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의 비밀 1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1
조완선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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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파리국립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던 한국인 유학생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발견해 낸다. 그리고 발견한 직지심경을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하여 구텐베르크가 발간한 42행성서 보다 무려 70여년이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임을 전 세계에 알린다. 이후에도 그녀는 외규장각 도서 279권을 프랑스국립도서관 창고에서 발견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던 청사를 찾아내기도 하는등 그 누구보다도 세계속에 한국을 알리기도 했다. 그녀가 바로 재불 사학자이며 직지심경(直指心經, 직지심체요절)의 대모라 불리는 박병선 박사이다. 조완선의 소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의 주인공 정현선은 평생 결혼도 하지 않은채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많다고 되내이는 박병선 박사를 모델로 하여 쓰여진 팩션이다.

 

소설은 한국과 프랑스간의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에 관한 프랑스측 대표인 세자르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장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협상에 비교적 호의적인 그가 한적한 거리 자신의 차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협상은 갑자기 흐지부지해진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체가 파리 국방대학원에 안치되어있다는 것이 많은 의혹을 자아내게 한다. 미국에 유학중인 그의 딸 로잘리는 그의 손톱이 빠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세자르가 살아생전 스승으로 모시던 정현선 박사를 찾아간다. 급작스런 죽음을 겪은 이제 정현선은 프랑스 경찰과는 다르게 독자적으로 사건에 대해 파고 들며 세자르의 마지막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30여년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동양학 문헌실에서 '전설의 책'이 발견된다.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그 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당시 사서로 근무했던 중국인 왕웨이, 일본인 마사코, 프랑스인 상트니 그리고 관장이었던 알렉스 단 4명 뿐이었다. 그들은 그 책의 존재를 비밀로 묻어두려 했다. 그 책의 발견으로 인해 문화적인 대격동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 비밀을 묻어두려 했지만 3년전 왕웨이가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점차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그무렵 세자르는 의문의 암호 두개가 적혀있는 편지 한통을 받는다.  

HCD+227


옛날과 현재의 예의와 법규를
문장으로 상세하게 정리한 책


세자르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서지 목록에도 없는 그 전설의 책을 지하별고에서 발견한다. 그는 그 책을 일컬어 세계 역사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책이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그것을 막으려는 집단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정현선은 그 집단으로 추정되는 토트의 실체를 추적하던 미국인 헤럴드와 함께 그 실체에 다가선다. 하지만 그 비밀이 조금씩 밝혀질수록 관련자들이 하나씩 희생당한다. 마사코도 상트니도 모두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정현선과 헤럴드 역시 계속되는 죽음과 맞서게 된다. 과연 세자르가 발견한 그 책은 무엇이며 그들을 막아서려한 토트의 실체는 무엇일까.

 

