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미로
엠마 캠벨 웹스터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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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오만에 빠진 남자 다아시와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엘리자베스의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다. 몇번이나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만큼 재미도 있거니와 작품성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이며 무엇보다도 제인 오스틴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만과 편견> 이외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는 것 같다. 이 책 <제인 오스틴의 미로>는 책 한권으로 그녀의 여섯작품을 만나게 해준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알려진대로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결혼과 연애가 그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한 공통의 관심사는 엠마 캠벨 웹스터로 하여금 <제인 오스틴의 미로>를 쓰게한 하나의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책의 서술방식은 대단히 파격적이고 또한 특이하다. 여성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연애 혹은 운명 테스트를 책 한권으로 옮겨 놓은 느낌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을 읽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 첫째가 바로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이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남편감을 찾는 일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여러가지 선택의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또한 주어진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저자는 그것을 다섯가지 범주로 분류해 놓는다. 재능, 두뇌, 자신감, 인맥, 행운의 다섯가지 요소는 이 책의 목적이며 임무이기도 한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다가가는 지표로 작용한다. 때로는 감점을 당하기도 하는 상황속에서 번득이는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골격은 물론 <오만과 편견>이다. 베넷 일가가 사는 하트포드셔의 작은 마을에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등장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엘리자베스의 언니 제인과 빙리가 사랑에 빠지고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구혼하는 기본적인 패턴은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따르지만 중간중간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출현하기도 하면서 저자는 그 모든 선택을 책을 읽는 독자에게 돌린다. 결국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작가의 말대로 내맘대로 써 내려간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미로는 어쩌면 혼란을 지칭한다. 하지만 그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 상황에도 분명 출구는 존재한다는 것을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만을 읽은 채로 이 작품을 대하기는 약간 버거워 보이기도 하다. <오만과 편견>이 아닌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 모르는 채로 그들을 대하기는 조금은 어려워 보이기 때문인듯 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편견을 벗어내는 과정이 이 책 <제인 오스틴의 미로>에서는 더욱 많은 인물들을 만나기도 하고 더 많은 사건과 경험을 통해 보여지고 있기에 어쩌면 그 이해가 조금은 수월할수도 있을듯 하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고 그 차이가 순간의 선택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며 작품은 여러가지의 결말로 독자들을 이끈다. 최초의 목적이자 임무였던 다아시와의 행복한 결혼이 있는 결말이 있는가하면 전혀 다른 인물과의 결혼도 있다. 그런가하면 다아시와 결혼했더라도 결코 행복하지 않은 결혼도 존재한다. 그것은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걷히지 않은 한 행복한 결말은 없다는 <오만과 편견>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현명하면서도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을 하겠다는 처음의 목적을 잊지 않는다면 혼란해 보이기만하는 미로속에서 출구를 찾아가는 이 작품 속의 재미있는 여정이 더욱 즐거워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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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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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겨지기까지는 지리하고 길었던 소련과의 대결이 있었다. 이른바 냉전으로 불리우던 동서진영의 차갑고도 첨예했던 순간 언제나 소련은 미국에게 버거운 상대였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들은 유럽의 거의 절반을 장악했고 나치가 사라진 그곳에 그들의 붉은 군대를 진주시켰다. 그러한 그들에 맞서 미국의 모든 관심은 더이상 그들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는데 모아졌다. 그리고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미국의 적이 도발한다면 그 행위는 미국을 공격하는 행위로 보아야한다는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그들은 소련과의 대결을 선언한다. 그리고 1947년 6월 비밀정보기관인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창설해 그 지휘를 맡긴다.

