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의 기술
카네스 로드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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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처럼 정치에 있어서도 체제를 유지시키고 지켜나가리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것은 여전히 입증되고 있는 사실이며 지나간 정권에 대한 거듭되는 비판은 우리가 계속해서 겪고 있는 반복적인 구태의연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쩌면 그것을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로 보기도 한다.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는 선택에 있어서 지도자의 결단은 그대로 국민들에게 그 영향이 전가되기에 우리는 몸소 피부로 그것들을 느껴왔고 또한 체험해가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다. 레이건 정부와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정보와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정치학자 카네스 로드는 자신의 책 <통치의 기술>에서 대중민주주의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흐름앞에서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또한 법과 국가의 수호자로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도전과 그 응전에 대해 현명하고도 날카로운 조언을 통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단순히 데마고기에만 부합하는 정치술이 아닌 진정한 통치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낸다.

 

저자는 제일 먼저 통치술이란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비즈니스 분야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정치건간에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리더의 임무는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명료하게 현시하는 것, 즉 조직이나 국가의 구성원들을 고무하고 창의적으로 이끌 수 있는 비전을 확립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제 오늘날의 통치술은 일련의 새로운 국가적, 초국가적 임무들과 관련해 리더가 대처해야할 자세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하고 있기도 하다. 즉 민주화, 인권수호 및 박애주의, 군비축소, 환경문제, 테러리즘 등 과거와는 다른 쟁점들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들이 새롭게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쟁점들은 각국가 간의 경쟁과 대립의 모습이 아닌 공조와 협력을 전제로 하는 사안들이기도 하다. 결국 그것은 앞으로 리더에게 주어진 역할 뿐만아니라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술마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화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리더십과 통치술이라는 저자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하기도 한다. 그중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견해가 바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군주론>에 비춰진 군주상은 엄격한 통제와 오늘날에는 잘 맞지 않는 비도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어떤 주장보다도 근대 이후의 정치와 비즈니스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이 증명되고 있기에 저자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리더십이라는 문제에 대해 냉혹한 평가는 물론 앞으로 리더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인 최상의 정체는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거의 완벽한 조건이 아니면 실제로 구현될 가능성이 적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곧 현재의 국가형태 또는 더 나을지 모르는 대안적 정체가 제시할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고려하려면 정치학자들이 언제든 눈높이를 낮출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대부분의 국가에 가장 적합한 정치형태'라고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정치학자와 정치가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볼 때 그것이 모든 나라에 정착되기는 힘든 또한 그 실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한 이상이었지만 지금 현재 세계의 리더들은 그 이상을 구현해나가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여러가지 정치형태들 중 오늘날 가장 많은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입헌민주주의에서는 인간이 아니라 법이 왕이며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니며 경쟁하는 주체들이 표면적인 최고통치자의 행동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묵계와도 같은 일련의 신념이나 태도같은 정치문화이다. 정치문화는 그와같은 제도적 장치와 구조들에 대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모든 인간은 날때부터 평등하며 기본권을 부여받았다는 사실, 국가는 그러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 국가는 국민의 주인이 아닌 종이라는 사실, 국민이 선출한 대표가 다스리지 않을 경우 국가는 신임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등은 국민이 갖는 기대와 정치가들이 품는 꿈의 성격을 결정짓는 자명한 기본 원리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자리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진정으로 유일한 국민의 대표자인 동시에 정부가 여타 정당조직의 우두머리들이나 특정 이익집단 또는 지역 부호들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인 것이다.