소설은 구한말 프랑스가 강화도를 공격한 병인양요가 그 모든 혼란을 몰고 왔음을 밝힌다. 전설의 책은 바로 정조에 의해 강화도에 설치된 외규장각 서고의 지하 동굴에서 그들이 약탈해간 70여권의 책이 그 모든 비밀을 담고 있다고 설정한다. 또한 소설은 작품의 진행 못지 않게 프랑스의 이중적인 잣대를 질타하기도 한다. 나치시절 프랑스를 침공해 많은 문화재를 앗아간 독일과의 협상과 문화재를 거의 강탈해간 우리와의 협상자세가 다름을 고발하는 것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얼마전 <돈황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오랫동안 먼지속에 뒤덮여 있던 돈황 막고굴의 수만권에 이르는 경전과 고서들을 프랑스와 영국의 탐험대가 거의 강탈하다시피 가져갔던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그 프랑스 탐험대의 대장 펠리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작품속에서도 수없이 언급되고 있다. 세자르가 언급한 그 두 권의 책중 하나가 바로 돈황에서 펠리오가 가져온 책이기 때문이다. 돈황에서 그들이 약탈해간 것이나 강화에서 그들이 약탈해간 것은 방법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약탈해간 문화재를 자신들이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돌려주지 않는 그들의 처사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문화대국임을 자처하는 그들의 겉모습과는 다른 실제 모습임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록으로만 전하는 책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설정은 분명 대단한 발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속이지만 그를 통해 한없이 많은 기쁨과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몇일전 경북 상주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실제 그 전설의 책들이 어딘가에서 아직까지 그 모습을 감춘채 우리의 문화재 조차도 찾아오지 못하는 못난 우리 후세들에게 아직 멀었다고 하는 선조들의 질타어린 시선이 보이는 듯하다. 프랑스와 우리 그리고 그 비밀을 감추려는 독일, 그 책을 이용하려하는 중국까지 많은 나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소설 작품의 흥미만큼이나 빼앗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불가능은 없다. 지난 2005년 오벨리스크가 지난해 고향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갔다. 무솔리니의 명령으로 약탈된지 70여년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것은 전쟁과 약탈로 얼룩져 고향을 잃은 문화재들에게 분명 희망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유명 영화배우출신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 문화부 장관은 파르테논신전 방문객들에게 일일히 유인물을 나눠주며 영국이 약탈해간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 엘진 마블의 반환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아직까지도 그 꿈을 이루어내진 못했지만 분명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은 그 꿈에 다가서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진정한 노력만이 뜻을 이뤄낼 수 있다. 몇 년전 어느 TV방송의 주도로 뜨겁게 펼쳐지다 잠잠해진 우리의 문화재 반환운동이 기억난다. 단발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 그리고 우리의 혼이 깃든 문화재를 기억해 보는 순간 이국에서 잠자고 있는 직지와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따뜻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또한 아직도 중고교의 교과서에는 우리의 조상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만 써놓았을뿐 그것이 세계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그저 직지라는 이름만을 외우려 할 뿐... 한 나라의 문화적 상징인 책을 만들어내는 인쇄술의 결정체가 얼마나 훌륭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듯한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좀 더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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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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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인간에게 음악이란 존재는 경이롭기까지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생을 포기하고 죽어가는 환자가 음악의 힘으로 치유되기도 하며, 그 어떤 것으로도 불가능할 것이 우울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단순한 멜로디 하나로 순식간에 바꿔놓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악의 과연 어떠한 요소들이 그러한 불가사의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이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소생>등 많은 책을 통해 문학과 의학을 접목시키기도 한 올리버 색스는 이 책 <뮤지코필리아>를 통해 음악과 뇌의 관계를 추적함으로써 그러한 우리들의 원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올리버 색스가 만들어 낸 신조어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는 Music의 음악과 Philia의 사랑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특히 필리아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인간에 대한 사랑, 공감과 교감’을 뜻한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란 겉으로 드러난 뜻처럼 저자는 우리들 인간의 본성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음악적 성향을 누구나 갖고 있는 선천적인 것이라 규정한다.

 