 

이 책 <잿더미의 유산>은 미국방부와 CIA등 미국의 정보기관을 파헤친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뉴욕 타임즈'기자 팀 와이즈가 미국 현대사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CIA의 역사를 1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 집필해 낸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CIA가 얼마나 무능했는지 또한 그들의 잘못된 판단을 통해 얼마나 수많은 인명이 아무런 의미없이 희생되었는지 생생하게 고발한다. 그의 취재에는 수많은 CIA의 전현직 요원의 인터뷰가 있었으며 이제는 비밀에서 해금된 CIA의 문서들이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CIA의 요원들이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나는 그러한 완벽하고 강력한 요원들만이 아님을 이야기 한다. 책에서 가끔 거론되는 동유럽이나 소련에 잠입한 스파이들의 정체를 보면 실소를 금할수가 없다. 어쩌면 그만큼 우리가 CIA를 보는 눈은 실제와는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는것 같다.  

 

법에 명시된 CIA의 공식적인 임무는 미국이 수집한 모든 정보를 분석하며 평가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창설초기 CIA에게는 그러한 권한이나 자금이 너무나 부족했다. 결국 의회에서 의결된 CIA법은 이루 말할수 없는 커다란 권한을 부여했다. 그들은 이제 여타기관의 견제없이 예산을 쓸수 있게 되었으며, 어떠한 사건이라도 기밀사항이라는 이름 아래 법률적인 저촉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본격적으로 스탈린과 맞설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발칸과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서의 잇단 패배에도 불구하고 CIA는 소련, 중공, 북한을 잇는 전신내용을 해독해내는 정보력을 통해 극동에서는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단 한명의 첩보원으로 인해 그러한 시스템이 모두 파괴되어 버릴정도로 그들은 허약하기만 했다. 한국전쟁은 그러한 그들이 맞이한 첫번째 시험대가 되었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고 수많은 한국인의 목숨이 희생되었지만 CIA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정보력의 부재는 CIA를 곤경에 빠뜨린다. 30만에 이르는 대규모 중공군이 국경에 집결했을 때도, 그 이후 미군이 기습을 받고 큰 피해를 입었을때도 CIA는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은 없을거라 판단했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그들은 그것이 중국과 북한이 만들어낸 역정보였음을 알게 된다. 역정보의 피해는 심각했다.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이 모택동의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완전히 물러난 이후 CIA는 중국본토에 대규모의 저항군이 존재한다는 역정보에 속아 엄청난 양의 무기와 군사물자를 공급했으나 그것은 모두 모택동의 손으로 넘어가 버리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들은 정보에 대해 무지했다. 헝가리에서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났을때도 진짜 봉기가 일어난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되며 소련은 과연 이 봉기를 진압할 것인지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심지어 부산 앞바다로 놀러나온 이승만 대통령의 요트에 총격을 가할정도로 그들은 인력이나 장비 그리고 체계마저도 허술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이란에서의 쿠데타 성공과 과정되어 전해진 과테말라 정부의 전복은 그들에게 어떤 국가의 정부도 무너뜨릴수 있다는 허황된 환상을 심어주기 시작한다. 이제 첩보세계의 초보자 CIA는 소련에 맞설수 있는 상대가 된 것처럼 보여졌다.

 

최고조의 냉전으로 언제나 일촉즉발의 위기가 오가던 시절 CIA는 현대사의 두가지 커다란 사건을 만난다. 존 F.케네디의 지휘 아래 승리한 대결로 비춰졌던 쿠바사태는 소련과의 협상의 결과물일 뿐이었으며, 미국에게는 잊을수 없는 전쟁인 베트남전은 다시한번 정보부재에 시달리는 CIA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회였을 뿐이다. 이후로도 저자가 고발하는 CIA의 오판은 끝이 없다. 소련의 아프칸 침공때도 CIA는 소련의 의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으며, 걸프전 역시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CIA는 워싱턴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를 열렬히 환영하는 미국인들의 의중조차도 몰랐으며, 소련의 와해 직전 소련경제는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CNN의 보도를 통해 접할만큼 그들은 그들의 임무조차도 방관하는 조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일 우리가 믿음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목적도 있을 수 없습니다."     
9.11은 완벽한 정책과 외교의 실패를 의미했다. 또한 적이 누군지조차 알지 못하는 재앙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기서 이라크전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정보는 오판이 아니라 추측의 결과였고 그 여파는 너무나 컸다. 결국 저자 와이너는 이라크전이 CIA의 사망을 선고했다고 표현하며, 지식이 없는 행동, 정보가 없는 전쟁을 통해 미국인들은 CIA가 더이상 세상을 바꿀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현재의 CIA는 그 기능이나 권한이 많이 축소되었고, 많은 영역을 펜타곤에 넘기기까지 했다. 이제 CIA는 완벽히 추락했으며, 미국의 지도자들까지도 정보가 필요하면 CIA보다는 펜타곤을 그리고 민간 정보회사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미국의 국가 안보를 책임졌던 거대한 하나의 축이 사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60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의 조직은 그렇게 2류로 물러나버린 것이다.

