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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궁의 노래 - 잊혀진 여걸 강빈 이야기
김용상 지음 / 순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역사를 들여다보면 왕이 되지 못했거나 권력을 쟁취하지 못한 인물에 대한 조명은 치열하다. 필요에 따라 압축되거나 혹은 삭제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하기에 빈약한 약전이나 기록을 바탕으로 주춧돌을 쌓고 보와 기둥을 세운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검은 두건을 쓰고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어가는 심정과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축약되고 매몰된 기록을 바탕으로 잊힌 영웅들의 복원작업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함이 녹아들어 있다. 발굴자에 의해 소환되어 생생하게 불타오른 뜨거웠던 현장을 토해내기라도 할 때에는 이것으로 모든 긴장과 오류로 점철된 과거는 일시에 무너진다.




        과거는 이렇게 다시 쓰인다. 무너진 그 자리에 새롭게 생명의 빛을 부여받아 든든한 역사의 도량으로 조밀하게 엮이고 뭉쳐진다. 이것은 시간의 물리적 개념을 확장하는 유연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념상 알고 있는 역사의 사실적 정의는 이념이나 명분, 권력에 의해 편향되고 왜곡된 해석은 심각한 오류를 유발한다. 이처럼 역사의 진실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로 회귀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을 유지한다면 이 책 <별궁의 노래>는 버려진 역사의 복원작업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대개 파란만장한 역사의 복기는 후대에 가서 빛을 발하곤 한다. 조선조를 통틀어 암울했던 시기나 권력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힌 인물이라면 그 후보로 으뜸으로 꼽히고 회자 되는 이유도 그러하다. 게다가 신분, 남녀의 차별이 심했던 봉건제 사회에서 그들의 활약이 더욱 눈에 띄게 도드라져 보였다는 것도 호기심을 부추기는 주효한 이유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인물 중 한명인 소현세자는 역사가들의 호기심에 불을 댕기기 좋은 재료다. 아버지 인조를 대신하여 볼모로 8년간의 모진 고통을 겪었음에도 일신의 명멸을 피하지 못한 불운한 인물이 그였다. 최근 김인숙 작가의 <소현>에서 볼 수 있듯 애환과 번민의 고통은 이러한 시류를 잘 대변해 주는 빼어난 작품 중에 하나다. 해서 이 책 <별궁의 노래>도 그의 연장선에 서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저자 김용성의 오랜 신문사 기자의 경력이 말해주는 것처럼 원칙과 허구가 완벽한 호흡을 맞추어 춤을 춘다. 소현세자를 위시하여 주인공인 민희빈 강 씨의 비범한 일화를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살려 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밑천으로 민희빈 강 씨는 여걸로 그려진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동을 합리적인 이성과 기준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향해 경영하는 세자빈의 모습은 시쳇말로 알파 걸의 우상이자 여걸이라고 칭할만하다. 신분의 벽을 온몸으로 밀어 내고 굳건하게 일어선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힘들었던 시대다. 그러나 그녀는 부국강병을 위해 무엇보다 실사구시의 경영이 중요하였음을 통감했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녀의 강단한 행보와 실용적 의식은 후대에서야 빛을 발하지만 치명적인 독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인물의 강점과 약점을 교차해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갈등의 전조가 모두 하나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역사는 늘 그랬다. 개혁의 중심이 곧 폭풍의 진원지였음을 말이다. 그래서 세자빈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술되는 전개방식도 고정된 결말을 향할 수밖에 없는 한계치를 이미 내포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영역에 철저하게 구속되고 피할 수 없는 영향력 아래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모든 팩션소설은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외면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틀이 지어지고 얼개가 다듬어지면 실록의 단문은 작가의 상상력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낡은 허물을 벗고 새롭게 변신을 거듭한다. 그렇게 태어난 팩션소설은 때로는 기대치 못한 변화를 거머쥐기도 한다.




        이 책은 딱 그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다. 가려지고 숨겨진 이면을 제대로 보고자 하는 심리적 연대의식도 한 몫 했겠으나 진실을 향한 시대적 반영이다. 권력에 의해 무참히 도륙되고 배척당한 아픔을 통해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쓰지 않겠다는 민중의 염원인지 모른다. 실제 강빈이 김수진이라는 묘령의 인물을 거느리고 개성상단에 버금가는 커다란 상단을 운영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또 소현세자가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였는지 학질에 의해 병사하였는지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실록에 나타난 모든 기록이 전부다.




        그래서 이 책의 탄생은 숱한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지표가 된다. 이러한 가능성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흐름이나 고증의 과정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야 함은 당연한 사실이다. 터무니없는 추측이나 과장된 행적의 부풀림은 부작용이 반드시 뒤따른다. 하지만 이 책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싶다. 명백한 사실성을 배경으로 적절하게 버무려진 상상력이 전체를 장악하였기에 단지 나의 기우에 불과하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김인숙 작가의 <소현>을 함께 읽는다면 재미가 더욱 배가될 것 같다. 김인숙 작가의 글이 짜임새 있게 절제된 아픔을 노래한다면 김용성 작가의 이 책은 끌어안아 분출하는 아픔을 그린다는 차이가 있다. 또 소현세자와 더불어 강빈의 삶도 동시에 접한다면 전체적인 밑그림이 보다 더 입체적으로 형성될 시너지를 제공해 준다. 나아가 두 작가의 상상력의 차이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을 통해 왜 소현세자가 아버지 인조로부터 외면당하고 그 중심에 민희빈 강 씨가 연루되어 일가가 몰살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는지 무성한 추측만 난무하지만 작가가 만든 상상력의 탄탄한 프리즘을 통해 기대치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늘에 있을 때는 비익조처럼 붙어서 날아다니고

하늘에 있을 때는 비익조처럼 붙어서 날아다니고

땅에서는 연리지처럼 한데 얽혀 사랑하자 하였네.

아득히 먼 훗날 이 세상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언정

두 사람 사랑의 한은 영원히 끊이지 않으리라

당나라 백거이의 시 <장한가 비익연리 比翼連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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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6-2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런 책도 있었군요. 저는 소현세자랑 사도세자 대목만 접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소현세자는 더하지요. 사실 강빈을 알게 된 것은 한국사전이었는데 마지막에 자막 올라갈 때 울었어요--;; 막연하게 조선왕조가 쇄국의 틀안에 갇혀 있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시대에 벌써 서양문물을 접하고 개혁정치를 펼 저력을 지닌 세자와 세자빈이 있었다는 게 참 놀랍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야사 같은 것 읽으면 인조가 소현세자 부부를 질투해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던데...

곡우님이 저번에 써주신 <소현>에 강빈 얘기가 빠져있다고 해서 아쉬웠는데 말씀대로 상호보완해서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곡우님 글은 참으로 정갈하고 단아합니다.

2010-06-22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06-2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현을 읽고 이 책 읽으면 좋겠군요. 소현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잊고 있었는데 이 책까지 읽으려면 바쁘겠는걸요.

穀雨(곡우) 2010-06-26 16:48   좋아요 0 | URL
비교되는 대목이 한눈에 보여서 좋더군요. 소현에 부각된 인물과 별궁의 노래에 부각된 인물에 대한 대비도 나름 재밌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대하는 시각이 비슷하나 질감이 다르다는 차이가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