책에는 저자인 올리버 색스 박사가 의학자로서 자신이 병원에서 직접 근무하며 만나면서 관찰한 다양한 환자들의 사례를 전한다. 그는 또한 미국 1400여개 신문에 실리고 있는 유명한 인생상담 칼럼 디어 애비(Dear Abby)코너에 칼럼을 연재한 후 환자들이 보내온 편지의 사연들 역시도 이 책을 집필하는데 주요한 자료로 쓰여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과학계의 기존의 관행 즉, 환자들을 직접 임상실험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폭 넓은 자료가 인용되어짐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과학적인 최신의 의료기술과 직접적인 환자의 경험과 사연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보다 인간적인 이해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임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를 통해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규명되어지지 않은 인간과 음악이라는 주제에 대한 보다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책의 첫장을 여는 토니 치코리아 박사의 사례는 대단히 흥미롭다. 그는 42세에 호숫가에서 번개를 맞고 심장이 멎는다. 응급조치 후 그는 깨어났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전까지 음악이라면 철저히 무시할 만큼 비음악인이었던 그는 갑자기 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음악을 위해 환생했다며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을 전하기 위해 폭포수처럼 연이어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게 된다. 도대체 번개가 그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그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연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지능지수는 60도 되지 않지만 과도한 음악성을 보이는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들, 헤르페스 뇌염에 감염되어 기억범위가 7초밖에 되지 않지만 음악 기억만은 온전한 저명한 음악가 클라이브 웨어링, 어렸을 때 수막염을 앓고 난 뒤로 한 번 들은 음을 절대 잊지 않고 바흐의 칸타타 전곡을 모조리 외우며 모든 악기 모든 성부까지 연주할 수 있는 음악 서번트(Musical Savant) 마틴 등 음악과 관련된 저자의 보고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결국 그러한 많은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언어적인 본능 이외에도 음악적인 본능이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놀라운 인간의 체계가 또한 얼마나 불완전하고 연약한지도 보여준다. 뇌 일부가 손상되면 음악을 인식하거나 상상하는 능력에 장애가 생길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 음을 음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까지도 발생하게 된다. 저자는 그것을 또한 뮤지코포비아(Musicophobia)라 명명한다. 머릿속에 박힌 곡조가 한없이 반복되는 일종의 환청인 뇌벌레 현상이나 음악환청을 느끼거나 음악을 들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등 신경질환 환자들에게 강력한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들에겐 삶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그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갖고 있는 청각기관과 신경체계가 얼마나 예민하게 음악에 맞춰져 있는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저자의 견해를 따라가다 보면 음악이 얼마나 놀랍고 끝이 없는 존재인지 만날수 있게 된다.

 

책은 절대 음악에 관련된 전문서적이 아니다. 그것은 음악 그 자체가 개념도 없고 내용도 없으며 또한 어떠한 이미지나 상징, 언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음악에 심취하고 때로는 그 놀라운 능력에 경악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시말해 인간에게 음악은 이제 뗄 수 없는 존재인 동시에 우리들의 삶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 역시도 스스로 환청을 겪고 실음악증 발작을 경험하는 고통을  받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일부러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더라도 음악은 우리들 인간에게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또한 그것은 자신이 특별히 음악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변함이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저자가 수없이 소개한 신경질환을 앓는 환자들이 음악이라는 요소로 인해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언어적 종일 뿐 아니라 음악적 종 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인간은 언어적인 종일 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종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은 음악을 인식할 수 있다. 음악을 듣는 것은 청각적이고 정서적인 일이 아니라 운동 근육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다. ...음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주목을 끌었고, 뇌 기능의 거의 모든 측면과 삶 그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었다."

 

현대 뇌과학의 발달은 우리들이 음악을 듣고 어떠한 것을 상상할 때나 작곡을 하려 할때 우리들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제의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적인 견해에 앞서 이 책이 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저자가 늘상 이야기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저자는 음악이 인간 존재의 일부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음악이 과도하게 소비되는 음악 과잉의 시대에 오히려 우리가 음악이 지닌 그 위대한 힘을 혹시나 잊고 있진 않은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인식시켜 주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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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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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중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빠르고 각박한 사회속에서 그저 자신만을 또는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혹자는 그것을 현대인들이 남을 생각하는 배려가 부족하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생활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지나쳐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삶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 자신의 인생을 바쳐 남에게 봉사와 배려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보여준 인물이 있다. 지나칠 정도로 남을 생각했기에 정작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여든 다섯의 나이로 운명한 이후 그가 누울 변변한 자리조차도 없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를 일컬어 사람들은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그가 바로 성산 장기려 박사이다. 일평생 그는 그에게 주어진 의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그를 통한 사랑과 봉사가 무엇인지를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환자만을 위했던 그는 의사이기에 앞서 성자의 삶을 살다간 인물일 것이다.