 

방대한 이 책을 통해 조작과 과장 그리고 나아가서 오만에 이르는 과정을 낱낱히 보아왔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정보전은 너무나 중요한 현실이며, 승부를 좌우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에 대해서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 같다. CIA 한국전쟁 관련 일급 비밀문서의 글귀가 눈에 띤다.
"지나간 일은 알지만 다가올 일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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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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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시작되면서 중국의 변방 돈황에서 많은 양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서벙세계의 많은 탐험가들이 돈황으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먼지만이 뒤덮여 있던 돈황 막고굴에서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는 주지를 매수해 많은 양의 두루마리 경전을 프랑스로 반출한다. 그 많은 양의 고문서 가운데 8세기 동양인 최초로 아랍세계까지 탐험했던 신라승 혜초의 서역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다. 제목도 지은이도 없이 양쪽 귀퉁이가 잘려나간 230줄 총 6000여 글자의 두루마리가 바로 <왕오천축국전>의 발견당시 모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은 양의 문서에 담겨있는 1300여년전 한 신라승이 인도의 다섯 천축국을 걸으면서 보고 느낀 감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글은 이제 세계최고의 기행문으로 평가받으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혜초는 신라를 떠나 중국 광주에서 인도 출신의 승려 금강지로 부터 밀교를 배우게 되고 그의 권유에 의해 불교의 발상지인 천축으로 구법순례여행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4년여동안의 여정은 인도 전역의 다섯천축 뿐만아니라 지금의 이란인 파사국을 거쳐 아랍권인 대식국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돌아오는 경로를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워지는 파미르 고원쪽으로 택한다. 실크로드로 알려진 파미르 고원은 그만큼 높고 험준했지만 그곳은 옛부터 많은 상인들이 오고간 중국 땅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이후 그는 다시 스승과 밀교 경전을 공부하다가 신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에는 그러한 그가 걸었던 여행의 기록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대로 돈황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은 원본이 아닌 필사본이기에 헤초의 그러한 여정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고 한다. 또한 그가 중국으로 들어와 장안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김탁환의 역사팩션 <혜초>는 바로 그 부분을 파고 들며 소설의 시작을 알린다.

 

사막을 넘어 서역으로의 진군을 준비하던 당의 안서도호부에 알라의 군대가 급습하였다는 우기로 떠난 선발대에게서 한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편지는 3만에 이르는 대군을 주춤하게 만든다. 20세에 당의 유격장군이 된 고선지는 그 사실의 확인을 위해 열두명의 병사와 함께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사막인 대유사를 건너게 된다. 하지만 사막의 폭풍은 모두를 집어 삼키고 열두병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절망속에 홀로 남은 고선지가 그곳이 사막의 무덤임을 직감할때쯤 그는 모래구덩에서 벌거벗은채 웅크려있던 사내와 걸낭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헤초였다. 고선지는 그를 대식의 간자라고 생각한다. 혜초는 단하디도 하지 못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대유사에서 돌아온 고선지는 열두병사가 돌아와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지만 그들은 모두 악귀에 홀려 돌림병이 든채로 격리되어 있다. 고선지 역시 돌림병에 대한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고선지마저도 돌림병에 걸리고 이제 고선지는 함께 대유사를 건넌 혜초를 찾아 과연 혜초만이 돌림병에 걸리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야만 한다.

