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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옛날 맛집 - 정성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
황교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흔히 요즘 세상을 일컬어 먹고 살만해졌다는 표현을 한다. 그것은 다시말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살만큼 우리의 생활이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주말이면 산을 찾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로 가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따지고 보면 우리가 굶지 않고 산 것은 기껏해야 30여년 밖에는 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이전까지 우리는 오로지 살기 위해 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생활 수준에 따라 삶의 질 역시 결정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맛을 대하는 기준 자체가 엄청나게 상승했음을 느끼게 된다. TV화면에서 만나는 산해진미와 듣도보도 못한 화려한 요리들에 의해 우리의 미각 뿐만 아니라 시각까지도 상승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그저 평범한 맛 칼럼니스트라 말하는 저자 황교익은 <소문난 옛날 맛집集>를 통해 그러한 화려한 외양을 갖춘 음식보다는 늘상 우리가 먹는 평범한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음식은 결코 맛 뿐만이 아니라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먹는 것임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책을 크게 네 개의 파트로 갈라 놓았고 그 각장의 이름을 각각 추억, 정성, 머리, 이야기로 먹는다는 타이틀을 달아 놓았다. 그 어디에도 맛으로 먹는다는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음식에는 맛 보다 우리를 이끌어내는 보다 강력한 요소가 있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저자는 호두과자에 얽힌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책을 시작한다. 단순한 호두과자를 통해 출장 다녀온 아버지를 기억하며 어릴적 맑기만 했던 고향바다의 조개와 싱싱한 생선을 통해 그가 자란 마산의 고향 바닷가를 기억하기도 한다. 6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이르는 유년시절을 겪었던 저자이기에 어쩌면 그가 기억하는 추억속의 음식들은 당시의 우리의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이 모두들 자장면을 추억의 음식들중 첫 손가락으로 꼽는지, 왜 기차만 타면 삶은 달걀이 먹고싶어 지는지에 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자장면에 담긴 따뜻한 가족애와 행복, 그리고 삶은 달걀이 상징하는 소풍의 즐거움과 먼 길 떠나는 슬픔은 어쩌면 저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추억이 묻어있는 정서이기에 더욱 따뜨한 마음이 느껴진다.
저자는 자신이 결코 음식을 가려먹는 미식가가 아니며 뛰어난 미각을 타고 나지도 않았지만 10년이 넘는 맛 칼럼니스트 활동을 통해 터득한 것을 조금씩 풀어 놓는다. 사람들은 모두 맛으로 이름난 집을 찾으려 하고 그 경로는 대부분 신문, 방송등의 매체와 인터넷일수 밖엔 없다. 또한 외식업계 자체적으로 식당에 별을 달아주거나 자치단체에서 지정한 이름난 음식점들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린 아직 식당에 별을 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단언한다. 전통이라는 것 자체가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식당 소개는 의문 일수 밖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지자체의 위생계 직원을 통하거나, 어디어디 선정된 맛집을 피해 시장의 먹자골목을 찾거나 작고 허름한 식당을 찾는 것이 오히려 최고의 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어떤 전문 음식타운을 보노라면 많은 식당 가운데 '원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수많은 식당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여기도 원조, 저기도 원조. 저자는 그것에 대해서도 '맛으로 승부하지 않고 간판으로 승부하려는 식당 주인들의 태도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며 그 얄팍한 상술을 통해 우리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저 간판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주관없이 휩쓸려다니기 보다는 음식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그를 통해 선천적으로 미맹이 아닌 이상 누구나 미식가가 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최고의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길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는 것 같다.
책에는 TV드라마 '대장금'이나 '식객'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요리는 없다. 그저 설렁탕, 족발, 국밥, 자장면, 돈가스 등 언제나 우리들의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맛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어떤 특정한 맛집보다는 그 음식 자체에 깃들여 있는 정서를 만날 것을 권유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맛에는 순수한 맛과 변형된 맛이 있습니다. ... 순수한 맛은 순수한 마음과 통합니다. 곧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정신적인 행위입니다. ... 사람을 보면 느낌이란 것이 있지요. 음식에도 이런 느낌이 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그 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지요."
여덟 살에 가출해 중국집 배달원부터 시작해 맛에 대해 한 경지를 이루어냈다는 요리예술가 임지호가 저자에게 들려준 말이라고 한다. 순수의 소통이라는 그의 말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면서도 도대체 어디서 저러한 장인을 만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핵가족과 도시생활은 현대인에게 외식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음식은 그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획일화 된 음식들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름난 음식점에 대해 열광하고 심취하는지도 모른다. 유명하고 이름난 맛집을 찾아 다니는 수고스러움 보다는 음식에 깃든 정성과 사랑 그리고 추억을 음미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저자가 제시하는 맛을 아는 미식가의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