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연결 시대 - 일상이 된 인터넷, 그 이면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윌리엄 H. 데이비도우 지음, 김동규 옮김 / 수이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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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연결 시대>는 오늘날의 여러 사회 문제의 원인을 과도한 상호 연결성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사회의 여러 요소들이 지나치게 밀접하게 연결되게 되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파괴적으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연결과잉(overconnectivity)’문제라고 부른다. 저자는 자신의 이론의 근거를 유진 위그너와 로스 애슈비에서 찾고 있는데, 그것은 “모든 거대하고 복잡한 동적 시스템의 연결성은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만 안정적인 특성을 보이며 이후 연결성이 커질수록 급격한 불안정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연결과잉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각각의 요소들이 복잡하고 밀접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한 부분에서 발생한 문제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다른 부분에 빠르게 전달되고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되고 결국은 통제불능의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결과잉은 포지티브 피드백에 의해 강화된다. 포지티브 피드백이란 하나의 변화의 결과가 또 다른 변화를 부추기거나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포지티브 피드백에 의한 끔직한 재앙의 예로 뉴올리언스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들고 있다.

원래 뉴올리언스는 원래 범람이 잘되는 곳인데,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 올렸다. 덕분에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었는데, 제방에도 불구하고 홍수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제방, 더 높은 제방을 쌓았다. 제방 건설과 홍수가 반복되는 동안, 도시가 살만한 곳으로 인식되고 인구 유입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말미암아 2천명의 사망자와 800억 달러의 손실을 입게 되었는데 이를 카트리나 효과라고 한다. 즉 제방이라는 임시변통의 해결책이 포지티브 피드백을 이루어 인구 유입이 일어나고 이것이 또 다른 포지티브 피드백을 하게 되어 더 많은 제방을 쌓는 식이 되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오게 된 것이다. 물론 포지티브 피드백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된 포지티브 피드백은 결국 통제불능의 상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포지티브 피드백에 의한 연결과잉이 문제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사례는 1979년 3월에 일어난 원자력 발전소 사고다. 이 사고의 원인은 냉각수를 거르는 필터가 막히는 아주 단순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놀라울 만큼 복잡한 상호 작용을 불러 일으켜, 결국 통제실의 1600개의 제어 표시등 중 상당수를 깜박이게 했다. 당연히 문제의 원인을 파악못해 상황을 더 악화시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다르고 있었다. 다행히 기술자의 현명한 조치로 상황을 통제했지만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연결 과잉이 가져온 문제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때로 이로 인한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재앙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87년 10월 14일부터 일어난 미국 주식의 폭락이었다. 4일간 무려 주식의 25퍼센트의 증발해 버렸다. 그런데 그 원인은 포트폴리어 인슈어런스라는 아주 작은 프로그램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최근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도 모두 연결 과잉이 빚어낸 최악의 부산물인 것이다. 
 저자는 비록 연결 과잉이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져오는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의 논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재 우리 사회는 통제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과잉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인류에게 더욱 더 큰 재앙을 안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파국을 막기 위해 몇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의 해결책은 비록 그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이고 피상적이다. 저자의 해결책이 제안이 실제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은 그 제안을 적용하기에는 이미 통제 불능 상황에 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규제하고 조정하던 시대는 끝이 났다. 과잉 연결을 고도 연결 사회로 돌려놓기에는 개인들이 이미 과잉 연결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또한 오늘날은 정부보다 기업의 힘이 더 큰 시대이다. 과잉 연결은 자제하는 것은 비용의 증가와 매출의 감소를 의미한다. 생존 경쟁의 시대에 어느 기업이 과연 이러한 무모한 일을 하겠는가? 저자는 과세를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과세란 뜨거운 감자이다. 경제학자들은 이 논쟁에 더욱 불을 지핀다. 정부는 정치인들에 의해 움직여지고 정치인은 국민들의 표를 의식한다. 저자는 이 연결 과잉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문명이 퇴화하지 않는 이상 이것을 통제할 수단은 없어 보인다.



