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이정인 옮김 / 프리뷰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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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의 여론을 빗대어 흔히 냄비여론이라고 한다. 너무나 쉽게 들끓어 올랐다가 금새 사라진다. 그런데 그 들끓는 여론들을 보면 극단적일 때가 많다. 특별히 SNS가 여론을 주도하는 요즘의 같은 경우 극단적인 의견들이 너무나 빨리 확산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여론에 대해서 신중한 편인 나는 그런 의견들이 떠돌 때마다 한편으로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눈살이 찌뿌려진다. ‘조금만 더 신중히 생각하면 다른 측면도 고려할 수 있을 텐데 왜 저토록 과격하게 말을 할까? 자신들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책을 보고서 이건 나를 위한 책이야 하고 생각했다) 저자도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사람들이 극단으로 흐르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여러 심리 실험을 통해발히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의견을 교환하게 되면, 그들의 주장이 더욱 과격하고 극단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일반인이나 전문가 집단이나 동일하며, 인터넷 커뮤니티 등은 이러한 현상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누군가 어떤 부분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경우, 다수의 의견에 동참하지도 극단으로 흐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지성이 깨어 있다면, 여론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예스라고 해도 노라고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극단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사람들이 극단으로 이끌리는 매커니즘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극단의 배후를 밝히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도 함께 제안한다. 저자의 제안은 전통주의와 결과주의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다. 전통주의와 결과주의는 극단을 막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만 반대로 극단에 힘을 실어주는 경우도 발생한다. 저자는 이보다는 견제와 균형이야 말로 극단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양원제도와 연방주의 시스템이다. 이것이 미국이 극단적인 결정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연방 법원도 이와 같은 원리로 운영하면 더 좋을 것이라 신중하게 제안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떠 오른 책이 있다. 오래 전에 읽었던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이다. 개개인은 도덕적이지만, 도덕적인 개인도 집단화되면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주제는 전혀 다르지만, 사람들은 무리짓게 되면 쉽게 악으로 흐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사람은 아무래도 무리 지으면 선보다는 악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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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의 재발견 - 불온한 과학자들의 우연하고 기발한 발견들 딴짓의 재발견 1
니콜라 비트코프스키 지음, 양진성 옮김 / 애플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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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의 재발견>은 과학사의 족적을 남긴 28명의 과학자들의 삶 중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삶의 일면들을 소개하고 있다. 28명의 과학자들(애드 가 앨런 포어는 제외) 중에는 뉴턴처럼 초등학생들도 알만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르모노소프처럼 생소한 사람도 있다. 선발된 기준을 알 길은 없지만 아마도 저자가 보기에 언급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일 것이리라. 그러나 책 내용은 기대에 훨씬 못미쳤다. ‘딴짓의 재발견이라는 제목과 책 표지의 딴짓의 개념을 바꾼 감수성 예민한 과학 천재들카피 문구는 무척 설레임과 기대감을 가지게 했지만, 얼마 못 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인내를 가지고 계속 읽어 나갔지만, 애초에 가졌던 기대감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과학을 이성의 승리로 인식한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지만, 전용도로를 벗어나 미지의 숲속으로 여행하고 싶어하는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어느 책보다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나는 후자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비의 나무 타우니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 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자가 실제로 타우니 나무를 발견하고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나도 저자와 똑 같은 경험을 했다. (왜 저자는 자신이 타우니 효과를 경험하지도 못했으면서, 독자가 이 책을 통해 타우니 효과를 맛볼 것이라 기대했을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에게는 이 책은 과학자들의 신변 잡기 정도의 정도로만 느껴질 뿐이다.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는 낯설어도 괜찮을만큼 별로 알 필요가 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과학도에게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신선한 각성제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말 그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의 삶의 이면이나 에피소드들이 담겨져 있다. 유명한 과학자들의 또 다른 삶의 모습은 과학도들에게는 새로운 영감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소설가들에게도 과학자들의 전혀 기대와는 전혀 모습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과학 그 자체에 호기심이 많은 일반 사람들 보다는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문학 지망생에게 더욱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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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 기술 - 격려 세상 만들기
돈 딩크마이어.Lewis Losoncy 지음, 김미례 외 옮김 / 학지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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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사상은 적극적 사고방식 혹은 긍정주의 라고 할 수 있다. 격려는 상대방을 세워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장점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타인을 격려하는 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지만, 사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과 단점은 최대한 배제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 더욱 역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타인을 격려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격려하는 법을 배워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의 비빔밥 같은 느낌이다.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다.이 책의 주장들은 특별히 새롭거나 탁월한 통찰들은 없지만, 기존의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볼 수 있는 내용들을 격려라는 코드로 멋지게 조화시켜서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이책의 장점은 격려를 위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간략하게 잘 정리하고, 그것을 스스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핵심사항만 전달하다 보니, 실제로 어떻게 적용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부분은 대부분 독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종종 어떤 상황을 제시하고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반응할지 생각해보라라고 질문한다. 그리고는 끝이다. 사실 독자들이(나를 포함하여) 알고싶은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속담처럼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지 몰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데, 저자는 그것을독자에게 숙제로만 남겨두고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그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저자의 주장을 숙고하면 답이 나올지 모르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일반독자들이 그 답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이런작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격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를 바꿔야겠다는자극을 많이 받았다.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격려하는데 서툴도, 장점보다는 단점을 훨씬 더 쉽게 찾아낸다. 그것이인간관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타인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바꾼다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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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맞춤의 힘 - 마음을 훔치는 3분 심리학
마이클 엘스버그 지음, 변영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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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관계를 지향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결코 만족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를 갈망하고 관계 속에서 만족과 안정을 취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로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한다. 혹이나 다가갔을 때 거부당하지 않을까 하는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관계 맺는 법이 서툴기 때문에 거부당하느니 차라리 피상적인 관계 혹은 고립을 택한다.

