 몸살이 찾아오면 병원을 찾아 주사로 해결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 주사약의 성분은 감기의 주된 원인을 찾아 퇴치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포도당주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처방된 감기약의 대부분이 선진국에서는 주의사용을 요하는 항생제, 항히스타민제 등으로 이루어 져 있어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감기의 직접적인 치료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생제와 같은 지극히 위험한 약품의 오남용을 부추기는 처방을 하는지 강한 의문을 던진다. 실제 아무런 효능이나 약효가 증명된 바가 없음에도 그 사용을 권장하고 부추기는 주된 이유는 다름 아닌 즉각적이며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적인 특성이 주원인이다. 이러한 약의 오남용은 생체의 자연치유력을 파괴하고 병으로부터 우리 몸을 침범당하는 악순환의 연속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의 주된 사망원인의 부동의 1위인 질병은 식습관에서 오는 암이 주류를 이룬다. 돌연변이 세포인 암이 유독 위장계통에 빠르게 전이되고 발병되는 원인에는 짜고 매운 음식이 주를 이루는 식단에서 비롯된다. 또한 더욱 중요한 암의 주범은 바로 스트레스이다. 스트레스는 심신의 균형을 파괴하고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지속적으로 발현하게 되어 긴장과 이완의 상태를 급격하게 오르내리게 하여 체내의 정상작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그밖에도 책은 우리 몸의 얼개를 개관하고 환경, 체질, 성격 등에서 오는 몸의 변화를 살폈다.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요 사망원인인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인체에 대한 지식은 이제 전문의 영역을 넘어 상식의 수준으로 공유하는 통념으로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이 책에서 일러주는 질병의 원인과 대처방법을 익혀간다면 튼튼하고 건전한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우리 몸을 병들게 하고 허약하게 하는 것의 원인은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건강한 몸에서 건전한 정신이 깃들듯 건전한 정신에서 건강한 몸이 생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우리의 인체는 각기 그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상호보완의 관계 속에 움직이도록 짜여 져 있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는 비결은 적당한 운동과 합리적인 식사, 긍정적 마인드와 적절한 휴식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겠다. 책에서 언급한 이 네 가지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핵심요소이다. 알고 보면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은 쉬운 것에서부터 찾아 돌보는 것에 있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진리이자 불변의 가치이다.



건강, 이제라도 바로 알고 살핀다면 누구나 건강한 삶을 누리지 않을까? 문제는 마음에서 비롯됨을 하루빨리 깨우치는 것이 급선무. 그로부터 얻은 건강으로 누구나 바라는 젊고 탄력 있고 윤기 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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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우울증 - 역사를 바꾼 유머와 우울
조슈아 울프 솅크 지음, 이종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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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의욕저하로 인한 상실로 인지체계의 불안정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의 불규칙을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흔히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생기는 양극 우울증 즉, 무드스윙장애상태가 일반적이나 나이대별 발병 시기에 따라 우울증의 상태도 다르게 발현된다. 이처럼 우울증은 일반적인 정신상태의 원활한 감정조절이 힘든 다분히 침잠된 형태로 나타난다 하겠다.

 


이러한 우울증이 미국인의 신화적 지도자 애브리엄 링컨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겸손과 강직한 삶으로 강단의 의지를 보여 준 링컨의 일생에 우울증이 끈질기게 괴롭히고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다는 주장이 제대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이 책 <링컨의 우울증>의 저자 조슈아 울프 셍크는 전통 현대 심리학의 시선으로 링컨이 남긴 업적을 중심으로 신랄하게 실험의 대상으로 플라즈마의 도마 위에 올렸다.

 


저자는 링컨의 우울증의 유발원인을 통해 삶을 지배당한 멜랑콜리의 근원과 극복과정을 통찰하고 현대인의 우울증 극복방안을 제시하고자 시도하였다. 실제 2007년도 통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원인 중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차지하였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할 만큼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는 정신질환이지만 사회적 요인에 의한 압력 즉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처럼 우울증은 단순하게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치부하기에는 파국효과가 대단함은 알 수 있다.

 


링컨은 20대 초반 우울증의 초기증상인 단극우울증에 노출되었다. 그의 우울증의 시발은 생물학적 기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증상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 진 절망적인 우울상태를 지속시켰으며 유년기 시절 받은 트라우마인 정신적 상흔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링컨에게 보인 1차 우울증의 발현은 적절한 대응책과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표출하였다. 그의 친한 지인 조슈아 스피드 또한 링컨과 유사한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당시 미국사회는 우울증에 대한 경계를 양면성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링컨은 현재의 관점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우울증을 앓은 불안한 정신장애를 앓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저자가 링컨의 우울증이 통상의 환자들과 다른 극복과정을 살핀 것은 링컨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극복방법이기 때문이다. 링컨은 상당시간을 침울하고 비통한 멍한 상태로 그만의 동굴을 만들고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하기는 하였으나 그가 가진 유머의 기질이 대중들에게 뿜어져 나오면 아우라는 실로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이런 링컨의 모습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위인으로서의 신화적 삶을 산 링컨의 단면에 다르지 않다.

 


당시 미국사회는 남북으로 갈라진 노예제도의 운영에 휘그당과 민주당의 갈등이 극한에 다 다른 상태에 있었다. 통상 알려진 바와 같이 링컨은 노예제도의 위해성과 인간 존엄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미국 수정헌법과 대치되는 것으로- 상당수 보수주의자들과 대립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지만 링컨 또한 정치인의 전형적인 외양을 갖춘 인물이었기에 노예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링컨의 전기를 집필한 시기가 동시대에 이루어 진 것으로 보아 불리한 것은 은폐하고 유리한 시각으로 몰아갔음을 지적한다.