 

몽테스키외와 로크가 주장했던 권력분립의 이론들은 그대로 고스란히 현대를 아우르는 정치형태로 많은 민주국가에서 실천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관여하고 일을 했으며 오늘날 많은 입헌국가의 모델이 되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제도를 일컬어 결코 강력한 제도도 취약한 제도도 아니며 그 둘의 신중한 결합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것은 역설적인 얘기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대통령은 약하기 때문에 강할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국민과 입법부에 종속된 존재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주체에 대한 도구적 존재 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존재로 인식되기에 그 행동으로 인해 손해를 입는 이들의 분노와 적의를 어느 정도는 누그러뜨릴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그 강력한 권한 때문에 대통령이 약할 수도 있다는 것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정치지식을 이해하는데 부족한 것은 그것이 관여하는 주요 문제들의 범위에 대한 인식뿐만은 아니다. 정치지식의 고유한 성격이나 형태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역시 부족하기만 하다. 전통적 의미의 통치술에는 정치적 판단력 즉 분별력만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짙다. 이것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적합한 일종의 지적 통찰력이나 인식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정치가는 정치적 사안에 관한 풍부한 경험으로 인해 올바른 정치적 결정을 내릴 지적능력을 개발하여야 한다는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정치가는 국가의 체제란 흔들리거나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적 안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닌지를 간파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녀야 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취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자신의 정책과 행동이 체제의 토대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력을 감안하여 엘리트 계층과 여러 당파 및 정치기구들을 다루는 방법과 정책을 결정하는 방법등을 모색해야 한다.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오늘날에는 리더십이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되고 리더의 권위 역시 축소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더는 무너지기 쉬운 유약한 존재라는 사실역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역사상 많은 지도자들이 겪었던 비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격적인 미덕으로 보이는 성향 안에 불행과 파멸의 씨앗이 숨어있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많은 국민들의 시선이 리더 즉 통치자에게 향하고 있다. 우려와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강한 결단력과 올바른 정책결정으로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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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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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거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지나간 시절에 대한 되내임뿐만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역사가 존재했기에 오늘날의 우리들이 문명의 이기아래 발달된 문화혜택을 누리고 있는것이 아닐까. 웃음이라는 코드를 항상 저변에 깔아놓고 작품을 풀어가는 오기와라 히로시는 그가 늘 보여주었던대로 한바탕 웃음 뒤에 허전함이라는 작가 특유의 무언가 알 수 없는 의미를 자리하게 하곤한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에서 처럼 현대인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있는 고향마을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으며 <하드보일드 에그>에서 처럼 현대인들이 그들의 가족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던 애완동물 유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바로 그러한 것들 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 <타임 슬립>역시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뒤바뀐 두 젊은이의 운명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세지가 보여진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알 수 없는 끈으로 묶여진 두 젊은이는 그래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시간설정에 대한 소재는 그간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등정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미 독자들에게 친숙한 소재이지만 작가는 무리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활력으로 글을 이끌어 나간다.
 

2001년 9월 12일
뉴욕에서 벌어진 항공기테러사건으로 인해 국제 무역센터가 무너지고 모든 매스컴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난리가 아니다. 하지만 오지마 겐타는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마저 방송되지 않아 그저 짜증이 날 뿐이다. 작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도 취직도 하지 않은 겐타는 늘상 부모와 부딪힐 뿐이다. 겨우 얻은 아르바이트자리마저 순간적인 흥분 때문에 박차고 나와 버렸다. 답답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의 차를 몰래타고 평소 즐겨하던 서핑을 하기위해 바닷가에 나와 있다. 나름대로 게임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밤마다 공부도 하고 어려운 프로그래밍책도 읽지만 아무도 이해해 주질 않는다. 다만 사귀기 시작한지 이제 일년이 된 여자친구 미나미의 존재가 겐타에겐 유일한 위안이 될 뿐이다. 모든 생각을 잊고 서핑을 하기 위해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던 겐타에게 엄청나게 큰 파도가 몰려오면서 겐타는 서프보드에서 미끄러져 바다로 빠려 들어가고 의식을 잃는다.