 

이 책 <청년의사 장기려>는 장기려 박사의 학창시절 부터 전쟁의 혼란 속에서 부산으로 내려오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적인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장기려 박사의 청년시절에 그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평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개성으로 올라와 송도고보에 진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하며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기 사작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그에게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일제하의 현실은 부당하기만 했고 고보의 청년들은 동맹휴업에 참여하지만 그는 급격하고 과격한 변화보다는 신념과 끈기를 가지고 현실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에게 늘 뜨거운 사람이 되라고 했던 할머니의 죽음은 그의 인생의 지표를 찾아주게 된다. 할머니의 소천을 기리는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충동적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뜻을 세워야지."
고향에서 종기의로 일하는 박의원의 권유를 통해 그는 자신의 원죄의식을 느낀다. 그리고 친구 김주필의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그는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모른척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제 그의 목표는 정해졌고 그는 드디어 경성의전에 진학한다.


그가 대학에서 만난 스승 백인제는 뛰어난 의사였지만 장기려의 눈에는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으로만 보여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장티푸스에 걸린 일본인 간호원의 뺨을 때린 사건으로 용서를 구하러 갔을때 스승은 그에게 진정한 의사의 길을 나지막히 이야기 한다.
"지금 당장 자네 앞에 고난이 있다 해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게. 우리 같은 의사들에게 고난이란 기회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네. 나는 자네를 믿네. 자네는 ... 조선의 의사니까."
스승은 그에게 본교의 교수자리나 대전 도립병원의 외과과장직을 권유했지만 그는 자신의 서원을 잊지않고 그 좋은 자리들을 마다한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평양의 기흘병원,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지금껏 모른척 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사가 되는 첫발을 장기려는 그렇게 내딛는다.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있는 유명인사와 장기려 박사의 인연을 중간중간 소개하고 있다. 수련의 시절 그의 환자로 만났던 춘원 이광수는 그를 모델로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우연히 만난 함석헌 선생과는 일생을 들어 좋은 인연으로 함께 했음을 여러차례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김일성의 맹장 수술을 그가 직접 집도했다는 것은 그만큼 의사로서 그의 실력을 입증하는 일화이기도 하다. 평양에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의술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그가 해야될 것이 무엇인지를 직감한다. 평양을 휩쓸고 간 대규모 물난리 속에서 그는 그저 외로울 뿐이었다. 그 어떤 의사도 전염병이 도는 홍수지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피를 뽑아 수혈을 하면서까지 그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마침내 그는 쓰러져 버린다. 평양에서 해방을 맞고 소련군의 진주를 보면서도 그는 오로지 환자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에게 이념이나 분단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폭격의 와중에서도 수술을 집도했을 만큼 그는 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평양을 국군이 점령하면서 그는 이제 인민에서 국민이 된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이었다. 어차피 그는 의사였기에...

 

다시 밀고 내려오는 중공군의 위세에 눌려 국군은 평양을 내주고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 최악의 상황에서 그의 아내는 5남매중 둘째 아들만을 그에게 먼저 데리고 갈 것을 부탁한다. 중공군이 국군에 협조한 젊은 사내만을 죽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둘째만을 데리고 남으로 가는 앰뷸런스에 오른다. 그리고 그게 그의 가족과 그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만다. 부산에서 그는 북한에서 주요 요직을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고초를 겪기도 한다. 그렇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는 그 전쟁의 와중에서 이미 양수가 터진 산모의 수술을 통해 자신이 의사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가난한 사람들과 환자들만을 위해 살아갔던 장기려 박사는 성자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몇 년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장기려 박사의 에피소드를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수술을 마친 환자가 돈이 없다고 하니 그 병원의 원장이었던 그가 모두가 잠든 새벽 병원 뒷문을 열어줘 그 환자를 도망시켜 주는 장면이었다. 그는 그런 의사 였다. 그가 북에서 유일하게 데리고 온 둘째 아들 역시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걸었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에서 정년퇴직해 올초 운명을 달리했던 장가용 박사가 바로 그의 유일한 남쪽 혈육이다. 기사로 접한 그의 생전 인터뷰는 그의 아버지 장기려 박사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장기려 박사는 이땅에 그의 이름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사랑과 봉사라는 그가 일생을 바쳐 실천했던 의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바보 의사란 소릴 들을 정도로 우직하게 그리고 묵묵하게 하늘이 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떠난 그는 분명 살아있는 성자였다. 또한 그가 보여준 의사의 정의는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만 같다.  

