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과 함께 흘러왔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의 과정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발해 이후로 사라졌던 고토의 회복을 꿈꾸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난을 겪어내면서 우리의 국토는 황폐화되었으며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수 밖에 없었다. 그 혼란의 과정에서 조선의 17대 군주로 등극한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은 그 누구보다 대륙을 향한 꿈이 컸던 군주였을 것이다. 삼전도에서의 치욕을 겪고난 후 그의 형 소현세자와 함께 청으로 볼모로 가야했던 봉림대군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8년간의 인질 생활은 그에게 대륙으로 향한 의지를 더욱 굳건히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 청을 배척하고 좀 더 자주적인 조선을 만드는 꿈을 꾸게 된다. 소현세자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등극하게 되면서 그의 청에 대한 복수심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고 마침내 북벌에의 의지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허수정의 역사 팩션 <왕의 밀사 - 일본막부 잡입사건>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속에서 시작된다.

 

소설은 당시의 혼란한 국제정세의 틈바구니에서 효종이 뛰어난 국제적 감각을 지녔음을 강조하면서 펼쳐진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판단은 북벌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청 보다 오히려 조선의 뒤에 있는 일본이라는데 모아진다. 1655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양난을 겪어낸지 불과 몇십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효종에게 대륙으로 향하는 길을 열기 위해 뒤를 든든히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할 수 밖엔 없었다. 결국 효종의 선택은 조선통신사였다. 효종은 이번 조선통신사의 종사관으로 떠나는 남용익을 은밀히 독대하면서 그에게 아직까지 대륙정벌의 야욕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일본막부의 속내를 파악해야 한다며 밀서를 내리며 호시나와 노부쓰나로 대표되는 두세력중 누가 우리와 성심으로 교린을 다할 것인지 파악하라 당부한다.

 

일본의 정치체제는 전통적으로 천황이라 불리는 왕이 존재하고 있긴 했지만 쇼군이라 불리는 막부의 수장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형태였다. 그렇기에 효종에겐 권력의 정점인 쇼군과의 밀약이 중요했지만 그 시기 일본의 쇼군은 겨우 열다섯에 지나지 않아 결국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양대세력인 호시나와 노부쓰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 밖엔 없었다.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닿은 쿄토엔 놀랍게도 막부의 양대세력 수장들이 모두 나와 있다. 성대한 환영연 속에서 종사관 남용익은 쇼군을 곁에서 보좌하는 직속무사 기요모리의 제의로 입에 맞던 인동주를 더 마시기 위해 자리를 다이도쿠지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만취상태로 잠이 든다. 하지만 눈을 뜨자 함께 했던 기요모리의 목이 잘려 없어지고 남용익은 졸지에 용의자로 몰려 억류되고 만다. 현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까지 나오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밀서를 지닌 남용익은 이제 함정에 빠진 것이다.

 

팩션은 실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들이 출현한다. 그렇기에 소설속의 사건들은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에는 조금씩 무리가 따르기도 하기에 작가들은 교묘히 한 인물을 중심인물로 부각시켜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를 쥐어주기도 한다. 이 작품속에서 그러한 인물이 바로 역관 박명준이다. 종사관의 수행역관으로 통신사단에 합류한 박명준은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의 후예로 누구보다도 일본에 대해 잘 알고 잇는 인물로 설정된다. 바로 그가 억류되어 있는 남용익의 누명을 벗기기위해 쿄토소사대의 다나카와 함께 사건의 수사를 맡는 중심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계속되는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은 조선통신사의 모든 일정을 파행속에 몰아 넣는다. 그러나 박명준이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 배후엔 너무나 많은 많은 비밀들이 담겨 있다. 열다섯의 쇼군을 둘러싼 권력다툼 뒤에는 제의 조선침략이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작품은 시종일관 긴장감속에서 펼쳐진다. 하나둘 드러나는 비밀속에서 의외로 강건한 쇼군을 만나기도 하며 가구야히메의 아름다운 이야기나 실존인물인 전설적인 시인 마쓰오 바쇼의 등장, 실제 쇼군을 대신했던 가게무샤 등은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조선초부터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한일교류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조선통신사가 어떠한 역할을 해냈는지 다시한번 재조명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조선통신사를 그저 문화사절단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작품속에서처럼 그들이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해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꿰뚫어보고 있는 효종의 외교적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쩌면 많은점을 시사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국제사회에서 제목소리를 내고 있지 못하는 후세들을 비웃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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