 

1944년 9월 12일
태평양전쟁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전세야 어찌됐든 해군 비행예과 연습생출신 이시바 고이치는 오늘이 첫 단독비행훈련이다. 늘 자신을 괴롭히던 야마구치의 기억도 여동생 요시코의 아픈 기억도 모두 잊고 '바다의 젊은 매'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순간 고이치의 비행기는 알수없는 힘에 이끌려 바다로 추락한다. 나라를 위해 죽기로 한 몸 그저 이대로 사라지는게 아쉬울 뿐이라고 생각하며 고이치는 의식을 잃는다.

 

 

시간이동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 두 젊은이 겐타와 고이치는 그렇게 너무나도 생소한 세상에 내던져진다. 과거로 온 겐타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광경을 TV인기프로그램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하늘에서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탄을 투하하는 B-29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려하던 상상이 실제임을 직감하게 된다. 미래로 간 고이치는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별세상'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가족들이 그에게 이상이 생겼다고 믿고 그것을 위로하며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슬퍼하고 싶진 않았기에 또한 자신을 겐타라고 믿으며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미나미가 있기에 고이치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최대한 적응하려 애쓴다.

 

겐타는 1944년의 고이치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중학교때까지 했던 야구와 서핑으로 다져진 몸때문에 의외로 빠르게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고 있긴 하지만 무엇때문에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또한 의미없는 전쟁을 위해 목숨을 내던져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겐타는 다음해 8월 15일이 되면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위태로운 목숨을 건질수 있기에 미래로 돌아가는 것은 그때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최대한 버텨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겐타의 뜻대로 펼쳐지지는 않는다. 두렵지만 겐타는 현실에 최대한 맞서 보기로 한다.
"50년전, 이땅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들도 말투와 행동은 고리삭았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놈들도 있었다고. 우리와 똑같이 웃고, 울고, 화내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고, 믿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고." 

 

고이치는 겐타의 방과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읽으며 자신이 미처 알지못했던 미래의 알본에 대해 알게 된다. 결코 믿기지않는 일이었지만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고이치는 자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 어다에서도 자취는 보이질 않을 뿐이다. 미나미와 함께 찾은 도쿄의 거리에서 미래의 일본이 자신이 꿈꾸던 것과는 너무나 다름을 목격하고 고이치는 절망한다.
"50년 뒤의 일본은 너무 많은 물질과 욕심과 소리와 빛과 색의 세상이었다. 다들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고,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겸허도 수치도 겸양도 규범도 안식도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고 애쓴 나라의 50년 뒤 모습이란 말인가?"

 

종말로 치닫던 전쟁처럼 겐타와 고이치 모두 마지막이 다가옴을 직감한다. 그들 모두에게는 돌아가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겐타에게는 남겨 두고온 미나미와 과거로온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이 자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알기에, 고이치는 허망한 결과를 알고 있지만 이미 그의 조국을 위해 자신이 아직도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절박감과 사명감때문에...

 

이 작품 <타임슬립>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일본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두 젊은이의 뒤바뀐 운명을 통해 강렬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겐타가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전쟁이라는 참혹함에 맞서는 반전 메시지를, 고이치가 바라보던 시각에서는 무절제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일본작가가 쓴 일본소설이기에 미군 구축함에 돌진하던 겐타의 모습이나 과거로 돌아가 전쟁의 방향을 바꾸려는 고이치의 모습은 약간의 거부감으로 작용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를 통해 우리역시도 가슴아픈 과거가 있었음을 상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까지도 그 상흔이 남아있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제 그러한 사실들을 까마득한 과거에 그저 지나간 역사라고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들이 보았고 실제 체험했던 그 모순 덩어리들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공존할 것이다. 그 모순에 맞서 척박한 곳에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불태웠던 겐타와 고이치 그들의 노력과 사랑에 마음이 어쩐지 애잔해 옴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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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유산
이명인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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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피를 이어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렇게 우리는 미리 결정지어진 성씨를 갖고 혈연으로 이어진 인간관계를 갖는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거침없이 바뀌어가는 현세태속에서 가족관계 역시 과거처럼 몇대가 어우러져 사는 대가족의 모습은 이미 찾기 힘들어져 버렸다. 그저 편한대로 가족아라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가족이란 개념이기도 하다.