"왜 아픈 사람을 일컬어 환자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 관(串)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다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네. 다시 말해 환자란 다친 마음을 어루 만져줄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야.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네. 자네가 진정한 의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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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짝퉁 라이프 - 2008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고예나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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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은 이제 예전의 조잡하고 형편없던 그 에전의 모습이 아니다. 진품을 위협할 정도의 교묘한 상표와 함께 상품의 질 역시도 진품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짝퉁이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느끼는 만족감 아닐까. 만일 진짜가 사라지더라도 짝퉁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또 다른 위로를 받을수 있음을 당당히 밝히는 작가 고예나는 자신의 처녀작 <마이 짝퉁 라이프>를 통해 진짜와 짝퉁 그 둘 모두가 필요하다 이야기 한다. 어쩌면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상처받은 자신을 애써 위로하기 보다는 외면하려 하고 그보다는 오히려 자극적인 요소에 기댐으로서 그 상처를 극복하려 한다. 아마도 그러한 지금의 시대를 빗대 진짜에게서 상처받았을때 가짜로부터 위안을 받는 짝퉁의 세태를 그려낸 것이 아닐까.

 

휴학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진이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기까지 하다. 지독할정도로 사랑에 매달렸다가 그 만큼의 커다란 절망만을 남긴채 사랑에 실패한 진이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마음의 문을 닫고 친한 사람 몇 이외에는 말을 섞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는 그녀의 주변엔 언제나 Y가 있지만 진이는 절대 그와의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는다. 그저 통신회사에서 보내주는 가상애인 유료 문자메세지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뿐이다.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는 B는 처음 만난 남자와의 원나잇을 즐기려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이면엔 가슴아픈 사랑의 배신을 겪었기에 그러한 삶의 방종을 일삼는다. 그녀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구질구질하다며 가짜 애인들과의 관계에만 몰두한다. 성형을 통해 연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그녀가 진이에겐 그저 하룻밤 상대를 쫓는 불나방처럼 보일 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에 집중하는 R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다. 가상현실인 미니홈피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진짜가 아니라면 짝퉁이라도 온몸에 휘감고 다닐 만큼의 명품주의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남들 눈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그런 R은 사랑이 시작되고 애인이 생기면 진이에게 마저도 연락을 끊어 버린다. 진정한 사랑과 낭만적인 사랑을 쫓는다지만 진이에겐 그녀가 든 짝퉁가방 처럼 겉만 번지르르해 보일 뿐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하면 되는 거야. 가짜로 인해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잖아.”
3명의 젊은 여성 모두 어떠한 계기로 인해 진짜가 아닌 가짜에 몰두하게 된다. 어차피 진짜와 가짜 그 차이는 의미가 없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타인의 시선이 그것을 결정할 뿐이다. 또한 그것으로 자기 자신이 만족감을 얻고 행복해 질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명품이 대중화되고 일반화 되었더라도 아직까지 그것을 우리 손에 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시중에 쫙 깔린 짝퉁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젊은이들의 사랑 역시도 짝퉁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감처럼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 완벽히 포장되었지만 그 속내는 짝퉁인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지도 일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작가는 우리가 몸에 두르고 있는 짝퉁 액세서리처럼 애인마저도 모조품이 판치는 세상이 되진 않았나 돌아보게 하는 것만 같다.

