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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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나라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과 함께 흘러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의 과정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발해 이후로 사라졌던 고토의 회복을 꿈꾸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난을 겪어내면서 우리의 국토는 황폐화되었으며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수 밖에 없었다. 그 혼란의 과정에서 조선의 17대 군주로 등극한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은 그 누구보다 대륙을 향한 꿈이 컸던 군주였을 것이다. 삼전도에서의 치욕을 겪고난 후 그의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으로 볼모로 가야했던 봉림대군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8년간의 인질 생활은 그에게 대륙으로 향한 의지를 더욱 굳건히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청을 배척하고 좀 더 자주적인 조선을 만드는 꿈을 꾸게 된다. 소현세자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등극하게 되면서 그의 청에 대한 복수심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마침내 북벌에의 의지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허수정의 역사 팩션 <왕의 밀사 - 일본막부 잡입사건>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속에서 시작된다.

 

소설은 당시의 혼란한 국제정세의 틈바구니에서 효종이 뛰어난 국제적 감각을 지녔음을 강조하면서 펼쳐진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판단은 북벌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청 보다 오히려 조선의 뒤에 있는 일본이라는데 모아진다. 1655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양난을 겪어낸지 불과 몇십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효종에게 대륙으로 향하는 길을 열기 위해 뒤를 든든히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엔 없었다. 결국 효종의 선택은 조선통신사였다. 효종은 이번 조선통신사의 종사관으로 떠나는 남용익을 은밀히 독대하면서 그에게 아직까지 대륙정벌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일본막부의 속내를 파악해야 한다며 밀서를 내리며 호시나와 노부쓰나로 대표되는 두세력중 누가 우리와 성심으로 교린을 다할 것인지 파악하라 당부한다.

 

일본의 정치체제는 전통적으로 천황이라 불리는 왕이 존재하고 있긴 했지만 쇼군이라 불리는 막부의 수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형태였다. 그렇기에 효종에겐 권력의 정점인 쇼군과의 밀약이 중요했지만 그 시기 일본의 쇼군은 겨우 열다섯에 지나지 않아 결국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양대세력인 호시나와 노부쓰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 밖엔 없었다.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닿은 쿄토엔 놀랍게도 막부의 양대세력 수장들이 모두 나와 있다. 성대한 환영연 속에서 종사관 남용익은 쇼군을 곁에서 보좌하는 직속무사 기요모리의 제의로 입에 맞던 인동주를 더 마시기 위해 자리를 다이도쿠지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만취상태로 잠이 든다. 하지만 눈을 뜨자 함께 했던 기요모리의 목이 잘려 없어지고 남용익은 졸지에 용의자로 몰려 억류되고 만다. 현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까지 나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밀서를 지닌 남용익은 이제 함정에 빠진 것이다.

 