 <눈맞춤의 힘>은 우리가 너무나 힘들어 하는 관계를 맺는 아주 효과적이 방법이면서도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눈맞춤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의 다년간의 경험과 또 그 경험을 뒷받침해줄 심리학 근거들과 또 다른 전문가들을 통해서 눈맞춤이 얼마나 관계를 맺는데 효과적인지를 설득하고 있다. 눈맞춤의 기술은 결코 어려운 것도 아니고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누구나 눈맞춤의 달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이기 때문에(특별히 여성의 경우 더욱)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상실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마음에 드는 상대방이 있다면 적극적이고 자신 있게 눈맞춤의 기술을 이용하라고 권면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 눈맞춤을 소위 작업 기술로 사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시도에 대해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눈맞춤의 핵심은 진심을 전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눈맞춤은 우리의 진심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 상대방을 유혹하고 기만하기 위한 술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관심은 어쩌면 눈맞춤의 기술보다는 이 진심이 어린 관계 구축에 있는 듯하다. 눈맞춤은 관계를 맺는, 혹은 진심을 전달하는 여러 방법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쉬운 방법이기에,  열심히 전파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만약 눈맞춤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저자는 기꺼이 눈맞춤과 더불어 혹은 눈맞춤을 버리고 그 방법을 사용하라고 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눈맞춤에 큰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을 대할 때 가볍게 눈을 맞추는 연습을 해 보았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예전보다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다. 눈맞춤의 기술을 조금 더 익히게 되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훨씬 더 자연스럽고 쉬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을 대할 때, 혹은 관계를 맺을 때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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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10도 - 종교가 전쟁이 되는 곳
엘리자 그리즈월드 지음, 유지훈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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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10도는 소위 ‘종교 분쟁’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나는 6 나라(아프라카 3국, 아시아 3국)의 실상을 취재한 르뽀 형식의 글이다. 위도 10도라고 명명한 것은 이 나라들이 북위 10도를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다는 것도 있겠지만, 개신교의 세계 복음화 전략의 일환으로 등장한 10/40 창(10/40 window)란 개념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여간, 이 나라들의 북위 10도 언저리에서는 기독교와 무슬림의 물리적인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대량 학살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저자는 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자신이 직접 뛰어다니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의 우선적인 관심은 종교 전쟁의 원인이나 구조를 밝히는데 있다기 보다는, 이 분쟁 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종종 내전이나 분쟁의 원인을 분석하기도 하지만, 주로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현지인, 선교사, 지도자)을 인터뷰하는데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참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종교는 어찌되었던 개인의 믿음이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내 믿음이 침해되거나 방해되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서로 적대적으로 대한다. 물론 이런 적대상황은 저자도 잘 지적하고 있듯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있다. 그 원인들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이(경제적이든, 정치 군사적이든 혹은 종교적이든)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분쟁지역의 종교인들의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거의 맹목적이다. 왜 미워해야 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그 맹목성은 기독교보다 무슬림이 더 심한 것 같다). 권력자 혹은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무지를 이용하여, 분쟁을 더욱 부추긴다. 그러하기에 현상은 분명 종교 분쟁이지만, 그 분쟁에는 참된 종교인들은 거의 참여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킨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종교인들은 서로 주장하기를 자신들의 종교는 평화를 지향하고 인권은 존중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사실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도 10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분쟁의 해결책은 역설적이게도 참된 종교 지도자들이 나서서 참된 종교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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