 

"가짜가 진짜일까. 진짜가 가짜일까. 세상이 만든 진실이 미워지면 너만의 가짜를 만들어라. 네가 원하는 그 상상이 진짜다. 네 진심이 깃든 상상으로 이 세상에 복수하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마지막 진이의 읊조림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의식을 발견한다. 가짜를 진짜라고 믿어서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을 내가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모호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그것을 구별해야 하는 의미마저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이모티콘이 춤추고 거침없이 한글을 파괴하는 요즘 세대가 스스로 자신의 세대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작품으로 느껴진다. 겉으로 보이는 허무와 체념속에서도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방법으로 그녀들의 20대를 헤쳐 나간다. 모두가 사랑에 실패한 또하나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녀들이 진실과 거짓이 마구 뒤섞인 세상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욕망이라는 유혹에 맞서는 그녀들의 계속되는 도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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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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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쿠다 히데오는 이미 이라부라는 엽기의사가 등장하는 <공중그네>시리즈를 통해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인기작가 중의 하나이다. 국내 출간되는 책마다 그 만의 특유한 웃음을 자아내게 함으로서 팬에게 어필하는 매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2002년에 출간되었지만 이제서야 국내에 소개되는 <최악>은 오쿠다 히데오의 이전 작품들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선 독자를 압도하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그것이다. 이전까지는 장편이라 해도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보다 긴 호흡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3명의 일상을 균등하게 배분하며 소설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가와타니 신지로는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는 47세의 가장이다. 스물아홉에 작은아버지의 권유로 독립한 이후 신지로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해왔다. 수많은 하청 단계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처지였지만 언제나 그만의 성실함으로 어려운 경기속을 헤쳐 나왔다. 아직까지도 영세한 규모는 그대로이지만 이젠 훌쩍 커버려 대학을 다니는 아들과 대학에 진학하려 하는 딸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 철공소에는 2명의 직원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공장에서 나는 소음때문에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온다. 원래 공장지대였지만 조금씩 맨션이 들어오면서 어느덧 주택가가 되어버렸고 이젠 이웃의 야마구치 차체라는 공장과 신지로의 철공소 단 두개의 공장만이 남아버렸다. 신지로는 나름대로 소음에 대비해 적지않은 비용을 들였지만 주민들의 요구는 여전히 완강하기만 하다. 이때 원청업체에서 불량품이 발견된다. 신지로에게는 업친데 덮친격이 된다.

 

후지사키 미도리는 23세의 잘나가는 은행원이다. 누군가의 소개로 잘 나가는 시중은행인 갈매기은행에 입사했지만 늘 상관의 눈치를 보아야하고 빡빡하기만한 은행일이 힙겹기만 하다. 비오는 날과 월요일을 특히 싫어하는 그녀에게 재혼한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낳은 자꾸만 삐둘게 나가기만하는 여동생 메구미는 늘 신경쓰이는 존재이기만 하다. 게다가 늘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늙수그레한 손님 시바타 노인은 이제 지겹기만 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황금의 연휴이지만 신입행원 환영회에 참가하라는 은행의 지시는 이젠 지겹기만 하다. 너무나 가기 싫지만 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가야만 한다. 억지로 참가한 캠프에 미도리는 혼자인 것만 같다. 과음을 했기에 토하려고 주변의 숲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지점장이다. 그녀가 친절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의 손이 미도리의 가슴을 파고 든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지점장은 스스로 그 손을 치운다. 미도리는 말할 수 없이 불쾌하기만 하다. 그저 눈물이 날 뿐이다.

 

노무라 가즈야는 이제 스물이 되었다. 이제 집을 나온지도 3년이 넘은듯 하다. 특별히 어떤 뜻을 품고 가출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은 가즈야에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공사판에서 머물러도 보고 카바레 입주점원으로 일도 해봤다. 하지만 모든게 복종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자유를 위해 집을 나온 가즈야에겐 지긋지긋할 뿐이었다. 연말에 철거하는 아파트에 누워있는 가즈야는 주머니에 있는 몇푼을 가지고 파친코 가게로 달려간다. 그것이 가즈야가 돈을 버는 단 두가지 수단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는 늘 주머니에 지니고 있는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이용해 학생을 상대로 돈을 빼앗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긴대로 살아가는 가즈야에게 세상은 재미도 기대도 없을 뿐이다. 언젠가 공장에서 톨루엔을 훔쳐다 같이 판 다카오가 한번 더 하자는 제의를 해온다. 세상살이에 재미가 없는 가즈야에겐 더 없는 재미거리이기도 하다. 마침 이상하게도 파친코에서도 많은 돈을 따고 안면이 있는 술집 아가씨 가에데와도 그 인연이 이어지면서 가즈야는 세상살이가 조금은 재미있어 지려 한다.

