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레이브
존 맥아더 지음, 박주성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2년 1월
평점 :
언어는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말처럼 어떤 것들은 모든 말을 다 동원해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처럼 오히려 말이 그 본질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촌철살인(寸鐵殺人)’ 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 한마디로써 모든 것을 설명하고 복잡한 문제를 간명하게 설명할 수도 있다. 맥아더 목사님의 경우 ‘슬레이브(slave)’라는 단어가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에게 ‘슬레이브’라는 단어가 꽤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영어 성경에는 대부분 ‘servant’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그 의미상 ‘slave’로 표현되어야 하며, ‘slave’라는 단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밝혀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극단적으로 “만약 이 진실이 알려졌다면 굳이 내가 그 많은 책들을 집필할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그러나 사실 저자의 그 동안의 저서의 메시지는 ‘slave’가 가지고 있는 함축성을 충분히 설파하고 있다. 아니, 비록 slave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slave의 삶을 살라는 것이 저자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래서 저자는 slave라는 단어가 가지는 함축성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의 메시지는 결국 slave라는 단어로 모두 풀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slave가 비록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그다지 큰 울림을 가지지 못한다. 영어에서는 ‘servant’와 ‘slave’의 차이가 크겠지만, 우리 나라 성격(개역성경기준)에서는 주로 ‘종’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종’이나 ‘노예’나 거의 같은 단어이다. ‘servant’가 영어권에서는 ‘하인’이나 ‘종업원’을 의미하기에 ‘노예’와는 상당히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 올 수 있지만, 우리말 번역 성경들에서는 이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저자의 의도를 살린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주’를 ‘주인님’이라 번역하는 것이 어느 정도 그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영어권에서 ‘slave’가 ‘servant’로 왜곡된 인식이 우리 나라에서는 ‘주인님’이 ‘주’라는 단어로 오도되고 있다. 사실 ‘주’라는 단어가 ‘주인’이라는 뜻이지만 ‘주’ 혹은 ‘주님’ 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쉽게 오르내리기 때문에 ‘주님’이 ‘주인님’이라는 인식을 못하는 것이다. ‘주님’에서 ‘주인님’으로 바꾸어서 기도를 한 번 해보라. 우리의 기도가 상당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말은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하인에게 명령을 시달하듯 자신의 요구사항들을 내뱉는 기도를 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주인님’이라고 말한다면 명령하거나 요구할 입장이 아니라 명령을 들어야 하고 그것에 따라 움직여야 할 존재라는 인식이 들 것이다.
이것이 사실 이 책의 메시지이다. 우리는 ‘주인님’의 ‘노예’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잊고 살아간다. ‘노예’에게는 주권이 없다. 오직 ‘주인님’의 명령에 순종할 의무 만이 있다. ‘노예’는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스스로 결정해서도 안되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어떤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주인님’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그러면 선하고 자비로운 ‘주인님’께서 그의 ‘노예’의 안전과 모든 쓸 것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이렇게 명료하고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수 많은 문제들, 비록 그것이 삶에서 부딪히게 되는 복잡 미묘한 문제라 할 지라도, 우리가 ‘주인님’의 ‘노예’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의 모든 근심과 걱정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는 ‘주인님’께 물어보고 해결해달라고 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점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 때 열정이 있었으나 지금은 미적지근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전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초신자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