팩션은 실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들이 출현한다. 그렇기에 소설속의 사건들은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에는 조금씩 무리가 따르기도 하기에 작가들은 교묘히 한 인물을 중심인물로 부각시켜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를 쥐어주기도 한다. 이 작품속에서 그러한 인물이 바로 역관 박명준이다. 종사관의 수행역관으로 통신사단에 합류한 박명준은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후예로 누구보다도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잇는 인물로 설정된다. 바로 그가 억류되어 있는 남용익의 누명을 벗기기위해 쿄토소사대의 다나카와 함께 사건의 수사를 맡는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계속되는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은 조선통신사의 모든 일정을 파행속에 몰아 넣는다. 그러나 박명준이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 배후엔 너무나 많은 많은 비밀들이 담겨 있다. 열다섯의 쇼군을 둘러싼 권력다툼 뒤에는 제의 조선침략이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작품은 시종일관 긴장감속에서 펼쳐진다. 하나둘 드러나는 비밀속에서 의외로 강건한 쇼군을 만나기도 하며 가구야히메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실존인물인 전설적인 시인 마쓰오 바쇼의 등장, 실제 쇼군을 대신했던 가게무샤 등은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초부터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한일교류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조선통신사가 어떠한 역할을 해냈는지 다시한번 재조명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조선통신사를 그저 문화사절단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작품속에서처럼 그들이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꿰뚫어보고 있는 효종의 외교적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쩌면 많은점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국제사회에서 제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는 후세들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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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 - 조선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13인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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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나긴 역사의 흐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없는 이름없는 민중들의 생생한 기록이겠지만 지금의 우리가 지금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 민중들위에 서서 전횡을 일삼은 소수의 권력자들의 흔적일 뿐이다. 또한 역사는 우습게도 그러한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쉽게 좌우되며 크게 요동치는 질곡의 세월을 겪기도 한다. 성리학이라는 철저한 유교적 관습 아래 봉건적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조선사회 역시 그러한 역사의 흔적들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기주의적 성격이 팽배한 현대의 관점에서 볼때는 이상할게 없지만 적어도 의리와 충절을 숭상했던 조선사회의 성격에 비춰본다면 군왕을 베신하기도 하고 나라를 배신하기도 하는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책 <조선의 추악한 배신자들>은 제목처럼 조선의 역사에서 자신의 이름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길 수 밖에 없었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어쩌면 그들 자신은 살아있는 동안 권력과 그에 따르는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린 인물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속에서 그들은 배신자라는 타이틀을 달 수 밖엔 없는 인물들로 평가받았으니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일런지도 모른다. 책은 크게 세가지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장은 조선을 피로 물들이며 권력에 다가선 인물들을 소개한다. 피로서 쟁취한 권력은 언제나 정당성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던 수양 역시도 그러한 중압감에서 쉽게 벗어날 순 없었다. 하지만 한명회란 희대의 모사꾼은 그러한 수양을 부추겨 결국엔 권력을 쟁취하고야 말았다. 떠오르는 신성 남이를 죽음으로 몰고갔으며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해 무오사화라는 끔직한 장면을 연출해낸 유자광, 폭군 연산을 있게 한 임사홍, 붕당정치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영달만을 꾀했던 이이첨과 김자점은 개인의 욕심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불러 왔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2장은 조선의 극악했던 왕비 세명에 대해 다루고 있다. 조선역사상 가장 극악했던 왕비로 첫손에 꼽히는 문정왕후는 자신에게 그토록 효성을 다했던 인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비록 자신이 낳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중전시절 그녀는 마치 자신의 아들인양 인종을 아꼈다. 하지만 명종을 낳으면서 그녀는 돌변했고 이제 권력에 대한 야욕은 끝내 인종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얼마전 TV드라마 이산에서 배우 김여진이 연기했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역시 절대 문정왕후에 밀리지 않는다. 그녀 역시 자신의 손자뻘이 되는 정조의 독살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66세의 영조에게 시집왔던 15세의 어린 왕비가 권력에 대한 달콤한 맛에 다가서는 것은 잠깐일 뿐이었다. 정조 재위시절 오랫동안 물러나있던 권력에서 정조 사후 그 중심으로 돌아오는데는 잠깐이면 족했을 뿐이었다. 세도정치의 배경이 되었던 순원왕후 역시 조선을 파탄에 몰고간 주범이라는 역사의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안동김씨가 정권의 중심에 서있던 60여년간 조선은 철저히 망가져 갔으며 그러한 현실에 아랑곳없이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이 언제나 계속될 것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3장은 이른바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대해 다루고 있다. 1장이나 2장에서 다룬 인물들과 달리 을사오적은 이완용으로 대표되는 이름이외에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다른 파트 보다 우선 눈길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권력의 정점에 다가섰으며 실제 당시의 비판적인 여론을 뒤로하고 과연 자신들의 의지대로 조약에 서명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어쩌면 그들은 당시의 대세를 누구보다도 빨리 읽어낸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는 것 같다. 일찍부터 권력에 다가서려 했던 이근택이나 끝까지 반대했으면서도 조약에 서명한 후 그 누구보다도 철저한 친일주의자가 되엇던 박제순, 그리고 오늘날 역적의 대명사라 일컬어지는 이완용까지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의 선택은 우리 역사를 뒤로 돌린 반역행위 임에는 틀림없다. 누구보다도 앞서 싸워야 했던 한나라의 대신이라는 자들이 그러했으니 조선의 종말이 그러할순 밖엔 없었나 보다.

