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사람들에게 오랜동안 마음의 수양을 닦고 인격적인 성숙을 도와준 늘 가까이 있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빛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산업사회 속에서 현대인들은 그러한 책의 고마움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펴기보다는 언제나 간편하게 접할수 있는 인터넷과 게임에 몰두하는 것이 점점 현대인의 삶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평생을 책과 함께 해왔으며 오직 읽는 것만이 자신의 삶의 전부였다고 회고하는 김열규 교수는 이 책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독서>를 통해 그러한 현대인의 생활을 조용한 목소리로 질타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의 성장기는 굶주림의 시대였으나 책이 있어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정신과 교양은 굶주림의 시대다.” 저자는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던 어린시절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와 출가한 딸이 부모님의 영전에 바치던 '언문제문'을 조용히 읽던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독서에의 연원을 찾는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통해 포에지 즉 시가 가지는 정취를 느꼈으며 제문을 읽던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한(恨)의 정서에 눈을 뜬다. 저자는 그것을 자신이 한국학을 공부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회고 하기도 한다. 그러한 '듣기'로 시작된 저자의 독서는 이내 글자를 깨우치면서 '보기'로 이어졌고 그전까지 그저 보기만 하던 눈은 마침내 읽는 눈이 된다. 즉 읽는 것은 눈과 함께 머리와 더불어 마음으로 읽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눈으로만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모르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바로 머리로 읽기가 시작되고 마음으로 읽기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외운다는 것 역시 자신의 성장에 있어 또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기억한다. 소리내어 암송할때 그 글은 책에 그저 쓰여있는 글자가 아니라 자신의 속에서 우러나는 나의 글이 되었다고... 책이 없던 시절, 우리말을 배우지 못하던 시절의 아픔을 넘어 해방을 맞아면서 저자는 풍요한 책의 전성시대를 맞한다. '고리짝', '도떼기'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이 버리고간 책더미를 저자는 책의 벼락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책벼락은 그에게 앙드레 지드와 헤르만 헤세라는 거장을 만나게 해주었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토마스 만은 그에게 본격적인 문학 읽기의 길을 열어주기 시작한다. 그저 줄거리만을 파악하려 하던 철없고 소박했던 읽기에서 작은 글 하나에 담겨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청년시절 맞이했던 한국전쟁때도 저자는 미군이 버리고 간 책더미에서 영미 문학의 원전들을 만난다. 릴케를 통해 만난 고독은 그에게 커다란 구원의 메세지가 되었고 소로의 <월든>과 함께 그것은 저자를 지금 남녘땅의 한적한 시골마을로 이끈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77해 동안 계속된 저자의 읽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노년의 그는 현재 자신의 읽기를 일컬어 '산책'이라 표현한다. 굳이 시간과 목적지를 정해놓은 것이 아닌 자연속에서의 산책과 같이 여유로운 읽기를 통해 영혼의 존재를 느끼고 믿게 되는 행복을 느낀다고 저자는 조용히 이야기 하고 있다. "삶이란 모르는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다. 삶은 앎을 향한 행보이다. 아니, 아예 삶을 앎이리고 해두게 좋을 것 같다." 책은 김열규 교수가 돌아보는 독서광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2부는 저자가 권하는 책읽기의 방법론이 주로 다루어 진다. '꼼꼼읽기'와 '클로즈 리딩'으로 대표되는 책읽기의 요령은 시간에 쫓겨 '속독'으로 책을 읽기까지 하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읽기의 진정한 미학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있는 듯하다. 물론 저자는 그것들에 대해 흑백의 논리적 잣대를 대진 않는다. 그대신 저자가 제시하는 '삼단뛰기'라는 처방은 그래서 웬지 더 흥미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글읽기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책읽기도 쾌락의 일종이기에 우리 모두 책읽는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저자의 말은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읽기는 내게는 삶이었다. 그건 날이 갈 수록 전에 없이 더욱더 진실해져 가는 진실이다” 저자의 책읽기 방법은 다양하다. 모든 것을 망라하고 이잡듯이 그리고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듯이 재밌게 읽으라는 저자의 읽기가 소요유(逍遙遊)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평생 그렇게 책을 읽어왔건만 노학자의 아직도 못읽은 책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책 읽기와 함께 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그 오랜 자극들이 새삼스럽다. 눈밭에 찍힌 발자국 같아 보인다. 이제 눈꽃이라도 필까? 그런 인생의 역정에 티끌만큼도 뉘우침이 껴들 틈이 없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미처 못 읽은 책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