 

혜초는 촉망받던 신라의 화랑이었다. 하지만 처음 참가한 전투에서 그를 따르던 낭도들을 모두 잃고 더 이상의 출정을 포기하게 된다. 가문을 더럽힌 그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 대신 출정했던 그의 아버지가 전사하게 되면서 혜초는 사랑하는 여인 옥인까지도 포기하기에 이르게 된다. 죽음을 결심한 그에게 불교의 고행은 그의 죄를 씻을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인다. 결국 그는 승려가 되고 신라를 떠나 당에 이른다. 소설은 내내 두개의 시점이 교차한다. 걸낭을 들고 사라진 혜초를 쫓는 고선지와 무희 오름의 시선은 현재의 시점이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그 시점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사건의 추이를 알려준다. 또 하나의 시점은 걸낭에 담겨 있던 혜초의 여행 기록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혜초는 파사에서 신라상인 김란수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동행하게 되고 마피르 고원으로 향한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양피지의 기록을 읽는다. 란수를 비롯해 경교 신자인 야곱, 내림을 비롯한 다섯명의 무희, 그리고 짐꾼등 모두 서른명과 함께 넘는 파미르고원에서도 그의 기록과 양피지 읽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지금 란수는 혜초에게 걸낭에 담긴 양피지 기록을 혜초가 자신에게 줬다고 이야기 한다. 혜초는 그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양피지 기록을 읽어야 한다. 그 안에 어떤 기록이 있을지라도...

 

신라의 구도승 혜초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을 정복했던 고선지와의 만남을 통해 작가는 우리민족의 활동영역이 그토록 광활했음을 이야기 한다. 혜초는 자신의 지나간 과오를 잊고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걷는다. 고선지는 이민족 출신이라는 냉대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능력으로 그것을 헤쳐 나오려 한다. 그들의 머나먼 길과 모험 뒤에는 자가가 만들어낸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양피지 기록을 끝까지 자신의 것이라며 집착하는 김란수, 쓰러져 가는 고선지를 끝내 혜초와 만나게 하는 무희 오름은 이 소설에 숨겨져 있는 비밀로 다가서는 모든 해결의 실마리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지역에 있었으리라는 전제하에 혜초와 고선지를 끌어낸 작가의 상상력에 탄복할 뿐이다. 광대한 소설적 구성만큼이나 작품은 내내 흥미롭다. 실제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여행했던 지역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소설 <혜초>는 그것이 기나긴 모험의 여정이었음을 알린다. 기록에서 나타나는 혜초의 여정처럼 그는 수없이 많은 종교를 만나지만 언제나 배타적이지 않고 객관적인 구도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바라본다. 어쩌면 그것은 선입견을 갖고 사물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읽었던 <돈황이야기>가 이 작품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돈황에 대한 이해로 부터 <왕오천축국전>의 반환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문화재를 약탈해 갔고, 그들의 행위는 그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는 것이 알려져야만 할 것이다. 1200여년전 1만Km 이상을 걸으며 구도의 길을 찾았던 자유로운 영혼 혜초는 지금 프랑스에 있다. 단지 동서문화의 이해라는 이유로 혜초를 붙잡아두고 있는 그들에게 이제는 그의 영혼을 그가 잠들었던 곳으로 놓아주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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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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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람들에게 오랜동안 마음의 수양을 닦고 인격적인 성숙을 도와준 늘 가까이 있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빛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산업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그러한 책의 고마움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펴기보다는 언제나 간편하게 접할수 있는 인터넷과 게임에 몰두하는 것이 점점 현대인의 삶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평생을 책과 함께 해왔으며 오직 읽는 것만이 자신의 삶의 전부였다고 회고하는 김열규 교수는 이 책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독서>를 통해 그러한 현대인의 생활을 조용한 목소리로 질타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성장기는 굶주림의 시대였으나 책이 있어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정신과 교양은 굶주림의 시대다.”