 

얼핏보면 세명의 주인공들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다. 자신의 삶의 여유는 전혀 없이 오로지 생업에 매달리는 신지로나 상사에게 추행을 당하는 미도리,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즈야는 도저히 연관 지을래야 지을수 없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이 중반을 넘어갈때 까지도 이 셋의 연관성은 전혀 찾아볼수 없다. 다만 가즈야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십대소녀가 미도리가 늘 걱정하는 삐뚤게 나가는 여동생 메구미 라는 것 이외엔.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이들을 묘하게 얽기 시작한다. 주변 환경과 딸의 대학진학을 위해 신지로는 일생일대의 모험인 대형 펀치프레스 도입을 결심한다. 물론 그것은 상위업체와 은행이 부추긴 결과이긴 하지만 신지로는 대출을 위해 갈매기 은행을 찾게 된다. 미도리는 추행사건이 이상하게도 은행내의 알력싸움으로 번지게 되면서 은행을 그만 둘 결심을 하게 된다. 초반 좋은 일이 게속 된다 싶었던 가즈야는 다카오와 함께 훔친 톨루엔이 발각되면서 야쿠자의 위협을 받게 된다. 톨루엔을 훔치는데 이용한 차가 야쿠자의 차였기 때문이다. 그 무마를 위해 그들은 어느 공장의 금고를 털지만 그 돈을 다카오가 혼자 갖고 튀어 버린다. 이제 가즈야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질로 잡혀있는 메구미를 위해 서라도 무슨일이든 해야 한다. 자신에게 마음을 주었던 가에데의 돈을 억지로 빼앗아 메구미가 잡혀있는 야쿠자의 소굴로 가지만 누군가 메구미를 건드린 것 같다. 이제 가즈야는 보이는 것이 없다. 눈 앞에 있는 누군가를 찌르고 메구미의 손을 잡고 달릴뿐...

 

그들은 갈매기은행에서 모두 만난다. 그렇게도 애를 썼건만 대출이 안된다는 은행의 전화를 받고 은행으로 달려간 신지로와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털자는 메구미의 권유로 가즈야도 갈매기은행으로 장난감권총을 손에 쥐고 달려간다. 언니가 근무하는 은행을 터는 메구미와 가즈야, 은행강도가 되어 있는 동생을 바라보는 미도리, 자신의 전재산을 쥐고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신지로 과연 그들의 우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흔히 오늘은 최악이야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살아가는 많은 나날중에 최악으로 재수가 없는 날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설속의 세 주인공처럼 그러한 것들이 한꺼번에 겹치기도 쉽지 않다. 그저 평범하게 살려햇던 주인공들에게 찾아온 최악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또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그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떠한 것을 전달하려 했을까. 세상살이는 어쩌면 작가가 이끌어가는 소설속의 내용처럼 너무나 팍팍할지도 모른다. 겨우겨우 나타난 희망의 끈 조차 부여 잡을 수 없는 그들을 통해 세상엔 이러할 정도의 처절한 삶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까.

 

시종일관 빠른 속도감은 오쿠다 히데오의 트레이드 마크일런지도 모른다. 그를 통해 독자는 늘어짐없는 빠른 전개를 만난다. 다만 그들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마침내 그렇게까지 망가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 복잡다단한 사건의 결말을 작가는 시원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들이 잘했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감정들을 일체 소개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사건의 흐름을 진행할 뿐이다. 사건의 결말 역시 많은 여운이 남는다. 그들이 돌아온 현실은 분명 이전에 그들이 있던 위치와 다르긴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을 쭉 지켜본 우리는 우리에게도 다가올 최악의 날들을 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세 주인공의 그것보다 더하지는 않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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