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식총서 '빈'(인성기)으로부터


육군사관학교 정문 Hauptportal der Theresianischen Militärakademie Von Peter Haas,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18세기 도시 - 교류의 시작과 장소의 역사'(문학동네)란 책의 '1부_ 유럽의 중심'에 '빈과 개혁: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가 실려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한 충성맹세 1740 -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마리아 테레지아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7m0318b 이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 중 하나이자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사진: UnsplashSercan Faiz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6a1050a








빈 남부 역에서 기차로 대략 50km 정도 가면 비너 노이슈타트가 나온다.

비너 노이슈타트에서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육군사관학교(Militärakademie)’일 것이다. 붉은 벽돌로 높이 쌓은 담장 때문에 요새처럼 보이는 이곳은 18세기 계몽 군주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귀족 가문의 자제들을 징집해 훈련시키던 곳이다. 후보생들은 사실상 일종의 볼모였다. 지방 귀족들이 자식들을 이곳에 보내 놓고 반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계몽절대군주의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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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930846 작년 오늘에 이어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김대웅 역)로부터

Morgenlandschaft (Aurora), 1606 - Adam Elsheimer - WikiArt.org


에오스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5a2124a 새벽의 여신 에오스(그리스) 또는 아우로라(로마)

Aurora Triumphing over Night, c.1755 - c.1756 - Jean-Honore Fragonard - WikiArt.org


독일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캐롤린 비트만의 앨범 '새벽'




결국 우리는 일찍 탄생하는 새벽의 여신이 사는 곳,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이기도 한 아이아이 섬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나타나자 나는 동지들을 키르케의 궁으로 다시 보냈습니다. - 제12권 세이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트리나크리아 섬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찾아오자, 거룩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샌들을 신은 뒤, 손에 꼭 맞는 커다란 창을 집어 들었다. - 제17권 거지 차림으로 귀가한 오디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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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의 출처는 황금가지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 해설 - 저자 크리스티의 손자가 썼다.





시르케지 기차역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87XX41000045 오리엔트 특급의 종착역이었다.







"난 항상 기차 여행을 좋아했어요." 할머니는 자서전에서 그렇게 말했다. 1933년에 써서 1934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아마도 할머니가 여행에 대한 강렬한 사랑, 특히 기차 여행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쓴 소설 가운데 가장 걸작일 것이다.

그 당시 기차 여행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들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 트리에스테까지, 그런 다음 발칸 반도와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이스탄불에 도착해서는, 그곳에서 배로 갈아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하이데르 파샤까지 갔다가 다시 기차로 갈아타고 종착역인 다마스쿠스까지 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마스쿠스에서 바그다드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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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에 이스탄불이 포함되어 있듯이 사학자 백승종의 저서 '도시로 보는 유럽사'에도 이스탄불 편이 있는데 현재의 이름 이스탄불 대신 로마 시대의 이름 콘스탄티노플로 소제목을 달았다(‘콘스탄티노플, 동서양을 연결한 ‘비단길’의 영광과 치욕‘).

Constantinople (Now Istanbul), the Hippodrome, 1843 - Ippolito Caffi - WikiArt.org


백승종의 다른 저서 '제국의 시대'도 담아둔다. 이 책의 '3장 동서 교차로의 오스만제국'에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 관한 내용이 있다.

Constantinople (Istanbul). Eski Sarayskiy garden., 1882 - Vasily Polenov - WikiArt.org


'이스탄불,이스탄불' - 부르한 쇤메즈 인터뷰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063





콘스탄티노플이 멸망하자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기독교도였던 그들은 이슬람의 지배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천 년 동안 고이 간직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을 이탈리아에 전해주었다. 이로부터 새로운 문화 운동인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되었다. 유럽에 새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여러 해가 지난 1923년의 일이었다. 그리스는 이 도시에 대한 자국의 연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터키의 지도자 케말 파샤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심경이 불편했던지 터키의 수도를 앙카라로 옮겼다. 또, 로잔 조약을 맺어 이스탄불의 동방정교회를 보호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정교회의 활동은 지금까지도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슬람 국가 안에서 기독교는 결코 정상적인 종교 활동을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유럽이나 미국 등 기독교 국가에서도 이슬람이 마음대로 성전도 짓고 포교 활동도 전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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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 중 '이스탄불,단색에 가려진 무지개'로부터. 현 튀르키예의 도시 이스탄불이 유럽도시기행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스탄불의 지리적-지정학적 위치와 고대 그리스와 동로마였던 역사적 맥락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튀르키예는 유럽 연합 가입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cf. ['EU' 문턱 못넘은 튀르키예, '브릭스' 가입 신청…중·러와 밀착할까] https://v.daum.net/v/20240903120202261

이스탄불(2018) 사진: UnsplashKaterina Kerdi


[천의 얼굴 가진 이스탄불]https://v.daum.net/v/20240808080028220






예전의 이스탄불이 지녔던 문화적·종교적·민족적 다양성은 거의 다 사라졌다. 터키공화국이라는 그릇은 1천500년 이어진 국제도시 이스탄불의 문화 자산을 담아낼 만큼 크지 않았던 듯하다. 이스탄불의 흠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 도시의 오래된 건축물과 공간을 독해하려면 이런 변화를 고려해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

이스탄불이 단색의 도시로 변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오스만제국이 해체되어 제국의 수도 지위를 잃은 것, 둘째는 터키인이 아닌 주민들이 도시를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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