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중국의 변방 돈황에서 많은 양의 고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서벙세계의 많은 탐험가들이 돈황으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먼지만이 뒤덮여 있던 돈황 막고굴에서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는 주지를 매수해 많은 양의 두루마리 경전을 프랑스로 반출한다. 그 많은 양의 고문서 가운데 8세기 동양인 최초로 아랍세계까지 탐험했던 신라승 혜초의 서역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다. 제목도 지은이도 없이 양쪽 귀퉁이가 잘려나간 230줄 총 6000여 글자의 두루마리가 바로 <왕오천축국전>의 발견당시 모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작은 양의 문서에 담겨있는 1300여년전 한 신라승이 인도의 다섯 천축국을 걸으면서 보고 느낀 감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글은 이제 세계최고의 기행문으로 평가받으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혜초는 신라를 떠나 중국 광주에서 인도 출신의 승려 금강지로 부터 밀교를 배우게 되고 그의 권유에 의해 불교의 발상지인 천축으로 구법순례여행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4년여동안의 여정은 인도 전역의 다섯천축 뿐만아니라 지금의 이란인 파사국을 거쳐 아랍권인 대식국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돌아오는 경로를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워지는 파미르 고원쪽으로 택한다. 실크로드로 알려진 파미르 고원은 그만큼 높고 험준했지만 그곳은 옛부터 많은 상인들이 오고간 중국 땅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이후 그는 다시 스승과 밀교 경전을 공부하다가 신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에는 그러한 그가 걸었던 여행의 기록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대로 돈황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은 원본이 아닌 필사본이기에 헤초의 그러한 여정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고 한다. 또한 그가 중국으로 들어와 장안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김탁환의 역사팩션 <혜초>는 바로 그 부분을 파고 들며 소설의 시작을 알린다.

 

사막을 넘어 서역으로의 진군을 준비하던 당의 안서도호부에 알라의 군대가 급습하였다는 우기로 떠난 선발대에게서 한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편지는 3만에 이르는 대군을 주춤하게 만든다. 20세에 당의 유격장군이 된 고선지는 그 사실의 확인을 위해 열두명의 병사와 함께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사막인 대유사를 건너게 된다. 하지만 사막의 폭풍은 모두를 집어 삼키고 열두병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절망속에 홀로 남은 고선지가 그곳이 사막의 무덤임을 직감할때쯤 그는 모래구덩에서 벌거벗은채 웅크려있던 사내와 걸낭 하나를 발견한다. 바로 헤초였다. 고선지는 그를 대식의 간자라고 생각한다. 혜초는 단하디도 하지 못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대유사에서 돌아온 고선지는 열두병사가 돌아와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지만 그들은 모두 악귀에 홀려 돌림병이 든채로 격리되어 있다. 고선지 역시 돌림병에 대한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고선지마저도 돌림병에 걸리고 이제 고선지는 함께 대유사를 건넌 혜초를 찾아 과연 혜초만이 돌림병에 걸리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야만 한다.

 

혜초는 촉망받던 신라의 화랑이었다. 하지만 처음 참가한 전투에서 그를 따르던 낭도들을 모두 잃고 더 이상의 출정을 포기하게 된다. 가문을 더럽힌 그의 죄를 씻어내기 위해 대신 출정했던 그의 아버지가 전사하게 되면서 혜초는 사랑하는 여인 옥인까지도 포기하기에 이르게 된다. 죽음을 결심한 그에게 불교의 고행은 그의 죄를 씻을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인다. 결국 그는 승려가 되고 신라를 떠나 당에 이른다. 소설은 내내 두개의 시점이 교차한다. 걸낭을 들고 사라진 혜초를 쫓는 고선지와 무희 오름의 시선은 현재의 시점이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그 시점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사건의 추이를 알려준다. 또 하나의 시점은 걸낭에 담겨 있던 혜초의 여행 기록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혜초는 파사에서 신라상인 김란수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동행하게 되고 마피르 고원으로 향한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하루에 하나씩 양피지의 기록을 읽는다. 란수를 비롯해 경교 신자인 야곱, 내림을 비롯한 다섯명의 무희, 그리고 짐꾼등 모두 서른명과 함께 넘는 파미르고원에서도 그의 기록과 양피지 읽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지금 란수는 혜초에게 걸낭에 담긴 양피지 기록을 혜초가 자신에게 줬다고 이야기 한다. 혜초는 그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양피지 기록을 읽어야 한다. 그 안에 어떤 기록이 있을지라도...

 

신라의 구도승 혜초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을 정복했던 고선지와의 만남을 통해 작가는 우리민족의 활동영역이 그토록 광활했음을 이야기 한다. 혜초는 자신의 지나간 과오를 잊고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걷는다. 고선지는 이민족 출신이라는 냉대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능력으로 그것을 헤쳐 나오려 한다. 그들의 머나먼 길과 모험 뒤에는 자가가 만들어낸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양피지 기록을 끝까지 자신의 것이라며 집착하는 김란수, 쓰러져 가는 고선지를 끝내 혜초와 만나게 하는 무희 오름은 이 소설에 숨겨져 있는 비밀로 다가서는 모든 해결의 실마리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지역에 있었으리라는 전제하에 혜초와 고선지를 끌어낸 작가의 상상력에 탄복할 뿐이다. 광대한 소설적 구성만큼이나 작품은 내내 흥미롭다. 실제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여행했던 지역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소설 <혜초>는 그것이 기나긴 모험의 여정이었음을 알린다. 기록에서 나타나는 혜초의 여정처럼 그는 수없이 많은 종교를 만나지만 언제나 배타적이지 않고 객관적인 구도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바라본다. 어쩌면 그것은 선입견을 갖고 사물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읽었던 <돈황이야기>가 이 작품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돈황에 대한 이해로 부터 <왕오천축국전>의 반환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문화재를 약탈해 갔고, 그들의 행위는 그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는 것이 알려져야만 할 것이다. 1200여년전 1만Km 이상을 걸으며 구도의 길을 찾았던 자유로운 영혼 혜초는 지금 프랑스에 있다. 단지 동서문화의 이해라는 이유로 혜초를 붙잡아두고 있는 그들에게 이제는 그의 영혼을 그가 잠들었던 곳으로 놓아주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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