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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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쌍성(雙星)의 밀고 당기는 힘처럼 자연의 법칙이다. 음과 양, 사물의 겉과 속, 어디든 존재한다. 듀플렉스처럼 상호 독립하여 병존하지만 불가분이다. 인식이 스치는 모든 곳, 더블이 지배한다. 획득가능한 모든 것에 더블의 관념이 기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인간에게 실현가능한 변수의 조합은 더블의 관념에서 발현하는지 모른다. 박민규 작가의 더블에 담긴 그 의미, 행과 불의 경계이다. 상상과 현실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마치 우주의 언어나 미래의 언어로 기록된 그의 문학세계는 자연법칙을 담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말한다. 이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가리킨다. 때론 섭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섭리는 인간의 관념을 고착화하기도 한다. 당연한 인과율의 법칙, 그 속에 지배된 인간의 불완전한 의식은 새롭거나 기이한 상태를 두려워한다. 따라서 박민규의 이 책 <더블>의 단편은 연역적 관계를 차단하는 존재의 반항을 오롯이 천명한다. 그의 생각의 틀 속에서 짜여 나온 이야기의 실재는 기존 관념의 존재를 포섭과 파괴의 양립된 현상으로 병존하며 평행선을 내달리는 가히 더블의 연속이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중어의 반복을 통해 공고히 다져지고 흡입된 관념의 거름망 속으로 박민규式의 언어로 재해석된다. 그의 이야기는 그로테스크한 상상의 변주다. 현실이 존재한다면 상상이 존재한다는 실체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1세기를 사는 동시대의 인류에게 전하는 공감의 또 다른 코드라고 할만하다.

 

<더블>은 총18편의 단편 선으로 두 권의 양장본으로 묶였다. 형태는 디스크자켓처럼 작품의 본질을 적확하게 제시하는 일러스트와 작가의 소회로 구성되었다. 박민규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 흔적 등을 특정의 누군가에게 헌정하는 방식으로 틀과 형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의 시도는 규격의 틀에 재단된 눈과 마음을 유연하게 해 준다. 기실 18편의 단편에 담긴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를 구성한 그의 방대한 창작력에 경의를 표하게 되지만 겉과 속에 담긴 각기의 본질을 은연중에 시각화시켜 주는 그의 배려가 더욱 도탑게 다가선다. 생각이 곧 문화가 된다는 사실처럼 그의 이야기 속에는 범 글로벌문화를 표방한다. 지역과 우주를 가르는 광활한 무대배경, 도시인의 고독한 삶, 인간의 존재의미를 다루는 그의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반전과 허무의 일상 등이 고스란히 차오른다.

 

트렌드나 문화의 일종이라면 <더블>은 지구의 언어가 해석가능한 모든 언어로 표현되고 공감할만한 소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견고한 상황을 가볍게 무너트리는 공력, 그의 필력이다. 인류가 탐욕에 의해 멸망하는 절체절명의 암흑의 상황을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일상과 포개는 그의 상상력의 빚어낸 이야기 <끝까지 이럴래?>. 인간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사소한 불편의 해결일지도 모른다는 불변의 진리인지 모른다. 이러한 사실은 BC1700년전 한반도를 무대로 한 <슬>을 관통하는 관념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의 생명을 지탱하는 욕망의 해갈의 근원적인 물음도 사소하거나 단순한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박민규의 이야기에 걸려든 관념의 거름망은 인간의 의식을 양분하는 갈래의 커다란 경계를 해체하고 분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관념은 18편의 전편을 지배하는 공통의 메타포이다.

 

그래서 더블의 중첩적인 시선으로 이 책에 담긴 이야기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박민규의 관념에 포위당하고 공감의 마법에 어김없이 걸려들게 된다. 치명적인 유혹이거나 감미로운 선율이든 시나브로 젖어드는 그의 이야기의 깊이에 지구의 해저 끝까지 압력의 밀도가 차오르는 <깊>에 주억거리게 되고 <아치>에 올라선 현대인의 불일치에 동조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더블>의 안에 담은 이야기를 동일한 패턴으로 구동시키지는 않는다. 생각의 엔진을 가동하고 가열되고 분사된 에너지로 가속의 변속을 폭발하듯 그는 우주로 날아가고 시공을 넘나든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크로만, 운>이다. 묵시록적인 소설인 이야기는 뉴질랜드의 작가 버나드 베켓이 쓴 <2058 제너시스>와 궤를 같이 한다. 박민규의 이야기가 인간의 존재의미를 고찰한다면 버나드 베켓의 이야기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철학적인 시선으로 묻는다. 이러한 박민규식 해학은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에 보다 정확하게 드러난다. 스나이프, 동성애, 무차별 처단, 배설, 섭취의 일련의 행위들에 따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법한 조합의 인자를 상대로 엉뚱한 곳에 불시착한 느낌처럼 낯선 감각을 토해낸다.

