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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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의 묘미는 무엇보다 여행이란 이름이 주는 것처럼 그 이미지에서 맨먼저 느껴지는 자유로움일 것이다. 여행을 통한 자유는 정형화된 일상과 규범에 길들여진 현대 도시인들에게 어쩌면 가장 쉬운 선택인 동시에 유일한 탈출구가 될런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 뿐만 아니라 실제 여행을 통한 값진 경험들은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생활하는데 커다란 에너지원이 되어주기에 우리는 주저할 것 없이 여행이란 자유를 선택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틀에 박힌 지루한 일상이라도 그것은 우리가 생활해나아가는 터전이며 또한 우리의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일터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그 틀을 깨는 것은 물론 깨지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카하시 아유무는 진정한 자유인이 무엇인가를 이 책 <러브 앤 프리>를 통해 보여준다. 작가로서의 이력이나 생활인으로서의 그의 이력은 평범한 이의 그것과는 모는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학을 중퇴했고, 제대로 된 직장에 다녀본 적도 없으며, 자신의 글을 실어줄 출판사가 없자 직접 출판사를 차리기도 하는 등 그의 행보는 계속되는 파격의 연속이다. 결혼과 함께 그는 그마저도 모두 버리고 스스로 방랑의 길을 시작한다. 아내 샤이키와 함께 떠난 신혼여행은 무려 1년 8개월동안 계속 이어졌고, 그는 전세계를 다니며 그가 보고 듣고 체험한 기록을 사진과 함께 이 책에 담아냈다.

 

"타인을 안다는 것은 나를 안다는 것이기도 하다."
<러브 앤 프리>를 통해 보여지는 아유무의 여행기는 절경이나 명소를 소개하고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기록하는 기존의 전형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다시말해 적어도 이 책은 어떤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독자를 그곳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의 수많은 사진 가운데 다른 여행기속에 흔히 볼 수 있는 명소의 사진을 찾아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물 여섯의 아유무는 여행을 통해 수십 개 나라를 다닌다. 하지만 생소한 경치를 보고 감탄하기보다는 그곳에 사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 안에서 파생되는 아픔을 보다 소중히 여기려 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는 질문들을 토해 낸다. 남극에서 북극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행속에서 그것은 가난한 여행자에게 이 여행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가올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여기며 살아가곤 한다. 하지만 아유무는 그러한 일반적인 통념을 깨고 오늘의 자신에게 충실할 것을 권유하는듯 하다. 그것은 오늘 내가 겪는 일상과 만남이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체험이라는 것을 그는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답답함을 토로하기 보다는 활기차게, 자유를 부르짖기보다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척 자유롭게 살아가면 된다는 그의 말이 그가 가진 진정한 자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여행의 본질적인 목적이 조금씩 성장하고 무엇인가 깨닫는 삶의 한단계라 한다면 그러한 모든 선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자신의 몫이다.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있지는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행복한 방랑자 다카하시 아유무의 <러브 앤 프리>를 통해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다.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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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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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고 번영의 토대를 이루기 이전부터 바다는 언제나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바다로 나아가는 것은 단순히 식량자원의 획득을 넘어서 바다가 서로의 문화를 교환하고 인간의 지혜와 문명을 나누는 교역의 현장으로 부상하게 됨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한 바다에로의 도전을 통해 인간은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되었고, 그것은 곧바로 바다위의 패권 다툼으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그저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은 무적함대로 상징되는 해양개척의 선두국가 스페인과의 칼레해전을 승리로 이끌어내면서 지중해의 새로운 국가로 부상하게 되고 그것은 이후 지중해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의 시작을 알린다.

 

이 책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그러한 혼란의 시기가 이어지던 19세기초 여러 나라가 해상의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지중해를 배경으로 실제 존재했던 영국 전함을 모델로 그려진 해양 모험 소설이다. 동력이 사용되기전 바다에는 오직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크기와 대포의 화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모든 해전의 승패는 선원들의 항해술과 뛰어난 리더 그리고 돛이라는 기술적 요소에 의해 가려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는 범선의 구조는 물론 그 과학적 원리에 대한 언급이 헤아릴수 없이 많이 서술되고 있다. 아마도 그 때문인지 소설은 대체적으로 다소 어려운 부분이 곳곳에 보이기도 한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자리한 주석들이 없다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할지도 모를 정도이기에.

