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짝퉁 라이프 - 2008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고예나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짝퉁은 이제 예전의 조잡하고 형편없던 그 에전의 모습이 아니다. 진품을 위협할 정도의 교묘한 상표와 함께 상품의 질 역시도 진품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짝퉁이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느끼는 만족감 아닐까. 만일 진짜가 사라지더라도 짝퉁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또 다른 위로를 받을수 있음을 당당히 밝히는 작가 고예나는 자신의 처녀작 <마이 짝퉁 라이프>를 통해 진짜와 짝퉁 그 둘 모두가 필요하다 이야기 한다. 어쩌면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상처받은 자신을 애써 위로하기 보다는 외면하려 하고 그보다는 오히려 자극적인 요소에 기댐으로서 그 상처를 극복하려 한다. 아마도 그러한 지금의 시대를 빗대 진짜에게서 상처받았을때 가짜로부터 위안을 받는 짝퉁의 세태를 그려낸 것이 아닐까.

 

휴학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진이는 내성적이고 소심하기까지 하다. 지독할정도로 사랑에 매달렸다가 그 만큼의 커다란 절망만을 남긴채 사랑에 실패한 진이는 더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다. 마음의 문을 닫고 친한 사람 몇 이외에는 말을 섞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는 그녀의 주변엔 언제나 Y가 있지만 진이는 절대 그와의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는다. 그저 통신회사에서 보내주는 가상애인 유료 문자메세지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을 뿐이다.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는 B는 처음 만난 남자와의 원나잇을 즐기려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도 이면엔 가슴아픈 사랑의 배신을 겪었기에 그러한 삶의 방종을 일삼는다. 그녀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구질구질하다며 가짜 애인들과의 관계에만 몰두한다. 성형을 통해 연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그녀가 진이에겐 그저 하룻밤 상대를 쫓는 불나방처럼 보일 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에 집중하는 R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다. 가상현실인 미니홈피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진짜가 아니라면 짝퉁이라도 온몸에 휘감고 다닐 만큼의 명품주의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남들 눈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길 뿐이다. 그런 R은 사랑이 시작되고 애인이 생기면 진이에게 마저도 연락을 끊어 버린다. 진정한 사랑과 낭만적인 사랑을 쫓는다지만 진이에겐 그녀가 든 짝퉁가방 처럼 겉만 번지르르해 보일 뿐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생각하면 되는 거야. 가짜로 인해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잖아.”
3명의 젊은 여성 모두 어떠한 계기로 인해 진짜가 아닌 가짜에 몰두하게 된다. 어차피 진짜와 가짜 그 차이는 의미가 없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타인의 시선이 그것을 결정할 뿐이다. 또한 그것으로 자기 자신이 만족감을 얻고 행복해 질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명품이 대중화되고 일반화 되었더라도 아직까지 그것을 우리 손에 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시중에 쫙 깔린 짝퉁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젊은이들의 사랑 역시도 짝퉁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감처럼 남들이 보기에 겉으로 완벽히 포장되었지만 그 속내는 짝퉁인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는지도 일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작가는 우리가 몸에 두르고 있는 짝퉁 액세서리처럼 애인마저도 모조품이 판치는 세상이 되진 않았나 돌아보게 하는 것만 같다.

 

"가짜가 진짜일까. 진짜가 가짜일까. 세상이 만든 진실이 미워지면 너만의 가짜를 만들어라. 네가 원하는 그 상상이 진짜다. 네 진심이 깃든 상상으로 이 세상에 복수하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마지막 진이의 읊조림에서 우리는 이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의식을 발견한다. 가짜를 진짜라고 믿어서 행복해질 수 있고, 그것을 내가 진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진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모호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그것을 구별해야 하는 의미마저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이모티콘이 춤추고 거침없이 한글을 파괴하는 요즘 세대가 스스로 자신의 세대에 대해 진단을 내리는 작품으로 느껴진다. 겉으로 보이는 허무와 체념속에서도 그녀들은 그녀들만의 방법으로 그녀들의 20대를 헤쳐 나간다. 모두가 사랑에 실패한 또하나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녀들이 진실과 거짓이 마구 뒤섞인 세상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욕망이라는 유혹에 맞서는 그녀들의 계속되는 도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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