 

역사의 평가는 언제나 냉정하다. 설사 당대의 흐름이 그들에게 그러한 선택을 강요했다 할지라도 그들의 그러한 선택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지는 역사의 증거는 결코 그들을 정당하게 평가하지는 않는 것 같다. 1장에 소개된 한명회, 유자광, 임사홍, 이이첨, 김자점 등이 대부분 그 직후의 역사에서 부관참시를 당하거나 영원한 역적의 이름에 오른 반면 을사오적의 후손들은 지금 당당히 그들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후손에겐 죄가 없지만 그러한 요구에 대해 재판을 거쳐야 할만큼 그들이 또한 당당할 이유조차 없다. 그것이 나라를 팔아먹고 일제에게서 얻어낸 댓가라는 것을 그들이 인식한다면...

 

지금의 정세역시 조선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낄수 있다. 붕당정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여야가 끊임없이 대립하는 정당정치로 이어지고 있다. 국익을 앞세운 미국산 쇠고기 사태는 정국을 커다란 혼란과 국론의 분열로 몰고 오기도 했다. 저자 역시 책을 통해 그렇게 국익이라는 입에 발린 말을 통해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원치않는다고 하고 있다. 모든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앞세워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한 이들에게 어떠한 결과가 왔는지를, 또한 그것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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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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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의 기술과 평가는 언제나 승리자들의 몫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자신들과 경쟁했던 패배자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인색할수 밖엔 없었다. 그들을 좀 더 깎아내리고 평가절하해야만 자신들의 가치가 상승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 그러한 길을 택해 왔고, 그러한 반복되는 과정들은 결국 그들에게 역사의 패배자라는 낙인을 씌워버렸다. 그렇게 씌워진 굴레는 당대를 지나 오랫동안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져왔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삶이 패배자의 삶이었다는 것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을런지 모른다. 그 누구보다도 불꽃같은 삶을 살았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 그들이었기에...

 

이 책 <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유교적 성리학이 근간을 이루며 철저한 계급사회 속의 안정을 국가의 발전모델로 삼았던 지독히 폐쇄적일수 밖에 없었던 조선 사회에서 체제에 항거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그들을 패배자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의 삶이었다 해도 그리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쓰러져가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이끌었던 정도전은 분명 역사의 패배자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패배자이기에 앞서 오히려 새롭게 개국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밑그림을 완성시킨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거침없는 그의 개혁정책은 개국초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권 우선주의는 왕권을 앞세운 이방원의 칼 아래 쓰러져 버렸지만 결코 우리는 그를 패배자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정도전의 삶은 짧은 생애를 불꽃같이 살아간 조광조와 군왕이라 해도 역사속에서 패륜아로 낙인찍혀 버린 광해군의 삶과 많이 닮아 보인다. 그들은 모두 국가 권력의 중추에 서서 자신의 뜻을 펼쳐 보였고 거침없는 질주를 해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느 순간의 몰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그들이 패배자이기에 앞서 혁명가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계유정난의 칼은 수양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세력에게 승리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 승리는 너무나 많은 피를 딛고 일어선 명분없는 권력일 뿐이었다. 어린 임금을 지켜달라는 문종의 고명을 받은 김종서에게 것은 절대적인 과제였으며 그렇기에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칼끝에 김종서는 무너질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왕위찬탈은 세종시절 수많은 지원과 배려속에서 학문을 닦던 집현전의 학사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결국 사육신의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복위시도는 철저한 실패로 끝났지만 수양에게 나으리라 일갈하며 그에게서 받은 녹봉을 창고에 그대로 쌓아놓았으니 찾아가라는 그들의 기개는 오히려 그들을 역사의 승리자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책은 크게 다섯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정도전, 조광조, 광해군을 혁명가라는 이름으로 김종서, 사육신, 김시습을 수양의 칼아래 희생된 사람들로 구분했다. 세번째 장은 조선을 뒤흔든 의적을 그 소재로 삼는다. 임꺽정, 장길산, 홍길동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홍길동이야 허균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지만 임꺽정과 장길산은 역사속에서 그 실존 자체도 의심받을 만큼 조선은 그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네번째 장에서 다룬 이징옥, 정여립, 홍경래 역시 그 성격과 방향은 다르지만 당대의 모든 중심 역할을 해야할 민중을 철저히 배격하는 조선 권력층과 체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고자하는 의지와 힘을 보여주는 사레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다섯번째 장 '시대가 버린 영웅'에서는 남이, 흥선 대원군, 전봉준을 달고 있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 이외에 쉽게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삶의 방식은 다르기만 했다. 남이가 제대로 자신의 뜻을 펴보지도 못한채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남이는 희생되었다면, 흥선대원군은 철저한 준비끝에 집권하여 자신의 세상을 열어갔지만 결국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역사의 오판자로 쓸쓸한 노년을 맞이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녹두장군 전봉준은 비록 실패한 혁명으로 기록되긴 했지만 아래로부터 발생한 민중의 힘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민중이 원하던 세상이 무엇인지를 또똑히 역사에 각인 시켜 놓았다.