 

야망만 있을뿐 아무런 배경이 없었기에 무능한 자신에 대한 정치적 무기력과 회의만을 갖고 있던 영국 해군 대위 잭 오브리는 총독 관저에서 벌어진 연주회에서 어느 왜소한 사내와 불쾌한 만남을 겪는다.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되고 되는 일 하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쓸쓸히 숙소로 돌아온 그에게 소피호의 함장으로 임명한다는 반가운 편지가 도착해 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 전임함장이 유능한 선원과 부관 그리고 군의관까지도 모두 데려갔으며, 함대 사령관은 출항에 필요한 선원을 단 한명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출항을 앞두고 잭은 사관은 물론 군의관까지도 자신이 모두 구해야 하는 지경이다.   

 

잭이 연주회에서 불쾌한 만남을 가진 사람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자연학자이자 의사인 스티븐 머투린이다. 그는 당장 생계마저 이어갈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서 잭과 만나게 되고 그 우연한 만남을 통해 그에게서 군의관이 되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물론 스티븐 역시도 잭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음악을 매개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스티븐은 항구에 있는 소피호를 바라보며 강한 감정 변화를 느끼게 되고 잭의 제의를 수락한다.

 

잭은 아름다운 곡선형 갑판을 가진 소피호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더욱이 함장실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황홀감은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생활해 온 그에게 잠깐이나마 모든 소망을 이룬것같은 흡족함을 안겨다 준다. 열두척의 상선을 호위하라는 첫번째 임무를 부여받은 직후 실시한 훈련은 엉망이었고 포격 훈련시 갑판이 견대내지 못할 만큼 소피호는 군함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배였다. 새롭게 배치되어 온 성실한 부관 제임스 딜런이 합류하고 잭의 함장으로서의 지휘력과 빠른 판단력이 더해지면서 그들은 첫번째 해전을 놀라운 승리로 이끌어 내고 도저히 작은 배로는 이루기 힘든 성과들을 올리기 시작한다.

 

19세기초 지중해의 바다는 강대국들의 힘의 경연장이었다. 무장한 사설함대의 사략선을 피해 자국의 상선을 보호할 목적으로 지중해에 파견된 각국의 함선은 오히려 정부의 비호 아래 적국의 상선에 대한 무차별적 포격과 나포로 이어졌고, 그렇게 약탈된 배와 물자들은  자국에 커다란 이득을 안겨다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포에 이어지는 상금은 꽤나 매력적이고, 목숨을 걸만한 도전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함장인 잭부터 일개 선원에 이르기까지 소피호에 탑승한 모두 사람이 가진 공통의 욕심이기도 했다.

 

200톤이 조금 넘을 정도로 작은 소피호는 잭의 지휘 아래 많은 전과를 올리며 막대한 이익을 영국에 안겨다 준다. 하지만 잭에게 그만큼의 보상이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작품내내 이어지는 넓은 해양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통해 잭과 스티븐은 그동안 자신들을 옥죄어 왔던 현실에서 벗어나 탈출구를 찾는다.
'바다는 잭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는 곳이자 스티븐이 권력에 물든 자들의 구린 악취에서 해방되는 곳'

