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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 인간에게 음악이란 존재는 경이롭기까지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생을 포기하고 죽어가는 환자가 음악의 힘으로 치유되기도 하며, 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할 것이 우울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단순한 멜로디 하나로 순식간에 바꿔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악의 과연 어떠한 요소들이 그러한 불가사의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이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소생>등 많은 책을 통해 문학과 의학을 접목시키기도 한 올리버 색스는 이 책 <뮤지코필리아>를 통해 음악과 뇌의 관계를 추적함으로써 그러한 우리들의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올리버 색스가 만들어 낸 신조어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는 Music의 음악과 Philia의 사랑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특히 필리아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인간에 대한 사랑, 공감과 교감’을 뜻한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란 겉으로 드러난 뜻처럼 저자는 우리들 인간의 본성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음악적 성향을 누구나 갖고 있는 선천적인 것이라 규정한다.
책에는 저자인 올리버 색스 박사가 의학자로서 자신이 병원에서 직접 근무하며 만나면서 관찰한 다양한 환자들의 사례를 전한다. 그는 또한 미국 1400여개 신문에 실리고 있는 유명한 인생상담 칼럼 디어 애비(Dear Abby)코너에 칼럼을 연재한 후 환자들이 보내온 편지의 사연들 역시도 이 책을 집필하는데 주요한 자료로 쓰여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과학계의 기존의 관행 즉, 환자들을 직접 임상실험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폭 넓은 자료가 인용되어짐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과학적인 최신의 의료기술과 직접적인 환자의 경험과 사연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보다 인간적인 이해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임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를 통해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규명되어지지 않은 인간과 음악이라는 주제에 대한 보다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책의 첫장을 여는 토니 치코리아 박사의 사례는 대단히 흥미롭다. 그는 42세에 호숫가에서 번개를 맞고 심장이 멎는다. 응급조치 후 그는 깨어났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전까지 음악이라면 철저히 무시할 만큼 비음악인이었던 그는 갑자기 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음악을 위해 환생했다며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을 전하기 위해 폭포수처럼 연이어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게 된다. 도대체 번개가 그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그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연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지능지수는 60도 되지 않지만 과도한 음악성을 보이는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들, 헤르페스 뇌염에 감염되어 기억범위가 7초밖에 되지 않지만 음악 기억만은 온전한 저명한 음악가 클라이브 웨어링, 어렸을 때 수막염을 앓고 난 뒤로 한 번 들은 음을 절대 잊지 않고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모조리 외우며 모든 악기 모든 성부까지 연주할 수 있는 음악 서번트(Musical Savant) 마틴 등 음악과 관련된 저자의 보고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결국 그러한 많은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언어적인 본능 이외에도 음악적인 본능이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놀라운 인간의 체계가 또한 얼마나 불완전하고 연약한지도 보여준다. 뇌 일부가 손상되면 음악을 인식하거나 상상하는 능력에 장애가 생길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 음을 음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까지도 발생하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또한 뮤지코포비아(Musicophobia)라 명명한다. 머릿속에 박힌 곡조가 한없이 반복되는 일종의 환청인 뇌벌레 현상이나 음악환청을 느끼거나 음악을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질환 환자들에게 강력한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들에겐 삶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그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청각기관과 신경체계가 얼마나 예민하게 음악에 맞춰져 있는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저자의 견해를 따라가다 보면 음악이 얼마나 놀랍고 끝이 없는 존재인지 만날수 있게 된다.
책은 절대 음악에 관련된 전문서적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 그 자체가 개념도 없고 내용도 없으며 또한 어떠한 이미지나 상징, 언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음악에 심취하고 때로는 그 놀라운 능력에 경악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시말해 인간에게 음악은 이제 뗄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우리들의 삶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 역시도 스스로 환청을 겪고 실음악증 발작을 경험하는 고통을 받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일부러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더라도 음악은 우리들 인간에게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또한 그것은 자신이 특별히 음악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변함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저자가 수없이 소개한 신경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음악이라는 요소로 인해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언어적 종일 뿐 아니라 음악적 종 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인간은 언어적인 종일 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종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음악을 인식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것은 청각적이고 정서적인 일이 아니라 운동 근육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음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주목을 끌었고, 뇌 기능의 거의 모든 측면과 삶 그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었다."
현대 뇌과학의 발달은 우리들이 음악을 듣고 어떠한 것을 상상할 때나 작곡을 하려 할때 우리들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제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적인 견해에 앞서 이 책이 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저자가 늘상 이야기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음악이 인간 존재의 일부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음악이 과도하게 소비되는 음악 과잉의 시대에 오히려 우리가 음악이 지닌 그 위대한 힘을 혹시나 잊고 있진 않은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인식시켜 주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