 

역사는 언제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모두가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잇는 잣대 아래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천지 사이의 한 괴물'로 낙인찍혀 반역자로서 사형을 당했고 조선왕조에서 끝까지 복권이 되지 않았던 허균을 오늘날의 우리는 혁명가 혹은 이단아로 부른다. 수양의 회유에도 끝까지 맞서 목숨을 버린 사육신은 충절의 표상이 되었고, 선왕의 유지를 끝까지 받든 김종서에게는 만고의 충신이라는 수식어거 붙어 있기도 하다. 결국 패배자 혹은 반역자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승리자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역사속에서 언제나 부딪히는 두 개의 축이 있었고 승리와 패배를 떠나 그것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음이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발전된 의식은 후대의 사상적 흐름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극한 대립과 경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역사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패배자들을 양산해 내왔고 또한 그것은 앞으로도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패배한 그들의 삶 역시도 주목해 봐야 한다는 것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타협과 화합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 지상과제를 풀어가는 첫걸음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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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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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현재의 발달된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며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많은 요인중에서도 호기심과 욕망은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일런지도 모른다. 인간의 그러한 욕구에 대한 열망이 수많은 과학의 발달로 이어졌고 그것이 문명의 완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그릇된 욕망은 때때로 처절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원칙을 행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타쿠미 츠카사의 이 소설 <금단의 팬더>는 인간이 가진 많은 욕망중에서도 맛에 대한 욕구에 대해 다룬다. 이 작품은 2008년 일본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에 선정될 만큼의 흥미로운 요소와 함께 미각이라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욕망에 대해 탐구해 보는 과정을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독립된 자신만의 음식점을 열고 싶다는 꿈대로 코타는 스물다섯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비스트로 코타'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나 신선하고 놀라운 요리를 손님에게 제공하고 싶다는 신념처럼 코타는 서서히 지역사회에서 조금씩 자신의 가게를 알리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야카라는 어여쁜 신부를 얻게 되고 지금은 임신 8개월의 만삭이 된 아내 아야카와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일과 가정 모두가 순조로웠고 코타는 그러한 지금의 자신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낄뿐이다.