작가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표현대로 바다는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들이 겪어내는 바다위에서의 치열한 경험을 통해 인간이 가진 한계와 또한 그를 넘어서는 의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는 듯하다. 나포된 이후에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서로 잊지 않는 멋진 사람들이 있는 19세기 지중해로의 모험은 그래서 더욱 흥미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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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2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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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 여유란 어찌보면 사치스러우리만큼 호사스러운 감정이기도 하다. 특히나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한국인들에게 책을 통한 쉬어감이란 더더욱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데에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쉽게 책을 꺼내들긴 아직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한 우리들의 현실처럼 대학에서도 실용적인 학문 더 나아가서는 졸업후 취업에 도움이 되는 전공의 학문들만이 각광을 받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한 결과는 기초과학이나 인문학같은 보다 근원적이고 기초적인 학문에 대한 위기를 몰고 왔다. 해당 학문들은 단순히 폐강이 아니라 통폐합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혹자들은 그것을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미 대중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전편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를 통해 그러한 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했던 정진홍 저자는 이 책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를 통해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책 한권이 그 모든 변화를 주도할순 없겠지만 저자는 이제 인문학이 새로운 시대의 키워드와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고 책의 서문을 통해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전편에도 그러했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인문학 정신의 핵심은 '통찰의 힘'이다. 그 통찰의 힘을 통해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작임을 알리며,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하려 한다. 그러한 저자의 의지를 담아 책에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현대인에게 화두로 던져진 경영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당을 실질적으로 창업한 주체인 당 태종의 정관의 치를 통해 저자는 포폄(褒貶)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해 결정하는 공정한 당 태종의 포폄은 편안할 때도 위태로울 때의 일을 생각하라는 거안사위(居安思危)와 연결되어 끊임없이 겸손하고 그 겸손함으로 승리했던 리더의 전형이 무엇인지 오늘의 우리에게 알려주는듯 하다. 로마의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카이사르의 삶을 통해 그가 보여준 어떠한 승리보다도 진정한 삶의 승부가 펼쳐졌던 그의 후반생에 주목한다. 안정된 지위를 버리고 더 커다란 꿈을 쫓았던 그의 삶을 통해 아직도 우리에겐 남겨진 많은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자조, 인격, 검약, 의무가 자신의 존재조건임을 인식해야 하며 다 빈치의 쉼 없는 노력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고를 통해 디지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시스템식 사고방식을 배울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창조적 사고는 우리를 새롭게 깨어나게 만드는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정답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창조의 세계엔 정답이란게 존재하지 않기에 일상적인 현상의 가치를 진정한 관찰을 통해 재발견하는 통찰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아야 하며,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줄 아는 위대한 통찰이 바로 창조의 바탕이라 말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 즉 형상화, 추상화, 유추 등은 세상을 보는 미리 정해진 객관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고 창조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창조적 본능을 발굴하고 일깨우게 되면서 우리는 사물에 대해 그저 아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느끼고 만드는 보다 창조적인 생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단지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 만들어가는 창조의 대상이다."
지금도 세상은 우리가 그 흐름을 쫓아갈수 없을만큼 빠른 변화의 시기에 놓여 있다. 그안에서 우리는 늘 만만찮은 하루를 맞이하고 힘겹게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삶에도 이리 급급한데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제이다. 하지만 엘빈 토플러가 이야기했듯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진 운명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지금 이 시점의 부단한 노력이야 말로 자신의 앞날에 대한 능동적이며 또한 적극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자존과 미래를 곧추세우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문의 힘이라 확신한다.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우리를 보다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고민과 통찰을 통해 거듭나는 힘이며 그것은 여타 다른 경로를 통한 기술이나 학습에 의한 습득이 아닌 아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주목하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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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몽, 조선 최후의 48년
박성수 지음 / 왕의서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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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불과 100년전까지도 이땅에 존재했던 마지막 왕조국가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왕조의 교체는 여러번 이루어지고 그때마다 많은 변화를 겪었겠지만 조선은 외세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려다니다가 결국 그 운명을 다했기에 우리에겐 더욱 애틋할 수 밖엔 없을듯 하다. 그 흔들리던 왕국의 한 가운데 있었던 임금이 바로 고종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왕이었던 그 조차도 꺼져가는 조선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짧은 기간 수많은 변화를 몸소 체험하며 아파한 비운의 군주라고 할 수 밖엔 없을듯 하다.

