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용서하세요.

       그러면 엄마별이

       당신의 슬픔을

       따뜻이 감쌀 거예요    

차인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배우이며 공인이라는 외부적 지위를 안고 산다. 그런 그가 책을 펴냈다. 그것도 단순한 에세이나 신변잡기 위주의 흥미본위 글이 아닌 장편소설을 써 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접하기 전에 편견이라는 시선을 보낼지 모르겠다. 그가 쌓아 온 명성과 후광을 통한 유명세를 등에 업고 펴낸 마치 상업주의의 가치와 결탁한 그렇고 그런 소설로 치부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이처럼 사회의 인식과 편견의 골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끝을 알기 어렵다. 기존의 고정관념이 뿌리내린 현실에서 한 사람으로서의 그것도 배우가 아닌 작가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검증받기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구별하는 것과 같다. 편견의 인식은 일종의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것으로 쉽사리 떨쳐 버리기 싶지 않은 부정적 시각이다. 더구나 유명세까지 타고 있는 공인의 경우에는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하지만 장벽을 허무는 주요 동인은 진솔함이 묻어나며 삶을 대하는 인격적 완성에서 비롯된다. 그러하기에 그의 금번 도전과 인식 있는 태도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도 배우이기 이전에 자연인이며 뜨거운 피 끊어 넘치는 우리네 민족의 후손이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이 책 <잘가요, 언덕>의 작가 차인표는 반듯한 심성과 올곧은 겸손의 자세로 대중들의 선망과 선한 이미지로 각인된 배우다. 이런 그가 10여년의 세월을 각고의 노력과 창작의 고통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신산한 삶을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이처럼 우리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아픔과 상흔을 남긴 제국주의망령의 흔적을 동화 체의 형식을 빌려 구전하듯 녹여냈다.


이야기는 절대선도 절대 악도 양립할 수 없다는 작가의 진중한 의도를 통해 엇갈린 시간에 뿌려진 갈등을 통합하고 보듬어 주며 치환을 통한 용서의 작업을 시도하였다. 전형적인 대결구도를 통해 주인공 용이와 순이의 갈등구조를 감성어린 이야기로 이어가고 일본제국 장교 가즈오의 연적과의 갈등을 통해 평범한 테마로 전이를 막아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 없이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소재로 채웠다. 또한 어디에나 등장하는 주인공을 돋보이고 부각시키는 도구로 주변 인물들의 개성 있고 적절한 조합은 마치 한편의 작가주의를 표방한 그의 연기 인생이 묻어난다. 이것이 그의 글의 강점이자 감성의 교차점이다. 비록 거칠고 정제되지 못한 표현에서 오는 어색함이 다소 걸리기는 하나 더불어 소통할 수 있는 묘한 매력이 흐르는 우리네 글이라 하겠다.




저자는 용이와 순이를 통해 많은 것을 담고자 시도하였다. 용이의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 짓눌린 과거의 아픔의 상처를 대리만족을 통한 심적 갈증의 해갈과 순이를 통한 포용과 자애로움의 의미를 동시에 전하여 대승적인 용서의 무대를 만들고자 하였다. 더불어 악인이면서도 이념과 행위에서 갈등하고 번뇌하는 일본장교 가즈오의 참회의 과정을 소묘함으로써 용서의 대상을 특정화하고 구체화하여 진정한 용서의 행위에 다르지 않는 것으로 승화하였다. 또한 엄마별을 통한 어미의 넉넉한 자비로운 끌어안기를 통해 모두를 보듬는 정화작용이 이 글의 백미로 작용하였다. 이렇듯 용서는 과거의 앙금을 제거하고 표출하며 드러냄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등을 해소할 때 비로소 용서의 과정이 성립하고 과거의 행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과거는 용서하고 현재는 사랑으로 미래는 희망을 되살리는 통합의 과정이 전개된다. 아마도 저자는 “잘가요, 언덕”에 깃든 상징적 의미를 용서의 매개체로 설정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야기를 관통하는 플롯은 우리 민족의 오랜 정서의 한恨과 정情의 분연한 표출이다. 저자가 위안부할머니를 통해 오랜 세월 각인된 통한의 감정을 글로나마 대신하여 뿜어 낸 진정한 의미는 정화와 포용의 의미이다. 이미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더 이상 기억할 대상도 객체도 주체도 사라지는 상태다. 우리가 당신들의 신산한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또 다시 그들이 야만스럽고 천인공노한 행위를 되풀이한들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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