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 - 소통하지 못하는 십대와 부모를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김영아 지음 / 라이스메이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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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보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사회 문제로 불거진 학교 폭력문제도 따지고 보면 모두 어른들 책임이다. 학교 폭력은 아이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고 오로지 입시에만 매달린 교육정책의 희생물이요 부산물이라 생각이다. 학교 폭력이 없다할지라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가? 그들이 느꼈을 외로움과 고통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너머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은 들여다보기 싫고 감추고 싶은 이 사회의 암울한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2 그러면서도 과연 나는 우리 아이들을 잘 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한 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고 함께 놀아주고 대화를 많이 하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으로 알고 있지만, 막상 접하게 되면 잔소리부터 나온다. 이따금씩 우리 애들도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속 이야기를 꺼내놓기 싫은 그런 부모로 여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면 몸소리가 처진다. 나도 이 책에 나오는 절름발이 부모들과 다름이 없다 생각하니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

 

#3 따뜻하고 눈물나는 책이다. 청소년들을 향한 저자의 애틋한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고통스럽고 처절했던 청소년기를 보내었으면서도 그 아픔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저자가 부럽고 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저자처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 책의 면면에 흐르고 있는 코드는 이해와 배려이다. 그 이해는 십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이해이다. 모든 사람은 외롭다. 사랑을 필요로 한다. 십대의 반항과 일탈은 외롭다라는 신호이고 사랑을 원한다는 외침이다. 십대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도 그러하다. 모든 인간은 외롭고 이기적인 동물이다. 모두가 외롭고,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치유의 실마리가 풀린다. 또 하나는 배려이다. 내 중심적인 배려, 나의 만족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철저히 상대방 편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할 때, 마음도 열리고 관계도 개선될 수 있다.

 

#4 책에 소개된 많은 사례들 속에서 얼핏 얼핏 내 모습이 비친다. 때로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가슴에 날아와 꽂히고도 한다. 아이들을 편에서 볼 때 나는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 왔나보다. 아이들을 향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큰 숙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저자의 글 솜씨가 돋보인다. 수필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땅에 모든 부모들이, 모든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이 조금만 더 아이들을 이해해주고 감싸주어, 외로움과 눈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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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하는 1년
리처드 포스터 지음, 줄리아 롤러 엮음, 서진희 옮김 / 아드폰테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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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성장에 비약이란 없습니다. 매일 봐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인 것 같은 아이가 어느날 보면 훌쩍 자라있는 것처럼 신앙도 늘상 그대로 인 것 같은데 어느날 보면 몰라보게 자라나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나기 위해서 적절한 영양과 수면 그리고 운동 등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말씀과 기도, 예배와 같은 경건 활동이 필요합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런 경건활동을 게을리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신앙 성장에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큽니다. 말씀은 우리 영혼의 음식과 같습니다. 정기적인 성경 읽기는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읽고 바로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경을 읽은 후에 묵상을 병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1>은 신앙 성장을 위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묵상을 도와주는 책입니다. 매일 묵상할 수 있도록 1년 치의 본문과 본문 해설, 그리고 묵상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성경 순서를 따라 가거나, 임의로 본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제들은 신앙의 성장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저자는 이 주제들을영적 훈련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 주제를 묵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 적용되며, 습관처럼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심오한 깨달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진리라 할지라도 우리 삶에 녹아지게 될 때, 신앙의 열매로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 쓰여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변화된 삶을 살고자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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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신 자유주의 시대, 복지정책의 딜레마
아스비에른 발 지음, 남인복 옮김 / 부글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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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보고 가장 놀란 점은 복지가 가장 잘 되어있다는 북유럽 국가에 대해 복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르웨이의 제인이라는 한 여성의 예를 통해 북유럽 국가의 복지 정책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있는가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기 위해 저자는 먼지 복지국가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에서부터 살펴보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복지국가는 사회 투쟁의 결과물로서 노동과 자본 사이의 적절한 타협에 의해 발생했다다고 한다.(여기에는 공산구가의 위협이라는 외부 변수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이러한 타협이 작금 신자본주의 발흥과 득세로 인하여 흔들리게 되었다. 노동자의 발언권이 약해지고 자본이 역할이 커지면서 둘 사이의 균형이 깨어지고 결국 복지 정책이 후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요지는, 복지국가는 사회적 타협의 결과이며 따라서 복지 문제는 단순하게 복지비를 증액하는 정도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의 다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복지의 위협은 자본의 세력의 증대에 따른 것으로, 자본과 시장에 대한 포괄적 규제와 공공 서비스의 확대가 될 때 비로소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복지가 사회적 화두요 정치인들의 주요 공약으로 남발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 시점에서 이 책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선은 정치인들의 공약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포퓰리즘적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내건 공약들은 복지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정치인들이 좀 더 공부하고 심도있게 정책을 내 걸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책을 보면서 한가지 불편하게 느꼈던 점은, 과연 복지정책을 계급투쟁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옳으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일관되게 노동과 자본을 대립의 관계요 적대적 관계임으로, 자본과 싸워서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물론 저자의 분석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지만 복지를 투쟁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소위 우파들에게는 상당히 불순하게 보일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그들에게 복지는 사회와 국가를 망치는 주 원인으로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을 권력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은 맑시즘이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러한 시각 역시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 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는 결국 폭력으로 이어진다. 복지를 위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면(그것이 비록 거대 자본가라 할지라도) 희생자의 입장에서 그것은 근절해야 하며, 투쟁해야 할 사회적 악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인간과 공동체라는 철학의 입장에서 복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용은 별로 어렵지 않은데, 왠지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다.(가끔 그런 책들이 있다) 그러나 복지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생각해 보게 한 좋은 책이었다. 복지 정책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있는 분들이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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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 오래된 지식의 숲,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철 지음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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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는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을 중심으로 조선 시대의 학문과 문화 그리고 사회상을 그린 책이다.