 

이명인의 소설 <은밀한 유산>은 100여년에 걸친 두 집안의 삶을 통해 잊혀져 가고 있는 가족과 뿌리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해 주는 작품이다. 한국인의 핏줄이라는 것, 뼈대라는 것이 과연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소가 몸을 휘어 마을을 담뿍 감싸안고 있는 형상을 지닌 우각산 아래 고라실 마을은 연암이씨 충숙공의 후예이며 대대로 조정에 위세를 떨친 세도가의 집안이다. 이에 비해 너븐들 김씨 집안은 큰 벼슬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는 것을 자신들의 지표로 삼는 그저 향반에 머무름을 자신들의 위치로 여기며 살아가는 가문이다. 그 바탕은 무오사화때 연루되어 멸문의 화를 겨우 면해 이곳 너븐들에 터전을 잡은 자신들의 선조 수양공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고장을 대표하던 두 집안은 그런 연유로 인해 아무래도 권세나 세도면에서는 늘 고라실이 우위에 서는 형국을 지닌채 살아오지만 너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회를 노린다. 고라실 집안은 재물쪽으로도 풍족함이 없었지만 늘 제사를 모실 자손이 너무나 적어 위태위태하게 대를 이어오다가 결국 양자로 대를 잇게 된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맞은 양자가 윗말에서 들인 청강 이재우였으나 그는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종손이라는 위치를 부담스러워하고 집안 가산을 거의 탕진한채 숨을 거둔다. 또한 그가 탕진한 토지의 대부분을 너븐들쪽에서 매입함으로써 두 집안의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청강의 두아들 연식과 경식은 비록 기울어져가고 있는 가세이지만 뼈대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 고라실의 장손이 된 죽비 이연식의 두아들 정우와 영우 그리고 동생 경식의 아들 찬우로 인해 자손이 번창함을 고라실은 그나마 위안으로 여긴다. 옛부터 자손이 번창했던 너븐들의 장손은 원봉 김익준이다. 그들은 그것을 대대로 전해오는 집안의 가보인 원앙에서 기인한다고 믿고 있다. 익준은 급격히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장자 희태를 제외한 나머지 자식 종태, 윤태, 용태와 외동딸 난설까지도 경성으로 보내 신식공부를 시킨다. 이제 더이상 너븐들에서 움츠리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나가겠다는 그들의 의지이기도 했다. 결국 고라실에서도 정우와 영우를 경성에 터전을 잡고있는 아우 경식에게 보냄으로써 이제 자손들의 무대는 경성으로 옮겨진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젊은이들의 열정만큼은 불타오른다. 두 집안의 젊은이들은 독립이라는 문제에 직접적으로 부딪히면서 일제에 항거한다. 누구보다도 정우와 난실이 대표적이다. 고라실의 장손 정우는 장손이라는 부담을 지고 가는 아버지 연식의 고단함을 누구보다도 잘알았지만 끝내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못한다. 총명한 난설은 아버지 익준의 반대를 무습쓰고 올라왔지만 누구보다도 조직적이고 열정적으로 지하운동에 참여한다. 일제에 쫓기던 정우와 난실은 그렇게 서로에게 빠져들고 반대하던 두 집안의 결혼승락을 받아낸다. 하지만 정우는 체포되고 그런 정우를 잊지못하는 난실은 미국유학에 오른다. 그렇게 시대는 고라실과 너븐들 젊은이들을 쓰러지게 만들어 버린다. 감옥에서 숨을 거둔 형 영우의 뒤를 따라 정우 역시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너븐들의 종태 역시도 감옥에서 숨을 거둔다. 그렇게 암흑기는 찾아온다. 고라실 연식의 아내 백씨는 이제 기댈곳이 없다. 연식의 동생 경식마저도 찬우를 데리고 중국으로 떠나 연락이 두절됐기에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기던 고라실의 집안의 대가 끊긴 것이다. 백씨는 이전부터 경식의 집에 드나들던 사옹원 공인 몽득의 사촌 연화를 통해 고라실의 핏줄을 이어가려 한다. 백씨의 노력은 처절하다. 자신이 평생 지켜왔던 고라실의 안주인 자리마저 포기하면서까지 그리고 이미 늙어버린 남편 연식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 대를 이으려 너븐들의 가보 원앙을 몽득에게 훔쳐올 것을 부탁한다. 원앙을 손에 쥐게 되면 백씨는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하지만 너븐들의 원앙을 갖고도 백씨는 끝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렇게 그 시대는 막을 내린다.

