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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ㅣ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고 번영의 토대를 이루기 이전부터 바다는 언제나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바다로 나아가는 것은 단순히 식량자원의 획득을 넘어서 바다가 서로의 문화를 교환하고 인간의 지혜와 문명을 나누는 교역의 현장으로 부상하게 됨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한 바다에로의 도전을 통해 인간은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되었고, 그것은 곧바로 바다위의 패권 다툼으로 이어졌다. 이전까지 그저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은 무적함대로 상징되는 해양개척의 선두국가 스페인과의 칼레해전을 승리로 이끌어내면서 지중해의 새로운 국가로 부상하게 되고 그것은 이후 지중해의 바다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경쟁의 시작을 알린다.
이 책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그러한 혼란의 시기가 이어지던 19세기초 여러 나라가 해상의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지중해를 배경으로 실제 존재했던 영국 전함을 모델로 그려진 해양 모험 소설이다. 동력이 사용되기전 바다에는 오직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크기와 대포의 화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움직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모든 해전의 승패는 선원들의 항해술과 뛰어난 리더 그리고 돛이라는 기술적 요소에 의해 가려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는 범선의 구조는 물론 그 과학적 원리에 대한 언급이 헤아릴수 없이 많이 서술되고 있다. 아마도 그 때문인지 소설은 대체적으로 다소 어려운 부분이 곳곳에 보이기도 한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자리한 주석들이 없다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가득할지도 모를 정도이기에.
야망만 있을뿐 아무런 배경이 없었기에 무능한 자신에 대한 정치적 무기력과 회의만을 갖고 있던 영국 해군 대위 잭 오브리는 총독 관저에서 벌어진 연주회에서 어느 왜소한 사내와 불쾌한 만남을 겪는다. 번번이 승진에서 누락되고 되는 일 하나 없는 자신을 한탄하며 쓸쓸히 숙소로 돌아온 그에게 소피호의 함장으로 임명한다는 반가운 편지가 도착해 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 전임함장이 유능한 선원과 부관 그리고 군의관까지도 모두 데려갔으며, 함대 사령관은 출항에 필요한 선원을 단 한명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출항을 앞두고 잭은 사관은 물론 군의관까지도 자신이 모두 구해야 하는 지경이다.
잭이 연주회에서 불쾌한 만남을 가진 사람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자연학자이자 의사인 스티븐 머투린이다. 그는 당장 생계마저 이어갈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서 잭과 만나게 되고 그 우연한 만남을 통해 그에게서 군의관이 되어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물론 스티븐 역시도 잭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음악을 매개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스티븐은 항구에 있는 소피호를 바라보며 강한 감정 변화를 느끼게 되고 잭의 제의를 수락한다.
잭은 아름다운 곡선형 갑판을 가진 소피호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더욱이 함장실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황홀감은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생활해 온 그에게 잠깐이나마 모든 소망을 이룬것같은 흡족함을 안겨다 준다. 열두척의 상선을 호위하라는 첫번째 임무를 부여받은 직후 실시한 훈련은 엉망이었고 포격 훈련시 갑판이 견대내지 못할 만큼 소피호는 군함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배였다. 새롭게 배치되어 온 성실한 부관 제임스 딜런이 합류하고 잭의 함장으로서의 지휘력과 빠른 판단력이 더해지면서 그들은 첫번째 해전을 놀라운 승리로 이끌어 내고 도저히 작은 배로는 이루기 힘든 성과들을 올리기 시작한다.
19세기초 지중해의 바다는 강대국들의 힘의 경연장이었다. 무장한 사설함대의 사략선을 피해 자국의 상선을 보호할 목적으로 지중해에 파견된 각국의 함선은 오히려 정부의 비호 아래 적국의 상선에 대한 무차별적 포격과 나포로 이어졌고, 그렇게 약탈된 배와 물자들은 자국에 커다란 이득을 안겨다 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포에 이어지는 상금은 꽤나 매력적이고, 목숨을 걸만한 도전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함장인 잭부터 일개 선원에 이르기까지 소피호에 탑승한 모두 사람이 가진 공통의 욕심이기도 했다.
200톤이 조금 넘을 정도로 작은 소피호는 잭의 지휘 아래 많은 전과를 올리며 막대한 이익을 영국에 안겨다 준다. 하지만 잭에게 그만큼의 보상이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작품내내 이어지는 넓은 해양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통해 잭과 스티븐은 그동안 자신들을 옥죄어 왔던 현실에서 벗어나 탈출구를 찾는다.
'바다는 잭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는 곳이자 스티븐이 권력에 물든 자들의 구린 악취에서 해방되는 곳'
작가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표현대로 바다는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험의 장이기도 하다. 그들이 겪어내는 바다위에서의 치열한 경험을 통해 인간이 가진 한계와 또한 그를 넘어서는 의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는 듯하다. 나포된 이후에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서로 잊지 않는 멋진 사람들이 있는 19세기 지중해로의 모험은 그래서 더욱 흥미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