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미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그 어느 분야를 막론하건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그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그러한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데에는 강력한 군사력이라는 요소가 있긴 했지만 그들은 한번 차지한 그들의 자리를 쉽게 놓아버리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기에 그러한 그들의 팽창주의를 일컬어 이전의 시대와는 또다른 신제국주의의 출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300년도 되지않는 일천한 역사를 딛고 그들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되기까지는 겉으로 드러난 경제력과 군사력만큼이나 문화적, 정신적 요인 또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는 분명할 것이다. 김욱동 교수는 <소설로 읽는 아메리카의 초상 -소설의 제국>을 통해 지금까지 그들을 지배했고 그들이 지나왔던 시대를 상징하는 문학작품을 통해 미국이 지향했던 정서에 접근해보려 시도한다. 이미 문화적으로도 그들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고 그것은 소설이라는 문학적 텍스트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통해 지나간 미국과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려는 것은 그들이 가졌던 이상과 꿈 그리고 시대상에 접근해 보는 좋은 방법으로 보여진다.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메세지를 풀어놓는다. 그것은 시대상의 반영이라는 모습 이외에도 어떤 식으로든 거스를수 없는 확고한 틀이기도 하다. 아무리 시대와 동떨어진 전혀 다른 삶을 다룬다 하더라도 소설속에 나타나는 텍스트들은 대부분 그러한 당대의 갈등과 시대상, 그리고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기에... 저자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11개의 작품은 소설이 씌여지던 당대 미국의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로 선별되었으며 하나하나 미국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사에 일정부분 커다란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희망을 안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땅에 닿은 그들에게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는 하나님이라는 구심점아래 그들을 지탱해주는 강력한 사회적질서 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새니엘 호든의 <주홍글자>는 그러한 준엄한 청교도 사회에 비판의 메세지를 던진다. 작가 호든은 소설속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자가 더이상 사회적 구속의 상징이 아니라 참다운 개인의 자유 의지의 표현임을 강조하려 했음을 이야기 한다. <주홍글자>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당시의 미국은 그러한 청교도적 사회의 틀이 굳건한 사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어린이들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그들이 만든 질서와 규범에 순응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당시의 아동문학역시 그러한 수준일 뿐이었지만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등을 통해 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은 당시의 미국이 가지고 있던 가장 커다란 갈등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마크 트웨인은 신생국가 미국이 안고 있던 그러한 내부적인 모순의 모습들을 고발하기도 했지만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을 형상화하려 노력하기도 했다. 그가 톰 소여와 헉을 통해 미래로 가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줬다면 <왕자와 거지>는 그들의 모태이기도 한 영국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이기도 하다. 이디스 워튼의 두 작품 <이선 프롬>과 <여름>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라는 지속적인 미국문학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사회제도, 규범, 인습은 개인으로서는 거역하기 힘든 속박이기도 했다. 또한 남북전쟁이 끝난 비참한 미국 농촌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새로운 무엇 - 색다르고 아름답고 단순한 것 말고도 정교하게 고안된 그 무엇을 쓰고 싶습니다." 20세기가 되면서 미국의 소설도 희망찬 그들의 모습과 미래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이다. 소설속의 개츠비의 꿈과 환상은 당시 미국 전체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개츠비가 온갖 희생과 고난을 이겨내기에 당시 미국의 모습과 유사해 보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츠비가 이룩한 물질적 성공은 겉으로 드러난 작은 한조각이었으며 또한 그것은 변질된 미국의 꿈이기도 했다. 도전적이었던 그들의 관심은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통해 다시 내부의 갈등으로 돌아온다. 고립과 소외라는 어쩌면 지금도 이어지는 정체성의 혼란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라는 전형적인 주제에 대해 다시한번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들의 내부적 상처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근본적인 삶의 문제로 다가선다. 흑백갈등이라는 인종적인 문제만큼이나 사회집단간 계층간의 골은 깊어져가기만 한다. 마여 엔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내>는 그러한 뿌리깊은 갈등에 도전하는 새로운 의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통과 절망은 창조의 노래가 된다. 책은 미국의 역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듯이 보여진다. 갈등과 차별은 어쩌면 오래도록 미국을 상징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많은 문학작품이 그러한 주제를 담고 당대를 통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미국이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가 마지막에 오 헨리를 다루면서 그러한 갈등이 조금은 희석되어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잎새>나 <크리스마스 선물>등 오 헨리가 그의 작품을 보여주었던 따뜻한 인간애는 어쩌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은 민중적이고 낙관적인 가장 이상적인 그들의 모습이기에... 법 앞에 평등한 만인의 모습을 실현하려 했던 겉으로 나타난 미국의 모습과 흑인노예를 노동력의 근간으로 삼아 오늘의 번영을 이루어 냈다는 또다른 미국의 모습은 전형적이고 양면적인 오늘날 그들의 모습과 유사게 보이기까지 하다. 감추고 싶었던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써내려간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 있고 그렇게 그들의 치부는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들은 언제나 시대의 벽에 대해 항거했고 거스를수 없는 변화에 대한 욕망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문학을 그렇게 언제나 시대의 모습을 대변해 왔다. 그러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미국의 두가지 모습이 문학에서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지 이 책은 그 또다른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