 저자의 집필 동기는 아마도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을 소개하는데 있다기 보다는, 조선의 실상을 보여주는데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저자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선 시대의 백과 사전이라 일컫는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을 재료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지봉유설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사회의 모습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저자의 주요 관심사를 몇가지 테마로 분류하여 그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또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다 소개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가지 혹은 몇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한 몇백년 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그 엄밀성에서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당시의 가장 믿을 만한 문헌을 중심으로 엮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은 조선 시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적은 것은 당연히 인정해야 하지만, 저자의 관심과 관점에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이 얽매이게 된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한다. 다시 말하면, 저자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관점을 강화하는데 지봉유설 등이 인용되거나 혹은 저자의 관점으로 이 책들의 관점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이 임진 왜란 당시의 명나라 장수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고 있는 부분은 중화중심적 사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다. 물론 우리가 배운 역사는 이순신 같은 명장과 전국 팔도에 일어난 의병으로 인해 왜병을 불리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역사가 오히려 국수주의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래 전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임진왜란은 사실상 조선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수십만명의 백성이 죽어나가고 대부분의 성읍이 폐허가 되었는데 사실상 승리라니, 참으로 괴변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저자가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수광이나 이익의 평가는 중화중심적 사관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국가에서 명나라의 도움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평가했다고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이것은 마치 625사변의 전세가 바뀐 것은 맥아더 장군 덕분이라고 말했다고 종미주의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625사변 때 유엔군의 도움과 인천상륙작전이 아니었다면 과연 북한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비록 수많은 군인과 학도병이 희생을 당하고, 그들의 공이 큰 것은 인정하더라도 유엔군의 도움과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국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면밀히 분석하면 저자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지봉유설을 통해서 조선의 모습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관점을 강화 혹은 반박하는데 지봉유설이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점은 이 책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역사와 사회 과학 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요즘 학교의 국사 교육 문제는 심각할 정도로 후퇴되고 있다. 9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참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는 옛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의 역사를 일깨워 주는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을 비롯해서 교양 인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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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분 기적의 독서법 - 인생역전 책 읽기 프로젝트
김병완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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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분 기적의 독서법>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서가 우리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면서, 특별히 3년내 천권을 독파하는 집중적인 독서를 권면하고 있다. 이런 집중적인 독서가 필요한 것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임계점을 돌파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다량의 독서를 해야만 인식의 지평이 획기적으로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어정쩡한 숫자로 보이는 48분을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인생을 90년 산다고 했을 때 3년이 차지하는 비율이 3%정도인데, 하루 중 3%에 해당되는 시간이 48분이며, 하루에 48분의 시간만 투자하면 3년 안에 천권의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량의 독서는 확실히 우리의 인식의 폭을 넓혀 준다. 선구자는 10년 앞을 내다본다고들 하는데, 독서는 과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 저자는 이러한 독서의 힘을 자신의 경험과 유명 인사들의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있다.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을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버려지는 짜투리 시간들, 지하철, 화장실, 엘리베이트 기다리는 시간등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저자의 주장에 거의 대부분 동의한다. 단순히 동의하는 정도가 아니라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비록 저자처럼 단기간 집중적으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꾸준하면서 다양한 독서는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확실히 넓혀주었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독서도 해보았고, 한꺼번에 3-4권씩 책을 읽은 경험도 많다. 누가 가르쳐주기 보다는 독서의 열정이 이러한 방법들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한달에 평균 10여권 정도의 독서를 한다.