 

무대는 현대로 바뀐다. 너븐들의 장손 현진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가문과 핏줄이라는 의미를 알린다. 그리고 그 블로그가 적지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과정속에서 영인을 만난다. 놀랍게도 영인은 이전 중국으로 떠났던 고라실 청강 이재우의 둘째아들 경식의 후손임이 밝혀진다. 영인의 아버지 이필준이 찬우의 손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필준은 탄탄한 재력을 지닌 중견기업의 대표가 되어있다. 집안이 거의 멸문하다시피한 고라실에 이제 종손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제껏 눌려 지내왔던 고라실의 사람들은 필준을 통해 다시 한번 가문이 일어나 그 옛날의 영화를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소설의 시기가 여러대에 걸쳐있을 만큼 작품의 스케일도 방대하다. 그것은 대하소설로 엮어도 될만큼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의 기둥을 이루는 두 집안의 갈등 뿐만 아니라 정우와 난실의 이루지 못한 사랑, 고라실의 대를 이으려는 노력, 실존인물인 관순을 통해 서서히 의식을 깨어가는 난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정우와 난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되내이며 현진과 영인이 새롭게 만들어 가는 인연 등 많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의 모든 키를 쥐고 있는 이가 바로 김몽득이다. 백씨와의 거래를 통해 고라실이라는 당대의 명문가와 사돈이 되었지만 끝내 고라실은 쓰러지려 하고 있다. 몽득이 겨우 잡은 신분상승의 꿈은 저 너머로 사라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몽득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봐라, 나라는 망해도 양반은 망하지 않았느리라. 가문의 영광을 후광으로 삼은 너는 이제 세상의 중심이 되었느리라."

 

몽득의 되내임을 통해 이 작품 <은밀한 유산>이 보여주려 했던 것이 드러난다. 그것은 신분과 계급이라는 불변의 존재에 맞서는 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또한 그것은 뿌리라는 겉으로 보이기만하는 외형적인 모습에 치중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이미 사라지고 없다지만 이전의 시대에 존재했던 신분은 어쩌면 족보와 혈통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이전의 시대가 개개인의 사람보다 가문과 뿌리라는 것을 통해 개인을 평가했다고 넘겨버릴수도 있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은연중에 나타난다는 것은 조금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은밀한 유산이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이 드로내고 싶지 않은 치부가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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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 소설에서 찾은 연애, 질투, 간통의 생물학
데이비드 바래시.나넬 바래시 지음, 박종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문학이란 존재는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으며 그 내면에 당대의 사회상과 심리를 담아내고 있는 축복의 산물이기도 하다. 시대와 공간과 소재는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가 접하는 많은 문학작품속에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 모습들에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 깃들여 있기에 문학은 늘 우리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그 장구한 세월을 이어왔다. 물론 문학이 그 본질 이외에 권력이나 계급투쟁, 또는 의미없는 무의식적 충동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들이 문학을 접하고 찾고 즐기며 기억속에 남겨놓는 이유는 아마도 문학이 다른 어떤 매체나 존재보다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게 그 의미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헤럴드 블룸이 그의 책 <교양인의 책읽기>에서 언급했던 "깊이 읽어라... 단지 뭔가를 믿고, 시인하고, 반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읽고 쓰는 우리의 본성에 참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 처럼 우리는 그렇게 문학작품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모습에 통찰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또한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책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는 수많은 고전과 현대소설을 통해 진화심리학을 살펴보는 새로운 시도를 펼친다. 진화생물학자인 데이비드 바래시 워싱턴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그의 딸 나넬 바래시와 함께 생물학이란 코드를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적인 기교와 상상력으로 포장된 문학작품에 대해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까지도 <오셀로> <허클베리핀의 모험> <보바리의 부인> <오만과 편견>등이 사랑을 받고 꾸준히 읽히는 이유가 뭘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시작으로 진화심리학이라는 방식을 접목시킨다. 즉, 앞서 언급한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특성을 인간도 동물의 본능과 결코 별반 다르지 않다는 대전제하에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 바로 인간본성이라는 시각을 갖는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본성을 자극함으로써 만들어진 그럴듯한 문학의 모습을 통해 그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본성을 표출하고 있다는 저자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 책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모습들은 문학이라는 존재를 과학적 시각으로 재발견해보려는 새도운 시도일 것이다.

