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집 - 우리 시대 대표 여성작가 12인 단편 작품집
박완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들에게 집이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별하기만 하다. 그것은 나와 운명을 같이하고 그 어떠한 경우라도 내편이 되어줄 가족이 함께 숨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안에서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매진할 힘을 얻는 것이다.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집은 그러한 맥락을 함께 한다. 누군가가 기다리는 곳, 세상의 격랑을 헤치고 마침내 우리들이 돌아가야 할 곳은 그곳은 바로 집이다. 이 책 <소설가의 집>은 <여성동아>에서 주최하는 장편소설 공모 40주년을 기념하여 공모 출신 작가들이 '집'이라는 하나의 주제하에 펴낸 단편 모음집이다.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책에는 참여한 작가들의 개성만큼이나 뚜렷하게 다양한 소재들을 넘나들고 있지만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그 중심에는 집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

 

책의 서두를 여는 박완서의 <땅집에서 살아요>는 두메산골 출신의 주인공이 성공의 댓가로 쟁취한 아파트라는 공간을 그리고 있다. 도시로 나와 비교적 성공했지만 그는 그저 커다란 도시에 거주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임의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을것만 같은 13층 높이를 보며 자신의 성공을 확인하곤 한다. 
"그는 13층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때마다 13층의 높이를 그의 키처럼 착각했다. 그는 키가 아파트 13층만 한 거인이 되어 도시를 깔볼 수가 있었다."   

 

신현수의 <봄꽃은 다시 피고>에서는 우연한 기회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을 쫓는 아들의 일상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말년의 아버지가 선택한 집은 종점다방이었다. "평일이고 공일이고 간에 아침나절에 가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그 안에서 맘 편히 쉬고 노니까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게지"라는 아버지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집은 맘 편히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바램을 그가 남긴 일기장에서 발견하곤 그제서야 그 뜻을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집에서 그는 비로소 아버지에게 다시금 이 집이 살아있는 집이 되었다고 낮게 이야기 한다.

 

편안함이 집이 주는 가장 커다란 분위기중의 하나라면 숨이 끊어진 후 잠드는 곳 또한 우리들의 집일런지도 모르겠다. 조혜경의 <유택 입주(幽宅入住)>는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는 중년의 여주인공이 사고 직전부터 묘에 누워 자신의 몸이 부패하기 시작할때 까지의 과정을 담담히 1인칭으로 그려내고 있다. 작품속에서 주인공은 썩어가는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며 제 시간을 마치고 소멸되어가는 것은 아름다우며 생명의 근원에서 오는 거대한 후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 그 편안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 기다리는 곳이 집이라는 공간은 권혜수의 <명자가 왔다>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시골마을의 수재와 결혼했지만 그는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었다. 명자에게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난 그를 추억하며 명자는 억척스럽게 도시의 환경미화원이 되어 두아이를 키운다. 그런 그녀가 어렵고 힘든 도시를 떠나 기댈곳이 어머니 월평댁이 기다리는 고향집이다.
"명자에게 친정으로 가는 차 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휴식과 해방의 공간이었다. 명자는 이 차에만 오르면 모든 것이 신기하게 다 잊혔다. 남의 시

선을 받아가며 거리를 쓰는 일도, 앞날에 대한 막막한 불안도 이 공간에는 없다. 그냥 포근하고 아늑했다..."

 

우애령의 <와인 바에서>는 오랫동안 자신의 기억속에 자리한 그리운 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가 구입한 정원이 넓고 유서가 깊은 한옥이 그곳이다. 할아버지의 성대한 칠순잔치를 치뤄냈고 무엇보다 자신의 추억이 깃든 곳이었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집이 넘어가고 오랜시간이 지나 와인 바로 변해 있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와의 약속을 기억해 낸다. 

  

집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 표현방식은 저마다 다를수 밖엔 없다. 집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서 부터 집이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까지 집은 다양한 작가에 의해 다채롭게 작품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작품은 집이 주는 정서에 대해 많은 공감과 생각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요즘의 현대인들에게 그러한 근본적인 정서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집이라는 존재가치는 겉으로 보여지는 건축물 혹은 구조물에 대한 가치 위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집이 따뜻한 정서가 살아있는 모두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또하나의 투자수단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많은 도시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집은 문학속에서 철저한 고립무원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추억의 집은 시공간을 넘어 누구에게나 가슴깊이 자리하고 있는 추억이라 불리는 그리움이 묻어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집을 그리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과거를 추억할 수도 있으며 떠나간 이들의 사랑을 기억해 볼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그 공간의 외양이 어찌하든 따뜻한 사랑과 용서가 공존하는 화해의 공간인 것이다. 그렇게 집은 우리에게 그러한 가슴 한켠의 여유와 기다림을 주며 언제나 우리를 반기듯 그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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