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거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지나간 시절에 대한 되내임뿐만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역사가 존재했기에 오늘날의 우리들이 문명의 이기아래 발달된 문화혜택을 누리고 있는것이 아닐까. 웃음이라는 코드를 항상 저변에 깔아놓고 작품을 풀어가는 오기와라 히로시는 그가 늘 보여주었던대로 한바탕 웃음 뒤에 허전함이라는 작가 특유의 무언가 알 수 없는 의미를 자리하게 하곤한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에서 처럼 현대인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있는 고향마을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으며 <하드보일드 에그>에서 처럼 현대인들이 그들의 가족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던 애완동물 유기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바로 그러한 것들 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 <타임 슬립>역시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뒤바뀐 두 젊은이의 운명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메세지가 보여진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알 수 없는 끈으로 묶여진 두 젊은이는 그래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시간설정에 대한 소재는 그간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등정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미 독자들에게 친숙한 소재이지만 작가는 무리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활력으로 글을 이끌어 나간다.
 

2001년 9월 12일
뉴욕에서 벌어진 항공기테러사건으로 인해 국제 무역센터가 무너지고 모든 매스컴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난리가 아니다. 하지만 오지마 겐타는 즐겨듣던 라디오 프로그램마저 방송되지 않아 그저 짜증이 날 뿐이다. 작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도 취직도 하지 않은 겐타는 늘상 부모와 부딪힐 뿐이다. 겨우 얻은 아르바이트자리마저 순간적인 흥분 때문에 박차고 나와 버렸다. 답답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의 차를 몰래타고 평소 즐겨하던 서핑을 하기위해 바닷가에 나와 있다. 나름대로 게임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밤마다 공부도 하고 어려운 프로그래밍책도 읽지만 아무도 이해해 주질 않는다. 다만 사귀기 시작한지 이제 일년이 된 여자친구 미나미의 존재가 겐타에겐 유일한 위안이 될 뿐이다. 모든 생각을 잊고 서핑을 하기 위해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가던 겐타에게 엄청나게 큰 파도가 몰려오면서 겐타는 서프보드에서 미끄러져 바다로 빠려 들어가고 의식을 잃는다.

 

1944년 9월 12일
태평양전쟁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전세야 어찌됐든 해군 비행예과 연습생출신 이시바 고이치는 오늘이 첫 단독비행훈련이다. 늘 자신을 괴롭히던 야마구치의 기억도 여동생 요시코의 아픈 기억도 모두 잊고 '바다의 젊은 매'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순간 고이치의 비행기는 알수없는 힘에 이끌려 바다로 추락한다. 나라를 위해 죽기로 한 몸 그저 이대로 사라지는게 아쉬울 뿐이라고 생각하며 고이치는 의식을 잃는다.

 

 

시간이동으로 운명이 바뀌게 된 두 젊은이 겐타와 고이치는 그렇게 너무나도 생소한 세상에 내던져진다. 과거로 온 겐타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광경을 TV인기프로그램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하늘에서 엄청난 굉음을 내며 폭탄을 투하하는 B-29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려하던 상상이 실제임을 직감하게 된다. 미래로 간 고이치는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별세상'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가족들이 그에게 이상이 생겼다고 믿고 그것을 위로하며 슬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슬퍼하고 싶진 않았기에 또한 자신을 겐타라고 믿으며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미나미가 있기에 고이치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최대한 적응하려 애쓴다.

 

겐타는 1944년의 고이치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중학교때까지 했던 야구와 서핑으로 다져진 몸때문에 의외로 빠르게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고 있긴 하지만 무엇때문에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또한 의미없는 전쟁을 위해 목숨을 내던져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겐타는 다음해 8월 15일이 되면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위태로운 목숨을 건질수 있기에 미래로 돌아가는 것은 그때가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은 최대한 버텨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겐타의 뜻대로 펼쳐지지는 않는다. 두렵지만 겐타는 현실에 최대한 맞서 보기로 한다.
"50년전, 이땅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들도 말투와 행동은 고리삭았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놈들도 있었다고. 우리와 똑같이 웃고, 울고, 화내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고, 믿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고." 

 

고이치는 겐타의 방과 도서관에 있는 책을 읽으며 자신이 미처 알지못했던 미래의 알본에 대해 알게 된다. 결코 믿기지않는 일이었지만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고이치는 자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 어다에서도 자취는 보이질 않을 뿐이다. 미나미와 함께 찾은 도쿄의 거리에서 미래의 일본이 자신이 꿈꾸던 것과는 너무나 다름을 목격하고 고이치는 절망한다.
"50년 뒤의 일본은 너무 많은 물질과 욕심과 소리와 빛과 색의 세상이었다. 다들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고,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겸허도 수치도 겸양도 규범도 안식도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고 애쓴 나라의 50년 뒤 모습이란 말인가?"

 

종말로 치닫던 전쟁처럼 겐타와 고이치 모두 마지막이 다가옴을 직감한다. 그들 모두에게는 돌아가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겐타에게는 남겨 두고온 미나미와 과거로온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이 자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알기에, 고이치는 허망한 결과를 알고 있지만 이미 그의 조국을 위해 자신이 아직도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절박감과 사명감때문에...

 

이 작품 <타임슬립>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일본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두 젊은이의 뒤바뀐 운명을 통해 강렬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겐타가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전쟁이라는 참혹함에 맞서는 반전 메시지를, 고이치가 바라보던 시각에서는 무절제한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일본작가가 쓴 일본소설이기에 미군 구축함에 돌진하던 겐타의 모습이나 과거로 돌아가 전쟁의 방향을 바꾸려는 고이치의 모습은 약간의 거부감으로 작용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를 통해 우리역시도 가슴아픈 과거가 있었음을 상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까지도 그 상흔이 남아있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은 이제 그러한 사실들을 까마득한 과거에 그저 지나간 역사라고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들이 보았고 실제 체험했던 그 모순 덩어리들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공존할 것이다. 그 모순에 맞서 척박한 곳에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불태웠던 겐타와 고이치 그들의 노력과 사랑에 마음이 어쩐지 애잔해 옴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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