저자에 동감하는 점은, 인류는 지금 통제 불능의 시대에 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안을 제시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류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인류는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면 넘어지는 외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더 빨리 달리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마침내 파멸하게 될 것이다. 너무 비관적이라고?... 그래도 내 시대는 아직은 달릴 여력이 더 있다고 믿고 안심하고 있다. 후대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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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자, 혼자 떠나는 유럽
유경숙 글 사진 / 끌리는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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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왜 인지는 모르지만 제목이 끌린다. 서른, 여자, 혼자 떠나는 유럽, 이 세 단어 중 그 어떤 것도 나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마력으로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머리말을 읽었다. 음 역시 무언가 있는 책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빨리 읽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보면 얼른 먹고 싶은 것처럼…

몇 년 전에 후배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끊고 호주로 갈 계획이라는 했다. 거기서 돈을 좀 번 다음에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것이다. 20대 후반인 그 후배가 참 부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난 왜 20대 때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 만약 20대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열망... . 그 후배는 호주에 가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면서 영어도 배울 겸 돈을 벌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부모님 동남아 여행을 2번이나 켰단다. 본인이 직접 가이드하면서. 참 복받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무엇이든지 도전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저자의 말에 문뜩 이 후배 생각이 났다. 도전하는 인생은 참으로 멋있다.

저자의 여러 에피소드를 보면서 여행의 참 맛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험악하다고 해도, 시골 인심은 우리나라나 유럽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은 친절하고 정이 많다고 자화자찬하지만, 몇시간동안 유스호텔을 찾아다니며 여관주인과 실랑이 끝에 그 주인집 방을 빼앗아(?) 얻어주는 경찰이 우리나라에 과연 있을까? 캄캄한 한 밤중에 불쑥 찾아든 이방인을 친절히 환대해주고 콜택시 비까지 대주는 인심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아직 도시화가 느린 유럽 시골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더 인심이 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참 맛은 바로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 정겹고 애틋한 사람 냄새가 이 책에 깊게 배어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저자도 그것을 알아차렸을까? 책 말미에는 여행하는 법, 스폰 받는 법 등을 상세히 실어 놓았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나도 왠지 여행을 떠나고 싶다… 물론 꿈 같은 소리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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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상황 - Real Situation
해외 경찰주재관 지음 / 시공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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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공권력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공권력이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데 사용되기 보다는 기득권층을 보호하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공권력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데 공권력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경찰에 대한 인식 역시 좋을 리 없다. 게다가 경찰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더더욱 이미지가 좋지 않다.
<실제 상황>은 경찰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시켜 주었다. 사실은 이 책을 통해 보다 내 인식을 보다 바꾼 것은 경찰보다는 외교관에 대한 이미지였다. 뉴스에서 접한 외교관에 대한 인식도 아주 부정적이었다. 일부 성실하게 일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재외 국민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출세를 위한 단계 정도로 생각해서 외국에서 대충 몇 년 때우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의 언론에서도 외교관들의 추대에 대해 연일 보고되고 있으니 외교관에 대한 인상이 좋을리 없다.
<실제 상황>은 각 국의 ‘해외 경찰주재관’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각 국의 경찰 주재관들이 주재관 생활을 하면서 겪은 여러 에피소드들과 그들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사실 ‘해외 경찰 주재관’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해외 경찰 주재관은 경찰 공무원들 중에 선출하여 외교공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사람으로, 주로 재외국민들의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외교관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해외 경찰 주재관’의 역할이 외교관 중에서 위치가 가장 애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매하다는 말은 해야할 일은 광범위한데 권한은 적다는 뜻이다. 경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경찰권한은 없고, 외교관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적인 외교관으로서의 역량에는 미치지 못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각국에 한 명만 파견된다고 하는데 한 명이 그 많은 역할을 과연 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아직 경찰 주재관이 파견되지 않는 국가들이 훨씬 더 많은데, 그곳에서는 과연 그 일을 누가 처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해외 여행객들이나 재외 국민들이 의존할 수 있는 최후의 피난처는 대사관이나 영사관 같은 외교공관이다. 특별히 우리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다루는 경찰 주재관의 역할은 아주 막중하다. 이들에 대한 권한과 대우를 대폭 더 강화하고, 주재관 수도 훨씬 더 늘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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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정의 - D. A. 카슨이 말하는
D. A. 카슨 지음, 송영의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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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가장 큰 이유, 혹은 유일한 이유는 이 책의 저자 D. A. 카슨 때문입니다. D. A. 카슨은 학문적 실력과 영성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학자입니다. 책의 내용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가는 차후의 문제였고 카슨이 저자인 것을 보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의>는 카슨이 1994년 Word Alive Conference에서 행한 빌립보서 강해를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그는 이 강해를 통해 복음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드러내고자 했습니다.(카슨의 의하면 빌립보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의 핵심’이기에 빌립보서를 택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원제도 ‘basics for believers’입니다)

카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적당하고 편하게 복음을 믿는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세상과 타협하며 믿는 신앙을 ‘세속화’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세속화 과정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복음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고 이 세상에 대한 관심들이 삶의 중심부에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빌립보서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입니다. 그 이유는 빌립보서 1장의 주제가 바로 복음을 최우선시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대화의 주제나 삶의 우선적인 관심사를 복음에 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그의 학문적 역량이 잘 묻어나고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부분도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 내고 있습니다.