저자는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던 어린시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와 출가한 딸이 부모님의 영전에 바치던 '언문제문'을 조용히 읽던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독서에의 연원을 찾는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통해 포에지 즉 시가 가지는 정취를 느꼈으며 제문을 읽던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한(恨)의 정서에 눈을 뜬다. 저자는 그것을 자신이 한국학을 공부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회고 하기도 한다. 그러한 '듣기'로 시작된 저자의 독서는 이내 글자를 깨우치면서 '보기'로 이어졌고 그전까지 그저 보기만 하던 눈은 마침내 읽는 눈이 된다. 즉 읽는 것은 눈과 함께 머리와 더불어 마음으로 읽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눈으로만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모르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바로 머리로 읽기가 시작되고 마음으로 읽기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외운다는 것 역시 자신의 성장에 있어 또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기억한다. 소리내어 암송할때 그 글은 책에 그저 쓰여있는 글자가 아니라 자신의 속에서 우러나는 나의 글이 되었다고...

 

책이 없던 시절, 우리말을 배우지 못하던 시절의 아픔을 넘어 해방을 맞아면서 저자는 풍요한 책의 전성시대를 맞한다. '고리짝', '도떼기'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이 버리고간 책더미를 저자는 책의 벼락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책벼락은 그에게 앙드레 지드와 헤르만 헤세라는 거장을 만나게 해주었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토마스 만은 그에게 본격적인 문학 읽기의 길을 열어주기 시작한다. 그저 줄거리만을 파악하려 하던 철없고 소박했던 읽기에서 작은 글 하나에 담겨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청년시절 맞이했던 한국전쟁때도 저자는 미군이 버리고 간 책더미에서 영미 문학의 원전들을 만난다. 릴케를 통해 만난 고독은 그에게 커다란 구원의 메세지가 되었고 소로의 <월든>과 함께 그것은 저자를 지금 남녘땅의 한적한 시골마을로 이끈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77해 동안 계속된 저자의 읽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노년의 그는 현재 자신의 읽기를 일컬어 '산책'이라 표현한다. 굳이 시간과 목적지를 정해놓은 것이 아닌 자연속에서의 산책과 같이 여유로운 읽기를 통해 영혼의 존재를 느끼고 믿게 되는 행복을 느낀다고 저자는 조용히 이야기 하고 있다.

 

