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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
임채영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역사의 기술과 평가는 언제나 승리자들의 몫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자신들과 경쟁했던 패배자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인색할수 밖엔 없었다. 그들을 좀 더 깎아내리고 평가절하해야만 자신들의 가치가 상승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들은 언제나 스스로 그러한 길을 택해 왔고, 그러한 반복되는 과정들은 결국 그들에게 역사의 패배자라는 낙인을 씌워버렸다. 그렇게 씌워진 굴레는 당대를 지나 오랫동안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져왔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삶이 패배자의 삶이었다는 것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않을런지 모른다. 그 누구보다도 불꽃같은 삶을 살았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각자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 그들이었기에...
이 책 <조선의 위대한 패배자들>은 유교적 성리학이 근간을 이루며 철저한 계급사회 속의 안정을 국가의 발전모델로 삼았던 지독히 폐쇄적일수 밖에 없었던 조선 사회에서 체제에 항거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그들을 패배자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의 삶이었다 해도 그리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쓰러져가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이끌었던 정도전은 분명 역사의 패배자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패배자이기에 앞서 오히려 새롭게 개국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밑그림을 완성시킨 혁명가의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거침없는 그의 개혁정책은 개국초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권 우선주의는 왕권을 앞세운 이방원의 칼 아래 쓰러져 버렸지만 결코 우리는 그를 패배자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정도전의 삶은 짧은 생애를 불꽃같이 살아간 조광조와 군왕이라 해도 역사속에서 패륜아로 낙인찍혀 버린 광해군의 삶과 많이 닮아 보인다. 그들은 모두 국가 권력의 중추에 서서 자신의 뜻을 펼쳐 보였고 거침없는 질주를 해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느 순간의 몰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그들이 패배자이기에 앞서 혁명가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계유정난의 칼은 수양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세력에게 승리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 승리는 너무나 많은 피를 딛고 일어선 명분없는 권력일 뿐이었다. 어린 임금을 지켜달라는 문종의 고명을 받은 김종서에게 것은 절대적인 과제였으며 그렇기에 권력은 누구와도 나눌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칼끝에 김종서는 무너질수 밖에 없었고 그러한 왕위찬탈은 세종시절 수많은 지원과 배려속에서 학문을 닦던 집현전의 학사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결국 사육신의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복위시도는 철저한 실패로 끝났지만 수양에게 나으리라 일갈하며 그에게서 받은 녹봉을 창고에 그대로 쌓아놓았으니 찾아가라는 그들의 기개는 오히려 그들을 역사의 승리자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책은 크게 다섯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정도전, 조광조, 광해군을 혁명가라는 이름으로 김종서, 사육신, 김시습을 수양의 칼아래 희생된 사람들로 구분했다. 세번째 장은 조선을 뒤흔든 의적을 그 소재로 삼는다. 임꺽정, 장길산, 홍길동이 바로 그들이다. 물론 홍길동이야 허균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지만 임꺽정과 장길산은 역사속에서 그 실존 자체도 의심받을 만큼 조선은 그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네번째 장에서 다룬 이징옥, 정여립, 홍경래 역시 그 성격과 방향은 다르지만 당대의 모든 중심 역할을 해야할 민중을 철저히 배격하는 조선 권력층과 체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고자하는 의지와 힘을 보여주는 사레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다섯번째 장 '시대가 버린 영웅'에서는 남이, 흥선 대원군, 전봉준을 달고 있다.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 이외에 쉽게 공통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삶의 방식은 다르기만 했다. 남이가 제대로 자신의 뜻을 펴보지도 못한채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남이는 희생되었다면, 흥선대원군은 철저한 준비끝에 집권하여 자신의 세상을 열어갔지만 결국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역사의 오판자로 쓸쓸한 노년을 맞이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녹두장군 전봉준은 비록 실패한 혁명으로 기록되긴 했지만 아래로부터 발생한 민중의 힘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민중이 원하던 세상이 무엇인지를 또똑히 역사에 각인 시켜 놓았다.
역사는 언제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모두가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잇는 잣대 아래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천지 사이의 한 괴물'로 낙인찍혀 반역자로서 사형을 당했고 조선왕조에서 끝까지 복권이 되지 않았던 허균을 오늘날의 우리는 혁명가 혹은 이단아로 부른다. 수양의 회유에도 끝까지 맞서 목숨을 버린 사육신은 충절의 표상이 되었고, 선왕의 유지를 끝까지 받든 김종서에게는 만고의 충신이라는 수식어거 붙어 있기도 하다. 결국 패배자 혹은 반역자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승리자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역사속에서 언제나 부딪히는 두 개의 축이 있었고 승리와 패배를 떠나 그것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왔음이 자명한 사실이다. 또한 그러한 발전된 의식은 후대의 사상적 흐름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오늘날의 우리 역시 극한 대립과 경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역사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패배자들을 양산해 내왔고 또한 그것은 앞으로도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러할 것이다.하지만 패배한 그들의 삶 역시도 주목해 봐야 한다는 것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타협과 화합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절대적 지상과제를 풀어가는 첫걸음이기에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