 

링컨이 사망한지 올해로 200년째를 맞이하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미국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하는 애브리엄 링컨의 위대한 삶을 재조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흠집 내기라도 하듯 우울증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수면위로 끌어 올린 저자의 담론과 통찰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더불어 전통적인 프로이트의 이론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기반으로 무의식세계와 의식세계와의 충돌을 실험적인 방법으로 역사 속에 스며든 링컨의 흔적을 되돌린 것은 신선한 시각적 교류라 하겠다.

 


이렇듯 이 책의 저자가 밟아 간 링컨의 행적은 바쁜 현대인의 현재에 대입하여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급변하는 변화의 중심에 정서적 충격이 심각한 상흔을 남기는 것에는 우울증이라는 요소가 똬리를 틀고 있다. 우울증은 증오나 분노로 내면적 불안정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임을 떠올려 볼 때 링컨의 철저한 관리와 통찰을 통해 극단의 삶을 조절할 수 있는 모범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심리학에 기반을 둔 링컨의 이면이 우리에게 다른 링컨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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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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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치열한 경쟁의 전장에서 숨 돌릴 틈 없이 앞만 보고 살아 온 사람이 한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참담하기 이를 때 없음은 분명하다. 경쟁사회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 피비린내 나는 악취를 풍기는 전쟁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현실이다. 더 빠르고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나아가는 것만이 살길이자 미덕이 지배하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쌓은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일말의 재고의 여지도 없이 가차 없이 제거되는 세태는 섬뜩하기만 한 불안한 현실이다.


더욱 우리를 움츠려 들고 자괴감으로 몰고 가는 현실은 안정이 없다는 미래이다. 현재를 위한 치열한 도전과 열정이 기업의 비겁한 생리에 따라 움직이는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현실은 더욱 비참하게 한다. 게다가 이미 타성에 젖어 있는 자신을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더없이 힘든 일이다.


하지만 환경은 스스로 체득하는 의지와 신념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이 책 <땡큐! 스타벅스>의 저자 마이클 게이츠 길은 내로라하는 광고업계의 선두지휘자로 주름잡던, 한마디로 잘나가던 사람이었다. 열정과 정열을 모두 쏟아 부을 만큼 전도유망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의 암울한 현실이다. 이러한 탐욕스럽고 냉혹한 기업 구조에 따라 주류사회에서 밀려나는 불운을 맞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흘러간다.


그에게 찾아 든 막막한 현실이 불운의 그림자를 깊게 드리웠지만 그는 긍정이라는 신명나는 에너지로 습관처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부적절한 행위로 결혼생활마저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인식하지 못했던 다른 세상과 만났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64세의 신체적 정신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의연히 다시금 재기하였다.


우리가 사는 경제사회는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전인격을 부여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경제적 성취와 사회적 성공이 그 사람의 지위를 대변하는 가늠좌로 판단하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지식산업의 자리매김이 노동집약산업보다 우위에 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서열을 만들고 그러한 현실을 인정하게끔 종용한다. 이러한 판단의 합리적인 기준이나 근거가 논리 명확함에도 부자연스러운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을 내면의 본질보다 드러난 외면의 형식으로만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가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동안 배운 것은 다름 아닌 다양성과 상호존중이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목표이자 방향이다. 이러한 목표의식에 배려와 존중이라는 여유가 끼어들기에는 자리가 비좁은지도 모른다. 오히려 능력이나 성과가 뒤처지는 결과에 오로지 책임만을 물을 뿐이다. 나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라는 등식은 성립하기는 하나 여기서 나는 대체되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성공일변도로 기업의 문화가 바뀌는 상황에서 스타벅스를 추켜세우고자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스타벅스가 잘나가는 기업이고 성공의 아이콘이기에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경쟁기업과 차별화를 시도하기 위해서 저자가 성공을 회고한 더 더욱 아니다. 차라리 사람 냄새가 가득 인간미 물씬 풍기는 갓 볶은 커피향 처럼 신뢰와 존중이 깔린 이면을 보여주고자 하였음이며 그러한 환경이 우리가 갈망하는 일하고 싶은 의미에 다름 아닐까 싶다. 그 속에 깃든 기업문화의 저력이 큰 동력이자 차이점이며 내심 부럽기 까지 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르침은 자폭하다시피 추락당한 한 인간의 인생 역전의 재기과정을 되새기자 함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그것에 숨은 속 깊은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는 것에도 있다 하겠다. 삶의 다양성과 성공집착에서 벗어나 상호존중을 토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을 말이다. 또한 과거의 허상에만 사로잡혀 인생을 망치기보다는 건전한 미래를 떠올리고 삶의 방향성을 잡는 것에 있다 하겠다.


이제 사회는 승자에 관용적인 미덕이 지배하던 이념에서 포용하는 겸양과 미덕의 사회로 이행해야 한다. 능력에 따라 서열이 좌우되는 것이 반드시 옳지 만은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능력에 앞서 인격적 도량과 바른 기운이 충실한 건강한 구조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바탕위에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발전하는 것이 시급한 현실이 아닐까 한다. 어찌 보면 감상적인 희망에 젖어 주절거리는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없이는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저자는 인생의 파고와 역정을 모두 겪은 뒤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의 기회와 전환점을 찾아 슬기롭게 대처하였다. 더불어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비뚤어진 편견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며 가슴으로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얻었다. 인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앞만 보고 위에서 군림하는 정상에만 있을 수는 없다. 관성에 젖어 무한 권력을 쥐락펴락할 것 같은 사람도 허무하게 사라지는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지당한 이치이다. 그러한 무수한 변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그가 일궈낸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배워야할 바로 그것이다.


과거는 짧게, 미래는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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