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오쿠다 히데오는 이미 이라부라는 엽기의사가 등장하는 <공중그네>시리즈를 통해 국내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인기작가 중의 하나이다. 국내 출간되는 책마다 그 만의 특유한 웃음을 자아내게 함으로서 팬에게 어필하는 매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2002년에 출간되었지만 이제서야 국내에 소개되는 <최악>은 오쿠다 히데오의 이전 작품들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선 독자를 압도하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그것이다. 이전까지는 장편이라 해도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보다 긴 호흡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3명의 일상을 균등하게 배분하며 소설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가와타니 신지로는 작은 철공소를 운영하는 47세의 가장이다. 스물아홉에 작은아버지의 권유로 독립한 이후 신지로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해왔다. 수많은 하청 단계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처지였지만 언제나 그만의 성실함으로 어려운 경기속을 헤쳐 나왔다. 아직까지도 영세한 규모는 그대로이지만 이젠 훌쩍 커버려 대학을 다니는 아들과 대학에 진학하려 하는 딸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 철공소에는 2명의 직원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공장에서 나는 소음때문에 동네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온다. 원래 공장지대였지만 조금씩 맨션이 들어오면서 어느덧 주택가가 되어버렸고 이젠 이웃의 야마구치 차체라는 공장과 신지로의 철공소 단 두개의 공장만이 남아버렸다. 신지로는 나름대로 소음에 대비해 적지않은 비용을 들였지만 주민들의 요구는 여전히 완강하기만 하다. 이때 원청업체에서 불량품이 발견된다. 신지로에게는 업친데 덮친격이 된다.

 

후지사키 미도리는 23세의 잘나가는 은행원이다. 누군가의 소개로 잘 나가는 시중은행인 갈매기은행에 입사했지만 늘 상관의 눈치를 보아야하고 빡빡하기만한 은행일이 힙겹기만 하다. 비오는 날과 월요일을 특히 싫어하는 그녀에게 재혼한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낳은 자꾸만 삐둘게 나가기만하는 여동생 메구미는 늘 신경쓰이는 존재이기만 하다. 게다가 늘 음흉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늙수그레한 손님 시바타 노인은 이제 지겹기만 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황금의 연휴이지만 신입행원 환영회에 참가하라는 은행의 지시는 이젠 지겹기만 하다. 너무나 가기 싫지만 고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가야만 한다. 억지로 참가한 캠프에 미도리는 혼자인 것만 같다. 과음을 했기에 토하려고 주변의 숲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 그녀를 도와주려 한다. 지점장이다. 그녀가 친절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의 손이 미도리의 가슴을 파고 든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지점장은 스스로 그 손을 치운다. 미도리는 말할 수 없이 불쾌하기만 하다. 그저 눈물이 날 뿐이다.

 

노무라 가즈야는 이제 스물이 되었다. 이제 집을 나온지도 3년이 넘은듯 하다. 특별히 어떤 뜻을 품고 가출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은 가즈야에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공사판에서 머물러도 보고 카바레 입주점원으로 일도 해봤다. 하지만 모든게 복종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자유를 위해 집을 나온 가즈야에겐 지긋지긋할 뿐이었다. 연말에 철거하는 아파트에 누워있는 가즈야는 주머니에 있는 몇푼을 가지고 파친코 가게로 달려간다. 그것이 가즈야가 돈을 버는 단 두가지 수단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는 늘 주머니에 지니고 있는 버터플라이 나이프를 이용해 학생을 상대로 돈을 빼앗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긴대로 살아가는 가즈야에게 세상은 재미도 기대도 없을 뿐이다. 언젠가 공장에서 톨루엔을 훔쳐다 같이 판 다카오가 한번 더 하자는 제의를 해온다. 세상살이에 재미가 없는 가즈야에겐 더 없는 재미거리이기도 하다. 마침 이상하게도 파친코에서도 많은 돈을 따고 안면이 있는 술집 아가씨 가에데와도 그 인연이 이어지면서 가즈야는 세상살이가 조금은 재미있어 지려 한다.

 

얼핏보면 세명의 주인공들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인다. 자신의 삶의 여유는 전혀 없이 오로지 생업에 매달리는 신지로나 상사에게 추행을 당하는 미도리, 아무 생각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즈야는 도저히 연관 지을래야 지을수 없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책이 중반을 넘어갈때 까지도 이 셋의 연관성은 전혀 찾아볼수 없다. 다만 가즈야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십대소녀가 미도리가 늘 걱정하는 삐뚤게 나가는 여동생 메구미 라는 것 이외엔. 하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이들을 묘하게 얽기 시작한다. 주변 환경과 딸의 대학진학을 위해 신지로는 일생일대의 모험인 대형 펀치프레스 도입을 결심한다. 물론 그것은 상위업체와 은행이 부추긴 결과이긴 하지만 신지로는 대출을 위해 갈매기 은행을 찾게 된다. 미도리는 추행사건이 이상하게도 은행내의 알력싸움으로 번지게 되면서 은행을 그만 둘 결심을 하게 된다. 초반 좋은 일이 게속 된다 싶었던 가즈야는 다카오와 함께 훔친 톨루엔이 발각되면서 야쿠자의 위협을 받게 된다. 톨루엔을 훔치는데 이용한 차가 야쿠자의 차였기 때문이다. 그 무마를 위해 그들은 어느 공장의 금고를 털지만 그 돈을 다카오가 혼자 갖고 튀어 버린다. 이제 가즈야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인질로 잡혀있는 메구미를 위해 서라도 무슨일이든 해야 한다. 자신에게 마음을 주었던 가에데의 돈을 억지로 빼앗아 메구미가 잡혀있는 야쿠자의 소굴로 가지만 누군가 메구미를 건드린 것 같다. 이제 가즈야는 보이는 것이 없다. 눈 앞에 있는 누군가를 찌르고 메구미의 손을 잡고 달릴뿐...

 

그들은 갈매기은행에서 모두 만난다. 그렇게도 애를 썼건만 대출이 안된다는 은행의 전화를 받고 은행으로 달려간 신지로와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털자는 메구미의 권유로 가즈야도 갈매기은행으로 장난감권총을 손에 쥐고 달려간다. 언니가 근무하는 은행을 터는 메구미와 가즈야, 은행강도가 되어 있는 동생을 바라보는 미도리, 자신의 전재산을 쥐고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신지로 과연 그들의 우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흔히 오늘은 최악이야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살아가는 많은 나날중에 최악으로 재수가 없는 날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설속의 세 주인공처럼 그러한 것들이 한꺼번에 겹치기도 쉽지 않다. 그저 평범하게 살려햇던 주인공들에게 찾아온 최악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또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그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떠한 것을 전달하려 했을까. 세상살이는 어쩌면 작가가 이끌어가는 소설속의 내용처럼 너무나 팍팍할지도 모른다. 겨우겨우 나타난 희망의 끈 조차 부여 잡을 수 없는 그들을 통해 세상엔 이러할 정도의 처절한 삶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까.

 

시종일관 빠른 속도감은 오쿠다 히데오의 트레이드 마크일런지도 모른다. 그를 통해 독자는 늘어짐없는 빠른 전개를 만난다. 다만 그들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마침내 그렇게까지 망가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 복잡다단한 사건의 결말을 작가는 시원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들이 잘했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감정들을 일체 소개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사건의 흐름을 진행할 뿐이다. 사건의 결말 역시 많은 여운이 남는다. 그들이 돌아온 현실은 분명 이전에 그들이 있던 위치와 다르긴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을 쭉 지켜본 우리는 우리에게도 다가올 최악의 날들을 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세 주인공의 그것보다 더하지는 않을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