만삭의 아야카의 후배 미사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코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싫었지만 '하버 처치'라는 교회l옆에 자리한 피로연장이 '퀴진 드 듀' 프랑스어로 '신의 요리'를 의미할 정도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을 알곤 참석할 것을 결심한다. 바로 그곳이 <자가트 서베이>라는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에 '파리의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을 능가할 정도의 놀라운 맛', '이 가게의 요리는 현재 일본 전체 프랑스 레스토랑의 정상에 군림하고 있다.' '입에 넣는 순간 이제까지 먹어온 요리가 쓰레기처럼 여겨질 정도이다."라는 각종 극찬의 대상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코타 역시도 그곳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예약 전화를 했다가 반년이나 예약이 차 있다는 사실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기억이 있기도 한 곳이었다. 코타의 기쁨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랑의 외할아버지가 '갓(God) 나카지마'라 불리는 일본 최고의 요리평론가 나카지마 히로미치였기 때문이다. 신랑의 아버지가 내내 안보이는 것이나 친척들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뭔가 미심쩍다고 생각하지만 코타는 나카지마와 함께하는 잠깐의 시간과 함께 그가 맛볼수있게 된 피로연의 요리들이 너무나 맛있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다.

 

효고현의 형사 아오야마는 어느날 기노시타 운수 사업부장 마츠노 쇼지의 살인사건을 맡고 있다. 그는 퀴진 드 듀의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있다. 기노시타 운수가 바로 퀴진 드 듀의 납품업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전히 실종상태로 있는 신랑의 아버지 요시아키의 행방 역시도 의문이다. 사건을 맡은 팀은 대부분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나카지마의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아닐까라는 전제하에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비록 말단 형사이지만 아오야마만은 상부의 지시와는 다소 다른 독자적인 수사로 사건을 해결하려 애쓴다. 

코타는 자신의 가게에 찾아온 나카지마의 방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코타에게 미각은 인간만이 가진 본능이라 이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리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하기까지 한다. 식욕과 포만감이라는 단순한 동물적 본능에서 인간만이 미각이라는 또 하나의 본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신은 인간에게 요리라는 중노동의 과정을 부여했고 그것의 결과가 바로 인간만이 가질수 있는 미각이라는 쾌락이라는 것을 웅변조로 코타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에 언급되어 있는 팬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는 팬더가 고기를 먹는다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그는 지금도 팬더에겐 고기를 씹기위한 이가 지금도 존재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신의 노여움을 사 고기먹는 행위를 박탈당한 것이 아닐까라는 그만의 가설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 타쿠미 츠카사는 전직 요리사라고 한다. 그만큼 이 소설에서 언급된 각종요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가 이끄는 다양한 요리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도 사건의 미스터리적 요소는 작품을 이끄는 또하나의 흐름으로 긴박하게 작용한다. 하나둘 등장 인물의 실종과 함께 추악한 그들의 비밀이 한꺼풀씩 벗겨진다. 수소고기보다 좋은 것이 암소고기이며 암소보다 좋은 것이 송아지고기의 육질이라지만 그것을 인간에게 까지 적용하려하는 그가 가진 끝없는 욕망에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소설속 나카지마는 그릇된 욕망을 지녔음이 분명하지만 팬더를 통해 인간만이 지닌 미각을 설명하는 대목은 분명 돋보였다. 아마도 작가는 그를 통해 인간이 가진 본능에 대해 보다 원초적인 접근을 해보려는 시도를 하려 했던 것 같다. 팬더가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온하고 귀여워보이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통해 아직도 고기를 탐하고 있는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인간 역시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달리 그 이면엔 추악한 본능을 지니고 있진 않을까라는 작가의 작은 되뇌임이 결말의 놀라우리만큼 섬칫한 반전과 함께 남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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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집 - 우리 시대 대표 여성작가 12인 단편 작품집
박완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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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집이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별하기만 하다. 그것은 나와 운명을 같이하고 그 어떠한 경우라도 내편이 되어줄 가족이 함께 숨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안에서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매진할 힘을 얻는 것이다.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집은 그러한 맥락을 함께 한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 세상의 격랑을 헤치고 마침내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곳은 그곳은 바로 집이다. 이 책 <소설가의 집>은 <여성동아>에서 주최하는 장편소설 공모 40주년을 기념하여 공모 출신 작가들이 '집'이라는 하나의 주제하에 펴낸 단편 모음집이다.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책에는 참여한 작가들의 개성만큼이나 뚜렷하게 다양한 소재들을 넘나들고 있지만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 중심에는 집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