 

저자가 진단한 인간 본성의 모습은 이러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도 생물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의외로 간단해진 결론에 도달될수도 있다. 수컷이라 표현되는 남성성의 전형적인 상징인 오셀로가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들어 질투와 의처증에 사로잡이고 끝내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살에까지 이르는 것은 남녀간의 성적 차이와 함께 진화론으로 설명된다.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그의 연인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질투라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은 모든 수컷에게는 오쟁이질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과 함께 암컷역시 때로는 간통을 하고픈 열망을 지니고 있다는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남성은 일부일처 사회라는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배우자의 부정에 더 민감해졌으며 고대신화의 그것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수컷 대 수컷이 바로 인간의 역사 바로 그것이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문학속의 여성 즉 암컷 역시도 남성과 그리 다르지 않게 표현된다. 그녀들은 수컷들을 경쟁하게 하고 심지어 전쟁이라는 극단의 모습으로 이끌어 내기까지하며 더 나아가서 파멸이라는 암흑으로 그들을 빠뜨리기 까지 한다. 악녀라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팜므파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에서는 아내가 젊은 떠돌이 정부와 모의해 남편을 살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단지 수컷이 그 선택의 키를 쥐고 있지만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은 그녀의 작품들 대부분에서 결혼 적령기 여성의 복잡한 남성선택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오만과 편견>을 통해 배우자 선택권이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있으며, 여성은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명성 그리고 좋은 유전자와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겠다는 이 세가지 자산을 제대로 보여주고 표현하는 남성을 선택하게끔 되어있게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통해 암컷이 보다 나은 수컷을 골라 번식하는 것이 그녀들 진화의 보상이라는 진화학자 다윈의 논리에 그 기반을 갖고 있다고 해석해 낸다. 또한 그것은 수컷과 암컷이라는 서로 다른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며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 즉 앙혼(仰婚)을 기대하고 꿈꾸는 것은 암컷만의 전유물이며 그것은 인간의 역사 그 자체를 대변해낼 만큼의 오랜 역사를 지녔음을 주장한다.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 자신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다양한 상상력의 날개를 펴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사고와 함께 보다 풍부한 감성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작품 속에 담겨있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을 짚어나가는 저자의 시각을 통해 문학을 보다 다양한 다원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안내받게 된다. 수컷과 암컷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 이외에도 이 책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는 <대부>를 통한 가족의 중요성과 <포트노이의 불만>을 통한 부모 자식간의 갈등 그리고 <삼총사>를 통한 호혜주의와 우정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역시 그러한 해석의 방법에서도 생물학과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은 계속 이어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대중이 문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 대중들 역시 피상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문학작품을 문학적 모습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를 인도받게 된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오랜 역사와 함께 했던 인간의 사랑, 질투, 간통, 복수라는 인간의 보다 본질적인 코드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또다른 열쇠가 될 수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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