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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속 동물 인간을 말하다 - 이야기 동물원
심우장, 김경희, 정숙영, 이홍우, 조선영 지음, 문찬 그림 / 책과함께 / 2008년 2월
평점 :
어린시절 잠이 오지않는 밤에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꿈결속으로 빠져들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다채롭고 끝이 없었으며 우리는 그속에서 수많은 사람과 또한 친근한 동물친구들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는 곶감, 소가 된 게으름뱅이, 새신랑으로 변신한 쥐 등 어느 얘기에서나 동물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이기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이야기들에서 동물들이 빠지지 않았던 것은 오랜동안 인간과 함께 그들이 생활해 왔으며 그들의 삶 자체가 우리 인간들의 삶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음에서 기인하지는 않을까.
이 책 <설화속 동물인간들을 말하다>는 그렇게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며 우리민족의 역사와 함께했던 수많은 설화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구비문학을 전공한 다섯명의 저자들이 공동집필한 책이다. 어릴적 우리가 가장 쉽게 동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이솝우화나 안데르센의 동화를 통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들에게 일정한 교훈을 위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 주요 소재가 동물들이었기에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좀 더 다정한 시각으로 대할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책은 우리들의 옛이야기속에도 수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이 존재함을 소개하며 또한 옛 이야기 속의 동물들이 어떻게 비쳐졌는가를 설명한다. 그것은 아마도 메세지의 전달 측면에서 인간의 이야기보다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기억에 오래남고 보다 강렬한 인상으로 남기에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러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가득 남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친절한 가이드 '비루'가 등장해 이야기 동물원이라는 이 책의 구성에 맞게 이리저리 둘러볼수 있게 만드는 형식을 갖고 있다. '비루'는 피부가 헐어서 털이 빠지고 그런 현상이 온몸에 번지는 병에 걸린 동물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쓸모없지만 우리의 엣속담에나 이야기들중에는 가끔 비루먹은 동물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비루먹은 개가 호랑이와 대적하기도 하고 비루먹은 볼품없는 말이 명마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비루가 이끄는 여섯가지의 동물관을 따라가다보면 동물 유래담, 야한 동물, 변신 동물, 신성 동물, 동물 대결, 숨은 동물 등을 다채롭게 만나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말미에는 '자투리 우수리' 혹은 'ZOO Cafe'란 이름으로 본문에서 다루지 못했던 속담이나 한자등에 숨어 있는 동물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은 실로 다양하다. 지금은 우리들의 곁에서 가족같이 지내기도 하는 인간의 오랜 친구인 개나 고양이 뿐만아니라 소, 돼지는 물론이고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호랑이, 사슴, 여우, 족제비 등도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게나 광어 장어등 바다 동물과 꿩, 까마귀 등의 날짐승은 물론 거미, 벼룩, 이 등 곤충까지도 등장한다. 실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이 그간 우리들과 함께 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들이 주목하여야 할 것은 동물이라는 소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동물들에게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수많은 설화에서 다루었던 동물들이 단순한 동물이라기보다는 그속에 인간의 삶과 욕망을 투영시킨 존재였으며 그들이 이야기속에서 존재하는 방식과 의미는 결국 우리들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까.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이 '설화속 동물인간'이라는 것 역시 그러한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들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재미있다. 그 존재가치 조차도 없는 이와 벼룩 모기가 앙반입네 하며 한시를 읊어대는 것이나 멸치에게 맞아 눈이 돌아간 광어와 그걸 보며 웃다가 허리가 휜 새우 이야기, 잘난척 하다가 이마가 벗겨진 메뚜기의 이야기 등 넘치는 해학과 위트는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또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다. 특히 2관인 야한 동물관에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은근히 노골적이면서 은근함으로 우리 선조들의 넘치는 유머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 담고 있는 의미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릇된 욕망과 욕심으로 오히려 화를 자초하기도 하는 동물들의 모습에서 치열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인간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음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저자들은 머리말 끝에 이러한 이야기를 남긴다. 아마도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느껴야 할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말로 느껴진다.
"옛 이야기 속 동물들은 동물원 철창에 가둬 놓은 관람용도 아니고 쏟을 데 없는 애정을 대신 받아주는 애완용도 아니다. 굳이 이야기하면 더불어 살아가며 때론 웃음을 주고, 때론 질책을 하며, 때론 삶의 진리마저 슬쩍 일러주는 '벗'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