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시를 통한 근현대 철학의 조망 시와 철학의 공통 분모는 아마도 삶일 것이다. 시는 삶을 감성적 시각으로 풀어헤치고 철학은 이성으로 분석한다. 형이상학적인 면에서 보자면 철학보다 시가 한 수 위일지 모른다. 다만 시가 철학보다 더 쉽게 느껴지는 것은 시는 이해하지 못해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도 어떤 의미에서 이해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삶에 대한 통찰은 철학보다 차라리 시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하이데거가 시인에게 들으라고 한 이유도 삶을 표현하는 데에는 철학보다 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은 낭만적 의미에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분위기’를 망쳐놓는 책일지 모르겠다. 비록 저자의 글 솜씨는 탁월하지만 철학을 싫어하는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알아듣지 못할 말로 시 맛을 떨어뜨려 놓았다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순수한 의미에서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더 없이 좋은 지도가 될 것이다. 시는 본디 철학적 사유의 감성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 속에 담겨져 있는 철학적 함의들을 도출해 내고 있다. 비록 그 시인들이 들뤼즈나 푸코를 모른다할지라도 그들과 동일한 고뇌를 겪었기에 현대철학자들이 말하는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사실 철학자들은 철학을 발견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사람들 속에 녹아져 있는 사상들을 철학자들은 학문적으로 혹은 어려운 말로 다듬어서 발표하는 것 뿐이다. 그러니 시인에게서 현대 철학이 발견된다할지라도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 강신주는 해박한 철학 지식을 바탕으로 21편의 시 속에 담겨져 있는 근현대의 철학 사조들을 읽어내고 있다. 시를 해설함에 있어 그 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철학을 동원함으로서 시의 의미를 드러냄과 동시에 철학 사상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시와 철학을 동시에 배우니 일석이조 아닌가? 저자의 글솜씨는 범상치가 않다. 물 흐르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글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듯 한권의 책을 끝이 났다. 시와 삶과 철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