 

책의 서두를 여는 박완서의 <땅집에서 살아요>는 두메산골 출신의 주인공이 성공의 댓가로 쟁취한 아파트라는 공간을 그리고 있다. 도시로 나와 비교적 성공했지만 그는 그저 커다란 도시에 거주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임의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을것만 같은 13층 높이를 보며 자신의 성공을 확인하곤 한다. 
"그는 13층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때마다 13층의 높이를 그의 키처럼 착각했다. 그는 키가 아파트 13층만 한 거인이 되어 도시를 깔볼 수가 있었다."   

 

신현수의 <봄꽃은 다시 피고>에서는 우연한 기회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쫓는 아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말년의 아버지가 선택한 집은 종점다방이었다. "평일이고 공일이고 간에 아침나절에 가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그 안에서 맘 편히 쉬고 노니까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게지"라는 아버지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집은 맘 편히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바램을 그가 남긴 일기장에서 발견하곤 그제서야 그 뜻을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집에서 그는 비로소 아버지에게 다시금 이 집이 살아있는 집이 되었다고 낮게 이야기 한다.

 

편안함이 집이 주는 가장 커다란 분위기중의 하나라면 숨이 끊어진 후 잠드는 곳 또한 우리들의 집일런지도 모르겠다. 조혜경의 <유택 입주(幽宅入住)>는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는 중년의 여주인공이 사고 직전부터 묘에 누워 자신의 몸이 부패하기 시작할때 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1인칭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품속에서 주인공은 썩어가는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며 제 시간을 마치고 소멸되어가는 것은 아름다우며 생명의 근원에서 오는 거대한 후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 그 편안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 기다리는 곳이 집이라는 공간은 권혜수의 <명자가 왔다>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시골마을의 수재와 결혼했지만 그는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었다. 명자에게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난 그를 추억하며 명자는 억척스럽게 도시의 환경미화원이 되어 두아이를 키운다. 그런 그녀가 어렵고 힘든 도시를 떠나 기댈곳이 어머니 월평댁이 기다리는 고향집이다.
"명자에게 친정으로 가는 차 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휴식과 해방의 공간이었다. 명자는 이 차에만 오르면 모든 것이 신기하게 다 잊혔다. 남의 시

선을 받아가며 거리를 쓰는 일도, 앞날에 대한 막막한 불안도 이 공간에는 없다. 그냥 포근하고 아늑했다..."

 

우애령의 <와인 바에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기억속에 자리한 그리운 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가 구입한 정원이 넓고 유서가 깊은 한옥이 그곳이다. 할아버지의 성대한 칠순잔치를 치뤄냈고 무엇보다 자신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집이 넘어가고 오랜시간이 지나 와인 바로 변해 있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기억해 낸다. 

  

집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 표현방식은 저마다 다를수 밖엔 없다. 집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서 부터 집이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까지 집은 다양한 작가에 의해 다채롭게 작품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작품은 집이 주는 정서에 대해 많은 공감과 생각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요즘의 현대인들에게 그러한 근본적인 정서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집이라는 존재가치는 겉으로 보여지는 건축물 혹은 구조물에 대한 가치 위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집이 따뜻한 정서가 살아있는 모두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또하나의 투자수단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많은 도시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집은 문학속에서 철저한 고립무원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추억의 집은 시공간을 넘어 누구에게나 가슴깊이 자리하고 있는 추억이라 불리는 그리움이 묻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집을 그리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과거를 추억할 수도 있으며 떠나간 이들의 사랑을 기억해 볼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그 공간의 외양이 어찌하든 따뜻한 사랑과 용서가 공존하는 화해의 공간인 것이다. 그렇게 집은 우리에게 그러한 가슴 한켠의 여유와 기다림을 주며 언제나 우리를 반기듯 그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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