저자의 주장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모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주된 주장은 양이 질을 압도하기에 양서, 악서 가릴 것 없이 무조건 많이 읽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다량의 독서가 유익하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양서를 깊이 있게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량의 독서에만 목표를 두게 되면, 대개 도서 목록이 가벼운 책들로만 구성되게 되고, 그런 책에서는 안목을 넓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3년내 1천권의 도서 독파를 통해 임계점을 돌파하고 인생의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에, 꾸준히 독서를 하더라도 이런 경험을 반드시 한번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점도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자신과 더불어 몇몇 사람들의 예를 들어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저자의 예에서도 반박할 수 있는데, 조지 소로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고전(철학)을 손에 놓지 않고 꾸준히 읽고 공부했다고 한다. 단언하건데, 철학책을 3년동안 천권 독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록 글자는 읽을 수 있을지라 몰라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서의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 처음에는 다량의 책을 읽는데 목표를 두어야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책 깊이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유익할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내가 그렇다. 청년 시절에는 온갖 잡학 서적들을 다 읽었지만(물론 흥미도 있었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책을 읽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깊이 있는 책 한권을 여러번 읽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독서의 목적은 결국 사고와 안목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있다. 고전 1권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가벼운 책 100권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다량의 독서가 독서의 유익을 깨닫게 하고 재미를 붙이는데에는 분명 유익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만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이 다량의 독서 때문에, 다량의 저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일 년에도 십수권의 책을 펴내는 저술가들의 책은 대부분은 가볍다. 사실 <48분 기적의 독서법>이라는 저자의 책도 그 점을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의 글쓰기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의 문법을 -같은 내용을 조금씩 바뀌어 반복함으로 독자에게 저자의 주장을 주입시키는 것- 따르고 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그래서 깊이 생각해야 하거나, 이해하기 위한 사색이 필요없다. 실제로 이 책을 완독하는데 1시간 남짓밖에 안걸렸다. (사실 저자가 제시하는 독서법중의 하나처럼 대충 훑어보아도 내용을 거의 다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먼가 색다른 내용이 있을까 해서 끝까지 읽었다. 저자처럼 독서에 이력이 붙은 사람이 10분도 안 걸린다는 책을 저자가 썼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아쉽게도 많은 책들이 이런 문법을 따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현대인들이 어렵고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사고를 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책들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과연 사고의 전환이나 안목이 넓힐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몇가지 점에서 비록 의견을 달리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독서에 자극을 주고, 독서의 유익에 대해 충분히 설파하고 있다. 언제나 초중고 참고서가 판매량 상위권을 달리는 우리나라의 척박한 독서 환경을 바꾸는데 이 책이 큰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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