 

이 책 <남가몽(南可夢) - 조선 최후의 48년>은 그러한 혼란의 시기 고종의 곁을 지켰던 한 시종이 바라본 조선 왕실의 살아있는 역사를 기록한 글 <남가몽>을 바탕으로 주변 정황과 해설을 함께 실어 놓은 책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급박하기만 했던 당시의 정황과 함께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었던 조선왕실의 무력함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남가몽의 지은이 정환덕은 1897년 가을, 나이 40이 되어서야 궁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이미 임오군란, 동학혁명, 갑오경장 그리고 을미사변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신경쇠약에 걸려있던 고종에게 누군가 옆에서 조언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역학에 조예가 깊던 정환덕이 천거된 것이다. 그때부터 정환덕은 고종의 최측근에서 그를 시종하며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공자로 정승을 삼고 그 수제자인 안연으로 사부를 삼고 자로로 집금오를 삼고 백이로 서울의 판윤을 삼고 항우로 상장군을 삼고 조조로 모사를 삼더라도 쉽게 중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환덕이 남가몽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할 만큼 당시의 상황은 어려웠다. 잇따른 정변으로 인한 공포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고종은 많은 일들을 역술가에게 의지할 만큼 불안에 떨고 있었다고 한다. 때마침 정환덕이 예언한 덕수궁 함녕전의 화재가 적중하면서 정환덕은 늘 고종의 곁에 있게 된 것이다. 20세기가 되면서 나라의 재정은 더욱더 어려워지고 백성들은 굶어 죽기까지 했지만 왕실은 1902년 고종 즉위 40년을 맞이하여 어마어마한 경축잔치를 벌일만큼 민중과의 거리가 멀었다. 또한 정세의 파악에도 부족해 군함을 제조하겠다는 말에 속아 국고를 탕진하기도 했으며, 조정의 대신이라는 자는 제 멋대로 나라의 땅을 팔아먹어 월미도가 일본인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조선의 운세는 이미 기울어질때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당시의 정세를 정환덕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위와 아래가 통하지 않는 상하불통(上下不通)때문이며, 안과 밖 또한 끊어진 내외격절(內外隔絶)의 상태 때문이다. 나라안에 임금을 보필할 신하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방어할 장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환덕이 고종의 최측근 인사였기에 남가몽은 그동안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감추어진 몇가지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해진다.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의 졸도사건 뒤에는 고종과 엄비 역시도 여타 부부들처럼 부부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전하기도 하며, 순종에게 후사가 없는 이유를 측근의 입장에서 밝히기도 한다. 또한 헤이그 밀사 사건 직후 위기를 느낀 고종이 이거(移居)를 위해 정환덕을 통해 은신처를 구해 두었다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 을 통해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대목은 고종이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강제퇴위의 위기에 몰렸을때 끝까지 버티려 하는 고종의 모습을 전하는 것이다. 측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기록을 통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이 전해지는듯 하다.

 

정환덕이 이 책의 제목을 남가몽이라 한 것처럼 조선은 한순간의 꿈처럼 사라져 갔다. 책의 곳곳에서 그는 힘없는 왕실을 개탄하기도 하고, 그 누구도 왕실에 힘이 되어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그것은 한낱 시종인 그 역시도 어쩌면 마찬가지 이다. 그가 실제 궁 안에 머물렀던 기간은 15년 남짓이었지만 그는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전하는 역사의 기록은 우리 후세에게 힘없는 나라의 설움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의 기록이기에 우리에게 그 아픔이 더욱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만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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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옛날 맛집 - 정성을 먹고, 추억을 먹고, 이야기를 먹는
황교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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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요즘 세상을 일컬어 먹고 살만해졌다는 표현을 한다. 그것은 다시말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살만큼 우리의 생활이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주말이면 산을 찾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로 가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따지고 보면 우리가 굶지 않고 산 것은 기껏해야 30여년 밖에는 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이전까지 우리는 오로지 살기 위해 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생활 수준에 따라 삶의 질 역시 결정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맛을 대하는 기준 자체가 엄청나게 상승했음을 느끼게 된다. TV화면에서 만나는 산해진미와 듣도보도 못한 화려한 요리들에 의해 우리의 미각 뿐만 아니라 시각까지도 상승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그저 평범한 맛 칼럼니스트라 말하는 저자 황교익은 <소문난 옛날 맛집集>를 통해 그러한 화려한 외양을 갖춘 음식보다는 늘상 우리가 먹는 평범한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음식은 결코 맛 뿐만이 아니라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먹는 것임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책을 크게 네 개의 파트로 갈라 놓았고 그 각장의 이름을 각각 추억, 정성, 머리, 이야기로 먹는다는 타이틀을 달아 놓았다. 그 어디에도 맛으로 먹는다는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음식에는 맛 보다 우리를 이끌어내는 보다 강력한 요소가 있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저자는 호두과자에 얽힌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책을 시작한다. 단순한 호두과자를 통해 출장 다녀온 아버지를 기억하며 어릴적 맑기만 했던 고향바다의 조개와 싱싱한 생선을 통해 그가 자란 마산의 고향 바닷가를 기억하기도 한다. 6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이르는 유년시절을 겪었던 저자이기에 어쩌면 그가 기억하는 추억속의 음식들은 당시의 우리의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이 모두들 자장면을 추억의 음식들중 첫 손가락으로 꼽는지, 왜 기차만 타면 삶은 달걀이 먹고싶어 지는지에 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자장면에 담긴 따뜻한 가족애와 행복, 그리고 삶은 달걀이 상징하는 소풍의 즐거움과 먼 길 떠나는 슬픔은 어쩌면 저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추억이 묻어있는 정서이기에 더욱 따뜨한 마음이 느껴진다.