 

때로는 이렇게 낯설고 거친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더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그가  생뚱맞은 상황을 현란하게 주무르고 고정된 퍼즐조합을 이것과 저것의 지칭을 혼합하는 작업을 선행한 것처럼 뒤따르는 결과물 또한 자연과 부자연의 경계를 구획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이나 재미의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조합의 재구성을 시도하였다는 결론은 성급하다. <루디>의 냉혹하고 인과관계가 단절된 행위를 보면 미루어 짐작이 가능해 진다. 절벽의 끝, 폭풍 같은 질주로 마감하는 장면은 인간의 욕망이 브레이크 없는 전차와도 같다는 무지한 현실에 다다른다.  따라서 박민규가 그의 단편 하나에 실은 의미의 총합은 여지 혹은 공백을 통한 공감의 유도나 해석으로 가능케 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보이는 세계, 보지 못한 세계, 다다르지 못한 세계, 정복하였으나 오류로 점철된 세계를 무시로 경험한다.

 

과연 인간이 가 닿을 수 있는 경험의 거리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박민규의 이 책에서 하나의 답을 보았다. 우문현답이 아닌 현문우답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상상력의 뭉치에서 무엇을 만들지는 개별의 몫이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에 등장하는 잘 나가던 세일즈맨의 비극적인 현실처럼 붙들 곳 없는 현실에 매달려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기운다. 화성으로 자동차를 팔러 가고 그 곳에서 만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 흑인 세일즈맨과의 동질의 교감, 황망한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하기에 나는 <더블>의 세상에서 희로애락의 4중주를 만끽했다. 진실과 거짓의 양면 외투처럼 세상은 그렇게 움직인다. 스테파니 아가씨가 보았던 그 <별>이 곱디 고왔다면 박민규식 <별>에 쏟아진 풍광은 현실이다. 결국 세계는 양면, 듀플렉스의 반영이며 더블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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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17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규 다른 책 주문했더니,소책자가 왔더라구요.
다른 분 서재 글 보고 망설이고 있었는데,이 리뷰 보니 읽고도 싶어지는 걸요~
별의 해석도 재밌구요~
요즘은 양면,더블이 대세인가 봐요,하루키의 1q84도 그렇담서요~^^

마녀고양이 2010-11-1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 보면서 입 벌리고 감탄 중입니다.

곡우님께서 별 다섯개를 주셨다니, 어쩐지 믿음이 갑니다. 최근 들어
국내 작가에게 너무 많은 실망을 했던터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만...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도 리뷰를 보면서 1Q84를 연상했는데, 나무꾼님두 그렇게 보셨나보네요.
세상의 양면, 또는 현실과 이상, 선과 악,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곳들, 데미안도 생각나구요.

좋은 하루되셔요.

穀雨(곡우) 2010-11-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더블이란 제목이 주는 인상, 전 양면성으로 보았어요.
자웅동체처럼 늘 붙어 다니는 자연적인 법칙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1Q84의 구조와 비슷하게 나아간 모양입니다.

마녀고양이님...박민규의 책을 드문드문 접했지만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구조가 흡족하더군요. 이야기에 따라 달리 해석가능하겠지만
제게 그 네러티브가 맞았던 모양입니다.^^

비로그인 2010-11-18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쯤되면 본 책보다 리뷰의 심도가 더 깊다고 봐도...^^
곡우님의 넓고 깊은 감상이 더블과 함께 따따블로 버무려진 감동 그 자체입니다.
얼른 읽어야 하는데, 어흑~~밀린 책들이...^^

穀雨(곡우) 2010-11-19 13:19   좋아요 0 | URL
아~~박민규 작가님이 읽으면 웃겠습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데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