"삶이란 모르는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다. 삶은 앎을 향한 행보이다. 아니, 아예 삶을 앎이리고 해두게 좋을 것 같다."
책은 김열규 교수가 돌아보는 독서광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2부는 저자가 권하는 책읽기의 방법론이 주로 다루어 진다. '꼼꼼읽기'와 '클로즈 리딩'으로 대표되는 책읽기의 요령은 시간에 쫓겨 '속독'으로 책을 읽기까지 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읽기의 진정한 미학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저자는 그것들에 대해 흑백의 논리적 잣대를 대진 않는다. 그대신 저자가 제시하는 '삼단뛰기'라는 처방은 그래서 웬지 더 흥미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글읽기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책읽기도 쾌락의 일종이기에 우리 모두 책읽는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저자의 말은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읽기는 내게는 삶이었다. 그건 날이 갈 수록 전에 없이 더욱더 진실해져 가는 진실이다”
저자의 책읽기 방법은 다양하다. 모든 것을 망라하고 이잡듯이 그리고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재밌게 읽으라는 저자의 읽기가 소요유(逍遙遊)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평생 그렇게 책을 읽어왔건만 노학자의 아직도 못읽은 책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책 읽기와 함께 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 오랜 자극들이 새삼스럽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 같아 보인다. 이제 눈꽃이라도 필까? 그런 인생의 역정에 티끌만큼도 뉘우침이 껴들 틈이 없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미처 못 읽은 책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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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경영 전략 - 제갈량의 지략과 결단력에서 배우는 경영의 법칙
쌍찐롱 지음, 박주은 옮김 / 다연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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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삼국지 연의>가 그토록 동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데는 분명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짧은 삼국의 정립기간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영웅으로 때로는 신의를 저버린 역적으로 명멸해갔지만 그 안에는 의리와 충의가 있고 또한 음모와 배신이 공존했다. 물론 <삼국지 연의>가 정사에서 벗어나 촉한정통론의 시각으로 삼국의 형세를 판단했으며 또한 소설적 허구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방대한 분량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가지  사건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지 연의>의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전략과 전술이고 언제나 그 중심에 서 있는 제갈량은 시대를 넘어 누구에게나 추앙받고 있는 불세출의 영웅이기도 하다.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일촉즉발의 전장에서 사륜거에 앉아 윤건을 두르고 우선을 흔들며 유유히 나타나는 촉의 승상 제갈량은 상대방인 위나 오의 군사들에겐 그 싸움의 끝을 의미했다. 자유기고가 쌍친롱은 이 책 <제갈량의 경영전략>을 통해 제갈량이 보여준 수많은 전략과 전술을 되짚어보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가 남긴 지략과 결단력을 통해 경영의 법칙을 배워보자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제갈량은 알려진대로 27세까지 세상을 잊고 초야에 묻혀 살다 삼고초려라는 유비의 간곡한 부탁때문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관우나 장비들의 불만이 많았지만 유비는 "나에게 공명이 있음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그러니 그대들도 다시는 말을 하지 말라."라는 말을 하면서 그러한 논란을 잠재운다. 이후부터 유비의 군사권을 쥐게 된 제갈량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일개 지방호족에도 미치지 못하던 유비를 위나 오와 대적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시킨다. 그 과정에서 제갈량은 수많은 전투에서 상대방을 미리 간파하고 오히려 상대방의 전략을 이용하여 승리를 이끌어 냈으며 어떤 상대와 마주하더라도 전투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계책을 선보이게 된다.

 

책은 제갈량이 주역으로 참여한 전투와 함께 적에 대한 그의 심리전까지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 실제 <삼국지 연의>의 본문을 삽입하고 그 뒤에 지략해설을 통해 제갈량이 시도한 병법과 전략에 대해 풀어 놓는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그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제갈량의 일화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개인과 기업의 전략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지나간 고대의 병법가가 전하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생생한 교훈이기도 할 것이다. 난세에 나타나 신선같은 풍모를 잃지 않으며 언제나 천하의 중심에 서있던 제갈량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재였지만 부족한 유비에게 선택받은 이후 한번도 그를 배신하지 않았으며 후주 유선까지도 열과 성을 다해 보좌했다. 또한 제갈량은 그가 보여준 충성과 의리 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친분에 상관없는 분명한 상벌을 통해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었으며 철저히 공과 사를 구별하는 태도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기도 했다. 결국 그가 벌인 수많은 전투의 승패 만큼이나 그의 인간됨 역시 그를 매력있고 비범한 인물로 만들어 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제갈량이 남긴 이야기들은 너무 많아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그를 세상에 나오게 한 천하삼분지계로 부터 촉한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오히려 한사람이 그토록 많은 일을 해냈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기까지 하기도 하다. 적벽대전은 그의 그러한 신화에 날개를 달아준 중요한 전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데는 오랫동안 천하의 정세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전략과 대책을 잘 세워놓은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적은 수의 군사로써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의지와 함께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살린 그만이 가진 지략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전략과 지모를 닮으려 노력했고 그것은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을 만난다. 그것은 피해갈수도 돌아갈수도 없는 선택의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늘 바쁘게 살아간다는 핑계로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여 하질 않는다. 이 책에서 거론된 제갈량의 전략은 준비된 자만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명한 대책을 세울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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