 

저자는 자신이 결코 음식을 가려먹는 미식가가 아니며 뛰어난 미각을 타고 나지도 않았지만 10년이 넘는 맛 칼럼니스트 활동을 통해 터득한 것을 조금씩 풀어 놓는다. 사람들은 모두 맛으로 이름난 집을 찾으려 하고 그 경로는 대부분 신문, 방송등의 매체와 인터넷일수 밖엔 없다. 또한 외식업계 자체적으로 식당에 별을 달아주거나 자치단체에서 지정한 이름난 음식점들 또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린 아직 식당에 별을 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단언한다. 전통이라는 것 자체가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렇게 겉으로 드러난 식당 소개는 의문 일수 밖엔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지자체의 위생계 직원을 통하거나, 어디어디 선정된 맛집을 피해 시장의 먹자골목을 찾거나 작고 허름한 식당을 찾는 것이 오히려 최고의 맛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어떤 전문 음식타운을 보노라면 많은 식당 가운데 '원조'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수많은 식당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여기도 원조, 저기도 원조. 저자는 그것에 대해서도 '맛으로 승부하지 않고 간판으로 승부하려는 식당 주인들의 태도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라며 그 얄팍한 상술을 통해 우리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그저 간판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주관없이 휩쓸려다니기 보다는 음식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질 것을 권유한다. 그를 통해 선천적으로 미맹이 아닌 이상 누구나 미식가가 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최고의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길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는 것 같다.

 

책에는 TV드라마 '대장금'이나 '식객'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요리는 없다. 그저 설렁탕, 족발, 국밥, 자장면, 돈가스 등 언제나 우리들의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맛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어떤 특정한 맛집보다는 그 음식 자체에 깃들여 있는 정서를 만날 것을 권유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맛에는 순수한 맛과 변형된 맛이 있습니다. ... 순수한 맛은 순수한 마음과 통합니다. 곧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정신적인 행위입니다. ... 사람을 보면 느낌이란 것이 있지요. 음식에도 이런 느낌이 있습니다. 음식을 제대로 먹으면 그 음식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지요."
여덟 살에 가출해 중국집 배달원부터 시작해 맛에 대해 한 경지를 이루어냈다는 요리예술가 임지호가 저자에게 들려준 말이라고 한다. 순수의 소통이라는 그의 말이 한편으로 이해가 가면서도 도대체 어디서 저러한 장인을 만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핵가족과 도시생활은 현대인에게 외식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음식은 그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획일화 된 음식들 뿐이다. 아마도 그래서 현대인들은 이름난 음식점에 대해 열광하고 심취하는지도 모른다. 유명하고 이름난 맛집을 찾아 다니는 수고스러움 보다는 음식에 깃든 정성과 사랑 그리고 추억을 음미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저자가 제시하는 맛을 아는 미식가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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