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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한 그녀의 에로틱한 글쓰기
이요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32살의 노처녀 오자인. 어쩌다 쓰게된 에로소설이 독자들의 인기를 끌게 되면서 그녀는 졸지에 인기작가 수준을 넘어선 확고부동한 에로계의 거성으로 자리잡게 된다. 쏠쏠한 수입은 그녀로 하여금 계속해서 에로 소설을 쓰게 했고 어쩌다 보니 이제 에로소설 집필은 그녀의 생계가 되어 버렸다. 지긋지긋하게 쓰기 싫은 순간에도 지독한 슬럼프 기간에도 담당기자는 그녀에게 연재를 재촉하며 원고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한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전경험 전혀 없는 그녀이기에 모든 소설속의 상황은 그녀의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그렇게 짜증나는 밤 언제나 그랬듯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을 끝으로 이 생활 쫑내기로 그녀는 다짐해 본다.
"오늘도 밤은 길고, 일은 많고, 남자는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을 것 같은 불길한 에감 때문에 더욱 우울해지는 밤이다."
그렇게 헤매고 있는 그녀의 옆방에서 어느날 예술을 한답시고 들려오는 남녀의 소리는 그녀로 하여금 벽을 걷어차게 만든다.
제1회 네티즌 작가 서바이벌 공모전에서 출판상으로 선정되었으며, 이 요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한 <로맨틱한 그녀의 에로틱한 글쓰기>는 경쾌하고 즐거운 연애소설이다. 연애에 대해 전혀 무지하며 그 감정조차도 잊어버린 서른 두살의 노처녀가 사랑을 배워가고 갈등하며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게 되는 달콤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언제나 지독한 외로움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옆방에 스물여덟의 단역 영화배우 정호수가 이사오게 된다. 처음부터 자인은 호수가 맘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에로 영화배우라니 자인은 상대하기조차 싫어질 지경이다. 하지만 호수가 키우는 고양이 장미가 베란다의 난간을 통해 자인의 방을 드나들게 되면서 자인과 호수는 좋든 싫든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다. 호수는 자인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물심양면으로 그녀의 집필을 돕는다. 호수는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 벽을 한 번 걷어차면 급하게 자신을 찾는 신호라 생각하겠으며, 두 번 차면 배고프다는 신호이기에 짠 하거 먹을 걸 들고 나타나겠다 이야기 한다. 한번도 자상한 관심을 받아본 적 없는 자인은 그런 호수가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한다. 하지만 그즈음 그녀의 모든 관심은 수현에게 쏠려 있다. 고양이 장미 때문에 찾게 됐던 동물병원에서 중학교 때 짝이었던 수현을 만난 이후 그녀는 세상이 달라 보임을 느낀다. 그녀에게 이제 수현과 함께 하는 미래는 그저 장밋빛 찬란한 색깔일 뿐이다. 다만 그녀가 에로소설 작가라는 비밀만 뺀다면...
호수는 자인에게 사랑을 쟁취하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호수는 자신이 작가 오인의 단순한 팬이 아닌 그녀 자인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음악을 들어도 다른 일에 몰두해도 그저 온통 자인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다. 하지만 자인은 호수에게서 얻은 용기로 결심을 하고 자신의 비밀을 수현에게 털어놓는다. 모든 현실에서의 상황이 그렇듯 수현에게도 자인이 에로계의 거성 '오인'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자인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호수와의 첫데이트에 나서는 순간 포기했던 수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자인은 냉정히 호수의 손을 뿌리쳐 버린다.
"이런 말, 나 이런 말할 자격 없는 거 아는데... 지금 가면 다신 나, 누나 안 볼 건데..."
툭하면 화내고 금방 삐쳐 버리며, 급하기만 한 성격에 그저 벽이나 걷어찰 줄 밖에 모르고, 솔직하지도 못하며, 특징없는 외모와 자신보다 네 살이나 많은 연상이지만, 아픈 자신에게 초콜릿이 들어간 돼지죽을 끓여주는 자인이 호수는 너무나 사랑스러울 뿐이다. 모든 것이 종료된 듯한 상황 자인 역시 비지땀을 흘리며 베란다를 넘어 호수의 빈 방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체취를 느낀다. 하지만 호수는 웬 여자와 함께 나타나고 쫓기듯 자인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녀는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한다.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그녀는 벽을 쾅쾅쾅 세번 두드려 본다.
자인과 호수의 밀고 당기는 경쾌한 사랑 이야기는 소설속 자인이 써내려간 <Ready for Love>를 통해 더욱 그 생명력을 얻는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것만 같았던 절망속의 혜리와 바다가 맞는 해피엔딩처럼 자인과 호수는 현실에서도 사랑을 이루어낸다. 두가지 사랑이 공존하는 <로맨틱한 그녀의 에로틱한 글쓰기>는 자인과 호수의 이야기만큼이나 소설속의 또다른 소설 <Ready for Love>를 맞이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다. 둘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모습이 혜리와 바다에게서 그대로 보여지기에 서로 다른 두개의 색깔처럼 우리들의 가슴에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두 개의 에필로그를 통해 우리는 <Ready for Love>에 대한 작가의 배려를 보게 되기도 한다. 열려진 결말은 작가의 말대로 또다른 이야기의 시작임을 알리는듯 하게 보여진다. 사랑의 패배자가 되어버린 수현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처럼 모는 결말은 또다른 시작을 알리는 희망으로 우리들에게도 다가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