3장에서 ‘데이브’라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는 아주 강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지않는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에 ‘나를 지켜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에 있어서 일종의 패배주의에 빠져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여 죄를 짓지 않고 완벽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는 교리의 방패 뒤에 숨어 죄와 세상과 자아와 타협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했습니다. 4장에서는 우리가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격려하며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듣기 좋은 설교, 가벼운 설교에 익숙한 분들에게 이 강해 집이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갈급해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추구하는 분들에게 이 책은 생명수처럼 갈증을 씻어 주고 새 힘을 주는 귀한 강해집이라 생각합니다.



진리 가운데 행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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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보낸 9일 - 어느 여인의 9일간의 천국 체험기
매리에타 데이비스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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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이상하게 천국 기행담(?)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군요. 광고로 나온 것만해도 이 책을 포함하면 4권이나 됩니다.(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2권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일단 이런 책이 많이 출간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우선은 신비한 체험이 실제로 천국에 다녀온 것인지, 아니면 일종의 몽환상태에서 일으킨 정신적인 환각현상인지에 대해 객관적인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대개의 경우, 이러한 신비한 체험은 부풀려지고 과장되어 퍼지기 마련입니다. 둘째로는 실제로 천국에 다녀왔다고 할지라도, 그의 진술이 진리로서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것에 의문이 있습니다. 그가 보고 체험한 것이 실제라 할 지라도 그의 묘사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때, 진리를 왜곡하거나 성경과는 어긋난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트럭을 처음 본 어린아이는 트럭이 크기에 압도되어 트럭의 크기는 아파트만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진술은 주관적으로 볼 때 참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실재를 어그러지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의 영광됨은 이 세상의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에(고후 12:4) 그의 영적인 성숙도에 따라서는 천국을 전혀 엉뚱하게 묘사할 수도 있습니다. 세번째는 천국에 대한 확신 혹은 복음의 진리 됨은 성경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모세와 선지자를 듣지 않는다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눅 16:31) 그렇지만, 이런 천국 간증이 전혀 무익하고 쓸모없는 것 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신앙 체험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일 뿐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세우는 것은 언제나 말씀입니다.

이런 조금의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천국에서 보낸 9일>을 읽었습니다. 우선 시선을 끈 것은 천국의 영광에 대한 황홀한 묘사입니다. 그 영광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완전한 평화와 완전한 순결, 그리고 완전한 사랑. 천국을 묘사하는 것을 읽을 때 순간 내 눈에 크게 열리는 것을 느꼇습니다. 천국에 대한 커다란 동경과 이 세상의 추악함에 대한 혐오감… … 내게 아직도 이 세상에 대한 집착들이 많이 남아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 책의 저자 매리에타처럼 천국을 경험한다면 그 누구도 이 세상의 부귀, 영화나 성공 같은 것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 떠오른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C.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입니다. 루이스가 생각하고 있는 천국와 지옥의 모습을 소설로 묘사한 책인데, 이 책과 흡사한 면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불교나 이방 종교에서 보통 지옥은 활활 타오는 불길속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며 천국은 물질적인 풍요함을 누리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책은 모두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죄인은 그 자신의 죄책감으로 인해 천국의 영광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 속에 끊임없이 쏟구쳐 나오는 죄를 감당하지 못하고 더욱 죄악속에 빠져들고 그 것으로 인해 고통당합니다. 반면에 천국은 자신의 부족함에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넉넉한 사랑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립니다. 천국의 실상은 알 수 없지만, 메리에타나 루이스가 그리고 있는 모습이 천국과 지옥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모습을 그리는데 할애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에게 인간의 죄악됨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가르치는 내용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은 성경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이 책의 저자 ‘매리에타’가 실제로 천국을 체험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c.s.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 책이 비록 사실이 아닌 소설이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내용도 우리의 소망을 천국에 두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일깨우는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책은 <브니엘> 카페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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